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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만든 가장 정교한 지도: 이정모 관장과 함께 읽는 『주기율표』 본문
얼마 전 여름 밤, 서울 노무현 시민 센터 지하 2층 ‘가치하다’에서 『주기율표: 연금술에서 핵의 시대까지, 원소 대백과사전』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주기율표』 감수를 맡은 과학 저술가 이정모 선생님이 암호 같은 원소 이름들 속에 숨겨진 놀라운 드라마를 펼치며 무대를 빛내 주셨습니다. 원자와 원소는 어떻게 다를까요? 주기율표 속 118가지 원소는 어디에서 태어난 것일까요? 또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은 왜 이렇게 희귀한 것일까요? 인류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그려 낸 가장 정교한 지도, 주기율표를 이정모 선생님과 함께 읽으며 실마리를 풀어 보실까요?

원자와 원소,
한눈에 구별하는 방법!
강연은 우리가 평소에 뒤섞어 쓰는 두 낱말, 원자(atom)와 원소(element)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물(H2O)을 예로 들었습니다. 물 분자 하나는 수소(H) 원자 2개와 산소(O) 원자 1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분자를 구성하는 원소는 수소와 산소, 두 가지뿐입니다. 원소는 물질을 이루는 성분이고, 원자는 그 성분을 실제로 세어 볼 수 있는 낱개의 입자라는 것이죠. 쉽게 말해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원소, ‘개’로 세는 것은 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대의 학자들은 물질의 구성 요소를 조금 다르게 보았습니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기원전 460?~380?년)는 물질의 구성 요소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라는 뜻의 아토모스(atomos)로 불렀고, 비슷한 시기 다른 철학자들은 만물이 물, 불, 공기, 흙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원소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이러한 시선들이 원자와 원소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을 잘 보여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원자의 실제 구조로 넘어가자, 강연장에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원자 한가운데 있는 원자핵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한 예시로 월드컵 경기장과 무당벌레가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수소 원자를 축구장만큼 크게 부풀린다면, 그 한가운데 있는 원자핵은 겨우 무당벌레 한 마리만 한 크기밖에 안 됩니다. 원자는 사실 거의 텅 비어 있는 거예요.
화학 교과서 속 조그마한 그림으로 표현된 원자 모형으로는 원자의 진짜 크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원자핵을 제외한 원자의 대부분의 공간이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원자핵의 실제 크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텅 비어 있는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 몸이나 벽은 왜 손가락으로 쑥 뚫고 지나갈 수 없을까요? 답은 전자(electron)의 성질에 있습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서로 다른 원자의 표면을 돌아다니는 전자들이 마이너스 전하를 띠고 있어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텅 빈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도 단단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손바닥 끝에도 전자가 돌아다니고, 우리가 만지는 물체에도 전자가 있기 때문에 이들 전자가 서로 부딪히며 밀어낸단 말이에요. 밀어내기 때문에 스며들지 못하는 거죠. 이제 전자가 원자의 구성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겠죠?
1번부터 118번까지
300년이 넘는 원소 찾기의 역사
원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주기율표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주기율표에는 118가지 원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정모 선생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103가지뿐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원소의 개수는 105가지, 107가지, 108가지 등 과거부터 계속 늘어나가다가 지금의 118가지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중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92가지로, 나머지는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잠깐 존재했다 사라지는 인공 원소들입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국제적으로 기념된 ‘과학의 해’들을 예로 들며, 정작 주기율표는 얼마나 조용히 지나갔는지를 짚었습니다. 2005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100주년을 맞아 세계 물리의 해로, 2009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처음 망원경으로 목성의 달을 발견한 지 400주년을 맞아 세계 천문의 해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 1834~1907년)의 주기율표 발표 150주년을 맞은 2019년 국제 주기율표의 해는 국내에서 KBS 특집 다큐멘터리 2편을 제외하면 거의 소리 없이 지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제 주기율표의 해와 관련된 KBS의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 전체 공개되어 있습니다. 링크1, 링크2)
그만큼 주기율표가 사람들에게 낯설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크게 기념해 놔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더라고요.

해외에는 주기율표를 새긴 티셔츠, 수건, 심지어 매니큐어 세트까지 다양한 굿즈가 있지만, 국내에는 이런 상품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함께 주기율표를 알아가는 오늘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주기율표의 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멘델레예프가 남겨 둔 ‘빈칸’을 채워라!
우리는 주기율표를 만든 인물로 멘델레예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주기율표가 자리를 잡기까지의 역사에는 뜻밖의 인물이 먼저 등장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 단두대에서 처형된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년)는 33가지 원소를 성질에 따라 분류하며 원소 분류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로부터 80년 후인 1869년, 멘델레예프가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주기율표를 처음 만들어 내게 되었는데, 이정모 선생님은 멘델레예프의 가장 위대한 결정은 표를 ‘완성’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표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 ‘이걸 비워둬야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만약 멘델레예프의 갭(gap, 빈칸)이라는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주기율표를 못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겁니다.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은 여기 분명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신호로 작동했습니다. 실제로 멘델레예프가 예견한 빈칸과 성질을 이정표 삼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새로운 원소(갈륨, 저마늄 등)를 찾아 나서면서, 원소 발견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이 커지는 순서로 원소를 배열하면서도, 원자량만 따르면 순서가 뒤바뀌는 텔루륨과 아이오딘 같은 예외에는 원자량 순서를 깨고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자리로 옮겨 배치했습니다. 훗날 헨리 모즐리(Henry Moseley, 1887~1915년)가 원자량 대신 양성자 수(원자 번호)를 기준으로 주기율표를 재정립하면서 이 예외는 자연스럽게 풀렸지만, 원자량이라는 당시의 단단한 규칙보다 원소의 성질을 우선시했던 그의 과감한 판단과 통찰은 지금 봐도 놀라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소를 만드는 공장, 별
그렇다면 이 118가지 원소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빅히스토리: 138억 년 거대사 대백과사전』(사이언스북스, 2024년)의 한 대목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빅뱅 직후에는 수소와 헬륨만 만들어졌습니다. 이 초기 우주의 원소 생성 과정을 설명한 1948년 논문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지 가모브(George Gamow, 1904~1968년)가 제자 랄프 애셔 알퍼(Ralph Asher Alpher, 1921~2007년)와 함께 쓴 이 논문에,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한스 베테(Hans Bethe, 1906~2005년)를 공동 저자로 슬쩍 끼워 넣어 저자 이름이 그리스 문자 순서인 알퍼-베테-가모브(알파-베타-감마)가 되도록 만우절(4월 1일)에 발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는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헬륨 원자핵들이 차례로 뭉쳐 탄소, 산소, 네온, 마그네슘, 규소를 거쳐 철까지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은 에너지가 저절로 방출되는 ‘내리막길’이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만들려면 반대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는 별이 죽을 때 일어나는 초신성 폭발에서 나옵니다. 금이나 백금처럼 훨씬 무거운 원소는 그보다 더 극단적인 사건, 즉 두 중성자별의 충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최근 중력파 검출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견에는 한국인 과학자 오정근 박사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링크)

인간을 이루는 원소는 왜 이렇게 희귀할까?
생명을 이루는 원소인 탄소, 질소, 산소는 우주 전체에서 10만 개 중 1개 꼴로만 존재하는 매우 희귀한 원소입니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일이 결코 당연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수소입니다. 물 분자는 산소와 수소가 105도 각도로 비대칭하게 결합해 있어 한쪽은 마이너스(-), 한쪽은 플러스 성질(+)을 띠는 극성을 가지는데, 이 성질에서 나오는 수소 결합이 DNA의 염기쌍을 짝짓고 단백질이 특정한 모양으로 접히도록 만듭니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을 한 줄로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기능을 할 수 없고, 수소 결합으로 접힌 입체 구조가 있어야 제 역할을 합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인공 지능 알파폴드(AlphaFold)가 이 구조를 빠르게 밝혀내며 개발을 주도한 존 점퍼(John Jumper, 1985년~)가 2024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화를 소개하며, 화학과 생명 과학의 경계가 인공 지능을 통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계 생명체에 관한 질문에는, 탄소 대신 규소를 뼈대로 삼는 생명체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오랜 상상을 두고 물리학자들의 계산으로는 규소가 안정적인 분자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고 답했습니다. 어느 별에서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든 결국 탄소를 뼈대로, 산소와 질소를 곁가지로, 수소 결합으로 구조를 갖추는 방식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과학적 문해력이 있는 자만이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단순한 문해력이 아니라 과학 문해력이 필요합니다. 이건 엄청난 과학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 아니에요. 세상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과학자처럼 대화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갖추자는 겁니다.
북토크의 말미, 이정모 선생님은 과학적 문해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북토크에 참석해 주신 많은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과학적 문해력의 핵심으로 이정모 선생님이 꼽은 단어는 겸손함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기존의 생각을 기꺼이 바꾸는 것, 갈릴레이가 처음 발견했을 때 4개였던 목성의 달이 지금은 92개로 늘어난 것처럼, 과학은 계속 스스로를 고쳐 나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과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은 의심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일 뿐이에요. 정말 진리가 필요하신 분은 과학자한테 오시면 안 됩니다.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 가서 상담하셔야 해요.
이 대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정모 선생님은 “읽는 책 10권 중 3권은 과학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단 하나의 원소도 놓치기 싫다면!?
이정모 선생님이 추천하는 주기율표 책

실제로 이날 강연에서 이정모 선생님은 원소를 다룬 책 여러 권을 직접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원소 하나하나의 역사를 화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동아시아, 2020년), 원소를 인물처럼 그려낸 『원소 원정대』(윌북주니어, 2026년), 그리고 정상 우주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법의 용광로』(사이언스북스, 2009년)까지 모두 “놓치기 아까운 책”이라며 소개한 책들입니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년)가 21개의 원소로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한 『주기율표』(돌베개, 2007년)는 이정모 선생님이 직접 감수를 맡은 책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북토크는 계속 된다!
주기율표와 질문들
본편이 끝난 뒤 이어진 질문 시간에는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참석자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입자 가속기로 금을 만들 수 있는지, 새로운 119번 원소를 만들 수 있을지, 새 원소를 발견 혹은 발명한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지,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이정모 선생님은 어떤 답변을 남겼을까요?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독자 분들을 위해, ㈜사이언스북스 유튜브 채널에서 북토크 영상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북토크가 끝나고, 참석해 주신 독자 분들과 이정모 선생님의 간단한 사진 촬영 및 저자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독자 분께 소소한 선물로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 카탈로그와 주기율표 꾸미기 포스터를 전해 드렸습니다. (주기율표 꾸미기 포스터의 활용법은 블로그를 참고해 주세요.)

ps. 북토크 현장은 곧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 이야기를 담은 신간, 풍성한 북토크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정모
과학 저술가, 펭귄 각종 과학관장.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장, 서울 시립 과학관장, 국립 과천 과학관장을 지냈다. 2019년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 기술 훈장 진보장을 받았다.
◆ 원소와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사이언스북스의 책들 ◆

우주의 모든 것을 이루는 원소 118

시공간의 지도 위에 펼쳐지는 138억 년의 위대한 여정

자연에 대한 호기심 세포를 되살릴 수 있는 구명줄!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로 만나는 화학 교양서의 고전

국제 주기율표의 해 기념 출간

서울대 모의 논술 고사 출제 도서

주기율표에서 튀어나온 독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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