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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빈 의자 - 앤 드루얀 본문

완결된 연재/(完) 코스모스 미리보기

칼 세이건의 빈 의자 - 앤 드루얀

Editor! 2014. 4. 17. 11:20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출간 기념 방한 시 앤드루얀 (2008년 5월)


앤 드루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헌사


칼 세이건의 부인으로 알고 계실 분도 많겠지만, 가장 유명한 과학 저술가이자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앤 드루얀. 칼 세이건 10주기에 출간된『코스모스』특별판 한국어판 서문으로 실린 앤 드루얀의 글 '칼 세이건의 빈 의자' 중 일부를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리부트된 TV 시리즈 <코스모스>의 호스트 닐 타이슨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의 빈 의자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던 날, 칼이 들고 갔던 서류 가방은, 자물쇠가 채워진 채 199612월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가방은 하나의 타임캡슐이었다. 그즈음 그가 하던 일과 칼에게 허락된 마지막 며칠의 유예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 가방 안에 간직돼 있었다. 나는 그 가방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어쩐지 내용물을 들쳐볼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자, 바로 지금이 가방을 열고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숫자 조합을 몇 가지 시도해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런데 내 생일을 숫자로 조합해 넣자, 황금빛의 빗장이 찰각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열렸다. 우리 가족의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었다. 당시 열네 살이던 딸 사샤Sasha가 보낸 토성 모양의 생일 축하 카드가 보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보안 배지badge들의 묶음도 나왔다. 갈릴레오 탐사선이 찍은 유로파의 사진이 책의 뒷면을 장식한 사이언스Science잡지 한 권, 각종 행성들의 표면을 담은 여러 장의 슬라이드, 크리스 치바Chris Chyba가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자신의 방문 계획을 알리는 메모 쪽지 등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닐 타이슨Neil Tyson에게 보내는 칼의 답장 편지도 나왔다. 브롱크스Bronx 소재 한 고등학교의 학생이던 닐이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칼에게 문의한 이후, 둘은 서로 존경하고 격려하는 관계였었다. 또 눈에 띄는 편지가 있었다. 내용인 즉, 행성 보고서Planetary Report의 한 독자가 물어온 질문에 칼이 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칼린 앤더슨Charlene Anderson의 부탁이었다. 간단한 분자 구조의 기체들에 자외선을 쪼이면 어떻게 복잡한 유기물 찌꺼기로 변하게 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칼린의 요구에 칼은 물론 그렇게 하겠다.”라고 선뜻 답했다. 미술가인 돈 데이비스Don Davis에게 보내는 메모는 영화 콘택트Contact에 필요한 천체들의 영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과학자이면서 미술가인 빌 하르트만Bill Hartmann이 칼에게 화성의 운석 구덩이에 관해 묻는 내용이었다. NASA에서 1997년에 열릴 원시 화성에 관한 워크숍과 또 백악관에서 그해 12월에 열릴 우주 개발의 미래에 관한 백악관 회의에 칼이 기조 연설을 수락한 데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들이 있었다.

삶의 마지막 1주일을 맞으면서 칼은, 어떻게 해서든지 백악관 회의에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도록 하고 싶어 했다. 당시 칼은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40년의 우주 개발 역사가 성취해 놓은 것들 위에 우리가 또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이다. 칼은 별을 향한 긴 여정에서 우리가 방향을 잃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이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류의 의지가 혹시 사그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크게 우려했다. 침대에 누어서 죽어 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하려던 기조 연설의 내용을 있는 힘을 다해 구술해 갔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부통령 고어는 칼의 구술 내용을 대독하는 것으로 예정됐던 백악관 회의를 시작했다. 칼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그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칼의 메시지가 백악관 사람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 이야기에 미소로 답했다. 이미 담갈색으로 변해 가던 그의 두 눈망울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앨 고어에 대한 고마움, 우주 과학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전했다는 안도감,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등이 그의 눈빛에 섞여 있었다. 우주 과학의 미래에 대한 그의 우려는, 적어도 짧은 시간 척도로 보았을 때, 아주 타당한 것이었음이 그 후에 곧 판명됐다.

앞으로 두 걸음 나갔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식의 변화로 인류는 역사의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별을 향한 여정에서도 우리는 우회로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우회로야말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이 아닌가.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결국, 지구인들은 칼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갈 것이다. 칼이 앉아 있던 그 의자는 주인을 잃은 지 오래됐지만, 그가 우리에게 전한 이상과 가치관은 여기 그대로 있다. 그가 가꿔 오던 꿈들마저 인류 전체의 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은가.

 

2006년 가을

앤 드루얀


칼 세이건 특별전 : 2014.3.31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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