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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0. 군용기의 무덤 AMARG

Editor! 2017.08.07 14:34


10. 군용기의 무덤 AMARG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돈, 두 번째는 돈, 세 번째는 더 많은 돈이다.”

─ 이탈리아 장군 지안 야코포 트리불치오(Gian Jacopo Trivulzio)


내가 아는 한 전쟁에 대한 금언 중 가장 객관적인 말이다. 전쟁을 말할 때 영웅들의 용전분투나 명장들의 화려한 전략 전술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전쟁의 본질은 ‘돈’이다. 전쟁사를 뒤적거리다 보면, 소수가 다수를 이기거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뒤집은 기적 같은 승리를 확인할 수 있지만 희귀한 예이다. 대부분의 전투나 전쟁은 잘 먹고, 잘 입히고, 충실한 장비를 갖춘 ‘다수의 군대’가 소수의 군대를 짓밟는 방식으로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미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군대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미국의 물량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전 배치 전단. 유사시 한반도에 병력을 전개하기 위해 4~6척의 배가 오키나와, 괌, 사이판 인근 해역을 빙빙 돌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한국까지 이틀, 사이판 인근에서는 나흘이 걸린다. 각 배마다 1개 여단을 완전 무장시킬 수 있는 장비가 실려 있다. 병력은 비행기로 실어 나르고, 장비는 72시간 안에 하역한다. 병사들은 이 장비를 수령해 즉시 전장으로 달려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소련에 지원한 트럭 숫자가 전쟁 독일이 생산한 트럭의 양과 비슷했다. 당시 미국이 어떤 식으로 전쟁을 치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 바로 대서양에서 U-보트와 싸웠던 방법이다.


“전쟁 중 나를 진심으로 두렵게 만든 유일한 것은 U-보트의 위협이었다. 광막한 대양을    가로 지르고 있는 우리 생명선, 특히 영국 근해의 항로는 위험에 마냥 노출되어 있었다.    이 싸움이 영국 본토 항공결전이라 일컬었던 자랑스러운 항공전보다 더 근심이었다.” 처칠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이다. 섬나라 영국은 물자 보급이 멈추는 순간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U-보트를 잡기 위해 미국과 영국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신형 폭뢰를 개발하고, 1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전투기도 함선에 탑재하는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U-보트를 확실히 근절시킬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미국에서 비밀병기 하나를 들고 나온다.


U-보트가 상선 한 척을 격침하면, 두 척 찍어내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 물량 앞에 장사 없다.


바로 리버티선(Liberty ship)이라 불리던 전시표준선이다. 헨리 카이저가 생각해 낸 이 리버티선은 1만 920톤의 화물을 싣고 시속 11노트로 1만 7000해리를 갈수 있는 배인데, 가격은 놀랍게도 척당 200만 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 척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일이었고, 선박 건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8시간 반 만에 진수해 나올 정도였다. 1942년 독일 해군은 월평균 70만 톤을 격침시켜야 연합국 선박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격침되는 숫자보다 더 많은 배를 대서양으로 내보낸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독일 해군을 압도했다. 1941년 9월부터 1942년까지 597척의 리버티선을 만들어 낸 미국은 1943년이 되자 월평균 140척씩 리버티선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같은 기간 U-보트의 월평균 생산량은 23.6척이었다. 전쟁 전 기간 중 가장 높은 생산량을 보여 주었지만, 독일 해군은 끝끝내 미국의 리버티선 생산 속도를 추월하지 못했다. 전쟁 중 미국은 무려 2,751척의 리버티선을 찍어냈다.


남아도는 무기는 어떻게 할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엄청난 물량을 뽑아낸 미국에게 전쟁이 끝나자 이 ‘물량’이 문제가 되었다. 군함의 경우는 모스볼 처리로 선체 노후를 방지한 다음 전시 예비 보관을 했지만, 한계가 있어 항내에 계류시키거나 폐함 처리를 했다. 그래도 남아도는 게 군함이었다. 항공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미국은 이 남아도는 항공기를 저장할 보관소를 세우기 위해 선정된 곳이 애리조나 주 투손이다. 땅의 지질이 알칼리성이고, 강수량이 극히 적어 습도가 매우 낮아 비행기의 부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압도적 물량이다. 1970년대 도입한 팬텀 전투기를 아직까지 굴리는 한국 입장에서는 부러움을 넘어 경외감이 드는 장면이다. 


미 공군은 이곳에 기지를 건설하게 된다. 몬산에 위치한 309 AMARG(Aerospace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Group). 노후 전투기 보관소, 소위 항공기의 무덤이다. 현재 이곳에는 무려 4,400여 대의 항공기가 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곳의 항공기 중 70퍼센트는 정비와 수리를 거치면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는 상태란 점이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항공기는 모두 연료를 제공하고, 엔진을 비롯해 주요 부위를 밀봉 라텍스 스프레이로 보호한다. 이렇게 보관 처리했기에 필요하면 언제든 이 항공기를 정비해 비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퇴역한 다음 사막에 보관한 항공기를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한국도 여기서 들여온 기체를 잘 굴리고 있다. 

한국 해군에서 사용 중인 P-3CK도 여기에 보관된 기체를 가져와 개조해 운영 중이다. 사용 중인 해군은 P-3CK의 성능에 만족하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닌데, 우방국들이 원한다면, 그리고 정치적인 결정이 내려지면 이곳의 군용기를 사 가기도 하고, 이 곳에 군용기를 보관할 수도 있다. 파키스탄 같은 경우도 우리와 같이 이곳에 보관 중이던 F-16 전투기를 샀고,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퇴역시킨 C-130을 보관하고 있다.


노후 전투기 보관소 출신 P-3CK. 정식 생산 라인에서 찍혀져 나온 P-3C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기체들은 우리나라의 P-3처럼 혹시 모를 ‘내일’을 기대하며 기다리고만 있을까? 조금 가혹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된다. 비행기 부품이 부족할 경우 이곳에 보관 중인 기체를 분해해 사용한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흔한데, B747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 수 450만여 개에서 소모성 부품을 제외하더라도 시간이 되면 갈아줘야 하는 시간 연한 부품들도 있다. 만약 이를 생산하는 회사가 사라지거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군용기도 마찬가지다. 생산 라인이 폐쇄되고, 생산이 종료된다고 멀쩡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기체를 퇴역시켜야 할까? 우리나라의 F-4팬텀의 경우도 생산이 종료 된 다음 세계 각국의 팬텀 운영 국가를 찾아가 부품을 구입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부품을 생산하면서 비행기의 수명을 늘리고 있다. AMARG는 이런 사정이 있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피난처와 같은 곳이다. 만약 부품 활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된 기체라면,  통째로 해체해 재활용한다. 비행기를 재활용한다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비행기는 훌륭한 재활용 용품이다. 군용기뿐만 아니라 민간기의 경우에도 수명이 다하면 따로 보관해 부품이 필요할 때 해체해 사용하거나 통째로 해체해 재활용한다. 

보잉 사의 B747 무게가 147톤 정도인데, 해체하면 약 127톤의 재생 가능한 자재가 나온다. 비행기는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하기에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747 한 대에서만 70톤 가까운 알루미늄이 나오고, 그 나머지 철강자재들을 보면 철, 텅스텐, 티타늄 등등 값비싼 자원들이 나온다. 이렇게 나온 알루미늄은 주로 음료수 캔으로 만들어지고 철이나 텅스텐 등등은 제철소로 들어가 또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한다. 

그나마 여기 들어오는 기체는 행복한 군용기일 수도 있다. F-14처럼 적성국 이란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F-117처럼 그 기술이 너무도 중요한 비밀이라서 퇴역 이후 바로 분쇄기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역시나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란 사실을 증명하는 곳이 바로 AMARG이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284~285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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