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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5. B-17, 전략 폭격을 말하다

Editor! 2017. 7. 3. 10:27


5. B-17, 전략 폭격을 말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은 기존 전쟁의 성격을 180도로 뒤바꿔 놓았다. 총력전(總力戰)이 등장하기까지, 징조는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가 징병제를 통해 병력을 폭발적으로 확대했고, 이후 프로이센에서 본격적인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병력의 단위가 달라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애교였다. 무작정 병력을 늘린다고 해도 이를 제대로 뒷받침할 병참이나 행정적 지원이 부족했기에 무한정으로 군사력을 확장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동 수단의 한계로 전선과 후방의 경계가 분명했다. 즉 전쟁이 터져도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모든 상식이 허물어진다.  


1914년 바르샤바를 공격한 독일 비행선 쉬테-란츠 SL2. 이제 전쟁은 병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근대적 관료 조직의 발달과 통신 수단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의 성장과 과학 기술의 약진은 총력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전쟁은 이제 전쟁터의 병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치르는 총력전이 됐다. 전쟁은 눈앞의 적군만 격파한다고 끝나는 단순한 전쟁놀이와 달라졌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이를 보급하는 적국의 생산 시설과 이를 생산하는 국민들을 타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아지게 된다. 만약 이런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 기술이 없었다면 몽상가의 망상으로 끝났겠지만, 1920년대가 되면 이런 생각을 현실로 구현할 만한 과학 기술이 나온다. 바로 항공기를 통한 전략 폭격이다. 


이탈리아 장군 줄리오 두헤(Giulio Douhet, 1869~1930년)가 대표적인 주자로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현대전은 한 국가가 보유한 모든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이 동원되는 총력전”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그는 전쟁의 장기화와 독일의 패배를 예견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는 앞으로의 전쟁에서 제공권이 가지는 의미와 폭격기를 통한 전략 폭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전선에 있는 병사들을 타격하는 게 아니라 후방의 생산 시설을 폭격해 전쟁 수행 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주장이다.


“공습을 가하는 측은 군사 목표보다도 공업상의 목표를 중시해야 하며, 또 적국의 도시에도 ‘용서 없는 타격’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공포와 고통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윽고 국민 자신이 자기 보존 본능 때문에 궐기하여 전쟁 종결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육해군을 동원할 새도 없이 그날이 오는 것이다.”-줄리오 두헤,『제공권』(1921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략 폭격을 말할 때 꼭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전이 하나 있다. 소위 밀레니엄 작전으로 불리는 쾰른 대공습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참 격화일로로 달리던 1942년 5월 영국의 폭격기 사령부 지휘관이었던 아서 해리스(Arthur Harris, 1892~1984년)가 입안한 이 작전은 아주 단순했다. “1,000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독일의 천년 고도를 타격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처칠은 열광했고, 100대가 격추되어도 좋으니 당장 이 작전을 실행하라 재촉했다. 1942년 5월 27일 영국은 보유한 모든 폭격기를 긁어모아 1,047대의 폭격기를 확보해 쾰른으로 띄웠다. 결과는 참혹했다. 시내 중심부 2.5제곱킬로미터가 초토화됐고, 금속, 고무, 화학 공장, U-보트 엔진 공장을 포함한 250여 개 공장이 잿더미가 되었으며 독일 민간인 5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해리스는 목표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목표가 되는 도시를 지워 버렸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1945년 2월 드레스덴을 폭격해 3만 명이 넘는 독일인을 죽인 그는 또다른 의미의 도살자였다.


전략 폭격의 위력을 보여 준 대사건이다.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붙었다. 영국의 전략 폭격은 밤에만 했다는 점이다. 해리스의 별명은 도살자 해리스(butcher harris)였다. 독일인들을 죽여서 붙은 별명이 아니라, 폭격기 승무원들의 손실에 대해서 무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영국 폭격기 조종사들의 생존 기간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에 뛰어든 병사들의 생존 기간보다 짧았다. 폭격기 생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영국이 주간 공습을 포기하고 야간 폭격에만 전념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이 나오기 전까지 공중전은 기관총을 기본으로 한 접근전이기에 주간보다는 야간의 폭격이 생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국으로 넘어 온 미군들은 자신들의 B-17을 자랑하며, 주간 폭격을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13정의 기관총이 달려있고,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가 장착됐다.”


베트남 전쟁 때까지 사용됐던 노든 폭격 조준기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조준기였다. 테스트에서는 CEP(원형공산오차, 유도병기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척도) 18.2미터(실전에서는 370미터)를 자랑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겁 없는 양키 B-17을 몰고 대서양을 건너다. 하늘의 요새 B-17는 전후사방에 10여 정의 기관총을 탑재했지만, 독일 전투기를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머스탱이라는 걸출한 호위기의 등장 이후부터였다.


B-17이 목표 하나를 파괴하는 데 총 4,500회를 출격, 폭탄 9,070발을 떨어뜨려야 겨우 목표를 파괴할 수 있었다. 자유낙하 폭탄으로 목표를 명중시킨다는 것 자체가 행운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의 노든 조준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낮에 폭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목표물이 있는 도시를 쓸어 버리는 전략을 썼다면, 미국은 목표물만 골라서 폭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독일 전투기다. 미국은 B-17 21대를 하나의 전투 대형(Combat Box)으로 만들면, 사각 없이 적기를 요격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영국은 뜯어말렸지만, 미국은 고집을 부렸다. 영국에 날아온 미국의 제8공군의 지휘관이던 에이커 준장은 이 상황에서 처칠 수상을 만나서 B-17로 주간 폭격이 가능하다는 걸 말하며, 처칠을 감히(?) 설득하려 했고, “생각해 보십시오, 밤낮으로 독일에 폭탄을 떨구면 독일 공군은 잠 잘 틈도 없을 겁니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 결과는 폭격기 승무원의 생환율을 보면 알 수 있는데, B-17 승무원의 평균 생환율은 8회 출격까지였다. 머스탱 전투기가 호위기로 배치되기 이전까지 B-17 폭격기에 탄 미군들은 언제 어디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위험에 맞서고 있었다. 이런 위험은 확실한 전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럽에 투하된 폭탄 5개 중 2개가 B-17이 떨어뜨린 것으로, 총 29만 1508회 출격해 64만 톤 이상의 폭탄을 유럽 상공에 골고루 뿌려 주었으며 그들이 자랑하던 B-17에 달려 있던 기관포와 밀집 대형의 전투 상자도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두어 대전 기간 중 6,659대의 독일군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B-29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에 활약했던 가장 유명한 폭격기 중 하나로 기억되는 B-17. 기체 이곳저곳에 심어놓은 기관총 덕택에 하늘의 요새(Flying Fortress)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폭탄 탑재량에서는 영국 폭격기에 밀렸고 머스탱 등장 전에는 요새라는 이름값을 하기에는 약간 부족했던 폭격기이지만 B-17이 제2차 대전의 승리에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106-107쪽.


『비행기』 106~107쪽에 보잉 B-17이 실려 있다.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