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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9) 모터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한 차 본문
자동차 저널리스트이자 DK 대백과사전 「카 북」의 번역자 중 한 분이시기도 한 류청희 선생님 - 메탈헤드란 닉네임이 더 친숙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 이 「카 북」에 등장하는 자동차 관련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9편 시작합니다.
* 본 연재는 마른모들의 Joyride (http://blog.naver.com/joyrde)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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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9) 모터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한 차
글 : 류청희(메탈헤드)
모터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한 차
지금은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기술의 시험대이면서 사람과 기계가 하나가 되어 극한에 도전하는 스포츠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자동차 기술이 시험과 검증을 거쳐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양산차에 반영되는 일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자동차 만들기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지금도 새로운 소재와 설계, 부품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기술들은 경주차에서 시험된 후 양산차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동차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경주차도 꾸준히 발전을 해 왔는데요. 오늘은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승부의 세계를 더욱 뜨겁게 만든 경주차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자동차 초기의 모터스포츠는 대부분 차의 내구성과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 치러졌지만, 점차 기술이 발전하고 차의 품질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순수한 속도 경쟁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터스포츠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할 무렵에 등장한 본격 스포츠카 중 하나가 머서 타입 35R 레이스어바웃(『카 북』 27쪽)입니다. 1909년에 미국에 설립된 머서가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이유도 역시 차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1910년에 내놓은 타입 35R 레이스어바웃은 처음부터 모터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안정적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최고시속 110킬로미터의 고속주행 능력과 뛰어난 핸들링을 자랑했습니다.
타입 35R 레이스어바웃은 1911년에 미국에서 치러진 여섯 개의 주요 모터스포츠 이벤트 가운데 다섯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위 두 차례, 3위 한 차례를 차지하며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습니다. 1911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경주 중 하나인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가 처음으로 열린 해이기도 했는데, 타입 35R 레이스어바웃은 이 경주에도 출전했지만 다른 경주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경주를 휩쓴 것만으로도 머서의 명성을 높이기에는 충분했죠. 타입 35R은 이후로도 1914년까지 만들어지며 여러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터스포츠는 점점 전문화되고 경주차도 설계와 성능의 수준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특히 유럽에서는 국가 간 경쟁의 모습도 띠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독일에서는 특히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나치의 계획에 따라 모터스포츠가 집중 육성됩니다. 그런 계획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이 그랑프리 경주에 출전할 경주차를 만들어 프랑스와 이태리 등 다른 유럽 국가 자동차 회사들의 경주차와 경쟁하게 되죠. 이때 독일 경주차들의 차체는 대부분 금속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은빛이었기 때문에, 독일어로는 질버파일(Silberpfeil), 영어로는 실버 애로우(Silver Arrow)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1930년대 중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실버 애로우를 대표하는 경주차들이 속속 만들어졌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W25(『카 북』 77쪽), W125(『카 북』 77쪽), W154(『카 북』 78쪽)가 대표적입니다. W25는 그랑프리 레이스 16회 우승을 기록했고, 1937년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곧바로 우승을 차지한 W125는 나중에 고속주행용으로 개조된 모델이 시속 432.7킬로미터라는 당시 세계 최고속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W154는 1938년에 루돌프 카라치올라를 유럽 그랑프리 선수권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는 주역이 됩니다.
아우토 우니온은 타입 A(『카 북』 76쪽)를 시작으로 타입 D(76쪽)에 이르는 여러 경주차를 만들었습니다. 아우토 우니온 경주차는 독특한 설계가 돋보였는데, 당시는 물론 이후로도 오랫동안 쓰였던 앞 엔진 뒷바퀴굴림 구조 대신 운전석 뒤에 엔진이 놓이는 미드 엔진 뒷바퀴굴림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구조는 차체를 낮출 수 있어 더욱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 엔진 성능이 뛰어난 메르세데스벤츠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1938년에 나온 타입 D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설계의 12기통 엔진을 얹어 뛰어난 성능을 냈고, 타치오 누볼라리가 몬 타입 D는 이태리와 영국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타입 D와 더불어 아우토 우니온은 1939년에 출전한 63개 경주 가운데 20개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우토 우니온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경주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경주차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마세라티 250F(『카 북』 147쪽)입니다. 1950년에 처음으로 F1 선수권이 시작되어 막 성장해 나가던 시절,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F1에 출전할 수 있는 경주차는 많지 않았습니다. 1954년에 규정이 바뀌어 F1 경주차에 2.5L 자연흡기 또는 750시시 슈퍼차저 엔진이 쓰이게 되면서 초기 F1의 강자였던 알파 로메오가 철수하고, 대신 메르세데스-벤츠가 참가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경주차를 내놓는 곳은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그리고 마세라티 정도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마세라티 250F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페라리의 설계 책임자였던 조아키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를 영입해 설계를 맡겼고,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 중 하나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마세라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판지오는 1954년 초반 세 번의 F1 그랑프리 중 유럽에서 열린 두 번의 경주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가 F1에 참여하자 마세라티를 떠나 벤츠로 이적했고, 벤츠 소속으로 나머지 여섯 번의 경주에서 네 번 우승을 차지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이 됩니다. 당시에는 팀(컨스트럭터) 선수권이 없었기 때문에 드라이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어쨌든 판지오에게 초반 두 차례의 우승을 가져다 준 마세라티 250F는 단연 인기 있는 경주차가 되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F1도 개별 팀이나 개인이 경주차를 구입해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의 W196 경주차, 그리고 판지오와 스털링 모스(Sir Stirling Moss)라는 출중한 드라이버 덕분에, 벤츠가 르망 참사로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한 1955년까지 250F는 F1에서 드라이버 챔피언을 배출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250F가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1957년에 판지오가 마세라티로 복귀해 화려한 실력을 보여준 덕분입니다. 마세라티 250F와 판지오 콤비가 만든 가장 드라마틱한 경주는 독일 그랑프리였습니다. 시즌 종료까지 두 경기를 남겨놓고 있는 상태에서 판지오는 2위와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했습니다. 결승에서 1위로 출발했다가 두 대의 페라리 경주차에 추월당했던 판지오는 세 번째 바퀴에서 다시 1위로 나섰고, 13번째 바퀴에서는 2위와의 간격을 30초로 벌립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겨 멈추면서 3위로 밀려난 그는 괴력을 발휘해 매 바퀴마다 최단시간 기록을 깨며 점점 더 페라리를 압박했습니다. 20바퀴 째에는 페라리의 최단시간 기록보다 무려 11초나 빠른 기록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F1 독일 그랑프리가 열린 뉘르부르크링은 한 바퀴 도는 거리가 22킬로미터 남짓 되었으니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판지오는 두 대의 페라리를 추월할 수 있었고, 겨우 3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1957년 시즌 챔피언을 확정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다섯 번째 F1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세운 F1 5회 챔피언 기록은 40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 미하엘 슈마허가 깰 때까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짧지만 굵은 흔적을 남긴 경주차로 포르쉐 917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917은 모터스포츠 우승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시절의 포르쉐를 대표하는 모델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만들어진 당시에도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던 포르쉐의 재정을 위협할 정도로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진 차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처럼 큰 투자가 이루어진 만큼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죠.
917이 활약한 무대는 스포츠카 레이스였습니다. 모터스포츠에서 말하는 스포츠카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포츠카와는 조금 달라서 정확하게는 스포츠 프로토타입, 즉 경주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고성능 차를 말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터스포츠 전용차’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포르쉐가 유명한 르망 24시간을 비롯해 여러 스포츠카 레이스에서 페라리, 포드 같은 당시 쟁쟁한 회사들이 내놓은 경주차와 경쟁하기 위해 만든 것이 917입니다. 출전하는 경주 규정에 맞추고 성능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917K(『카 북』 181쪽)와 917/10(『카 북』 237쪽)은 특히 유명합니다. 스티브 맥퀸이 제작하고 주연한 영화 ‘르망’에서 그가 탔던 차 역시 917K였습니다.
917이 주로 활약한 시기는 1969년 후반부터 1971년까지의 약 3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917은 21개의 주요 경기에 출전해 14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위는 무려 28번이나 차지했고요. 뛰어난 드라이버들이 우승에 한몫하기도 했지만, 917의 성능은 가공할 정도로 뛰어나서 당대에 만들어진 스포츠카 가운데 가장 빠른 차로 손꼽힙니다. 고장이나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다른 경주차가 917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917K가 1970년과 1971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역대 최고속 주행 및 최장거리 주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2년 연속 종합 우승을 차지하자 르망 조직 위원회는 917이 다시 출전하지 못하도록 아예 규정을 바꿔버렸습니다.
르망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포르쉐는 북미로 눈길을 돌려, 917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917/10과 917/30으로 캔암(Can-Am) 시리즈 레이스에 도전합니다. 917/10은 1972년과 1973년 캔암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74년에는 917/10의 성능을 더욱 높인 917/30이 등장했지만 석유파동과 안전 등의 문제로 캔암 시리즈가 폐지되면서 단 한 차례만 출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가장 강력한 성능을 냈던 917/30은 12기통 5.4L 트윈 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이 1,100마력에 이르렀고, 예선에서는 최고 1,580마력까지 출력을 높였다고 합니다. 역대 자동차 경주에서 쓰인 자동차 중 가장 높은 출력을 냈던 이 차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1.9초, 시속 320킬로미터까지 10.9초 만에 가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포뮬러 1에서는 독창적인 설계로 경주차의 흐름을 바꾼 회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여러 혁신적인 개념을 포뮬러 1에 소개한 곳으로 로터스가 있습니다. 콜린 채프먼이 창업한 로터스는 스포츠카 메이커로도 알려져 있지만 모터스포츠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죠. 로터스는 고속에서 차체가 떠오르는 것을 억제하는 스포일러(윙)를 도입한 것을 비롯해 공기역학적인 차체 디자인, 경량 차체 구조 등 포뮬러 원 경주차의 모습을 바꾼 기념비적 기술을 여럿 내놓았습니다. 스폰서 로고를 차에 붙이기 시작한 것도 로터스였죠.
그 가운데 1970년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경주차가 타입 72(『카 북』 236쪽)였습니다. 로터스 72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디자인이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 포뮬러 1 경주차에서 엔진 냉각을 위한 라디에이터가 차체 앞쪽에 놓여 있었는데, 로터스 72에서는 차체 양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덕분에 차체 앞쪽을 쐐기처럼 뾰족하게 만들 수 있었죠. 나아가 로터스는 72의 차체 전체를 쐐기 모양으로 만들어서 받는 공기저항을 줄였고, 같은 엔진을 얹은 경주차보다 최고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이러한 공기역학적 차체 설계는 다른 팀의 경주차보다 몇 년은 더 앞선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주차의 경쟁력도 뛰어났고요. 지금은 포뮬러 1 팀이 한 시즌 동안 대부분 경주차 한 모델을 쓰지만, 과거에는 경쟁력 있는 경주차라면 여러 시즌에 투입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로터스 72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0년부터 1975년까지 6년 동안 쓰였는데요. 74회의 그랑프리에 출전해 20회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로터스는 세 번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했고 두 명의 드라이버 챔피언을 탄생시켰죠. 로터스 72 이후로 포뮬러 1 경주차의 모습은 현대적인 쐐기형으로 통일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트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과거의 차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모던 클래식’의 뿌리가 된 차들을 살펴보겠습니다.
DK 대백과사전 「카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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