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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인 항공기의 시대 본문

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9. 무인 항공기의 시대

Editor! 2017. 7. 31. 18:03


9. 무인 항공기의 시대


X-47B 무인 공격기. X-47B의 이착함 테스트를 보기 위해 해군 참모 총장을 비롯해 군 고위 관료들이 총출동했다. X-47B의 군사적, 정치적, 기술적 가치 때문이다. 


2012년 12월 미 해군 항공 모함 해리 트루먼에 가오리 한 마리, 즉 무인 공격기 X-47B가 착륙했다. 새로운 전투기가 등장할 때마다 항공 관계자들은 “이 전투기가 마지막 유인 전투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한다. 인류가 항공기를 전쟁에 투입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무인 항공기에 대한 꿈을 꿨다. 사람이 타지 않는 항공기가 가지는 이점은 무궁무진한데 당장 비행기 설계부터 달라진다. 조종석이 사라지고 생명 유지 장치와 비상 탈출 장치도 필요 없어진다. 작전 시간에 대한 부담도 사라져 신체적 부담 때문에 작전이 제한되는 경우도 없고, 심리적, 생리적 이유로 작전을 망치는 일도 없다. 정치적으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사람의 목숨이 걸리지 않았기에 결정권자의 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가 보복 병기로 내놓은 V-1과 V-2가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이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독일은 아무 부담 없이 영국에 순항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을 날렸고, 영국은 이를 막기 위해 사람이 탄 전투기를 날려야 했다. 폭격기에 단좌 전투기를 올린 괴상한 비행 폭탄 미스텔(Mistletoe)을 만든 것도 조종사의 생명을 배려한 이유였다.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가미카제라는 비인도적인 전술을 생각해 낸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사람의 생명은 명령권자에게도 부담인 만큼 그 부담이 없다면, 작전의 결정이 쉬워질 게 분명했다. 


핵 어뢰까지 달 수 있는 무서운 기체지만 정작 실전에 배치하니 바다로 추락하기 일쑤였다. 아직 기술력이 무르익기 전이었다.


항공 기술자들은 무인 항공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놀랍게도 미국은 이미 1950년대에 무인 항공기 개발에 나섰고, 1962년 실전에 배치했다. 무인 대잠 헬기 QH-50 대시(DASH, Drone Anti Submarine Helicopter)는 미 해군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조종사만 없다면, 위험 구역에 부담 없이 투입할 수 있다. 일반적인 대잠 헬기의 경우는 기상과 해상 상황에 따라 출격을 주저하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 무인기는 배에서 리모트 컨트롤러로 조정하면 된다. 가격도 낮아 한두 대 추락한다 해도 아쉬울 게 없다. 게다가 작지만 MK.44 경어뢰 2발, MK 48 중어뢰 1발을 달 수 있고, 여차하면 핵 어뢰나 핵폭뢰도 장착할 수 있었다. 미 해군은 당장 생산과 배치를 지시한 지 몇 년 안 돼 755대나 생산 배치했다. 미 해군이 이렇게 열광하자 일본의 해상 자위대도 대시를 샀다.  


그러나 이 무인 헬기는 얼마 가지 않아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툭하면 바다로 가라앉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대쉬는 아날로그 FM 파수, 즉  장난감 RC 카와 같은 주파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자파가 없는 시험장에서는 잘 날아올랐지만, 온갖 통신 주파수와 전자파가 중첩된 전투 공역에 들어가면 맥없이 바다에 추락했다. 결국 미 해군은 대시 운영을 포기했다.  


귀여운 MQ-9 리퍼. 역시 죽음을 부르는 사신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이후 손쉽게 적군을 죽이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무인 공격기의 대량 투입을 결정했다. 게임을 하듯 모니터를 보고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됐다. 


RQ-1 무인 정찰기를 확대 개량한 무인 공격기 MQ-1를 확장한 MQ-9 리퍼, 스텔스 무인 정찰기 RQ-170 센티넬, 지상의 인공위성이란 별명답게 ‘전략자산’으로 분류된 RQ-4글로벌 호크. 이미 무인기는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인데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란 상공에서 격추된(미국 측은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추락이라 주장) RQ-170 센티넬은 뉴스에 나오기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존재조차도 몰랐다. 개발 배치했지만,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군용 무인기가 상당히 존재한다. 정찰기로 시작된 무인기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밀 타격, 항공 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는 무인 공격기의 영역까지 발전하고 있다. 무인기라 해서 공원에서 가지고 노는 드론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RQ-4글로벌 호크의 경우는 그 가격부터 일반 전투기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나라에 최초 제시된 미국 측의 판매가는 4대에 12억 달러였고 가격 협상을 거쳐 8억 달러(8800억 원) 수준에서 낙찰됐다. 기체 외에 운용을 위한 부품, 훈련, 군수 지원이 포함됐다지만 드론이나 RC 비행기의 영역을 뛰어넘은 가격이다.  


글로벌 호크는 그 자체로 무인기가 가지는 모든 장점을 방증한다. 항공기를 전쟁에 투입했던 최초의 목적은 ‘정찰’이다. 공중 정찰만큼 효과적인 정찰 방법은 없다.


글로벌 호크는 U-2와 같은 고고도 정찰기로 작전 고도 1만 9500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준다. 이 고도에서 합성 개구 레이더와 전자 광학, 적외선 센서를 활용해 적진을 탐색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인공 위성 데이터 링크를 경유해 지상의 작전 통제부로 전송한다. 무려 36시간 동안 정찰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무인기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작전 고도 1만 9500미터와 체공 시간 36시간이다. 유인 항공기라면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항공 생리학상 신체에 무리가 가며 우주복과 같은 여압복을 갖춰 입는다 해도 36시간이나 긴 체공 시간 동안 신체가 이를 견뎌내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무인기가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이 안 탄다는 점이다. 

잘 날아가던 군용 무인기들이 아무 이유 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최신 기술로 인해 통제소와의 신호 연결이 끊어지면 자동 비행 모드로 전환하도록 사전에 프로그램되었지만, 이런 사전 프로그램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순간적인 상황 판단. 즉시 대응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지상에서 사람이 통제한다고 하지만 수백, 수천 킬로미터 밖의 고고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돌발 상황을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MQ-1 프레데터 무인기의 통제실. 이제 전쟁은 게임이 되었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 수천킬로미터 밖에서 화면을 보며 미사일을 발사하고 폭탄을 떨어뜨린다.  


무인 항공기가 우리의 미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드론의 활용도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새로운 항공기가 개발될 때마다 ‘마지막 유인 항공기’ 타이틀을 언제 붙일까를 고민하는 것만 봐도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환영할 수 없는 것이 무인 군용기가 전장의 주역으로 등장할수록 전쟁의 허들이 낮아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탄다고 해서 전쟁이 나지 않고, 사람이 타지 않는다고 전쟁이 빈번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무모한 모험이나 충돌 발생 확률이 유인기에 비해 높아질 수 있다. 이미 무인 공격기에 의한 대테러 공격과 이로 인한 무고한 민간인의 사망 사고가 일어나고 있으며, 무인 공격기 조종사들은 심각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 결정권자들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빈번한 공격이 이루어졌고, 세계는 더 많은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286-287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