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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3) 라이벌 매치 본문

완결된 연재/(完)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3) 라이벌 매치

Editor! 2013. 10. 25. 14:19

자동차 저널리스트이자 DK 대백과사전 「카 북」의 번역자 중 한 분이시기도 한 류청희 선생님 - 메탈헤드란 닉네임이 더 친숙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 이 「카 북」에 등장하는 자동차 관련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2편 시작합니다.

* 본 연재는 마른모들의 Joyride (http://blog.naver.com/joyrde)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프롤로그) 자동차와 두근두근 편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 시대를 잘못 타고난 차 편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2) 기념비적 혁신을 이룬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3) 독특함으로 눈길을 끈 차 편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4) 사라진 럭셔리 브랜드 편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5) 영화와 함께 유명해진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6) 포르셰 박사의 흔적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7) 전쟁을 위해,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8) 세계적 유명인이 사랑한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9) 모터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한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0) 모던 클래식의 바탕이 된 차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1) 뿌리 깊은 나무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2) 오픈 카의 멋과 여유 편에 이어...


메탈헤드의 「카 북」 읽기 (13) 라이벌 매치 


글 : 류청희(메탈헤드)


라이벌 매치

소비자가 만족할 제품을 만들기 위한 자동차 회사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때가 많습니다. 어느 한 회사에서 좋은 차를 내놓아 많이 팔리면 소비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다른 회사가 더 좋은 차를 내놓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는 더 좋은 차를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특히 비슷한 가격대에서 비슷한 상품성을 지닌 차들이 경쟁을 벌이면 효과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자동차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라이벌의 경쟁이 시장을 키우거나 기술을 발전시킨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한 원동력도 크게 보면 이와 같은 라이벌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역사 속 수많은 라이벌 가운데에서도 상징성이 큰 차들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미국에서 포드가 모델 T로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소형차 개발이 붐을 이룹니다. 하지만 작고 간단하고 저렴하면서도 자동차가 상품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에 충실한 차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차를 만들기는 쉽지 않죠. 어쨌든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대중적인 소형차 만들기에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사이에, 영국의 오스틴은 1922년에 세븐(Seven, 『카 북』 60~61쪽)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둡니다. 미국과는 다른, 차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영국 환경에 맞춰 작은 크기의 차체 안에 담은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오스틴 세븐의 등장은 유럽 대중차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장 자동차는 필요한데 그만한 차를 단숨에 개발할 수 없었던 회사들은 오스틴 세븐의 생산권을 사들여 자신들의 세븐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BMW가 자동차 브랜드로 재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딕시 3/15PS(『카 북』 61쪽), 원래 아메리칸 오스틴으로 시작한 아메리칸 밴텀이 만든 60(『카 북』 75쪽) 같은 차들이 오스틴 세븐의 혈통을 이어받은 차들이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에는 닛산도 오스틴 세븐을 일본에서 생산해 닷선(Datsun)이라는 이름으로 팔았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소규모 자동차 회사들이 세븐의 구동계와 부품을 활용해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스틴 세븐이 소형차의 기준을 세워 놓으니 곧 이를 따른 차들이 잇따라 나왔고, 세븐의 호적수라 할 모델도 등장합니다. 모리스 마이너(『카 북』 61쪽)가 그 주인공이었죠. 오스틴 세븐을 주의 깊게 살펴본 모리스는 세븐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던 작은 크기와 불편한 운전 조작을 개선해 호평과 함께 큰 인기를 얻습니다. 덕분에 모리스는 오스틴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며 오스틴, 영국 포드와 함께 1920~1930년대 영국의 빅 3 중 하나로 성장합니다.



모리스의 히트 상품이었던 마이너 역시 오스틴 세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영국 자동차 문화를 살찌우는 데 큰 역할을 하죠. 특히 소형 스포츠카로 유명한 MG의 초기 모델들은 대부분 모리스 마이너의 엔진과 섀시를 사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스틴 세븐과 모리스 마이너는 대중차로도 성공했고, 강력하지는 않으면서도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국 소형 스포츠카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오스틴과 모리스는 여러 차례 인수합병의 결과로 한 집안 식구가 됩니다.



1950년대 중반에 시장 확대와 더불어 큰 규모의 업계 재편을 겪었던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풀 사이즈(full-size)라고 불리는 대형 세단이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차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는 쉐보레 벨 에어(『카 북』 140쪽)였고, 다른 하나는 포드 페어레인(『카 북』 141쪽)이었습니다. 지금도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두 브랜드인 쉐보레와 포드의 경쟁 구도가 본격화된 것도 이 두 차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5년에 나란히 등장한 쉐보레 벨 에어와 포드 페어레인은 당대 유행하던 테일 핀(꽁무니를 날개 모양으로 치켜 세운 형태)을 반영한 세련된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페어레인은 쿠페, 세단, 왜건 등 다양한 모델로 선택의 폭을 넓혀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심지어 철제 지붕이 자동으로 접혀 트렁크 안으로 수납되는, 이른바 접이식 하드톱의 선구적 역할을 한 모델인 스카이라이너(『카 북』 170쪽)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쉐보레 벨 에어는 좀 더 세련된 스타일이 소비자에게 먹혀 들어, 판매에서 벨 에어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벨 에어의 V8 엔진은 여러 면에서 뛰어난 점이 많았고, 나중에 추가된 램제트(Ramjet) 연료분사장치는 큰 덩치의 대중차인 벨 에어에서 스포츠카의 성능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1957년이 되어서야 포드는 페어레인의 인기에 힘입어 겨우 전체 판매대수에서 쉐보레를 앞지를 수 있었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죠. 크라이슬러가 플리머스 벨버디어(Belvedere)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으면서도 벨 에어와 페어레인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벨 에어와 페어레인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 대중차는 자연스럽게 크고 화려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제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성이나 효율은 중요시되지 않았고,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거리에서 몰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석유 파동과 환경 규제라는 환경 변화를 만나면서 빠르게 경쟁력을 잃게 되어 세계 시장에서 미국 차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당장 잘 팔리는 것에 연연하다가 미래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카 세계를 들끓게 했던 명차를 대표하는 모델은 람보르기니 미우라(『카 북』 199쪽)와 페라리 365 GTB/4 데이토나(『카 북』 210쪽)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엔초 페라리의 자존심에 기분이 상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세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페루치오가 페라리 출신을 비롯해 당대 이태리에서 가장 실력 좋은 인재들을 데려와 페라리를 능가할 차를 만들도록 한 것도 유명하죠.



하지만 1964년에 350 GT로 페라리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람보르기니는 이후 여러 차들을 내놓으면서도 좀처럼 페라리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람보르기니의 차들은 분명히 기술적으로 뛰어났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론상으로, 어떤 때에는 실제로도 성능 면에서 페라리의 경쟁차를 능가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미 10년 이상 먼저 독자적인 자동차를 만든 경험을 쌓은 페라리는 갓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람보르기니보다 내놓는 차들의 완성도가 더 높았습니다. 고장이나 결함, 품질 등 여러 면에서 페라리 차들은 최소한 람보르기니 차들보다는 훌륭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페라리 차들은 디자인도 예술적이었습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정도의 차를 살 사람이라면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빼어난 디자인 역시 판매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런 페라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차로 람보르기니가 처음 내놓은 차가 바로 미우라였습니다. V12 엔진을 뒤 차축 앞에 놓은 미드십 엔진 배치 방식의 2도어 쿠페라는 형태를 통해 후대 슈퍼카의 전형을 만든 모델이 바로 미우라였습니다. 당대 가장 강력한 엔진 중 하나를 얹은 미우라는 시속 280km를 넘나드는 놀라운 성능을 냈습니다. 게다가 이태리의 유명 카로체리아 중 하나인 베르토네(Bertone)의 천재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디자인한 차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강렬함을 표현한 예술적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이제 비로소 람보르기니는 성능에 어울리는 빼어난 스타일을 지니게 되었죠.



표면적으로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미우라의 등장은 페라리에게도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습니다. 페라리도 이미 여러 경주차에 미드십 엔진 배치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엔초는 일반 도로용 차에 굳이 그런 방식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리틀 페라리’로 불리는 V6 엔진의 디노 206과 246 등을 통해 시도는 했지만 아직 최고 성능을 내는 V12 엔진 모델은 여전히 고전적인 앞 엔진 뒷바퀴 굴림을 고집했죠. 어쨌든 미우라에 필적할 성능을 낼 수 있는 차를 만들기로 한 페라리는 그 당시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을 집약해 365 GTB/4 데이토나를 만듭니다.


페라리의 오랜 파트너인 피닌파리나(Pininfarina)에 소속되어 있던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Leonardo Fioravanti)가 디자인한 365 GTB/4는 미우라만큼이나 혁신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스위치를 켜면 솟아오르는 헤드램프는 닫은 상태에서도 반쯤 드러나 공격적인 인상을 주었고, 쐐기 모양의 차체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차체는 아주 매력적이었죠. 전반적인 구조는 앞서 선보인 275 GTB의 것을 바탕으로 한층 강화했고, 페라리 양산차 중 처음으로 뒤 차축에 독립 서스펜션을 쓰는 등 페라리가 갖고 있던 최신 기술을 모두 담았습니다.



미우라와 365 GTB/4 데이토나의 경쟁에서도 람보르기니는 성능과 수치에서는 승기를 잡았습니다. 페라리에 올라간 V12 엔진은 최고출력이 352마력이었지만 미우라는 370마력이나 되었죠. 차 무게도 미우라쪽이 좀 더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페라리는 무게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가속성능과 최고시속이 조금 더 높았습니다. 여기에 람보르기니의 고질병인 품질 문제가 겹쳐, 결국 미우라가 당시까지 나온 람보르기니 중 가장 좋은 평을 얻었음에도 판매에서는 페라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맙니다. 하지만 미우라로 람보르기니의 입지는 훨씬 탄탄해졌고, 이후 혁신적인 스타일은 쿤타치(카운타크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로 이어지면서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와 견줄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DK 대백과사전 「카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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