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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과학, 미래의 의학> 3강 스케치 본문

완결된 연재/(完) KAIST 명강 5 스케치

<몸의 과학, 미래의 의학> 3강 스케치

Editor! 2018. 10. 10. 14:21

한국 과학 기술의 요람 KAIST의 대표 교수진을 모시고 이 시대의 첨단 과학 교양을 배우는 ‘KAIST 명강’ 다섯 번째! ‘몸의 과학, 미래의 의학’이란 주제로 최신 의과학의 연구 성과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세 교수님의 세 차례 강의 내용은 모두 엮어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2018년 10월 1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면역 항암’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혼조 다스쿠와 제임스 엘리슨인데요. 이들은 암 세포가 우리 몸의 면역 세포를 무력화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에 맞설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기존 표적 항암을 넘어 면역 항암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발표 이틀 전인 9월 29일에는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님께서 카이스트 명강 5 마지막 강의를 해 주셨는데요. 흥미롭게도 ‘면역’을 주제로 한 가장 시의적절한 강의였습니다. 이번 세 번째 시간에서 면역의 역사를 포함한 면역학의 모든 것, 특히 면역 항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메르스부터 암까지, 면역과 질병

─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1교시: 전쟁과 화해

면역(免疫).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역병을 면한다.’는 뜻입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에서부터 이미 면역의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페스트에 걸린 사람은 두 번 다시 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18세기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천연두에 비해 증상이 경미한 우두(牛痘, 소의 천연두)를 앓은 사람은 천연두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인위적으로 우두를 앓게 함으로써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인 종두법을 개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백신’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20세기에 들어 면역학은 혈청(血淸)과 그 속에 존재하는 항체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합니다. 특히 19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는 항체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항체(抗體, antibody)란 바이러스, 세균과 같은 항원을 비활성화, 또는 중화해 질병을 막아 주는 단백질의 한 종류입니다. 한 번 침입한 항원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면, 다시 같은 항원이 침입했을 때 빠르게 항체를 생산해 내는 것이 면역의 원리가 되겠지요.


항체의 면역 작용에는 네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특정한 항체는 특정한 항원에만 반응한다는 ‘특이성’, 그래서 항체는 한 가지가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는 ‘다양성’, 한 번 만들어진 항체 정보는 저장된다는, 면역 작용의 핵심이 되는 ‘기억’, 그리고 타인을 포함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나와 남의 구분(self-nonself discrimination)’이 그 네 가지입니다.




사실 면역학 연구로 1908년에 에를리히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 메치니코프(Élie Metchnikoff)입니다. 메치니코프는 항체와 별도로 균을 직접 먹어 치우는 ‘대식 세포’ 연구를 통해 면역을 이해하려 했는데요. 학문적 언쟁으로 에를리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메치니코프에게는 아쉽게도 지난 한 세기 동안 대세는 항체였습니다.


그러다가 ‘수지상 세포’ 연구로 세 과학자가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메치니코프의 연구가 재조명받습니다. 수지상 세포의 역할은 항원을 ‘잡아먹어서’ 림프절의 면역 세포에게 항원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면역 반응이 시작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 세포의 존재는 면역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항체뿐만 아니라 대식 세포도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메니치코프가 직접 관찰해 그린 수지상 세포의 모습. 잡아먹힌 항원을 빨갛게 그려 놓았다.


우리 몸과 질병 사이, 그리고 면역 연구의 두 학파 사이의 ‘전쟁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 잘 들으셨나요? 2교시에서는 현대 의학이 이끌어온 면역학의 오늘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교시: 면역

① 면역 세포들의 드라마

면역 반응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그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항원을 직접 먹어 치우는 대식 세포가 있는가 하면,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끈끈한 DNA 그물을 쏘아 적을 결박하는 호중구, 감염된 세포를 무자비하게 단칼에 죽이는 킬러 T 세포, 항체라는 총알을 쏘아 적을 무력화하는 저격수 B 세포, 순찰을 돌며 적의 침입을 빠르게 다른 면역 세포들에게 알리는 수지상 세포 등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호중구가 항원을 결박하는 모습.


② 바이러스의 반격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질병이란 게 별 게 아닌 듯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계속해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급속도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에볼라, 남미의 지카, 그리고 우리나라의 메르스와 같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의 공포를 다들 기억하시죠? 바이러스는 항원을 끊임없이 변형시킴으로써 우리의 기존 항체가 무용지물이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면역의 공격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또한 HIV, 즉 에이즈 바이러스처럼 아예 면역 시스템 자체를 공격해 무너뜨리는 바이러스도 있죠.


③ 바이러스에 대한 인류 최고의 무기, 백신

백신이 상용화된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이러스 저항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백신 접종을 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 전체의 저항력도 올라가는 ‘집단 면역’ 효과도 발휘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손으로 완전히 박멸된 천연두를 포함해 폴리오, 홍역, 풍진, 이하선염 등의 바이러스 감염률은 한 세대 만에 급감했습니다.



④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주제, 면역 항암

하지만 어떤 질병은 여전히 정복되지 못하고 있죠. 대표적 예로 암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몸은 암 세포 또한 ‘종양 항원’이라 부르는 ‘남’으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왜 면역 세포들이 이 종양 항원에 반응하지 않는 걸까요?


비밀은 종양 항원이 갖고 있는 PD-L1이라는 작은 돌기 구조에 있습니다. 이것은 킬러 T 세포의 PD-1과 만나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쪽으로부터 항원과 항체의 관계에 따른 공격 명령을,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부터 PD-L1의 ‘공격 중지’ 명령을 동시에 받는 T 세포는 결국 종양 항원의 침입과 증식을 방치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면역 작용의 가속 패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게 되는 셈이죠.


T 세포(아래)의 면역 기능을 무력화하는 암 세포(위)의 모습.


따라서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으로 암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 PD-L1의 기능을 무력화해야합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바로 이 면역 항암 연구자들에게 주어졌지요. 2명의 수상자 혼조 다스쿠와 제임스 엘리슨은 T 세포의 PD-1을 대신해 PD-L1와 결합할 수 있는 ‘anti-PD-1’을 만들어 면역 세포가 암 세포에 제대로 저항하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앞으로의 발전을 더 기대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면역학 전반을 다뤄야 했던 본 강의가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신의철 교수님께 면역 항암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면역 항암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일본 과학자 혼조 다스쿠 교수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오가기도 했죠. 면역 항암에 대한 못 다한 이야기는 추후 「카이스트 명강 5」의 세 교수님을 모시고 나눌 정담(鼎談), 그리고 내년에 책으로 출간될 『몸의 과학, 미래의 의학』을 통해 여러분께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신의철

연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생물학 및 면역학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립 보건 연구원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2007년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 백신 학회 및 대한 바이러스 학회의 학술 이사를 지냈고, 2016년 대한간학회가 주는 GSK학술상 및 2017년 대한바이러스학회가 주는 한탄상을 수상하였다.



◆ 관련 도서 ◆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도서정보]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도서정보]


『세상 모든 비밀을 푸는 수학』 [도서정보]


『양자 정보학 강의』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