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읽기의 과학: 책의 시대는 끝났는가? 본문

(연재) 이권우의 독서의 과학

읽기의 과학: 책의 시대는 끝났는가?

Editor! 2026. 5. 19. 13:54

동양 고전에서 최첨단 과학책까지, 전방위로 독서 평론의 영역을 개척해 온 도서 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이 사이언스북스 블로그를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1년간 매달 1편씩 이권우의 독서의 과학이라는 연재 제목으로 책 읽기의 과학적 접근부터 현인들의 지혜가 담긴 독서법, 그리고 인문·사회·과학·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독서의 기술까지 이권우 평론가만의 유일무이한 독서 비법을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이권우의 독서의 과학연재는 향후 특별 연재 원고와 함께 묶어 한 권의 책으로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사이언스북스 독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그럼, 이권우 선생님의 도발적인 첫 번째 질문과 함께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책의 시대는 끝났는가?”


딸깍 출판시대의 책 읽기

 

인공 지능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마치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듯한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을 바쳐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독서 시장은 이미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문 분야 책의 판매가 현격히 떨어졌다. 읽기만이 아니다. 쓰기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대학은 입때껏 해 온 교육과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 교실에서 직접 글을 쓰게 하거나, 제출한 글을 바탕으로 구술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이른바 딸깍 출판으로 불리는 인공 지능에 전적으로 의존해 쓴 책이 나오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정말 인류 사회는 사유의 외주와 창작의 대필이라는 새로운 상황으로 내몰리는 듯싶다. 이런 상황에서 책 읽기의 가치를 말하려면, 인지 과학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을 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전략이다. 과학 기술이 책 읽기의 가치를 뿌리째 흔든다면, 과학의 언어로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힘주어 말할 도리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말 인류 사회는 사유의 외주와 창작의 대필이라는 새로운 상황으로 내몰리는 듯싶다.”

 

 

산만한 인간의 뇌, 어떻게 읽기 시작한 걸까?

 

인지 과학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호모 사피엔스는 유독 책 읽는 능력이 유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 1947~)는 읽기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쯤에야 나타난 비자연적인 문화적 발명인데, ‘진화의 시계에서 읽기는 자정 직전에 일어난 일이라 말한 바 있다. 말하는 능력은 다르다. 일종의 전담 유전자가 있어 타고난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사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책 읽기는 한마디로 집중력을 높인다. 그런데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집중하기보다는 산만한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 1959~)는 우리의 관심이 신속하고 반사적으로 변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이었다고 말한다. 포식자가 갑자기 습격하는 상황에서 집중하는 능력은 외려 생존 능력을 떨어뜨린다. 무언가에 집중하여 주변에 있는 식량을 못 보고 지나치면 생존에 불리하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산만해야만 했다. 천장에 매단 모빌을 쳐다보느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갓난아이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될성싶다.

 

 

호모 사피엔스와 인간. 내면의 산만함은 여전히 중첩되어 있다.

 

 

읽기 능력이 유전되지 않았는데, 인간은 어떻게 읽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학습 능력을 확장해 지구의 지배종이 되었을까? 답은 뇌 가소성(可塑性) 이론(Neuroplasticity theory)’에 있다. 한자 소()에 흙()을 이겨 물건의 형체를 만든다는 뜻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잘못 빚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새롭게 빚을 수 있다. 뇌는 주변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는 성질이 있다. 낯선 체험이나 자극은 뇌 뉴런의 새로운 연결망을 늘리고, 자주 쓰지 않는 연결망은 퇴화시킨다. 니콜라스 카는 이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 두 가지를 소개했다. 에드워드 토브(Edward Taub, 1933~)는 바이올린 연주자 그룹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먼저 연주자가 악기 줄을 누를 때 왼손에서 오는 신호를 처리하는 감각피질 부분을 관찰했다. 다음으로는 악기를 연주해 본 적이 없는 오른손잡이의 같은 피질 부분을 관찰했다. 실험 결과 바이올린 연주자의 해당 뇌 부위가 비음악가 그룹보다 현저하게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행위가 뇌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알바로 파스쿠알레온(Alvaro Pascual-Leone, 1961~)은 피아노를 쳐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모아 단순한 음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다음 닷새 동안 한 그룹은 키보드로 멜로디를 연습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연주하는 상상만 하도록 했다. 두 그룹의 뇌 활동을 꾸준히 기록한 결과 피아노를 치는 상상만 했던 그룹도 실제로 피아노를 친 그룹과 같은 종류의 뇌 변화가 관찰되었다. “반복적인 신체 행동만이 아니다. 정신적 활동 역시 신경 회로를 더 광범위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

 

 

악기 연주와 같은 반복적인 자극이 뇌의 감각피질 영역에 물리적 변화를 준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에드워드 토브. 위키피디아에서.

 

 

진화학자 장대익(1971~)은 독서는 뇌에 큰 부담을 준다고 명토 박는다. 텍스트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전수하려면 뇌에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독서가 인류의 보편적 행위로 발전한 것은 그 비용보다 이득이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인간의 문화적 과학 기술적 성취가 오로지 구전으로만 전수되었다면, 문명의 축적은 불가능했을 터다. 읽지 않는 뇌는 읽는 뇌로 변화해야 했다. 문자가 발명되고 글을 쓰고 책으로 엮어 나오고 교육하면서 비로소 인류는 문명을 일으켰다. 비록 읽지 않는 뇌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읽는 뇌가 되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매리언 울프는 시각과 언어 같은 타고난 기능을 넘어 읽기와 셈하기 같은 완전한 미지의 능력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뇌의 놀라운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뇌는 오래된 기본 구조를 연결하고 다른 목적에 맞게 고치기도 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책 읽는 뇌로 변화하는 과정은 뇌 가소성 이론을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니콜라스 카는 책 읽는 뇌가 되려면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에서 말한 변하는 세상 속 정적인 지점이라고 부르는 곳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본능적인 산만함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신경 연결망을 구축하거나 강화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의 심리학 연구원인 본 벨(Vaughan Bell, 1973~)비교적 방해받지 않고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정신 발전 역사에 있어 불가사의하면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책 읽는 뇌가 탄생하면서 인류는 매리언 울프의 말대로 뇌의 배선을 바꾸었으며, 그와 더불어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니콜라스 카의 말대로 사색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을 갖게 되었다.”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郎, 1962~)는 우리 뇌는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누리고 깊이 감동하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를 강화하는 신경 회로가 강화되고 이른바 ()파민분비로 책 읽는 습관을 형성한다고 했다. 이를 강화 학습이라 부르는데, 이 회로는 자주 쓸수록 강화되게 마련이다. 인상 깊은 것은 강화 학습을 반복해서 뇌에 자극을 주면 뇌의 용량이 확장되는데, 이는 뇌 안에 펼쳐져 있는 도로의 흐름이 원활해진다는 뜻이다. 읽는 뇌의 탄생은 호모 사피엔스만의 놀라운 후성적 성취인 셈이다.

 

문자를 읽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매리언 울프가 흥미롭게 보여 준다. 한 단어를 읽을 적마다 뇌에서는 다중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세 무대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삼중 서커스 같다고 했다. 매리언 울프는 트랙스(tracks)’라는 단어를 읽을 때 뇌에서 벌어지는 황홀한 서커스를 재현한다. 그러고 나서 읽기 회로는 뇌의 좌우 반구 안에 있는 네 개의 엽(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과 뇌의 다섯 개 층(가장 위의 전뇌, 그 아래 양옆에 붙어 있는 간뇌, 중간층의 중뇌, 그 아래쪽의 후뇌와 수뇌)을 통해 들어오는 입력값을 수용한다고 정리한다. 단어 하나를 읽을 때마다 수천, 수만 개의 뉴런 작업군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한 단어만으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어렵고 두꺼운 책, 지금 당장 펼쳐야 하는 이유

 

가와시마 류타(川島隆太, 1959~)는 독서할 때 사용되는 뇌 영역으로 세 군데를 지목했다. 첫 번째는 배외측 전전두엽. 이곳은 뇌의 앞부분 가운데 측면 영역인데, 생각하거나 배우거나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활동하는 영역인지라 사고하는 뇌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후두엽. 뇌 뒤쪽에 있는데, 주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측두엽 하현. 뇌 뒤쪽 아래 영역인데, 어휘를 비롯한 기억을 저장한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 의과 대학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 프랑스 파리 사클레 대학교 등 국제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가 독서하는 동안 전두엽과 측두엽 간의 네트워크가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36명에게 뇌 전극을 삽입하고 일반 문장, 재버워키(jabberwocky) 문장(신조어나 합성어가 많이 나온 문장), 단어만 나열된 문장을 읽도록 했다. 그 결과 문장을 읽는 동안 서로 다른 뇌 부위 간의 연결이 활발해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더불어 문장이 복잡할수록 전두엽에서 측두엽으로 보내는 네트워크가 활성화한다는 점, 새로운 단어를 이해하려고 할 때 측두엽에서 전두엽으로 보내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밝혔다. 연구진은 독서가 이해력과 언어 능력 등 뇌 기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이유는 여러 뇌 신경 회로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와시마 류타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독서와 뇌의 상관성을 밝혔다. 그는 먼저 전전두엽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첫 번째는 전전두엽의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발달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사고하는 뇌마음의 뇌를 조금씩 키워나가는 법이다. 두 번째는 나이가 들면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뇌도 우리 몸의 장기와 다를 바 없다. 특기할 점은 뇌 기능의 저하를 본인이 잘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나이 든 사람일수록 완고한 성격을 띠게 된다.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거나 인내하는 힘도 떨어져 쉽게 화를 낸다. 새로운 지식 습득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와시마 류타는 증상이 중도에서 중증도까지 진행된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짧은 글을 음독하거나 간단한 단어를 일주일에 닷새씩 소리 내어 읽어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환자의 인지 기능이 향상되었는데, 증상의 진행이 멈춘 정도가 아니라 인지 기능이 오히려 회복되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건강한 사람이든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든 똑같이 뇌의 인지 기능이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두 연구는 기존의 어떤 약물도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을 개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뇌의 기능, 최소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독서의 가치를 재확인해 준다.

 

 

단 한 단어만으로도 우리 뇌에서는 다중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작업이 이루어진다.

 

 

인지 과학적 관점에서 책 읽는 뇌의 탄생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어떤 이익을 안겨 주었을까? 장대익은 인간의 뇌는 깊고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보는 작업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일은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일어나는데, 일반적인 작업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는 탓이다. 없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다르게 보며 옛것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은 느린 과정일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느린 인지 과정을 거쳐 나오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독서가 이 느린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라는 점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천천히 읽으며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 말은 어떤 근거를 두고 있는지, 그 근거는 믿을 만한지 등속을 살피며 읽는다. 책을 읽고 나서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하지만, 전면적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문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주인공이 겪는 일이 환기한 자신의 경험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그려 보기도 한다.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느린 읽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성찰과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

 

당연히 영화나 게임 같은 것을 보거나 할 때도 몰입한다. 어떤 면에서는 책 읽기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깊이 몰입하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영상 매체는 주로 뇌의 시각피질만 활용한다. 책을 읽어 몰입하게 되면 뇌 전체가 활성화하고 활용된다. 뇌 전체가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한 면을 보고 기존에 연결하지 않았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말이다. 가와시마 류타도 같은 생각이다. 새로운 발상을 할 적에 사용하는 뇌 영역은 브로카 영역과 측두엽 하현이다. 앞의 것은 배외측 전전두엽 아래에 있는데, 주로 말할 때 활성화한다. 뒤의 것은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창조적인 사고에 관여한다. 흥미롭게도 책을 읽으면 활성화하는 영역에 이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한마디로 독서를 하면 창의력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 지능에 맞설 수는 없더라도, 인공 지능을 잘 활용해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창의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마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인 양 떠벌이지만, 외려 책 읽기가 더 중요해진 까닭이다.

 

 

탈진실과 뇌 썩음

읽지 않는 뇌는 퇴화한다!

 

1897년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뉴욕 저널특파원으로 빅토리아 여왕 재위 50주년 취재를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발병했다는 소문이 나더니 급기야 뉴욕 헤럴드에 사망 기사가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이 비슷한 사촌이 중병에 걸린 것이 와전되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런 일 때문인지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 반 바퀴를 돈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 트웨인이라는 설이 퍼졌다. 사실은 영국 속담이 변형되어 전해진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도 비슷한 말을 했다. “거짓말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뒤따른다.”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1921년 중국의 베이징에 머물며 철학 강연을 했다. 불행히도 폐렴에 걸려 위험한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언론이 러셀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러셀은 일본을 들러 영국으로 귀국했는데, 일본 언론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러셀 씨는 이미 죽은지라 일본 언론과 인터뷰할 수 없다고 응징했다. 한낱 해프닝이지만,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 한 세기도 전부터 거짓 뉴스가 횡행하고 대중이 이를 믿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16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꼽았다. (링크)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이르는 단어다. 영국의 유럽 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와 미국 대통령 선거 환경에서 한 해 전보다 이 단어의 사용 빈도가 무려 2,000퍼센트 급증했다고 한다. 좀 자세히 살피면 20166월 영국에서는 EU 탈퇴(브렉시트, Brexit) 국민 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를 앞두고 EU 탈퇴 지지 단체인 보트 리브(Vote Leave)’영국이 유럽 연합에 매주 35천만 파운드를 낸다.’, ‘터키가 곧 EU에 가입해 이민자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될 것이다.’ 같은 거짓 주장을 널리 퍼트렸다. 많은 팩트 체크가 있었지만 이 허위 조작 정보를 믿은 영국인의 51.9퍼센트가 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같은 해 미국 대선 기간 내내 트럼프는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유세 현장과 소셜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내뱉었는데, 지지자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결국 트럼프는 가짜 뉴스로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선동한 전략 덕에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거짓 정보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으나 SNS 시대에 들어 더 교묘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우리의 뇌를 노리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에 객관적 사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매우 중요해졌다. 매리언 울프는 어떤 매체로든 새로운 정보를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평가하기 위한 자기만의 조타실을 가져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를 위해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책 읽기를 통해 배경지식을 쌓아놓지 못하면,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져 가짜 뉴스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이라고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많은 유추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유추를 사용해 더 많이 추론, 연역, 분석하고 우리의 이전 가정들을 평가할 수 있게 마련이다.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것은 조작적이고 피상적인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예방 접종을 하는 최선의 방법인데 그치지 않는다. 이 같은 사고를 발판으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엿볼 기회가 되어줄 인지적 공간으로 미지의 도약을 감행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장대익은 공감력의 향상이야말로 독서가 뇌에 미치는 가장 가치 있는 영향이라고 말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에게 소설책을 주고 9일에 걸쳐 매일 책의 9분의 1씩 읽게 했다. 연구진은 다음 날 아침에 참가자의 뇌를 관찰했는데, 글의 이해 및 공감과 관련된 뇌의 영역인 좌각회/연상회 부분과 공감, 연민과 같은 사회적 정서 반응 및 기억력을 관장하는 부위인 내측 전전두피질 사이의 연결이 강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또한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체성감각피질과 후두엽의 연결 강도가 강하게 유지되는 것도 관찰되었다. 이는 소설에 나온 주인공의 행동이 실제 뇌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실험도 이어졌다. 연구자가 실수인 척하며 책상에서 볼펜 통을 떨어뜨리고 참가자가 펜 줍는 것을 얼마나 도와주는지 관찰했더니, 등장인물에 공감을 잘 한 사람이 더 많이 도와주었다. 독서는 타인의 생각, 감정, 지식 등을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매리언 울프는 특별한 감정 이입을 통해 타인의 느낌과 상상,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깊이 읽기를 통해 얻는 가장 심오한 혜택이라 말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불안(Status Anxiety)(은행나무, 2011)에서 위대한 실패를 이야기하면서도 조롱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외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장르가 있는데, 그게 바로 비극이라 했다. 주인공은 대체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일시적인 맹목, 그리고 감정적 과실 탓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그 결과로 운의 역전이 일어나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이야기를 보며 관객은 언젠가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맞이하면 자신의 삶도 쉽게 박살나고 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통받는 불행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수치스럽고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된다. 매리언 울프도 비슷한 말을 했다. 공감이란 대다수 인간이 지닌 불가피한 짐을 나누는 경험을 말하는데, 그 짐에는 공포, 불안, 아픔, 사랑의 불확실성, 상실, 배척, 때로는 죽음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이용자의 기호와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을 일러 추천 알고리즘이라 한다. 내가 즐겨보는 콘텐츠의 주제나 소재를 파악해 비슷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추천해 준다. 정말 정보의 바다에 갇혀 무엇을 보아야 하나 모를 적에 내 취향이나 기호에 맞게 무언가를 추천해 주면 여러모로 편하다. 하지만 위험한 면이 있다.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인데, 이는 제한되고 걸러진 정보만 수용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다른 관점, 다른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아는 것만이 객관적 진실이라고 여기기에 십상이다. 확증 편향증이 공고해진다. 실제로 그 탓에 차별과 혐오의 분위기가 더 강해졌고,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매리언 울프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호전적인 형태의 불관용에 이르고 말 것이라 경고한다. 확증 편향증이 일으킨 혐오와 차별, 그리고 대립과 갈등의 세계에서 이해와 배려, 그리고 환대와 포용의 세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 전환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힘이 공감 능력의 확산에 있다. 책을 읽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개인 차원에서만 논의될 수 없는 이유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인 셈이다.

 

2024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링크) 자극적인 쇼트폼(short-form) 콘텐츠를 과잉 소비해 집중력 저하, 문해력 약화 등 지적 퇴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리처드 스틸(Richard Steele, 1672~1729)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효과는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효과와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모기 겐이치로도 같은 주장을 했다. 뇌도 신체의 일부이므로, 뇌를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단련되어 더 효율적으로 기능이 향상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근력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이 감소하는 것처럼 뇌의 기능은 퇴화한다고 했다. 책 읽기를 멀리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퇴화의 과정에 돌입했다. 뇌 가소성 이론을 극단으로 몰아붙인다면, 이러다 인류는 원시인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인생은 뜨겁게(사회평론, 2014)

매리언 울프, 전병근 옮김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2019)

니콜라스 카, 최지향 옮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 2020)

가와시마 류타, 황미숙 옮김 독서의 뇌과학(현대지성, 2024)

모기 겐이치로, 한주희 옮김 뇌과학자는 이렇게 책을 읽습니다(어썸그레이, 2024)

장대익 공감의 반경(바다출판사, 2025)

음모론에 찌든 뇌썩음민주주의 뿌리째 흔든다, 한겨레, 20241230.

진실이 신발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 반을 돈다, 한국경제, 2025311.

탈진실 시대를 낳은 괴물, 단비뉴스, 2025725.

 

 


이권우

도서 평론가. 경희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출판 전문지 출판저널편집장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정리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글쓰기 강연을 업으로 삼고 있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고전 한 책 깊이 읽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죽도록 책만 읽는등의 책을 썼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

과학책 읽기, 이 책으로 시작하라! 가독성과 동시대성을 갖춘 현대 과학의 50가지 이정표

 

살아 보니, 진화

과학과 책을 사랑하는 과학 친구들이 들려주는 진화의 가치

 

책 대 책

뇌과학에서 진화 심리학까지, 과학 고전을 읽는 새로운 시선

 

글쓰기의 감각

현대 과학의 숨결이 닿은 새로운 글쓰기 지침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우리는 왜 과학이 아니라 미신을 믿는가!?

 

과학 수다 1

최고의 과학자들이 펼치는 화려한 입담!

 

과학 수다 2

콘서트의 시대는 가고 수다의 시대가 왔다!

 

과학 수다 3

현대인의 필수 교양, 과학 수다!

 

과학 수다 4

AI에서 중력파, CRISPR까지 최첨단 과학이 던진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