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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1. 항공기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

Editor! 2017.08.14 10:32


11. 항공기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


항공 산업 분야에서 1950년대는 특별한 시기였다. 광풍이 불었다고 해야 할 만큼 자고 나면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고, 과장해서 한 주마다 새로운 비행기가 등장해 기록을 갱신할 정도였다. 미 공군의 센추리 시리즈(Century Series)가 대표적이다. 미 공군의 식별 번호 100번대 기종들을 총칭하는 이 시리즈는 F-100 슈퍼세이버를 시작으로 F-101 부두, F-102 델타 대거, F-104 스타파이터, F-105 선더치프, F-106 델타 다트까지 라인업이 이어진다. 센추리 시리즈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 입찰한 무수한 항공기들이 있었다. XF-103, YF-107, YF-108 등 1950년대부터 시작된 미 공군의 전투기 개발과 쇼핑 목록은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미 해군 항공대가 공군과 달리 따로 자신들의 전투기를 개발했다는 점이 놀라운데, 센추리 시리즈 말고도 수많은 전투기들이 개발됐다는 의미다. 공군이 센추리 시리즈를 만들 때 미 해군이 덜컥 내놓은 명작이 바로 F-4 팬텀이다.(이 팬텀을 공군이 억지로 받아들였을 때 팬텀의 제식명을 F-110 스펙터로 명명해 센추리 시리즈에 포함시키려고 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독일은 F-104 스타파이터를 무려 915대나 구입했지만, 이중 270대가 추락했다. 전투기를 타고 이륙한 다음 택시를 타고 기지로 귀환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전투기 한 대를 위해 거의 10년 이상 개발하고 경쟁하는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 1950년대는 별 세계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떻게 이런 황금기가 시작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1950~1960년대는 사상 최대 호황이었던 시기로 당장 미국만 보아도 노조 결성율이 가장 높았고, 전 국민의 60퍼센트가 중산층에 포함되던 시기였다. 또한 ‘소련’이라는 적이 눈앞에 등장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걱정하던 군산 복합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련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털자 국방부와 방위 산업체들은 입맛대로 무기를 개발해 배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배경이었다. 얼마 전까지 프로펠러를 돌리던 시절이었기에 제트 전투기에 대한 기술력이 쌓였을 리 만무했다. 만약 컴퓨터가 있었다면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검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모형을 만들어 풍동시험을 하든가, 실험기를 만들어 직접 띄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미 공군과 미국 국가항공자문위원회에서는 실험기를 만들어 하늘로 띄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실험기 개발에 뛰어든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X 시리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음속의 벽을 깬 유인 비행체.


X시리즈가 뭘까? 미국에서는 항공기를 개발할 때마다 고유한 형식 번호를 부여한다. A-10 공격기, B-17폭격기, C-130 수송기, F-15 전투기 등 이름 앞에 붙는 알파벳이 바로 미군이 각각의 항공기에 부여한 형식 부호다. A는 공격기(attack), B는 폭격기(bomber), C는 수송기(cargo), F는 전투기(fighter)로 X는 experimental, 실험을 뜻한다. 이 X 시리즈의 영예로운 첫 번째 실험기체가 바로 X-1이다. X-1이 만들어진 목적은 간단했다.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음속의 벽’을 뚫는 것. 이미 총알이나 포탄은 마하의 벽을 넘어 날아다녔지만, 사람이 타는 비행체가 음속의 벽을 깬 적은 없었다.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 앞에서 X-1 프로젝트 팀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마하 1로 비행해 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극도로 위험한 임무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대신, 한 번에 아주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앨버트 보이드(Albert Boyd) 대령의 증언이다. 

X-1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직전인 1947년, 영국의 제프리 드 하빌랜드(Geffrey de Havilland Jr.)가 마하의 벽을 돌파하겠다며 도전했다가 마하 0.94에서 기체가 산산조각 나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은 초음속 실험을 포기했다. 이 위험한 프로젝트에 미국이 덤벼들었다. 당시 X-1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방식 대신 B-29에 실려 하늘로 올라간 뒤 분리, 엔진을 점화하는 방식으로 음속의 벽에 도전했다. 당시 X-1의 실험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첫 번째 비행에서는 엔진을 점화하지 않고 지면 위를 활공하다가 착륙했고, 차츰 속도를 올려 일곱 번째 비행에 이르면 마하 0.94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대망의 1947년 10월 14일 X-1은 인류 최초로 유인 항공기로 음속의 벽을 깬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 업적의 주인공은 이 항공기를 개발한 엔지니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만큼 그 공을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X-1의 테스트파일럿인 척 예거(Chuck Yeager

)다.


B-29에 장착한 뒤에 상공에서 X-1을 ‘투하’하는 방식이었다. 


겉보기에는 완성된 항공기이지만, 한 번도 날지 못한 항공기를 안심하고 탈 수 있을까? 누군가는 타고 날아올라 이 항공기가 안전함을 증명해야 한다. “완성된 항공기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테스트파일럿이다. 지금도 테스트파일럿은 위험한 직군으로 분류된다. 하물며 한 주마다 새로운 비행기가 등장해 기존의 기록들을 갈아 치웠던 1950년대의 테스트 파일럿들의 위험은 어떠했을까? 미지의 영역인 음속의 벽을 깨고, 새로운 항공 기술을 적용한 신형기체들에 올라탔던 테스트파일럿들은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조종석에 몸을 밀어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테스트파일럿들은 한 주에 1명꼴로 사망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처럼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항공 이론과 기체들이 쉴 새 없이 나오던 시절이었기에 테스트파일럿들은 기량과 사명감, 엔지니어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기체에 올라탔다. 척 예거도 마찬가지였다.


전설적인 테스트파일럿 척 예거. 사병에서 시작해 장군의 반열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잭이 생각한다면 나는 해낼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해내겠다.” 척 예거가 X-1에 올라타면서 X-1 프로젝트의 엔지니어였던 잭 리들리를 언급하며 한 말이다. 이 믿음처럼 척 예거는 음속의 벽을 돌파한 최초의 인간이 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스트파일럿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사병으로 시작해 준장으로 퇴역했던 고졸 출신의 전투기 조종사는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최고의 조종사로 기록됐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서 우주 비행사 선발 시험에 원서도 못 썼지만 대신에 X-1프로젝트에 참여해 인류 최초로 음속 벽을 넘은 인간으로 기록됐으니 더 의미 있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마하를 넘나드는 게 일상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음속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은 이름 모를 도전자들의 피 위에 쌓아올린 제단일지도 모른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134~135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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