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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북스의 책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Editor! 2004. 8. 25. 11:37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Ideas that Changed the World



기원전 3만 년부터 2000년까지 인류 문명을 변화시켜 온

178가지 아이디어의 역사를 읽는다.


인터넷 보급률이 전체 가구의 70퍼센트에 이르고(2002년 말 기준) 하루 3000만 명 이상이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고 2000만 명 이상이 미니홈피나 블로그로 자신을 표현하는 한국 사회에서 네티즌들은 네트워크에 기반한 새로운 지식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제 초등학생들은 숙제를 할 때 무거운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고 네이버 지식 검색(http://kin.naver.com)에서 검색어를 입력하고 대학생들도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지 않고 리포트 뱅크(http://report.zip.org) 등에서 누군가 써놓은 리포트 데이터를 통째로 내려받는다.

지식 검색 사이트의 ‘열린’ 백과사전에는 근거와 출전이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식과 정보의 이름으로 난무하지만 현대 지식인들은 지식이 그 뿌리와 깊이를 잃은 채 광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표류하는 상황 앞에서 교양과 지혜의 생산자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과 이공계의 위기, 독서 인구의 축소는 작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Ideas that Changed the World)」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서술과 형식으로 지식의 파편화와 교양의 종언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 책은 인간이 같은 종족인 다른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식인(食人)이라는 아이디어’에서부터 모든 문화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20세기 후반의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꾸어 온 178가지의 아이디어를 학문적 근거에 바탕을 둔 탄탄한 설명과 매혹적인 사진 또는 그림들로 설명함으로써 새로운 교양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인 『밀레니엄(Millennium)』(1995년), 『문명들(Civilizations)』(2000년), 『음식(Food)』(2001년) 등의 저자이자 저명한 역사가인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Felipe Fernández-Armesto)는 영적인 세계의 존재,  우주의 질서, 내세, 근친상간 금기, 보편적 도덕, 성차별주의, 국가, 평등주의, 신의 정의, 과학, 삼위일체, 선(禪), 무의식, 논리학, 성전(聖戰), 계급 투쟁, 우생학, 상대성 이론, 카오스 이론 등 인간 정신 발전의 대장정에서 생산되어 온 중요한 관념들을 소개한다.

역사학과 고고학을 비롯한 현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연구의 최신 성과를 최대한 반영한 저자의 폭넓고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관념들이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등장하게 된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영향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또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는 동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이미지들은 그 아이디어의 직관적인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는 이러한 압축적 서술의 과정을 “꽉꽉 우겨 담는 방식”이 아니라 “태엽을 감는 방식”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이 책은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을 해도 좋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각각의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도 좋다. 그렇지만 각각의 아이디어가 어떠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도록 관련된 아이디어들끼리 서로 연결해 놓았고 보다 확장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추천 도서들도 소개되어 있어 파편화된 지식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총체상을 알 수 이계 해 준다. 이 책의 주요 특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시간 순서에 따른 알기 쉬운 구성: 인간이 만들어 온 아이디어들을 항목별, 시간 순서별로 정리하여 인간 정신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을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신화적 아이디어에서 첨단 과학의 아이디어까지: 대부분의 역사책들이 무시하고 있는 선사 시대 원시인의 신화적 아이디어에서 인문학자들이 놓치고는 하는 복잡한 논리 구조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과학자들의 아이디어까지 인간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총망라하고 있다.

깊이 있는 교양: 철학, 역사학, 신학, 미학, 고고학, 언어학, 인류학, 심리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인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인 학문의 기원, 배경, 역사 그리고 현 동향이 압축적으로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서술: 다른 인간을 먹을 수 있다는 식인(食人)이라는 아이디어에서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보편적 사랑이라는 성스러운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아이디어들이 해 온 역할을 편견 없이 평가하고 그 등장 배경, 결과, 영향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중심주의의 탈피: 인간 정신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서구 저자들이 빠지기 쉬운 서구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고 인간 아이디어의 역사에서 유교, 도교, 불교, 이슬람, 신대륙 원주민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비서구 사회 사유의 역할과 의미를 재평가한다.

서로 연결된 글: 인간 아이디어의 유동성(流動性)을 반영하듯 개별 아이디어들에 대한 서술을 연결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어 아이디어들의 발전 과정을 상호 연관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각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미지와 편집: 아이디어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다채로운 600여 컷의 그림 또는 사진의 칼라 이미지들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 그 아이디어와 관련해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풍부한 참고 문헌: 각 아이디어마다 그 아이디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참고 문헌이 소개되어 있어 새로운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교양을 심화시키는 길잡이로서의 가치가 높다.

한글세대를 배려한 편집과 번역: 인명, 지명, 학술 용어 등을 현지 발음과 내용에 맞게 순화하고 청소년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난해한 용어나 문장을 세심하게 풀어 번역했다.

2,000개에 달하는 풍부한 찾아보기: 항상 곁에 두고 찾아보는 참고 도서로 쓸 수 있도록 상세한 색인을 두었다.

공동 제작을 통한 높은 완성도: 세계적인 출판사 DK(Dorling Kindersley) 사와의 공동 제작을 통해 이미지 퀄리티와 본문 디자인을 포함한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태초에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 책은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난 역사, 즉 아이디어에 의하여 추진된 역사를 다룬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기록이 왜 변화로 가득한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다른 종(種)들과 비교할 때, 인간은 아이디어를 잘 만들 수 있는 놀랍도록 복잡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 필자는 대부분의 역사적 변화는 아이디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이디어는 물질적인 위기, 경제적 필요, 환경상의 제약, 다른 모든 것들만큼이나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6쪽, 「머리말」)


저자는 이와 같이 아이디어를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강력한 변화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한다. 그러나 'idea'라는 영어 단어는 생각, 관념, 개념, 인식, 이해, 의식, 지식, 의견, 견해, 사상, 착상, 고안, 음악적 악상, 느낌, 인상, 사고방식, 이상(ideal), 이데아(플라톤 철학), 순수 이성 개념(독일 관념론)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말 ‘아이디어’에는 착상이나 고안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보편적 도덕이라는 아이디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아이디어’, ‘환생이라는 아이디어’, ‘전지전능한 유일신이라는 아이디어’, ‘삼위일체라는 아이디어’, ‘민족주의라는 아이디어’ 같은 표현들은 신성모독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념을 인간이 만들어 낸, 그리고 인간을 만들어 간 아이디어로 지상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인간 정신의 발전 과정을 종교, 국적, 인종, 민족, 계급 등으로 오염된 편견 없이 볼 수 있게 해 준다.


보편적 도덕이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추적하기 위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고학적인 기록에서 외견상 이타적인 행동의 증거를 찾아보는 것이다. …… 이타주의는 아마도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여 서로를 번성하게 만드는 생존 메커니즘의 일부인 셈이다.(49쪽, 「선과 악」)


만일 불평등이 온 세상에 만연했다면 평등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부 사상가들은 불평등이 훨씬 덜했던 초기 사회의 집단 기억에서 평등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주장해 왔다. …… 하지만 그런 시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대부분의 문화에는 ‘황금시대’, 현재의 고난과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한 ‘좋았던 시절’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91쪽, 「황금시대」)


유일신이라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만으로는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편입되자 유일신 숭배는 보편적인 전도와, 심지어 보편적인 개종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일신교는 길고 지난한 종교 분쟁의 역사를 낳았고, 대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야기했다.(159쪽, 「단 하나의 신」)


기독교는 보편 종교로서 한 가지 커다란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가지가 통합되어 하나의 전능한 신이 되는 복잡한 신학이라는 점이다. 이 난해함은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시킬 뿐 아니라,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파를 조장한다.(170쪽, 「본질적으로 하나」)


민족주의는 명백한 허위이다. 우연히 지리적 배경이나 언어를 공유하게 된 사람들 사이에 타고난 정신적 유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리가 맞지 않는 생각지고 민족주의는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민족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에 발발한 대부분의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동족상잔의 원인을 제공했다. (287쪽, 「나의 조국」)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을 넘어 전 세계의 아이디어를 아우른다


아이디어의 역사를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다. 기껏해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중의 오해를 낳았다. 우선 그것은 서구 전통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다음으로 역사에서 가장 긴 시대를 배제한다. (7쪽, 「머리말」)


저자는 서구 지식인들이 흔히 범하는 ‘서구 중심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연구 성과의 도움을 받아 가며 문자 등장 이전 선사 시대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고대인의 삶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아이디어에 담긴 지혜를 재평가하고, 서구만의 것이라는 듯 착각되고 있는 과학의 기원이 중국의 도교적 사유 속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인간 정신의 장대한 역사가 서구의 독점 상품인 듯 믿는 사람들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그리고 비서구 사회가 아이디어의 역사에서 차지해야 할 정당한 영광을 되돌려 준다.


매머드의 뼈로 지어진 집은 …… 그러한 상상력의 최고 정점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전으로 추측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상상한 매머드의 속성을 재건하고, 매머드의 힘을 얻어 쓰고, 다른 동물들에게 매머드와 같은 힘을 마법적으로 행사하고 싶었으리라.(25쪽, 「황금 열쇠」)


음식물 금기에 관해 인류학적으로 가장 놀라운 사례는 보츠와나의 유목민인 바틀로크와  족의 규범이다. 바틀로크와 족은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많은 음식을 금지하고 있다. 개미핥기의 일종인 땅돼지와,. 돼지고기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그 지방에서 난 오렌지는 금기 음식이다. 나이와 성별, 계절과 상황에 따라 제한되는 것도 있다. …… 이렇게 복잡한 금기 탓에 바틀로크와 족은 전 세계 음식물 금기 문화의 대표자가 되었다.(38쪽, 「아무 거나 먹지 마」)


일원론의 강력한 힘과 편재성은 유라시아 사상의 형성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어쩌면 인도에서 처음 탄생했을 이 일원론이라는 아이디어는 그 후 널리 퍼져 나가 기원전 첫 번째 천년기에 그리스와 중국에서 보편적인 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힌두교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105쪽, 「모든 것은 하나다」)


목적 없는 우주에 대한 가장 위대한 해설자는 1세기의 중국 철학자 왕충(王充)이었다. 그는 인간을 옷 주름 속에 사는 이에 비유했다. 벼룩이 귓가에서 웅웅거려도 우리는 듣지 못한다. 인간이 그럴진대 신이 사람의 말을 들을 수나 있겠는가? 신이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은 가당키나 하겠는가?(131쪽, 「중요한 건 없다」)


관찰과 실험의 전통은 아마도 초기 도교의 점을 치고 주술을 행하던 관습에서 발달했을 것이다. …… 서구의 현대 실험 과학의 전통이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교류가 크게 증가했던 13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무렵 중국의 아이디어와 발명품 들이 대초원과 실크로드를 지나 이슬람 세계를 경유해 유럽에 당도했다. (132쪽, 「과학적인 방법」)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윤리에 보편적인 호소를 추가했다. 이웃 사랑은 유대교 전통에서 나온 것이고, 아마도 원래는 중국과 인도 철학에서 빌려 왔을 것이다. ……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은 중국과 인도의 아이디어가 …… 서양의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독립적으로 발전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 시대에 이미 실크로드 여행자들에 의해 유라시아로 중국과 인도의 문화가 전파되고 있었고, 이런 사실은 기원전 138년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어쩌면 이 아이디어의 기원은 묵자일 수도 있다.(166쪽, 「큰 형제애」)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은 20세기에 진행되던 흑인의 지위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인종주의는 신뢰를 잃었다. …… 좀 더 정교한 ‘흑인’ 중심의 역사 이론도 등장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서구 문명 또한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며 이집트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나 단순화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의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아프리카의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서구 백인 사회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 권력의 무게추를 더 공평한 쪽으로 옮기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379쪽,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이디어의 성공과 실패

4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계속 축적해 아이디어들에는 다른 종족을 모조리 말살시켜야 한다는 ‘대량 학살이라는 아이디어’, 여성을 착취해도 좋다는 ‘성차별주의라는 아이디어’,타고난 열등 인종이 있다는 ‘과학적 인종주의라는 아이디어’처럼 세계를 폭력과 전쟁, 자멸의 길로 몰고 간 아이디어들도 있다.

저자는 이런 부정적인 아이디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고 ‘시민 불복종이라는 아이디어’, ‘종교적 다원주의라는 아이디어’,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아이디어’ 같은 긍정적인 아이디어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생성된 것임 드러내 준다. 또한 일견 긍정적으로 보이는 아이디어들 그 속에 부정적인 아이디어의 실마리들도 냉정하게 드러냄으로써 역사가 가진 아이러니한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노동 윤리’까지 등장했다. 일반인의 믿음과는 반대로, 노동 윤리는 프로테스탄티즘이나 산업화에 따른 현대적 발명품이 아니다. 노동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게 되자, 모든 사회의 엘리트들은 노동 윤리를 하층 계급에게 필수적 규범으로 떠안겼다. 고대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의 시인들은 들판에서 무한정 일하는 것의 미덕을 열렬히 칭송했다. ‘6일의 노동’은 에덴에서 추방당한 아담의 저주였고, ‘땅을 경작’하는 것은 카인의 음울한 의무였다.(71쪽, 「저주받은 노동」)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모두 할 수 있고 거의 똑같이 잘해 낼 수 있다. 또한 여성은 종을 번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의 남성은 엄밀히 말하면 불필요하게 남아도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왜 여성은 그토록 적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75쪽, 「여자가 뭐기에」)


대량 학살 전략은 현대 농경민 사회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뉴기니의 마링 족은 적의 마을을 습격할 떼에는 전 주민을 몰살시킨다. ‘발전’된 사회도 이런 면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대량 학살 기술이 더 효율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적이 없는 이상향이라는 아이디어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아이디어를 넘어서는 진보를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는 심히 의심스럽다.(77쪽, 「자비는 없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아리스토텔레스는 …… 굴종의 강요와 그가 신봉하는 가치-자유와 행복-사이의 모순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고,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최고 목적은 더 우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설명으로 이 모순을 피해 가려고 했다. …… 이 아이디어를 도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150쪽, 「노예 인간」)


19세기 유럽 인들은 식물을 분류하듯이 인류를 인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피부색, 털의 유형, 코의 모양, 혈액형 그리고 무엇보다 두개골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분류 방법이 제시되었다. …… 덕분에 20세기 전반의 제국들은 마음 편하게 세계를 칼로 갈라 인종 순서대로 쌓아 올렸다. 반면 제국주의의 비판자들은 감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사람들로 보이게 되었다. 318쪽, 「타고난 열등생」)


인간은 자신을 독특한 존재라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은 얼마나 도덕적인 존재일까? 이것은 축의 시대 사상가들을 괴롭힌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축의 시대 사상가들 대부분은 인간 본성이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자는 국가가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여 그들 내면의 잠재적인 선함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고, 그리스 민주주의는 가난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시민에게도 국가의 일에 목소리를 낼 권리를 주었다.(136쪽, 「도덕적 동물」)


마르키 드 콩도르세는 인류가 “진실과 미덕과 행복의 길을 따라 확실하게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라고 믿었다. 정치적, 지적 혁명으로 “운명이라는 족쇄로부터 인간 정신이 해방되고” 종교의 구속을 떨쳐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설적으로 콩도르세가 인간 진보에 대한 자신의 굳은 신뢰를 기록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에 정적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결국 이러한 아이디어가 초래한 전쟁과 혁명은 계몽사상의 낙천주의를 피로 물들였다.(253쪽,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만난다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는지, 우리의 기본 지식에서 현대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미약한지 안다면 겸허해질 것이다.(7쪽, 「머리말」)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정치・사회・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아이디어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들을 다룬다. 저자는, 초원에서 썩은 동물 사체를 찾아다니던 수렵・채집민의 신화적인 세계관, 고대 동서양 현자들의 소박하지만 예리한 깨달음, 종교의 억압 속에서 진리를 찾아 헤맨 과학자들의 새로운 지식 등에 담긴 아이디어들이 현재 우리의 삶과 사상을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현생 인류의 등장과 거의 함께 시작되었을 ‘우리의 오감이 착각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인간의 지적 모험이 수많은 신화, 미신, 학문을 거쳐 현대의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의 ‘관찰자와 대상을 분리할 수 없다는 아이디어’와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과정을 읽다 보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실감케 된다.  


오감이 착각일 것이라는 어렴풋한 인식은 어쩌면 인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감각은 다른 감각과 모순되고는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은 누적된다. 그러나 우리는 실체의 끝에 도달했다고는 결코 추정할 수 없다. …… 우리의 오감을 믿을 수 없다는 아이디어는 영적 세계로의 문을 여는 핵심 열쇠였다. 그것은 공상이라는 무한한 세계를 열어 주었다.(17쪽, 「안개 속을 헤치며」)


진화가 인간에게 풍족한 기억력을 부여한 덕에 인간은 자연 속에서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질서의 순가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머릿속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이것은 질서 있는 우주라는 아이디어가 딛고 선 발판에 불과하다. 질서가 있는 관계를 관찰하는 것과 그러한 질서가 보편적이라는 아이디어 사이에는 커다란 비약이 있어야 한다. 사실 질서가 자연 전체를 아우른다는 주장은 직관과 경험에 반하는 것이다. 질서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작은 파편으로만 드러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드시 어떤 아이디어로 시작되어야 했고 나머지는 단서들로부터 추론해야만 했다.(28쪽, 「주사위는 없다」)


사람들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고안해 낸 아이디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우주를 두 개로 나누자는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통일성을 찾는다. 즉 다른 정보와 맞춰 봄으로써 자신이 지각한 것을 이해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길 원하는 것이다. …… 우리가 아는 한 사람들이 생각해 낸 첫 번째 틀은 이분법이었다.(46쪽, 「두 개로 보기」)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늘날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매달렸다.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해 주는 ‘어떤 대단한 것’-신, 자연 또는 어떤 보편적인 원리-을 원했던 것이다. 그의 손이 미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영원한 충돌이라는 아이디어가 있었다.(110쪽, 「모든 것은 변한다」)


원자론은 지난 200년 동안 물리학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처음 제안된 것은 기원전 4세기 초반이었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인정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에서는 물질을 무한히 쪼갤 수 있는 연속체로 취급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를 부정하고, 만물이 아주 작고 불연속적인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의 운동 방식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놀라운 아이디어였다.(127쪽, 「겨우 존재하는 것」)


종교는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인간은 특권이 있는 존재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과 잘 맞는 것 같다. 과학은 이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신이 창조한 곳 중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부분은 신이 생각하는 우주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점에 불과했다. 지상과 창공은 둘 다 신의 컴퍼스 사이에 있는 조그만 조각일 뿐이다. 핀셋으로 집은 조그만 보풀처럼 말이다.(221쪽, 「태양이 다가온다」)


상대성 이론은 확실성에 대한 전통적인 확신을 흔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실재를 인식하고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다음 세대 과학자들이 탐사하게 될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역설을 만들어 냈으며,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실용적인 연구의 시대, 즉 새로운 원자력 시대를 열어젖혔다.(346쪽, 「뒤틀린 우주」)



178가지 아이디어로 살펴보는 인류 문명의 역사

 인간이 내놓은 아이디어의 장대한 역사를 추적한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과 그림이 풍성한 이야기책이다. 이 책은 인류의 아이디어가 형성된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함으로써 세계를 열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광대한 시야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밟아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경이로운 인간 정신의 대장정을 살펴보는 이 책에서 네트워크를 덧없이 떠도는 지식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갈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 온 위대한 아이디어의 역사를 교양으로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역사의 갈림길에서 작게나마 길잡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례

머리말

1. 사냥꾼의 정신(기원전 3만-1만 년)

2. 진흙탕에서 나와(기원전 1만-1000년)

3. 부처님 가라사대(기원전 1000년-기원 원년)

4. 생각하는 종교(기원 원년-1400년)

5. 미래로의 회귀(1400-1800년)

6. 진보의 환상(1800-1900년)

7. 불확실성의 시대(1900-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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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Felipe Fernández-Armesto)

1950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을 위해 일한 스페인계 지식인이고 어머니는 잉글랜드계이다. 스페인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콜럼버스 이후의 카나리아 제도(諸島)에 관한 연구’를 쓸 정도였다. 현재 런던 대학교 퀸 메리 캠퍼스의 역사 및 지리학 교수로서 지구환경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현대사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베스트셀러인 『밀레니엄(Millennium)』(1995), 『문명들(Civilizations)』(2000), 『음식(Food)』(2001)를 포함한 30여 권의 저작들은 20여 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코노미스트》와 《뉴욕 타임스》 등 많은 저널에 기고해 왔으며, BBC와 CNN 등 여러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에 글과 인터뷰를 제공하고 있다. 아내 레슬리 퍼트리샤 후크와 두 아들이 있다.


옮긴이 안정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물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독감』, 『얼굴』, 『아이도루』, 『라마』, 『중력의 임무』, 『은하를 넘어서』, 『충격의 고대 문명』, 『천년의 향기』, 『일본인도 모르는 천황의 얼굴』, 『접골사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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