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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④ 젠틀맨 다윈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④ 젠틀맨 다윈

Editor! 2016.04.08 10:57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④ 젠틀맨 다윈


사랑하는 외삼촌, 

비글호는 일요일 저녁에 팔머스에 입항했습니다. 집에는 어젯밤에 도착했지요.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제 도착을 누나들이 먼저 외삼촌에게 알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요. 사랑하는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비글호 탐험대 해산을 위해 런던에 돌아가 사나흘 지내야 하고 다시 슈루즈베리로 돌아와 조금 더 긴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메어의 외삼촌 집과 가족들 모두 너무 보고 싶습니다. 두세 주 안에 찾아뵐게요. 직접 만나서, 탐험대의 대표로서 외삼촌께 감사를 올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까먹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1836년 10월 5일

당신을 사랑하는 조카 찰스 다윈 올림


다윈의 가계도는 조금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윈의 부인은 외삼촌의 딸이다. 다윈의 누이는 부인의 오빠와 결혼했다. 사촌끼리 결혼을 한 데다 겹사돈을 맺었다. 당시 유럽에서 부유층이나 귀족들이 사촌과 결혼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근친혼의 효과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결혼에서 얻은 자손이 훨씬 좋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다윈이 사촌을 배우자로 택한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10명의 자식 중에서 셋은 어려서 죽었고 몇몇은 병약했는데, 다윈은 이것이 근친혼 탓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천문학자였던 아들 조지가 ‘영국에서 사촌 간의 결혼과 그 효과’라는 논문을 쓴 것도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외할아버지, 조시아 웨지우드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가계도가 이렇게 얽힌 것은 다윈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사이의 두터운 우정 덕분이었다. 의사였던 다윈의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건강을 책임졌고, 명품 도자기 회사를 운영했던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재산관리를 도왔다. 다윈의 아버지와 외삼촌도 주치의와 재산관리인이라는 선대의 관계를 그대로 반복했다.


루나 소사이어티 회원들이 모임을 가졌던 버밍엄 핸즈워스의 소호 하우스(Soho House)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영국 버밍엄에 있던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의 회원이었다. ‘루나 소사이어티’는 문자 그대로 기업가·자연철학자·지식인들이 정기적으로 보름달이 뜰 때마다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모임이었다. 다윈의 할아버지들 이외에도 증기기관에 관한 최초의 특허를 보유했던 매튜 볼턴과 제임스 와트 같은 엔지니어, 산소의 발견자로 유명한 조셉 프리스틀리와 금속과 기체의 성질을 연구했던 제임스 케어 같은 화학자, 초기 지질학에 큰 기여를 했던 존 화이트허스트, 식물학·지질학·화학을 두루 연구했던 윌리엄 위더링, 유명한 무기제작자 새뮤얼 존 골턴,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회원으로 참석했다.


제임스 와트

(이미지 출처: wikipedia)

조셉 프리스틀리

(이미지 출처: wikipedia)

벤저민 플랭클린

(이미지 출처: wikipedia)


‘루나 소사이어티’는 새로운 사회 계층이 출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임이다. 이전에는 과학자와 기술자는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었고 서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일이 드물었다. 증기기관 기술이 복잡한 열역학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없지만 적어도 이론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술을 갖고 시작한 제조업으로 재산을 모으고 과학과 철학의 문제에 밝은 사람들이 모여 과학과 산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수십 년간 지속된 이 모임에서 이들은 우정과 지식을 나누었다. 낡은 귀족들과는 다른 새로운 ‘젠틀맨 그룹’이 탄생한 것이다. 

다윈은 뼛속까지 젠틀맨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기술자이자 기업가인 외가와 자연철학자인 친가의 결합을 보여주는 상징의 정점에 있다. 그는 5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외삼촌이자 미래의 장인인 조시아 웨지우드 2세에게 편지를 썼다. 다윈이 표현한 감사는 아버지를 설득해 항해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 외삼촌에 대한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자, 그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가문과 젠틀맨 그룹에 대한 인사였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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