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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4. 항공 모함 탑재기

Editor! 2017.09.11 10:15


14. 항공 모함 탑재기


진주만 기습 이후 해전의 주역은 항공 모함이 되었다.

1941년 12월 7일 6척의 항공 모함을 주축으로 한 일본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해전의 주역은 전함에서 항공 모함으로 뒤바뀐다. 1905년 쓰시마 해전 이후 전 세계 해군 관계자들은 커다란 군함에 대구경 대포를 장착한 전함을 한 척이라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해전에서 승리한다고(거함거포주의) 믿고 있었다. 또한 전함들끼리의 회전으로 전쟁의 승부가 갈린다고 믿었다. 그러나 진주만 기습으로 전함의 전략적 가치는 뚝 떨어졌으며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항공 모함이다. 배 이곳저곳에 거대한 함포를 장착하고, 빈 곳이 없도록 빽빽하게 대공포를 둘러친 전함은 모습 자체로 위압적이다. 그러나 현대의 항공 모함은 자체 방공용 미사일 발사대 몇 개와 CIWS 벌컨포 1~2정이 고작이다. 항공 모함의 무기는 ‘갑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 모함은 배수량이 9만 톤이 넘어간다. 니미츠급 5번함인 아브라함 링컨부터는 10만 톤이 넘고 비행 갑판의 길이는 332.8미터, 폭은 76.8미터이다. 일반적인 ‘배’의 크기로 보자면 상당히 큰 편이지만 비행기 86대가 실려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32미터나 되는 비행 갑판은 좁다 못해 빽빽할 정도다. 냉전이 끝나고 난 뒤 74대로 탑재 대수가 줄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항공기를 운용하기에는 좁다. 

엘리베이터에 실려 올라오는 호넷. 


이 좁은 갑판 덕분에 항공 모함 함재기는 일반 항공기와 달리 특별한 ‘성능’이 요구된다. 가장 우선 되는 게 ‘크기’다. 항공 모함 함재기들의 기본 사이즈는 항공 모함에 장착된 엘리베이터에 들어갈 정도가 돼야 한다. 항공 모함 탑재 항공기는 비행 갑판 아래에 있는 격납고에 들어가 있는데 항공 모함에 장착돼 있는 엘리베이터 4기에 의해(니미츠급은 4기 장착) 비행 갑판으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이 엘리베이터는 47.6톤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데, 최대 항공기 2대까지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항공기의 무게와 크기를 제한해야 한다. 항공기 설계는 ‘다이어트와의 전쟁’이라 말할 수 있는데, 항공 모함 탑재기는 공군기보다 더 혹독한 다이어트에 들어가야 한다. 

무인 공격기 X-47도 항공 모함 운용을 위해 날개가 접힌다.

크기 문제는 접는 날개(folding wing)라는 전통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항공 모함 함재기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날개가 접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함재기에 요구되던 조건으로  대개 주익만 접지만, 대형 기체는 수직 꼬리날개도 접는 경우도 있다. 작아서 날개를 접지 않아도 되는 A-4 스카이호크 같은 기체도 있지만, 항공 모함 함재기의 경우 날개 정도는 접어 준다.

무게와 크기는 항공 모함에서의 이륙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너무 크면 이륙하기에 힘들기 때문이다. 군용 제트 전투기의 경우 아무리 짧아도 500미터 이상의 활주로가 필요하고, 평균적으로 1킬로미터 이상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날기 위해선 최소한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가 필요한데, 300미터 남짓한 항공 모함 활주로로는 부족하다. 그나마 이륙을 위해 쓸 수 있는 항공 모함 갑판은 고작 80~90미터 내외다. 이 거리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비행기 자체 추력만으론 어려워 고안된 게 캐터펄트(catapult, 사출기)로 말 그대로 항공기를 쏘아 올리는 방법이다. 니미츠급에 쓰이는 C-13-1은 94.5미터서 중량 35.4톤짜리 기체를 2.5초 사이에 255킬로미터의 속도로 ‘날려’ 버린다. 이때 파일롯에게 직접 가해지는 하중은 1톤, 기체에 직접 가해지는 하중은 80톤이나 된다. 이 캐터펄트 시스템이 있었기에 현대 정규 항모가 탄생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없었다면, 항공 모함의 크기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 커졌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야 하는 항공 모함 함재기들이다. 항공 모함을 날려 버리는 사출기 셔틀에 맞물리는 노즈기어와 저지봉(hold back bar)에 주목해야 한다. 한 번 사출할 때마다 F-14와 같은 대형기체는 노즈 기어에 9톤 이상의 하중이 걸리고 랜딩 기어에도 엄청난 하중이 걸린다. 만약 랜딩기어와 기체 골조가 허약하다면, 사출 될 때 기체 앞부분이 뜯겨져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해군 항공대 함재기의 랜딩 기어는 공군의 랜딩 기어보다 훨씬 튼튼하다.

이륙을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항공 모함 탑재기의 영원한 숙제인 ‘착륙’이 남았다. 항공 모함이 아니더라도 비행기 사고의 대부분은 이륙과 착륙, 그중에서도 착륙 시 많이 발생한다. 300미터의 갑판을 모두 사용해도 부족한 판에 함재기들에게 허용된 착륙 거리는 225.6미터. 이중 100.6미터는 와이어가 늘어나는 거리이며 실질적으로 항공기가 사용할 수 있는 125미터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항모 착륙을 사용하는 착륙용 거리는 70미터 정도다. 이 거리를 진입각도 3도를 유지하면서 시속 240킬로미터 내외로 들어가 70미터 안에서 정지하는 게 가능할까? 항공 모함 함재기는 이 가혹한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노즈 기어가 사출기에 맞물렸다. 이제 ‘쏘면’ 된다.

테일후크가 어레스팅 와이어에 걸렸다. 보통 어레스팅 와이어는 100번 정도 사용하고 나면 교체된다.

결국 착륙이 안 된다면 ‘낚아채자’는 쪽으로 낙찰을 봤다. 어레스팅 후크(해군 항공대 파일럿들은 ‘테일 후크(tailhook)’라 부른다. 해군 항공대 출신의 파일럿들은 해군 항공대의 상징으로 테일 후크를 내세운다.)와 어레스팅 와이어다. 항공 모함 함재기들이 공통적으로 꼭 달고 다니는 한 가지가 바로 테일 후크다. 말벌 벌침같이 생긴 이 걸개는 착함할 때 어래스팅 와이어에 걸어 제동하는 장치다. 착함 시 테일 후크에 걸리는 하중은 (함재기 무게에 따라) 50톤 내외, 조종사에게 걸리는 하중도 1.5톤 정도 된다. 비행기가 뜯겨져 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골조 보강이 필요하다. 

이함과 착함만으로도 항공 모함 함재기들은 다른 공군기들보다 특별해야 한다. 여기에 정비 문제도 있다. 육상 장비는 멈춘다고 박살나지 않지만,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멈추면 곧바로 추락하기 때문에 정비와 관리는 비행기의 필수다. 그러나 아무리 정비를 잘한다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보유 항공기 가동률 100퍼센트를 달성한 나라는 없다. 미국의 경우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F-15E형의 가동률이 계획 정비나 기지 내 창정비를 포함해 75퍼센트 내외다. 고가의 전투기를 운영하기 위한 정비와 수리 외에도 고장으로 인한 정비를 하는 것은 해군 항공대의 함재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지상 기지에서는 정비 시설을 대단위로 만들거나 창정비가 가능한 곳으로 보낼 수 있지만 항공 모함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니 기체 구조를 모듈화해 고장난 부위를 통째로 다른 모듈로 가는 방식을 쓴다. 좁은 항공 모함에서의 정비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해수로 인한 부식을 위한 해수 방지 도색까지 고려하면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뜯어보면 일반 공군기와 다른 것이 바로 항공 모함 탑재기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278-279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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