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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⑤ 내 사랑 엠마 본문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⑤ 내 사랑 엠마
사랑하는 엠마, (…) 나는 너무 이기적이오. 당신을 가지고 싶고, 정말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사랑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언제까지고, 한없이 나의 사랑스러운 엠마 생각에 잠겨있고 싶다오. 내 마음 속에 우선 떠오르는 건, 당신이 이 편지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오.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미래의 부인 곁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오로지 당신에게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낙서하듯이, 내가 하는 말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지 않고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지 않겠소. (…) 아버지는 “너는 복권에 당첨된 거야”라고 하셨던 조스 삼촌의 말을 계속 반복하고 계신다오. (…) 나의 사랑스러운 엠마, 나는 행복에 겨워서, 겸허와 감사를 가득 담아 당신의 두 손에 키스를 합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뿐이라오.
1838년 11월 14일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찰스 다윈
젊은 시절 엠마 다윈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은 결혼을 하고 런던 교외의 다운 하우스에 정착해서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조용히 살았다. 지적으로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였지만 생활은 단조로웠다.
대개는 아침에 일찍,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산책을 했다. 오전에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세 시간 쯤 공부를 했는데 중간의 한 시간은 편지를 읽었다.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소파에 기대 쉬고 있는 다윈을 위해 부인이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기르던 개, 폴리와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하고 점심을 마치면 삼십 분은 신문을 읽고 한 시간은 편지를 썼다.
오후 3시부터는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부인이 읽어 주는 소설책을 즐겼다. 다시 오후 산책을 하고 한 시간 가량 공부를 하면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늘 부인과 주사위 놀이를 했다. 놀이가 끝나고 미처 못 읽은 논문과 책을 뒤적이다 보면 밤 9시. 10시30분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인의 피아노 연주를 듣거나 부인이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였다.
다운하우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서재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일과표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나 중세 대학의 학자들의 그것과 아주 비슷했다. 그것이 다윈이 의도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일을 했던 수도사들의 생활에서 그들이 신을 찾던 시간을 부인과 함께 한 시간으로, 일을 하던 시간을 공부한 시간으로만 바꾸어 넣으면 비슷하게 겹친다. 복잡한 세상일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하루에 네댓 시간씩, 꾸준히 공부를 한 것이 다윈의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졌다.
나이 들어서의 엠마 다윈 (이미지 출처: wikipedia)
부인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과연 다윈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다윈의 부인, 엠마는 파리에 유학하면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쇼팽과 함께 피아노를 공부한 재원이었고 활쏘기에 조예가 깊었던 활달한 여인이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청혼을 여러 차례 물리쳤던 엠마가 다윈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그녀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인 1838년 11월. 엠마의 허락을 받은 다윈이 쓴 첫 편지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다윈의 표현은 간절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증상 때문에 평생 병마에 시달렸던 다윈을 묵묵히 간호하고 격려하면서 그의 성취를 지켜보았던 동반자에 대한 표현으로는 오히려 부족함이 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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