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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①

Editor! 2018. 8. 15. 09:00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번역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으로 돌아온 이종필 건국 대학교 상허 대학 교수다. 저술 활동과 대중 강연, 학교 수업, 그리고 시사 팟캐스트 「유유상종」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종필 교수를 모셔 그간 나눠 본 적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생애 첫 번역서 『최종 이론의 꿈』(스티븐 와인버그, 2007년), 대표 저서 『물리학 클래식』(2012년), 그리고 최근에 번역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레너드 서스킨드, 2018년)까지 그가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출간한 수많은 책들을 살펴보면 숨은 ‘빅 픽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종필의 빅 픽처 안에서 과학 글쓰기와 세상 읽기, 그리고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공부법을 찾아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에 새로 오픈한 과학책방 ‘갈다’에서 이루어졌으며,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일곱 번째 이야기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①



최종 이론 대신 사회를 위한 꿈을 꾸게 된

어느 이론 물리학자 이야기


SB : 「과학+책+수다」를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선생님께 인터뷰 제안을 드릴 때 이종필 독서 가이드, 다시 말해 “과연 이종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주제로 수다를 한번 떨어 보자고 제안을 드렸죠. 그러고 보니까 이제 선생님께서 사이언스북스와 함께해 오신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이종필 : 11년이 되었네요. 


이종필 건국대 교수. ⓒ ㈜사이언스북스


SB : 저희가 술자리 수다는 정말 많이 떨었죠. 이메일로 왕래한 기간까지 따지면 12년이에요. 2006년에 저희 사이언스북스가 처음으로 선생님께 번역 제안을 드렸으니까요. 그동안 이런 인터뷰를 한번도 공식적으로 요청드리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필 : 여기 뭔가 소주 한 병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SB : 선생님도 입담이 많이 느셨어요. 요새 팟캐스트 「유유상종」에 고정 출연하시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되시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선생님께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 이론의 꿈』 번역 제안을 드린 게 2006년이었고, 그 책이 출간된 게 2007년이니까 시간 많이 지났네요. 


그때까지 선생님께서는 이론 물리학자셨잖아요. 순수 이론 물리학자. 그리고 이론 물리학자들 중에서도 고에너지 분야에서 연구를 하셨고요. 에너지의 척도로 보면 일상 세계와는 10의 수십 제곱 배 차이가 나는, 계층이 다른 세계에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중 과학책을 집필, 번역하고 계시니 어떤 의미에서는 하범(下凡)을 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년 동안 집필, 번역 활동을 하시면서 일종의 ‘과학 전도사’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 사업을 해 오신 거잖아요. 이와 관련해서 선생님 소회를 한번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종필 : 일단 『최종 이론의 꿈』을 번역한 게 중요한 계기이기는 했습니다만, 더 중요한 건 제 인생사가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만 하던 모범생이 아니었거든요. 열심히 학생 운동을 했죠. 제가 1990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학생 운동의 큰 화두 중 하나가 ‘부문 계열 운동’이었습니다. 포괄적인 정치 사안이 아니라 종교, 문화, 여성, 환경 같은 부분적인 영역에서 전문적인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중을 포섭하자는 1990년대 초반 학생 운동의 한 갈래를 그때에는 부문 계열 운동, 또는 ‘부계운’이라고 했죠. 그때는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군사 정권의 후예 정권을 어떻게 타도할 거냐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차 학생 운동이 발전하려면 그런 정권과 직접적으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진보적 가치를 찾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그래서 부문 계열 운동이 시작이 됐고, 과학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SB : 그때는 ‘과학 기술 운동’이란 말로 불리기도 했죠.


이종필 : 그렇죠. 과학 기술 운동. 이런 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시기였어요. 저도 관련된 일들을 좀 했고요. 그러다가 여차여차해서 대학원에 갔고 입자 물리 이론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학위를 받고 나니까 대학 다닐 때 했던 부문 계열 운동,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것이 현실의 문제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거창한 운동을 말하는 게 아니고 과학자로서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인가, 이런 쉽지 않은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정치적 이슈나 기타 현실 문제가 있으면 옛날 학생 운동을 했던 관성이 나와서 제 나름대로 논평도 쓰고 그랬어요.

 

SB :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 중심으로 쓰셨죠.


이종필 : 네. 《오마이뉴스》 논평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가 2006년입니다. 그 전에도 어떤 이슈가 있으면 이공계 종사자로서 제 생각들을 정리해서 여러 매체에 뿌리기도 했죠. 예를 들면 2003년에 ‘이공계 위기’가 화두였던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는데…… 그때 글을 많이 썼죠. (웃음) 


SB : ‘이공계 위기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이종필 : 그렇지요. 아무튼,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기회가 되면 출판하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조금씩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최종 이론의 꿈』을 만나서 번역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요. 저한테는 그것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그 후로 지금까지 제가 직접 쓴 책, 번역한 책을 몇 권씩 내면서 12년이 흘렀는데, 글쎄 여전히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때는 제 나이가 30대 초중반이라 아직 혈기가 왕성할 때여서 그랬는지 자신감이 넘쳤어요. 오히려 지금은 ‘아, 과학과 사회를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더 느껴집니다.

 

SB : 의외네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변해 온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렵다고 얘기하시니까.


이종필 : 네. 객관적으로는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주관적으로는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종필이 직접 추천하는 이종필의 책


SB : 선생님께서 내신 책 목록을 쭉 한번 정리해 봤거든요. 공저, 공역 제외하면 전부 15종이에요. 단독 저서가 8종이고 단독 번역서가 7종이에요. 그리고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의 후속편인 『물리의 정석: 특수 상대성 이론과 고전 장론 편』까지 올해 나올 것이라 생각하면 2018년까지 총 16종을 내시는 게 됩니다. 이 정도면 보통 다작 작가로 불리죠.



16종 중에서 특히 더 애정이 가는 책을 뽑아 주시고 책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책들을 독자들한테 제대로 소개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종필 : 역시 『최종 이론의 꿈』이 기억에 남고요. 일단 이 책 자체가 워낙 명저인데다가 제가 과학 저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책이라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번역하면서 스티븐 와인버그와 인터뷰했던 것도 아주 즐거운 추억이고요.


이종필 교수는 『최종 이론의 꿈』 저자 스티븐 와인버그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종 이론의 꿈』에서. ⓒ ㈜사이언스북스


그 다음은 제가 저술한 『신의 입자를 찾아서』가 기억에 남습니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가 완공되고 나서 이게 어떤 기계인지 제게 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입자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성실하게 답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지금 보면 참 아쉬운 점도 많고 부끄러운 점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도 기억에 남고요.

 

그 다음은 『물리학 클래식』입니다. 이건 제가 노의성 주간님과 같이 술 먹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작업을 시작한 책이죠. 제가 고등 과학원에 있을 때였는데요. 20세기 중요한 물리학 논문 10편 골라서 해설을 하는 책인데, 제게 그 작업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었고 도움도 많이 됐어요. 이 작업은 제게도 그동안 못 읽어 봤던 물리학의 ‘원전’을 차근차근 읽어 볼 기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고등 과학원이 굉장히 연구하기 좋은 연구소라 다양한 전공을 가진 박사들이 많으셨어요. 사실 『물리학 클래식』에 등장하는 논문 10편 중에 제가 모르는 게 태반이었거든요. 그런데 고등 과학원에는 그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있으니까 제가 모르면 수시로 가서 물어보고 자문도 구하고 원고에 코멘트도 부탁하고 했는데, 그게 책 쓰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런 연구소들이 더 많아지고, 사회와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계기도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그래서 『물리학 클래식』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하나 더 꼽자면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이건 서울백북스의 과학책 읽는 동호회 분들, 소위 ‘과학 덕후’ 분들께서 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을 직접 수학으로 풀어 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강의입니다.


SB : 그분들이 이종필 선생님의 핵심 팬들이지요.  


이종필 교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드’한 과학 강연을 서슴없이 해 왔다. 덕분에 두꺼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기도.

손문상 ⓒ ㈜사이언스북스


이종필 :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고등학교 수학부터 중력장 방정식까지 공부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바로 이 책이지요. 이게 사이언스북스에서 출판될 뻔했는데…….


SB : 그 얘기는 빼지요. (웃음)


이종필 : 어쨌든 그래서 남다른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제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이 모두 제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싱글이지만 자식을 낳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 사연이 있고 그래서 애정이 가는 책들입니다.



그래서 『물리학 클래식 2』는 언제쯤?

 

SB : 다음 질문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 책 중에서 『물리학 클래식』이 제일 좋거든요. 제가 만든 책이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선생님이 상황에 떠밀려서 쓴 책이 아니라 진짜로 선생님이 공부를 해서 내면에서 끌어올린 책이라는 느낌은 『물리학 클래식』이 제일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리학 클래식 2』를 빨리 써서 『물리학 클래식』에서 다루지 못했던 안타까운 20세기 물리학 논문들, 그리고 앞으로 물리학의 클래식, 그러니까 고전이 될 21세기 논문들을 다루는 책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께서 현재 생산성이 어마어마하시잖아요. 1년에 서너 권을 내놓는 정도시니까. 그래서 질문 드리자면 앞으로 어떤 책을 기획 혹은 구상하고 계신지 한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종필 : 네. 『물리학 클래식 2』는 저도 굉장히 욕심이 가요. 작업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지만. 이 책이 최고 품질로 나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SB : 기억해 보면 『물리학 클래식』 아이디어는 2008년인가, 2009년인가 경희대 앞에 전집에서 처음 나왔잖아요.

 

이종필 : 네. 비 오는 날 막걸리에 모둠전 먹으면서.


SB : 그 집 아직 있나요? 그때 기획을 했는데 책으로 나오기까지 3~4년이 걸렸거든요.


이종필 : 제가 원고는 빨리 드렸지요. 비교적. (웃음)


SB : 이 부분은 편집하겠습니다. (웃음) 아무튼 『물리학 클래식 2』도 나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겠습니다.

 

이종필 : 특히 『물리학 클래식』을 쓸 때는 20세기 초반 논문들이 독일어로 돼 있어 영어로 번역본을 다시 찾아서 대조하고 그랬죠. 그때는 제가 독일어를 잘 못 했으니까. 우리나라는 그때의 1차 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좀 약하잖아요. 영어로 쓰인 20세기 후반이나 21세기에 나온 논문들은 상대적으로 편하기는 해요. 그래도 좀 더 충실하게 내용을 채우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책을 쓰기에는 고등 과학원 시절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많은 강의를 병행해야 해서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고등 과학원은 다른 전공자들이 있으니까 궁금하면 가서 물어볼 수도 있었죠.

 

고등 과학원 시절 이종필 교수가 전공이 다른 동료들과 교류하고 도움을 얻어 탄생한 『물리학 클래식』. ⓒ ㈜사이언스북스


SB : 그건 정말 중요합니다. 


이종필 : 굉장히 중요하죠. 예를 들면 『물리학 클래식』 원고 중에 열 번째 논문인 후안 말다세나의 논문 같은 경우는 제가 나름 공부를 했지만 끈 이론 전공자가 아니어서 동료 2명한테 코멘트를 받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수시로 물어봤거든요.


SB : 정말 좋은 환경이네요, 고등 과학원.


이종필 : 다시 말하지만 그런 연구소들이 더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지금은 제가 그런 환경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물리학 클래식 2』를 최대한 빨리 냈으면 하는 욕심이 있지요.


(다음 편에 계속)



이종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 연세 대학교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재직했다. 현재 건국 대학교 상허 교양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물리학 클래식』,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신의 입자를 찾아서』 등이 있고, 번역서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최종 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등이 있다.



◆ 관련 도서 ◆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학 클래식』 [도서정보]


『블랙홀 전쟁』 [도서정보]


『최종 이론의 꿈』 [도서정보]




◆ 관련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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