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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망가져도 정신은 멀쩡했다, 베르나데트 수녀의 기적│치매 이야기 ② 본문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 이번에는 치매 문제를 다룹니다.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뇌에 정말로 관심이 많습니다. 어릴 때에는 공부하는 머리를 따지고, 나이 들면 일‘머리’를 찾으니 그런 걸까요? 나이 들면, 치매 걸리지 않을까 두려움에 떱니다. 서점에서 뇌과학 책을 집어 드는 우리는 머릿속에는 어떤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치매 이야기 두 번째 편은 과학 발전에 자신의 뇌를 기증한 우아한 수녀들 이야기입니다.

1992년의 어느 날. 미국 미네소타 주 맨케이토에 있는 ‘노트르담 수녀회(School Sisters of Notre Dame)’는 깊은 슬픔에 휩싸였다. 수녀회를 이끄는 원로 수녀 가운데 한 명인 베르나데트 수녀(가명)가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선종했기 때문이다. 선종 직전까지 왕성한 지적 생산 능력을 보였기에 그녀와의 이별은 더욱더 공동체 구성원을 힘들게 했다.
이렇게 수녀회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켄터키 대학교 역학자 데이비드 스노든(David A. Snowdon) 팀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사후에 자기 뇌를 연구 목적으로 기증하기로 서약한 678명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사후 경과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뇌세포가 부패하고 단백질 응집체가 변형되어 해당 뇌 조직은 데이터로 쓸 수가 없다.
생전 베르나데트 수녀의 뜻에 따라 그녀는 즉각 대학 병원 병리학 팀으로 이송되어 뇌 부검과 조직 고정(보존) 작업이 이뤄졌다. 부검 결과를 전해 들은 1992년 당시 만 40세의 스노든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뒤엉킨 전형적인 알츠하이머 치매 말기 환자의 상태였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만 85세 사망 직전까지도 인지 능력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으면서 ‘인지 챔피언’으로 불릴 정도로 명석한 두뇌 활동을 자랑했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면서 알츠하이머 치매가 생긴다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 결정타를 맞이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신이 설계한 치매 실험실: 수녀원
베르나데트 수녀가 기꺼이 참여한 이 놀랍고도 헌신적인 연구는 오늘날 흔히 ‘수녀원 연구(The Nun Study)’로 불린다. 1986년 미국 켄터키 대학교의 패기 넘치는 역학자였던 만 34세의 데이비드 스노든은 노화와 치매 연구의 돌파구를 열, 전에 없던 연구를 설계 중이었다. 그가 주시한 곳이 바로 노트르담 수녀회였다.
그간 스노든을 포함한 과학자가 인간의 노화와 치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수많은 변수였다. 사람마다 먹는 것, 사는 곳, 경제 수준, 음주와 흡연 여부 등이 제각각이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뇌가 망가지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런 스노든에게 노트르담 수녀회는 이상적인 집단이었다.
수녀회에 입소한 수녀는 수십 년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에서 살며, 경제 수준도 똑같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똑같이 규칙적인 일정대로 생활한다. 결정적으로, 노트르담 수녀회 소속 수녀는 지역 사회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역할을 하기에 직업까지 유사했다. 스노든은 만 75세와 102세 사이의 수녀 678명을 설득했고, 의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었다.
스노든이 1990년 켄터키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고 미국 국립 보건원(NIH) 산하 국립 노화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 NIA)가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매년 수녀들은 기억력, 언어 능력, 공간 지각력 등을 측정하는 엄격한 신경 심리 검사를 받았다. 글머리에 언급한 베르나데트 수녀가 만점을 받은 검사다.
스노든 팀은 수녀회 수납고에서 예상치 못했던 자료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수녀들이 20대 초반 수녀 서원을 하면서 작성한 ‘자전적 에세이’였다. 스노든 팀은 이 에세이를 분석해서 지금은 노인이 된 수녀들의 수십 년 전 언어 기록을 현재의 뇌 상태와 대조했다. 20대 때의 언어 능력과 뇌 건강의 상관 관계를 따져보려는 시도였다.
1992년 베르나데트 수녀가 세상을 뜬 것과 마찬가지로 고령의 수녀들은 한 명, 한 명 세상을 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부검을 통해서 데이터가 순차적으로 쌓였다. 스노든 팀은 이렇게 쌓인 76세에서 100세까지의 수녀 102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1997년 3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링크) 베르나데트 수녀가 예외 사례가 아니었다.
102명 가운데 61명의 뇌가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가득해 완벽하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상태였다. 스노든 팀이 이 61명의 생전 기록을 추적하자, 의학계를 뒤흔든 반전이 드러났다.
∎ 뇌 손상 +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뇌경색 흔적, 즉 미세 혈관 손상 집단(15명): 14명이 생전에 심각한 치매 증상을 보임. (단 1명만 정상).
∎ 뇌 손상만 있고 혈관은 깨끗한 집단(46명): 무려 22명(47.8퍼센트)이 죽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유지함.
뇌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상태였던 61명 가운데 총 23명, 즉 3분의 1 이상이 생전에 치매 증상 없이 명석한 정신을 유지했다.
이 수녀원 연구 결과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 치매’라는 등식의 가설을 토대부터 흔든다. 뇌의 물리적 파괴(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가 곧바로 삶의 파괴(치매 증상)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1997년에 나온 수녀원 연구의 강력한 반론은 21세기 들어서 오히려 외면당했다.
특히 2006년 3월에 나온, 지난 연재에서 과학 사기로 밝혀진, 실뱅 레스네(Sylvain Lesné)의 연구 결과가 결정타였다. (링크) 이 논문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단백질 조각(아밀로이드 베타 스타 56)이라 주장하며, 수녀원 연구의 반론을 회피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제약 회사와 과학계가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에 목매고 있는 이유다.

치매를 늦추는 힘, 어디서 오는가?
1997년 이후 수녀원 연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비드 스노든은 1986년부터 2000년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2001년 『우아한 노년(Aging with Grace)』(한국어판 유은실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3년)을 펴냈다. 수녀원 연구가 전 세계 보통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 후에도 수녀원 연구는 계속되었다. 특히, 2008년 스노든이 은퇴하고 나서는 그동안 축적한 678명 수녀의 임상 기록, 정기 신경 심리 검사 점수, 20대 때 쓴 자전적 에세이, 뇌 조직 은행의 관리 권한이 미네소타 대학교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텍사스 대학교 샌안토니오 보건 과학 센터 글렌 빅스 알츠하이머병 및 신경 퇴행성 질환 연구소(Glenn Biggs Institute for Alzheimer’s & Neurodegenerative Diseases)로 넘어갔다.
그동안 678명의 수녀는 모두 세상을 떴고, 사후 600건 이상의 뇌 조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감동적인 헌신 덕분에 1986년 이후 30년 동안 치매 연구의 미스터리를 규명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쌓였다. (링크) 앞에서 주목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 조직 내에 가득했음에도 치매 증상이 없었던 수녀의 사례는 시작일 뿐이었다.
우선 1997년 스노든 팀의 연구에서도 확인했듯이 자기도 모르고 넘어간 작은 뇌경색이 유발한 미세 혈관 손상 등이 치매 증상을 유발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노년이 될수록 일상 생활에서 낙상으로 뇌에 충격을 주는 일부터 아주 작은 뇌경색까지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수녀원 연구의 가장 널리 알려진 성과는 청년기 즉 20대의 언어 능력과 치매 증상의 관계다. 수녀들이 20대에 썼던 에세이를 분석한 결과, 문장 내 개념의 촘촘함을 뜻하는 ‘아이디어 밀도(idea density)’가 높고 문장 구조가 복잡할수록 노년기 인지 기능이 훌륭하고, 치매 발병 위험도 낮아졌다.
치매 직전인 경도 인지 장애 진단을 받고 나서도 이들은 정상 인지 상태로 회복될 가능성도 컸다. 보통 경도 인지 장애 진단을 받고 나서도 30퍼센트 정도가 다시 정상 인지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30퍼센트 정도는 치매 증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회복 가능성에 20대의 언어 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확인된 것이다.
이런 수녀원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제 같은 신약 한 방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생애 전 주기에 걸쳐서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을 쌓는 방식으로 예방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지 예비능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를 물리적으로 손상하더라도, 신경망의 유연성을 통해서 인지 능력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문의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3권, 3금, 3행’도 결국 인지 예비능을 평생 쌓아 가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① 운동, 식사, 독서를 권하고 ② 금주, 금연,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하고 ③ 고혈압, 당뇨 등을 예방하고자 정기 건강 검진을 받고, 가족 친구와 자주 연락하고, 보건소에서 매년 치매 조기 검진을 받는 등. 베르나데트 수녀는 그 가능성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베르나데트 수녀가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엉켜서 물리적으로 파괴된 뇌 상태에서도 인지 능력을 잃지 않은 결정적인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신경망의 유연성을 극대화한 분자 생물학적 열쇠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이 대목에서 뜻밖에도 기적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는 ‘GLP-1 작용제’가 치매 치료의 새로운 구원 투수로 등장한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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