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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코뿔소를 위한 비가

Editor! 2018. 3. 21. 16:51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주창한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그는 사회 생물학을 소개하는 책뿐만 아니라 『생명의 미래』와 『바이오필리아』, 『지구의 절반』과 같이 생물 다양성의 훼손 위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특히 북부흰코뿔소와 수마트라코뿔소, 자바코뿔소를 비롯한 종의 멸종은 그가 지속적으로 우려한 생물 다양성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 3월 19일 케냐 올페제타 보호 구역에서 북부흰코뿔소의 마지막 수컷 수단이 4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수단의 죽음을 추모하며, 『지구의 절반』의 한 장, 「코뿔소를 위한 비가」 전문을 2주간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싣습니다.


현재 세계에는 2만 7000마리의 코뿔소가 남아 있다. 한 세기 전에는 수백만 마리가 아프리카 평원을 쿵쿵거리며 가로지르거나 아시아 우림 속을 소리 없이 돌아다녔다. 코뿔소는 다섯 종이 있으며,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흰코뿔소의 남부 아종에 속한다. 주로 남아프리카에 살며, 무장 경비대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2014년 10월 17일, 마지막 남은 북부흰코뿔소 중 한 마리였던 수니(Suni)가 케냐 올페제타 보호 구역에서 사망했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 살아 있는 북부흰코뿔소의 수는 여섯 마리로 줄어들었다. 케냐 올페제타에 세 마리, 체코 공화국의 드부르크랄로베 동물원에 한 마리, 미국 샌디에이고 사파리 공원에 두 마리가 있다. 이들은 늙어가고 있고, 이들 사이에서 새로 태어나는 새끼는 전혀 없다. 이 마지막 남은 개체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코뿔소는 대개 포획된 상태에서는 번식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북부흰코뿔소는 사실상 멸종 상태다. 자연 수명을 고려할 때, 2040년이면 마지막 개체가 죽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북부흰코뿔소


한편, 검은코뿔소의 서부 아종은 완전히 멸종했다. 그 어디에도, 동물원에도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길게 굽은 뿔이 달린 이 거대한 동물은 한때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상징이었다. 카메룬과 차드에 이르는 사바나와 열대 건조림 전체에 우글거렸고, 남쪽으로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동쪽으로는 수단까지 퍼져 있었다. 이들의 수는 처음에 식민지 시대에 스포츠로 사냥을 하는 이들 때문에 처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코뿔소 뿔을 잘라서 의식용 단검의 손잡이를 만들려는 밀렵꾼들이 밀려들었다. 그런 단검은 예멘에서 주로 쓰였지만, 중동의 여러 지역들과 북아프리카에서도 쓰였다. 마지막 타격을 가한 것은 중국과 베트남의 엄청난 수요였다. 코뿔소 뿔을 빻은 가루는 중국 전통 약재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마오쩌둥이 서양 의학보다 중국 전통 의학을 선호하면서 그 소비량 증가에 불을 지폈다. 지금도 중국에서 코뿔소 뿔 가루는 성 기능 장애와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을 다스리려는 데 널리 쓰인다. 중국 인구는 2015년에 14억 명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그중 몇 퍼센트만 코뿔소 뿔을 찾는다고 해도 코뿔소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램당 가격이 금보다 더 비싸졌다. 그 결과 씁쓸한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의학적 가치가 사람의 손톱이나 다름없는 그 뿔 때문에 코뿔소는 멸종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뿔소 뿔 시장에 이끌려서 여러 밀렵꾼들과 범죄 집단들이 마지막 남은 개체들까지 사냥하기 위해 몰려들어 왔다.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인, 죽인 동물의 뿔을 위해 목숨을 무릅쓰면서 말이다. 이 코뿔소 다섯 종 모두는 쉴 새 없이 계속 타격을 받는 듯하다. 검은코뿔소의 서부 아종은 1960년부터 1995년까지 개체 수가 98퍼센트 줄어들었다. 그들은 1991년 마지막 성채인 카메룬에 겨우 50마리가 남아 있었다. 1992년에는 35마리로 줄었다. 밀렵꾼들은 무자비하게 그들을 괴롭혔고, 카메룬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1997년경에는 겨우 10마리가 남았다. 많으면 14마리까지 무리(코뿔소 무리를 영어로는 ‘크래시(crash)’라고 한다.)를 짓는 경향이 있는 흰코뿔소와 달리, 검은코뿔소는 번식기 외에는 홀로 생활한다. 서부검은코뿔소의 멸종이 임박했을 당시, 생존자들은 카메룬 북부의 드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만나서 짝짓기를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살던 개체는 네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짝을 짓지 않았고, 곧 모두 사라졌다.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가 빚어 낸 장관이 그렇게 사라졌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대형 육상 포유동물은 자바코뿔소다. 우림 깊숙이 사는 이 종은 원래 태국에서 중국 남부까지, 또 그곳에서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까지 퍼져 있었다. 최근까지 베트남 북부의 보호받지 않은 숲, 지금의 깟띠엔 국립 공원에 10마리가 숨어 있었는데, 거의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고, 곧 밀렵꾼들의 손에 모두 살해당했다. 2010년 4월 마지막 남은 한 마리까지 총에 목숨을 잃었다.


현재 마지막으로 남은 집단이 자바 서쪽 끝 우중쿨론 국립 공원에 살고 있다. 50마리도 채 안 된다. (한 전문가는 내게 35마리라고 했다.) 지진 해일이 한 차례 밀려들거나 작심한 밀렵꾼 한 무리가 들이닥치는 것만으로도 모두 사라질 수 있다.



희소성과 위험 양쪽으로 자바코뿔소에 상응하는 동물이 있다. 열대 아시아 우림 깊숙한 곳에 사는 수마트라코뿔소다. 수마트라코뿔소는 자바코뿔소와 더불어 동남아시아에 넓게 분포해 있었다. 그들의 서식지 중 상당 지역이 농경지로 바뀌고, 무자비한 밀렵꾼들의 손에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지금 그들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수마트라 섬의 숲들과 동물원에만 극소수가 남아 있다. 보르네오 섬의 오지에 몇 마리가 더 숨어 지낼 가능성도 있다.


1990년과 2015년 사이에, 세계의 수마트라코뿔소 수는 300마리로, 이어서 100마리로 급감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동물원 겸 식물원의 수의사 테리 로스(Terri Roth)와 직원들은 영웅적인 노력을 통해 현재 사람에게 쓰는 번식 기술을 코뿔소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은 성공했다. 지금까지 3대째 번식이 이루어졌고, 아주 신중하게 몇 마리를 수마트라의 보호 구역으로 다시 풀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번식 과정은 느리고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며,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호시탐탐 코뿔소를 노리는 밀렵꾼들도 있다. 뿔 하나를 손에 넣어서 평생 놀고먹을 돈을 벌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무릅쓰려는 이들이다.


동물원 관리자들과 인도네시아 공원 관리자들의 노력이 실패해 수마트라코뿔소가 사라진다면, 수천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하면서 존속해 온 비범한 대형 동물 계통 하나가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북반구 극지방의 털코뿔소는 마지막 빙하기에 사라졌다. 사냥꾼들에게 멸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유럽에 살던) 그 사냥꾼들은 동굴 벽에 털코뿔소의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은 지금 우리에게 감명을 준다. 


수마트라코뿔소 ⓒ Willem v Strien


1991년 9월 말, 나는 신시내티 동물원을 방문했다. 원장인 에드 마루스카(Ed Maruska)가 수마트라에서 새로 포획되어 로스앤젤레스 동물원을 거쳐 옮겨진 수마트라코뿔소 한 쌍을 보러 오라고 초청했기 때문이다. 암컷은 이름이 에미였고, 수컷은 이푸였다. 둘 다 젊고 건강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터였다. 수마트라코뿔소는 수명이 반려견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초저녁에 우리는 동물원 근처의 창고로 들어갔다. 기이하게도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록 음악이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루스카는 소음이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에 신시내티 공항이 있어 서 항공기들이 종종 굉음을 내며 상공을 지나가고, 인접한 도로에서 불시에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는 한다는 것이다. 조용한 밤에 소음이 갑작스럽게 튀어 나오면, 코뿔소는 놀라서 공포에 질려 날뛰다가 다칠 수 있었다. 그들의 고향에서 진정으로 위험한 소리들, 즉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나 호랑이가 다가오는 소리, 사냥꾼의 발소리(수마트라코뿔소는 아시아에서 6만 년 넘게 원시인 사냥꾼과 현대 사냥꾼에게 공격을 받아 왔다.)에 상응하는 갑작스러운 소리 때문에 마구 날뛰는 상황에 처하기보다는 록 음악을 듣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날 밤 에미와 이푸는 몸집에 비해 큰 거대한 우리 안에 석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잠이 든 것인지도 몰랐다.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마루스카에게 만져 보아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마리씩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부드럽게 만져 보았다. 나는 마치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듯한 영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독자나 지금의 나 자신에게도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해당 연재는 2주 기간 한정으로 공개되는 게시물입니다.

2018년 4월 9일까지 공개되며 그 이후로는 읽을 수 없으니 참고해 주세요.



※ 관련 도서 ※


『지구의 절반』 [도서정보]


『바이오필리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