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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③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③

Editor! 2018. 8. 22. 10:30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번역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으로 돌아온 이종필 건국 대학교 상허 대학 교수다. 저술 활동과 대중 강연, 학교 수업, 그리고 시사 팟캐스트 「유유상종」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종필 교수를 모셔 그간 나눠 본 적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생애 첫 번역서 『최종 이론의 꿈』(스티븐 와인버그, 2007년), 대표 저서 『물리학 클래식』(2012년), 그리고 최근에 번역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레너드 서스킨드, 2018년)까지 그가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출간한 수많은 책들을 살펴보면 숨은 ‘빅 픽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종필의 빅 픽처 안에서 과학 글쓰기와 세상 읽기, 그리고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공부법을 찾아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에 새로 오픈한 과학책방 ‘갈다’에서 이루어졌으며,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일곱 번째 이야기

양자, 한국, 우주를 하나의 ‘빅 픽처’에: 이종필 편 ③



과학자,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법을 찾아 나서


SB : 선생님의 인식론적, 학문적 빅 픽처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주제를 바꿔서 한국 정세는 어떻게 보고 계세요? 선생님께서는 90학번이시니까 1987년 민주 항쟁, 문민화의 과정 거쳐서 이렇게 30년 역사에서 많은 걸 보셨잖아요. 꾸준히 관심을 가져오셨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 변화의 빅 픽처도 한번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이종필 : 제가 옛날에 학생 운동을 했고 30대 초중반에는 《오마이뉴스》에 몇 년 동안 시사 평론 기사도 많이 썼습니다. 한국 사회에 관심도 많았어요. 그래서 이런 걸 모아서 『과학자가 나라를 걱정합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고. (웃음)

 

SB : 「유유상종」에서 굉장히 열심히 광고하고 계시잖아요. (웃음)


이종필 : 네.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지금 일단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있지요. 과학의 역사도 보면 20세기가 시작될 때 양자 역학 나오면서 미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기존의 우리 언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걸 절감을 했어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규칙의 필요성을 과학자들부터 느끼기 시작했고요. 서스킨드는 『블랙홀 전쟁』에서 ‘재배선(rewire)’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생각의 회로를 완전히 다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지요.

 

비슷한 현상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 건데, 이후 역사를 보면 분단, 내전, 군사 독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잖아요. 앞으로 펼쳐질 세상, 그러니까 분단이 된 두 나라가 평화 체제로 존재한다는 건 대한민국 역사에 없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거라고 저는 보거든요. 이때는 기존의 문법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기존의 문법에는 없던 세상이니까요. 새로운 문법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기존에 있던 분단과 냉전의 논리로 지금을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SB :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이종필 : 네.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지요. 준비가 안 된 채 새로운 평형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걸 제일 잘 했던 게 과학이거든요. 새로운 게 나타났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고 그걸로 다시 세상을 설명하는 일을 제일 잘 했던 게 과학이니까 저는 과학이 지금 이런 시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오마이뉴스》에 시사 평론을 쓰면서 2007년 대선 때부터 주장했던 게 있어요. 2007년이면 민주주의가 이미 형식적으로는 완성된 때였거든요.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가치가 무엇이냐 이런 고민들이 많이 나왔어요. 저는 그때 우리가 이제는 정말 문명 국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 계기가 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와인버그의 『최종 이론의 꿈』을 번역한 일이었어요.

 

SB : 그렇지요.

 

이종필 : 그때 제가 『최종 이론의 꿈』을 번역하면서 와인버그가 문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서양 문명을 이끌어 온 과학의 프론티어에 있는 사람의  ‘이 문명이 어떠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해야 한다.’라는 고민이 암묵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비슷한 고민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쳤으면 이제는 진정한 문명 국가를 이뤄야 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도 그런 식으로 글을 썼고, 여전히 그게 유효하지 않는가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고요.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제 북한을 문명 국가로 만들겠다는 얘기를 했지요. 그래서 저는 김정은 위원장이 제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SB : 네. 선생님의 숨은 독자일지도 몰라요. SNS 유저 중에 아이피를 확인해 보시면 알 수 있을지도요. (웃음)

 

이종필 : 어쨌든 문명 국가, 구체적으로는 뭐랄까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야만적인 요소들을 다 제거를 하고 ‘최소한의 자기 완결성’, 또는 ‘내적 완결성’이 있는 국가로 바뀌어야 할 겁니다. 최소한의 자기 완결성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치거든요. 민주주의도 흉내 내는 수준이었고, 학문 영역도 마찬가지죠.

 


SB : 얼마 전에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고객들한테 보낸 편지에서 ‘항상 보다 더 높은 표준을 추구한다.’라고 썼더라고요. 지금의 표준보다 한 단계 높은 걸 추구를 해야 모든 사람들이 더 윤리적으로, 더 완성도 있게, 더 디테일하게 일할 수 있다는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선생님 주장이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이종필 :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가 우월함이에요. 그런데 제가 얘기했던 문명 사회는 우월함보다는 단지 보통 국가 수준은 이제 좀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미에서 한 얘기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명 사회가 뭐냐면 자신과 주변에 대한 독자적인 통찰력 있는 사회에요. 통찰력 있고 그걸로 최소한의 자기 완결성을 구축한 사회라고 봐요. 우리는 그게 없거든요.


우리가 주체적으로 주변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외교, 4강 외교를 보면서 이제야 우리가 외교를 한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주변을 대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게 문명이 아니라는 거예요. 문명은 최소한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었다는 거지요. 


다소 세속적인 물음입니다만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고 있을까요? 이제 우리도 학문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적이 없다는 데 있어요. 노벨상은 거기에 상을 주는 거잖아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껏 다른 선진국의 눈으로 지금까지 세상을 봐 왔던 거지요. 우리의 통찰이 없던 거예요. 우리의 통찰. 그걸 지금 길러나가야 된다는 의미에서 저는 문명 국가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마침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새로운 질서로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쪽으로 작용할 거라고 기대감이 있지요. 여전히 과학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고.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적이 없다는 데 있어요.”


 

「물리의 정석」 열풍에 대하여


SB : 역시 선생님의 빅 픽처는 재미있어요.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갈게요. 일단 오늘 인터뷰와 강연 주제가 새로 나온 책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인데 출간 직후부터 반응이 뜨겁잖아요. 대중서를 가장했지만 수식이 가득한 어려운 교과서인데.


이종필 : 제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요. 수학으로 ‘떡칠’한 책이라고요.


SB : 그렇지요. 1편인 「고전 역학 편」도 그렇고 「물리의 정석」 시리즈가 각광을 받는 현상에 대해 선생님께서 진단을 내리신다면?


이종필 : 사실 저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입니다. 번역자가 좋아서가 아닐까요? (웃음)


SB : 그게 큰 이유겠지요.


이종필 : 제 나름 열과 성을 다해서 번역을 했습니다만 역시 원저자가 훌륭한 분이기 때문이겠죠. 대가가 보는 시선은 확실히 달라요. 같은 걸 다르게 보거든요. 그래서 저도 번역하면서 많이 배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오리진(origin)’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이게 근본적으로 뭔가?” 아까 얘기했던 문명 사회와 연결되는 거라고 보거든요. 우리의 오리지널리티. 내가 직접 오리진을 접하고 싶은 욕구가 문명 사회의 동력이라고 보는데 그것 이제 굉장히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거죠. 그런 것이 이런 식으로 표출이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공부법 전격 공개!


SB : 선생님께서는 양자 역학이 인간 지성의 ‘최종 병기’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만큼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겠죠.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양자 역학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공부법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종필 : 양자 역학 참 어렵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부생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학문인데 이걸 직접 한번 대면해 보고 싶다, 뭔지 한번 보고 싶다는 욕망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 책은 학부 과정의 정통 교과서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내적 완결성이 있는 책이거든요.


이 책에서 쓰이는 수학이 선형 대수학입니다. 쉽게 말해 행렬을 다루는 수학. 선형 대수학을 다루는 국내 교양서도 꽤 쉽게 접할 수 있어요. 그런 걸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참고하면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양자 역학 수업을 들은 사람이 이 책을 보면 아마 또 다른 면을 보게 될 거예요.


이 책에서는 ‘얽힘(entanglement)’에 대한 챕터가 2개나 있어요. 전체 본문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분량이죠. 그런데 보통 학부 과정에서 가르치는 양자 역학 교과서는 얽힘을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지 않아요. 얽힘을 포함해 주제마다 서스킨드 특유의 관점으로 양자 역학의 새로운 규칙과 개념 들을 소개하고 양자 역학이라는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게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공부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추천해 드립니다. 양자 역학을 아예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합니다. 서스킨드가 준비해 놓은 완전히 새로운 수학 코스, 그러니까 앞서 말한 선형 대수학 코스를 착실하게 따라가서 양자 역학을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양자 역학의 새로운 규칙들로 이런 것들이 있다 치고 접근을 하는 방식인데,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분들께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자 역학만의 기초 논리와 실험, 수학으로 무장했다. 처음부터 이 코스를 충실히 따라 양자 역학에 도전할 수 있다.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에서. ⓒ ㈜사이언스북스


SB : 다른 방법은요?


이종필 : 두 번째 방법은 양자 역학을 수학이 아닌 텍스트로만 접해 오신 분들께 추천해 드리는 방법입니다. 아마 양자 역학의 신세계를 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이 완전한 교과서 양식은 아닌 만큼 가장 쉬운 양자 역학 교과서를 구해서 참고해 보세요. 다 마스터할 필요는 없고요. 왜냐하면 교과서들은 양자 역학의 A to Z를 담고 있는데, 이 책이 그렇게 자세하고 방대하게 양자 역학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책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책과 기존 교과서를 같이 비교해 가며 보면 서로 상보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싶어요.


SB : 두 가지 공부법이 있는 거네요.


이종필 : 그렇죠. 양자 역학 규칙들과 선형 대수학을 익혀서 서스킨드가 준비한 방식대로 공부하는 방법, 그리고 기존 양자 역학 교과서를 참고하면서 두 책을 상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이종필만의 글쓰기 절대 원칙


SB : 그럼 마지막 질문 드리죠. 16종의 책을 낸 다작 작가시기도 하니까 나름의 글쓰기 법칙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후배 과학자들이 많은데 비결을 한번 공개해 주시겠어요?


이종필 : 제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에 일본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가 있어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 ‘적나라함’이 느껴져요. 전부 파헤쳐서 하나하나 다 보여 주는, 그런 적나라한 글쓰기가 과학에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과학책을 쓸 때 적나라하게 쓰려고 하거든요.


“적나라한 글쓰기가 과학에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과학책을 쓸 때 적나라하게 쓰려고 하거든요.” ⓒ ㈜사이언스북스


SB : 흥미로운 얘기네요. 후배 과학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들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물리의 정석: 특수 상대성 이론과 고전 장론 편』이 나오면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죠. 저희 「과학+책+수다」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종필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 연세 대학교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재직했다. 현재 건국 대학교 상허 교양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물리학 클래식』,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신의 입자를 찾아서』 등이 있고, 번역서로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최종 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등이 있다.



◆ 관련 도서 ◆



『물리의 정석: 양자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도서정보]


『물리학 클래식』 [도서정보]


『블랙홀 전쟁』 [도서정보]


『최종 이론의 꿈』 [도서정보]




◆ 관련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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