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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김명남과 장강명이 함께하는 『글쓰기의 감각』 출간 기념 북 토크 본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 등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스티븐 핑커의 신작 『글쓰기의 감각』 출간 기념 북 토크가 지난 10월 11일(금)에 종로구 노무현 시민 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글쓰기의 감각』 옮긴이인 김명남 선생님과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장강명 선생님이 문학 평론가 박혜진 선생님의 사회로 핑커의 신작과 글쓰기의 감각은 무엇일까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번역처럼 명료하고 소설처럼 짜릿했던 북 토크 현장을 정리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와, 베테랑 과학 번역가가 말하는 『글쓰기의 감각』
행사는 먼저 핑커의 『글쓰기의 감각』에 대한 김명남, 장강명 선생님의 간단한 소감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장강명 선생님은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 베스트셀러 작품을 꾸준히 써 오신 소설가입니다. 더불어 장강명 선생님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 다시 계몽』 등 스티븐 핑커의 도서를 꾸준히 탐독해 오신 핑커의 애독자이기도 한데요, 『글쓰기의 감각』을 두고 장강명 선생님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만든 것과 같이 모호하고 애매한 것을 다룬다는 인상을 주지만 『글쓰기의 감각』은 ‘글쓰기’를 과학적으로 잘 정리했으며 잘 쓰인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박혜진 선생님이 이에 응하며 책에서 자주 나오는 “감각(Sense)”이라는 표현에 대해 설명을 더합니다.
“아마 (책의) 앞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글쓰기의 감각』에서 말하는 감각이 ‘(글 쓰는 능력이) 아주 감각적이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잘 쓰인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글을 잘 쓰는 수준까지 도달하면 좋겠지만 ‘이 글은 잘 쓴 글이다.’ 혹은 ‘이 글은 덜 잘 쓴 글이다.’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김명남 선생님은 120권이 넘는 과학 책을 번역해 오신 베테랑 과학 번역가입니다. 스티븐 핑커의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역시 김명남 선생님의 손을 거쳐 출간되었는데요, 김명남 선생님은 『글쓰기의 감각』을 읽지 못한 참석자를 위해 책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해 주시며 평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책은 완벽하게 영어 글쓰기 책입니다. 동시에 스티븐 핑커가 인지 과학자이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해 공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어요. 책의 첫 부분에서는 좋은 글의 예시를 보여 주며 (독자로 하여금) 모방할 수 있게 하고, 다음에는 나쁜 글을 살펴보자고 하며 예시 글에 빨간펜을 막 치고 하는데요, (객석 웃음) 책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을 단어, 구문, 전체 구조로 나아 가며 설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책의 얼개 자체가 과학적으로 설계되고, ‘좋은 글’에 대한 분별력을 길러 주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 작가도 ‘작법 공부’를 할까?
번역가도 ‘번역투 문장’을 고칠까?
이제 본격적인 북 토크가 시작됩니다. 북 토크 준비 단계에서 문학 평론가 박혜진 선생님은 두 분 선생님께 이 책과 관련해서 서로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오늘 행사는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진행되었습니다.
김명남 선생님은 장강명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프로 작가들도 ‘작법 공부’를 하시나요?”
장강명 선생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글쓰기를 향상시켜야겠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해 (외서 필사와 같은) 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작법서 자체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 그런데 『글쓰기의 감각』을 읽을 때 저에게 실용적으로 와닿는 요령이 있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글의 문단 길이나 챕터 길이를 조정하며 문장을 읽을 때 생기는 일종의 ‘리듬감’을 살리려고 노력하는데요, 스티븐 핑커가 책에서 이를 ‘문장을 읽을 때 예상하는 구조’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핑커가 책에서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어 놀랐습니다.”
이번에는 장 선생님이 김 선생님께 질문할 차례입니다.
“김명남 선생님, ‘번역투’ 문장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요? 있다면 고쳐야 하는 잘못된 문장일까요?”
김명남 선생님의 답입니다.
“번역은 두 언어를 다루는 일입니다. 번역을 하다 보면 두 언어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과제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번역투’ 문장이 나오는 것이고요.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만 최대한 뜻과 뉘앙스를 잘 전달하면 읽는 사람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느끼는) 문장도 우리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번역투’ 문장을 단순히 외래어(숙어)와 우리말 사이의 충돌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진성 한국어’라는 개념에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러자 장강명 선생님이 다시 묻습니다.
“번역투와 관련해서 흔히 언급되는 ‘수동태 문장을 사용하지 마라.’라는 조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김명남의 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수동태 문장이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오류가 있고, 행동의 주체를 찾아 능동태로 바꿔야 옳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노련한 작가는 수동태 문장을 의도적인 전략, 문장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로 사용합니다. 좋은 수동태 문장을 억지로 능동태 문장으로 바꾸는 것은 낭패이며 글쓰기에 대한 교조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와 번역가가 한입으로 말하는 ‘좋은 글’
이제 살짝 몸풀기를 마친 셈일까요? 글쓰기에 대한 대화가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평론가이자 현업 편집자로 일하고 계신 박혜진 선생님이 끼어들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김명남 선생님,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김명남 선생님은 ‘좋은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글쓰기에 통용되는 좋은 규칙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정확성’인데, 우리가 생각한 것을 말이나 글로 옮기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는 잘 정리되어 있는데 글로 풀어내려고 하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기서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정확성은 팩트(fact)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을 제대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 글은 쉽게 티가 나고, 못난 글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반대로 ‘내가 잘 아는 것을 써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실천한 글은 분야를 막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박혜진 선생님이 김명남 선생님의 말에 의견을 더하며 장강명 선생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공학적으로 글이 미문(美文)이거나 기하학적으로 글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작가가 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였겠다.’라고 느껴질 때 글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장강명 작가님, 기자와 소설가를 모두 경험하면서 양극단의 글쓰기와,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을 해 오셨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두 분야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또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요?”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할 때 국립 국어원의 규정을 따르기도 했지만 각 신문사, 언론사가 내규로 정해 놓은 매뉴얼(어문 규칙)이 따로 존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립 국어원 규정은 때로 임의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고 (특히 띄어쓰기) 기자의 글쓰기는 ‘기사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일반 대화나 문장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 핑커는 『글쓰기의 감각』에서 규칙과 문장에 정해진 형식을 강요하는 사람을 ‘순수주의자’라고 말하며 책의 대부분의 내용을 순수주의자에 대한 통박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통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못난 글과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못난 글은 나만을 위한 글, 그니까 나와 내 업계(집단)만을 위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하고, 내 글이 표현되는 방식에 대해 깊게 고민할 때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쓰기의 감각』, 이 말은 꼭 하고 넘어갑시다!
북 토크 중반, 박혜진 선생님이 평론가의 날카로운 촉을 보여 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글쓰기의 감각』에는 여러 통념에 반대하는 근거들을 객관화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책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떠셨나요? (책의 내용 중)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싶은 부분이 있으셨나요?”
김명남 선생님이 먼저 답합니다.
“사실 번역가는 저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이고, 문장이 맘에 안 든다고 해서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번역의 말미에는 항상 저자의 말에 동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많은데, 그래도 딱 하나, 책의 앞부분에 있는 좋은 글 예시에 뻔뻔하게 자기 아내의 글을 (객석 웃음) 소개하고 있더군요. 그 글이 좋다는 주장만은…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웃음)
김명남 선생님의 재치 있는 답변이 마무리되고, 이내 객석의 시선이 장강명 선생님에게로 향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핑커는 책의 내용 대부분을 순수주의자에 대한 통박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표까지 그려가며 순수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는데요. 그중 핑커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로 많이 묘사되니, 그냥 괴물 이름으로 (일반 명사화해서) 사용하자!’라고 결론짓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만은 동의를 못하겠어요.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고요!” (객석 웃음)
박혜진 선생님이 장강명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며 말합니다.
“언어는 변화에 민감하고, 실제로 사용할(말할) 때 더 민첩하게 사용하게 되는데, 글을 쓸 때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티븐 핑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어, 특히 문법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작가, 편집자, 독자라는 공동체가 그때그때 만들어 가는 규칙이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프랑켄슈타인 사례가 좋은 예시인 것 같습니다.”
글쓰기가 업(業)인 세 사람이 바라본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
번역가, 문학 평론가, 소설가. 오늘 북 토크에 참석한 세 선생님은 모두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듯 비슷한 각자의 글쓰기. 세 분은 핑커의 글쓰기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박혜진 선생님이 김명남 선생님에게 먼저 묻습니다.
“김명남 선생님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후 벌써 두 번째로 스티븐 핑커의 책을 번역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핑커의 글쓰기를 봐 오셨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보셨을 때 핑커의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명남 선생님이 답합니다.
“핑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화려하게 쓰거나 길게 쓰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대개 정확하게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글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그에 반해 핑커의 글은 읽는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글쓰기를 한다고 해서 글안에 게으른 내용, 즉 생각의 흐름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앞에서 말한 내용이 누락되는 빈도가 적어요. 논픽션 글에 있어서 핑커 좋은 글쓰기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
박혜진 선생님이 장강명 선생님께 질문을 옮깁니다.
“김명남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스티븐 핑커는 자신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식의 저주’에 빠진 것 같지 않습니다. 길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만 전달력은 잃지 않는 것 같아요. 장강명 선생님, 어떤가요?”
장 선생님이 답합니다.
“학식이 있는, 유명한 저자의 글이라도 못 쓴 글로 느껴지는 이유는 소위 ‘젠 체하는(잘난 척 하는) 문장’ 때문입니다. 핑커는 이를 ‘지식의 저주’로 포장(?)해 줍니다. 일부 지식인들이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본인 글을 어려워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 하는 저주에 빠졌다는 것이죠. 반면 핑커의 글은 (방대한 분량 때문에) 시간은 걸릴지언정 교양 서적으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게 스티븐 핑커 책의 매력이죠.”
김명남 선생님이 이제는 역으로 사회자 박혜진 선생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책에서 핑커가 지적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상이 문학 평론가입니다. (객석 웃음) 문학 평론가로서 박혜진 선생님은 핑커의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혜진 선생님이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많이 반성하면서 읽었죠. 읽을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쓴 글은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어려운 글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업계, 문화, 집단에만 친절한 글은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핑커는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로 정직과 견실함을 꼽는데요, 이 두 요소가 핑커의 책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
본편이 끝나고, 참석해 주신 독자분들의 현장 질문을 받으며 북 토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시대 글쓰기의 의미, 자신의 글이 논쟁에 빠졌을 때 장강명 작가의 대처법, 옮긴이의 말을 쓸 때 번역가의 고충 등 현장에 참석하신 100여 명의 독자분들이 현장 질문을 보내주시며 북 토크의 마지막 단락을 풍부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장강명, 김명남, 박혜진 선생님은 어떤 답변을 남겼을까요?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독자 여러분을 위해, ㈜사이언스북스가 북 토크 현장 풀 영상을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입니다.
ps. 북 토크 이후 현장에 참석해 주신 독자분들을 위해 장강명, 김명남, 박혜진 선생님의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영상 올리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 『글쓰기의 감각』으로 돌아온 스티븐 핑커가 굼금하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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