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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대담 (2) 최종 이론은 꿈인가?! <최종 이론의 꿈> vs. <최종 이론은 없다> 본문

완결된 연재/(完) 책 대 책

'책 대 책' 대담 (2) 최종 이론은 꿈인가?! <최종 이론의 꿈> vs. <최종 이론은 없다>

Editor! 2011.11.01 11:47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두 번째 대담회가 지난 10월 18일(화) 저녁 7시 강남출판문화센터 민음사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최근 지적 설계론과 호킹의 모형 의존적 실재론이 화제가 되면서 ‘왜’ 우리 우주의 법칙들은 이런 특정한 형태일까에 대한 물음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주의 모든 법칙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최종 이론, 모든 물리학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개념이 여전히 중요성을 지니게 됩니다. 

최종 이론의 진정한 뜻은 무엇이며 우리는 최종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선명하게 알아보기 위해 이번 대담회에서는 최종 이론을 과학 논픽션계에 처음으로 소개한 저자이자 ‘현대 물리학의 교황’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 이론의 꿈』과 우주는 비대칭이고 최종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현대 우주론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마르셀로 글레이서의『최종 이론은 없다』, 이 두 권의 책을 선정하였습니다. 



이강영 건국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님께서 『최종 이론의 꿈』을,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님께서 『최종 이론은 없다』를 맡아 지난 1일 서평을 써 주셨고 각 책을 대변하는 대담자로 나서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이기진 교수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대담에 참석 못하시게 되어 한국천문연구원 이명현 교수님께서 사회자와『최종 이론은 없다』 측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동시에 맡는 구성으로 대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제반 사정과 대담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저자 스티븐 와인버그에 대한 설명으로 대담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 그럼 먼저 책의 저자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최종 이론의 꿈』을 쓰신 와인버그라고 하는 분이 어떤 분이고 왜 책을 쓰셨는지 잠깐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와인버그는 1960년대부터 활약하시기 시작한, 파인만은 다들 친숙하시죠? 파인만보다 10살쯤 아래인 물리학자입니다. 1960년대에 양자장이론은 주류가 아니었는데, 이 와인버그가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이 섞여 있는 최종적인 형태를 완성했습니다. 형태 자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모형의 이론 구조와 거의 똑같으니 표준모형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이 이론이 양자역학적으로 옳음이 증명되었고, 와인버그는 그 공로로 1979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입자물리 지식에서 가장 핵심 부분을 만들었고 중요한 기여를 한 물리학자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큰 대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이명현 박사님께서 최종 이론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최종 이론이란 꿈을 꿀 수 있게 한 배경이자 인류의 큰 업적인 표준모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셨습니다.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물리학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물질 세상에 대한 이론을 따지는 학문이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따지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세상의 근원. 즉 근본 구조가 뭐냐 또는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느냐. 그런 새롭고 더 깊은 것을 찾는 것이 옛날부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현대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초에 영국의 돌턴이 이야기한 원자론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있지만 유한한 기본 원자들의 결합으로 그 모두를 설명 가능하다. 이것이 원자론의 핵심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이제 그 원자의 구조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자 안에는 핵과 전자가 있었습니다. 그럼 핵은 어떨까요. 핵에도 다시 깊은 구조가 있었고 양성자나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양성자와 중성자 들의 성질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많은 입자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많은 입자와 상호작용 방식을 정리하고 연구한 결과 1970년대 초반이 되면 혼란스러운 입자들 속에서 핵처럼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입자들은 쿼크라는 입자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강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입자들은 전자와 같은 성질을 지니는 입자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는 전자기적인 상호작용과 핵을 뭉치게 하는 강한 상호작용, 또 다른 약한 상호작용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이론으로 체계를 세운 것이 표준모형입니다. 체계가 다 만들어진 것은 대략 1970년대 중반이 되겠습니다. 

현재 입자물리학에서 표준모형이 모든 것의 끝이냐, 완전한 이론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표준모형 가지고는 이론적으로 부족한 면도 많고 중력을 설명하지 못한다든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든가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근본적인 이론을 찾는 것이 입자물리학자들이 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와인버그가 이야기하는 최종 이론이 그 ‘좀 더 근본적인 이론’인가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와인버그 같은 입자물리학자들은 계속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론에 분명한 방향성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방향성이 언제까지나 그런 식으로 또 하부구조가 나타날 것이냐? 그렇지 않고 무언가 정말로 근본적인 요소가 있어서 그 요소가 이제 모든 이론을 설명하는 근본이 되고 어디서인가 그 화살표가 멈출 것이라는 뜻으로 와인버그는 최종 이론을 이야기합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어떤 사람들은 만물이론이란 말도 쓰고 통일장이론이란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서로 혼재되어서 쓰이기도 조금 다르게 쓰이기도 하는데 조금 정리를 하시고 넘어가시죠.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와인버그는 최종 이론이란 말을 final theory, 무언가 이론이 끝이 난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만물이론은 theory of everything, 모든 것의 이론이란 뜻으로 쓰는데 사실 비슷한 것을 지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하면 그것만 알면 모든 것을 다 거기서 연역해 낼 수 있을 듯이 들립니다. final theory는 반드시 그런 뜻은 아닙니다. 최종 이론을 안다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을 연역할 수 있다. 와인버그는 반드시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구요. 대통일이론이라는 말도 고유명사인데 grand unified theory라는 말을 번역한 말입니다. 그 말은 아주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힘, 전자기력과 핵을 만드는 강한 상호작용과 그 핵 안에서 작용하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이론으로 만드는 것을 대통일 이론이라고 합니다. 아무것이나 다 통일한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은 그렇게 구별하도록 하죠.

최종 이론이라는 개념에 대한 간단한 정의가 끝나자,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나온 최종 이론에 대한 두 가지 비판을 언급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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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여기서 두 가지 비판을 해 볼 수 있는데요. 하나. 그러한 논리들이 결국은 어떤 작은 것으로 환원된다는 환원주의가 아닌가. 입자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쪽에서 볼 때는 굉장히 불쾌한 이야기일 수 있거든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하고 무언가 뒤에 숨어 있는 일종의 성배를 찾아가는 그런 작업들을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이 행할 수 있느냐.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는 그런 일이 마치 종교의 맹목적 믿음과도 유사하다 라고까지 비판을 하거든요. 이 두 부분에 대해서 입자물리학자는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먼저 두 번째 문제. 하나를 찾는 그것이 일신론 전통에 근거한 게 아니냐. 절반쯤은 그런 면도 있을지 모른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1929년에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거든요. 그러면 논리적으로 과정을 거꾸로 진행시키면 한 점으로 모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이건 뭐 그냥 유추일 뿐이죠. 어쨌든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로부터 우주에 시작이 있을 가능성을 아무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최종 이론이 그런 뜻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화살표가 이렇게 진행되었으니까 그것이 언젠가 가장 기본적인 이론으로 수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뜻이라면 사실 일신론하고 별로 상관은 없거든요. 그냥 논리적인. 있을법한 결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환원에 대해서는..... 물리학의 역사가 그냥 환원의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엄청난 성공을 실제로 거두었구요. 사실은 물리학이 지나치게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물리학의 방법론을 사회과학이나 다른 학문에서 차용해 간 면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기본적인 원리나 요소를 수리적으로 전개하려는 경향이 굉장히 심하죠. 언어학도 마찬가지구요. 20세기에 크게 몰아닥친 학문 경향이라고까지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것이지 물리학에서 환원주의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비판을 받는 일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강영  박사님이 ‘물리학에서는 환원주의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은 없다’라고 단언하시자,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다른 분야의 관점에서 과학적 환원주의를 공격하기보다는 환원주의 자체의 허점을 말씀하시는 식으로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통계물리학이나 요즘 많이 나오는 사회물리학 같은 경우를 보면 집단으로써 움직이는 패턴들이 나오는데 그런 패턴이 더 낮은 하부구조에 있는 원자들의 움직임하고 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인 것은 아닌가. 그런 면에서 환원주의에 대한 저항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서 생명 현상이라든가 다른 현상을 설명할 때 원자들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 속성들이 과연 지금 나타나는 행위나 행태에 바로 반영이 되겠느냐 안되겠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생명이라든가 물성에서 나타나는 성질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실제로 생물학에서도 발전은 그 근본 요소를 물리 법칙으로 다루어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이루어졌습니다. 단정 짓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무언가 더 새로운, 예를 들어 생명의 출현이라든가 아니면 생명체에서 사람이라면 의식의 출현이라든가 이런 것에 뭔가 새로운 게 더 들어온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생명 현상에 원자들의 단순한 모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생명 현상도 결국은 물리학에 기반을 두고 나타난 현상이고 단지 우리가 왜 무생물에서 생명이. 창발이라는 말을 쓰나요? 그렇게 생겨나는 것인지 대한 메커니즘을 ‘아직’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이해하시는 거죠?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제가 조금 부연을 하자면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뒤쪽에 생명 현상에 대한 설명들을 많이 합니다. 생명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환원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더 낮은 단계의 것들을 가지고 즉 원자의 행동을 가지고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다루어서 언뜻 보기에는 좀 이원론적인. 그러니까 생명을 전체적인 물리에서 환원되는 체계에서 좀 떼어서 생각하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물리학자로서는 받아들이기에 좀 거북하시겠지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집어넣는지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 생명체가 움직이는 방식은 굉장히 강한 되먹임이 걸리는 시스템이라고 하면 굉장히 많이 설명됩니다. 물리학으로 도요. 아무튼 복잡한 물리학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새로운 무언가가 더 들어오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 부분에서는 저도 생물학보다는 물리학자에 가까우니까 박사님 말씀처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는데 다른 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합니다. 그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학문적 배경의 한계상 생명과 창발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하기로 하고 멈추고서, 이명현 박사님은 두 번째 비판으로 초점을 돌리셨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강한 논지 중 하나가 제가 질문 드렸던 서양 일신론적인. 여기서 종교적인 망상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생각해 보면 과학자들도 과학이라는 행위를 해 나가지만 결국은 몸뚱어리를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다면, 종교라고 하는 것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의식 구조를 이끌어 온 하나의 패턴이라면 과학자들도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런 논의는 물리학이 아니라 진화생물학 논의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그런 전통은 최종 이론 훨씬 이전에 물리 법칙이라는 개념에서도 등장했었죠. 뭔가 신이 법칙을 정해 놓았고 만물은 그것을 따른다는 식으로요. 뉴턴이 처음 물리 법칙을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 이야기 조금만 더 해보고 싶은데요. 어떤 배경이 되는 믿음이라고 하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상정. 이런 것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없음에도 믿는 체계가 있다면 최종 이론 탐색이 신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과도 통한다고 하는 『최종 이론은 없다』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그것은 최종 이론에 대해서 할 말이 아니라 물리학 이론 자체, 자연과학 법칙이라는 것 자체에 항상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 이론이 있어야 할 근거는 없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근거도 없다고 하는데, 사실 자연법칙이 있어야 할 근거나 증거도 전혀 없습니다. 자연이 하나의 법칙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가장 신비한 일이죠. 아인슈타인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구요. 그래서 그 지적 자체는 의미가 있는데 사실 맞고 틀리고를 논하기가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종 이론에 대한 두 차례의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고 나서,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최종 이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표하셨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제가 항상 궁금하고 헷갈리는 것 중에 하나가 계속 쪼개고 들어가면서 최종 이론이라고 이야기하는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아마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리라고 가정하는 모양새거든요. 아까도 final theory가 theory of everything이 될 수는 없고 그렇게 되는 것들은 따로 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언급을 하셨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최종 이론이라고 하는 것 자체를 최종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도 좀 제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확실히 우리는 최종 이론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과연 우리가 최종 이론을 가졌어도 최종 이론이 최종 이론인지 알아볼 수 있겠느냐? 그것은 맞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초점은 최종 이론이 최종 이론임을 증명 가능한 것이냐로 넘어갔습니다.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물리학자들이 좋은 이론을 판별하는 요건으로 설명하는  ‘아름다움’ 이란 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질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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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사실 입자물리학이라든지 만물이론 최종 이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때는 물리학자들이 아름답다는 단어로 표현을 많이 하거든요. 물리학자들이 어떤 이론이 있다면 굉장히 아름다워야 하고 우주 만물은, 세상은 굉장히 아름다워야 한다는 식으로요. 그 아름답다고 하는 표현이 예술가들이 말하는 미적인 아름다움하고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와인버그의 비유대로라면 아름다운, 좋은 말이란 잘 달리는 말이죠. 잘 달리는 말이라는 건 뭐 다리가 길 수도 있고 어디 근육이 발달할 수도 있고 많은 이론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조마사는 숙달된 경험으로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거지요. 물리학자들이 어떤 이론이 아름답다는 것은 색깔이 예쁘다던가 우리가 예술을 표현할 때 그런 뜻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이론이 잘 작동한다. 그러니까 더 실제와 잘 맞는. 실제의 진실을 담고 있는 그런 이론이라는 뜻으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것과 연관해서 보통 자연에서의 대칭성 같은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대칭이면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자연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단순한 것이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하구요. 복잡한 현상이 있지만 쪼개 가면 결국 단순한 알갱이로 환원된다. 이게 환원주의적인 입장이구요. 그 뒷면에는 항상 단순과 대칭, 단순함이, 수학과의 연관성이 존재한다. 그런 걸 아름답다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을 보면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메릴린 먼로의 점 이야기를 하는데요. 오히려 비대칭인 점을 통해서 메릴린 먼로라는 여배우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발산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사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자연이 단순하고 대칭인 것만이 아니죠. 대칭이 깨어지거나 단순성에서 벗어나는 그런 것들. 자연은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고 대칭적이고 단순하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가 관측하는 것은 항상 비대칭적이고..... 생명의 태동도 굉장히 불완전함 속에서 돌연변이 같은 불완전한 현상을 통해서 나타나고. 그러니까 사실 세상은 비대칭, 불완전, 아름답지 않은 것, 복잡한 것 이런 게 오히려 본성이고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금 아까 말씀드린 와인버그가 아름답다는 것은 이론이 아름답다는 것이고, 방금 말씀하신 것들은 현상이 아름답다는 겁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실 전혀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것이죠. 현상이 아름답다고 하면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아름다움과 오히려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론이 아름답다고 할 때는 기능적인. 굉장히 실용적인 의미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잘 뛰는 말이 아름다운 것이죠. 현상이 아름다운 것은 허리가 날씬하다던가 무언가 다른 관점에서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름답다는 말만 같을 뿐 사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자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현재 물리학계에서 최종 이론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는 초끈이론이 아름답고 우아하다고는 칭송받으면서도 현재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로 공격의 방향을 돌리셨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최근에 『위대한 설계』에서 스티븐 호킹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요. 거기서 초끈이론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이론들 몇 개를 묶어서 M이론이라고 하는 일종의 누더기 이론으로, 여러 가지를 겹쳐서,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통합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데요. 그런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접근법이 아닐까요?

이 질문의 답으로써 이강영 박사님께서는 먼저 초끈이론에 대한 간단한 개괄 후 초끈이론학자들이 가진 아름다움의 개념이 일반인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사람들이 초끈이론을 만들어 연구하다 보니까. 동등한 초끈이론을 다섯 개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됐어요. 곤란하잖아요. 논리적으로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 없는 이론을 여러 개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인버그가 책을 쓸 때까지는 그랬는데 90년대 중반에 위튼이란 사람이 그 이론들이 다 논리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일단 해결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초끈이론을 풀어서 유일한 답이 나와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정확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딱 풀리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그런데 그런 답 자체가 무지무지하게 많았습니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자연과학에 나온 숫자 중에 가장 클 정도로.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10의 수백 승이죠?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예. 10의 500승 정도거든요. 그래서 초끈이론이 정말로 맞았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식으로 최종 이론을 만물이론이라고 부르기는 굉장히 어렵게 됩니다. 아주 많은 가능성이 있어서 우리가 사는 곳은 우연히 그중의 하나일 뿐이죠. 그럼 나머지 답들은 다 뭐냐. 그래서 최종 이론이 무엇이냐 하는 부분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분들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들도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나요? 그 자체를?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그것은 우리 세상에서 물질의 문제인데 그것을 다른 차원의 기하학으로 설명을 하니까 어떤 의미에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요. 기하학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식의 설명이니까.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결국은 또다시 환원으로 돌아왔네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잘 환원되는 것을 사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렇다면 그런 것들 때문에 지금은 이제 초끈이론을 가지고 최종 이론의 꿈을 해결한다는 이런 것들은 포기한 입장인가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아니죠.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지 모른다는 것이 아마 현 상황일 겁니다. 그 수많은 답을 이용해서 우리 세상의 많은 것을 설명하려고도 하고 가능성은 아직 많습니다. 한 예로 레너드 서스킨드란 물리학자가 이름 지은 풍경이란 개념이 있는데 수없이 많은 답이 존재하는 그것을 랜드스케이프, 풍경이라고 썼습니다. 서스킨드는 풍경이 오히려 아주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왜 굳이 그중의 하나에 우리가 살고 있느냐 하는 사실이 우주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굉장히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10의 500승이라는 많은 답이요. 어떻게 그렇게 나왔는지는 사실 전 잘 모르겠지만요.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것은 너무나 긍정적인 해석 아닐까요. 처음에 초끈이론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오니까 단일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많으니까...... 궁여지책으로 갖다 붙이는 말처럼 들릴 수 있잖아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조금이라도 틀리면 생명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빠지는, 우리를 만드는 숫자들이 정확하게 나온다는 것을 거꾸로 풍경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미 우주에는 그만한 충분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그중에 하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다.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예. 그러니까 생명이 존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원래 그렇게 충분히 많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지금 초끈이론에 더는 통일된 것을 찾을 길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사실 갈 곳을 잃은 셈이죠.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초끈이론을 최종 이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요.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다른 후보들이 또 있습니까?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아니죠. 어디로 갈지는 사실 모르지만 대략의 방향.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해서 표준모형. 확립된 이론으로서의 표준모형. 그다음에 표준모형이 갈 수 있는 가능한 몇 가지 방향.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이 있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목적지를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하겠죠.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여전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만 믿는 셈이군요.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예. 적어도 다음 한 걸음으로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명현(최종 이론은 없다/사회자): 여기까지 말한 내용을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최종 이론이란 주제, 환원주의란 주제를 가지고 했는데 같이 맞싸울 상대가 없었고 저도 기본적으로 환원론자에 속하기 때문에..... 과학 바깥에서 과학사나 과학 철학하시는 분과 환원주의라고 하는 입장을 논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저도 사회자로서 다시 두 권을 읽어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흔히 말하는 최종 이론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해서 별로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의문을 갖고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구요. 오늘은 이강영(최종 이론의 꿈)  박사님을 통해서 이론물리학자들, 입자물리학자들. 같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생각에 편차가 있는 것. 또 시대별로도 편차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실 지금은 최종 이론의 꿈이라고 하는 말이 무색하게 좀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대담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수고하셨습니다.모든 물리학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 ‘최종 이론’을 주제로 삼았기에 특히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청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띤 논의가 빛나는 자리였습니다. 게다가 대담이 있기 며칠 전 우주의 가속팽창을 발견한 세 명의 천문학자에게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담자로 나선 두 분과 청중들 모두 대담 중간 중간 암흑에너지나 뉴트리노 등등 관련한 이슈들을 놓고 활기찬 질의응답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최종 이론의 꿈』과 『최종 이론은 없다』 사이에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동안 『최종 이론의 꿈』에서 지지했던 미국의 초거대 충돌기 계획은 폐기되었고 초끈이론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간 다른 모습이 되면서, ‘최종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당위성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론과 논리에 수정이 있을지언정,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젊은 물리학자들이 ‘최종 이론의 꿈’을 쫓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 이처럼 ‘최종 이론’은 시대를 넘어선 생명력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대통일 이론이 많은 청년들을 물리학에 뛰어들게 한 것처럼 지금의 대한민국 젊은이에게도 물리학의 꿈에 빠지게 하는 소재가 앞으로 더욱 많이 등장하기를 기원하며 대담회는 박수 속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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