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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날개 없이 날아오른 비행선의 시대 본문

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3. 날개 없이 날아오른 비행선의 시대

Editor! 2017.08.28 10:42


13. 날개 없이 날아오른 비행선의 시대


오늘날 움직이는 광고판 이미지로 각인된 비행선은 한때 전략 폭격의 선봉에 선 비행체로, 군사 마니아들의 꿈인 비행 항공 모함의 시작을 알렸다. 비행선의 가능성을 현실에서 이루어 낸 곳은 독일이다. 페르디난드 폰 체펠린 백작(Ferdinand Adolf Heinrich August Graf von Zeppelin, 1838~1917년)이 있었기에 독일은 비행선 강국이 됐다. 보불 전쟁의 영웅으로 중장으로 퇴역한 체펠린은 외교관으로 활약하다 빌헬름 2세와의 의견 충돌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 비행선 연구에 덤벼들었다.

체펠린 백작의 이름이 비행선의 대명사가 되었다. 독일인들에게 비행선은 곧 자존심이었고 비행선이 방문하는 도시마다 열광하며 체펠린 백작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였다.


비행선은 연식과 경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식의 경우 일반적인 풍선처럼 가스를 주입하면 부풀어 오르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풍선은 바늘 하나만 있어도 터트릴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비행선은 이렇게 터지지는 않아도 가스가 샜다. 체펠린은 내구도가 떨어지는 연식 대신 경식을 선호했다. 풍선 밖에 뼈대를 만들고 설치한 외장 풍선 안에 가스가 들어가는 기낭을 달면 기낭을 여러 개 배치할 수 있어서 한두 개가 찢어지더라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고, 외부의 충격에서도 기낭을 보호할 수 있다.


1937년 힌덴부르크 호 참사. 이 사건으로 비행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체펠린 백작은 경식 비행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비행선은 경식으로 제작해, 군사적 목적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행선의 성능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도태된 기술로 보이겠지만 비행선은 21세기인 지금에도 충분히 통용될 만한 성능을 지녔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150톤의 화물을 1만 5700킬로미터 실어 나르는 정도)의 수송기는 러시아의 AN-124다. 그런데  힌덴부르크 호의 화물 적재량은 60톤에 이른다. 100톤 이상의 물자를 수송하고 싶다면, (기낭의 크기를 크게) 설계만 하면 된다. 비행선의 물자 수송 능력은 비행기의 그것을 크게 웃도는데다 속도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다. 비행선의 대명사라 불리는 그라프 체펠린의 경우 시속 124킬로미터에 달했다. 게다가 그 엄청난 체공 능력은 비행기의 그것을 훨씬 압도하는데, 그라프 체펠린의 경우 21일 7시간 26분에 걸쳐 세계 일주를 하기도 했다. 연료 소비량은 비행기보다 훨씬 적다. 비행기는 양력을 활용하지만 비행선은 가스를 활용해 부상한 뒤 장착한 내연기관을 통해 추진력을 얻으므로 연료 소모가 적다.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음이나 배기가스 분출음이 없어 조용하다.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이를 덮고도 남을 단점이 있다. 우선 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풍선처럼 비행선도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낭에 구멍이라도 난다면,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결정적으로 기낭에 들어가는 가스가 문제다. 1937년 힌덴부르크 호는 미국 뉴저지 주의 해군 항공 기지 상공에서 정전기로 폭발했다. 원래 힌덴부르크 호는 헬륨 가스로 기낭을 채우도록 설계됐는데, 미국의 금수 조치로 인해 헬륨을 수입할 수 없게 되자 기낭을 수소로 채운결과 잿더미가 됐다. 이 사건 이후 비행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크고 웅장했던 힌덴부르크 호. 이 장대한 모습은 곧 비행선의 종말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군용기’로서 비행선은 어떤 활약을 했을까? 제1차 세계 대전 초창기까지만 하더라도 비행선은 전략 폭격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체펠린 백작의 바람대로 독일은 비행선을 전략 폭격에 활용했다. 1915년 5월 31일 독일의 비행선이 런던 상공에 등장했다. 독일은 120개의 폭탄을 투하해 7명이 사망했고, 35명이 부상했다. 전과 자체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다. 총력전 체제에서의 이 최초의 전략 폭격에 대한 영국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즉물적이었다. 전투기 100여 대를 비행선 방어를 위해 배치했고, 지상의 대공 방어 인력도 10만 명이나 투입했다. 그러나 당시 비행기의 성능으로는 비행선을 격추하기 어려웠다. 전투기가 비행선을 발견하기 전에 비행선이 전투기를 먼저 발견했다. 전투기의 경우에는 파일럿의 전방 시야 하나뿐이지만, 비행선은 전후좌우 360도를 다 감시하기 위해 쌍안경을 든 견시병이 상시 배치됐기 때문이다. 만약 전투기가 비행선을 발견하더라도 전방 기관총이 장착되지 않은 당시 전투기로서는 공격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 사이 비행선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즉시 고도를 올려 버리면 그만이다. 당시 비행기의 성능으로는 비행선의 고도를 쫓아갈 수 없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비행선을 향해 폭탄을 던져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엄청난 덩치의 비행선은 폭탄 한방에만 맞아도 순식간에 불덩이가 됐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내내 비행선을 활용한 폭격을 계속했고, 그 결과 557명의 영국인이 사망했다. 전과 자체로만 보면 큰 의미는 없으나 전선(戰線)을 뛰어넘은 전략 폭격의심리적 효과는 다대했다.


미 해군의 공중 항공 모함 아크론. 그 꿈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현대전에서 전투용 기체로 비행선의 활용은 어떠할까? 당장 레이더는 어떻게 할까? 제1차 세계 대전의 구식 복엽 항공기로도 격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레이더와 미사일이 난무하는 현대 전장에서의 활용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비행선의 개발에 나섰는데 미군과 비행선의 인연은 100년 가까이 되었다. 1931년 비행선의 가능성에 주목한 미 해군은 비행선을 활용해 공중 항공 모함 아크론(USS Akron)을 완성한다. 4대의 항공기를 탑재한 이 항공 모함은 자매함인 마콘(Macon)과 함께 사이좋게 박살이 난다. 안타깝게도 비행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안정성이 또다시 발목을 잡아챘다. 사실 미국 이전에 이미 영국은 1920년대 거대한 비행선에 후크를 달아 비행기를 탑재한 다음 공중 투하한 전적이 있다. R33 역시도 잦은 사고로 실전 배치는 포기했다. 

그럼에도 미군은 비행선의 가능성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비행선의 압도적인 체공 능력과 엄청난 수송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영공 내에서 체공하며 정찰 감시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통합 순항 미사일 감시 체계(JLENS)’로 개발된 무인 비행선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감시 거리가 560킬로미터에 이르는 74미터짜리 비행선은 미 수도권을 향하는 순항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순항 미사일을 발견하기 이전에 지상 고정 장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메릴랜드 주 송전선을 건드려 메릴랜드 주 1만 가구에 정전 사태를 일으켰다. 감시 체계 외에 수송용 비행선 에어랜더10(Airlander 10)도 개발 중이다. 10톤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이 비행선은 안타깝게도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묻히는 듯했지만, 민간용으로 재조립됐다. 70여 년 전에 사장(死藏)된 기술이지만 비행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날개가 있어야만 날 수 있는 게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비행선. 언제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대한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100-101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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