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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사이언스』 번외편 - 그래비티 본문

책 이야기

『할리우드 사이언스』 번외편 - 그래비티

Editor! 2013. 11. 29. 09:00

『할리우드 사이언스』 번외편 『그래비티』


1962년 9월 12일,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 대학교에서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60년대가 가기 전에 달에 갈 것입니다. 달에 가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입니다.”


바로 아폴로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발표였습니다. 그 후로 많은 사람이 달에 가고 우주로 나갔습니다. 언젠가는 인간이 우주로 나가는 일이 대단한 사건이 아닌, 아무렇지 않은 그저그런 일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력이 없는 암흑의 세계, 낯선 그곳, 우주에 인간이 가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일까요? 우주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유일한 수단인 과학 기술적 장비들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SF와 호러, 다큐멘터리,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 현대 과학 기술의 명암을 살핀 사이언스북스 신간 『할리우드 사이언스』를 쓴 저자 김명진이 이 책의 번외편으로 최근 가장 핫한 영화인 『그래비티』에 대한 과학 기술학적 비평을 보내 주셨습니다. 과학 기술학이라는 색다른 시각으로 그래비티』를 감상해 보시지요.(편집자)

* 영화 『그래비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우주로 진출해야 하는가?

  『그래비티』를 통해 살펴본 유인 우주 탐사

글 : 김명진


  영화 깨나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화제다. 2006년에 디스토피아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an』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그래비티 Gravity』(2013)가 바로 그 작품이다. 변변한 극적 갈등구도나 심지어 요약할 만한 스토리라인이랄 만한 것조차 없는 단출한 구성을 가졌음에도, 혁신적 시각효과와 경이적 체험을 앞세운 감독의 ‘뚝심’이 통하면서 장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제법 많지만, 다양한 포맷(2D, 3D, 아이맥스)으로 여러 번 봤다(혹은 볼 계획이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 작품의 내용과 과학적 설정을 둘러싸고 이른바 ‘옥의 티찾기’ ― 다른 할리우드 SF영화를 비평할 때보다는 훨씬 더 보람있을 ― 도 활기를 띄고 있다.1)

  이미 썼듯이, 그래비티』의 줄거리는 간단하기 이를 데 없다. 우주왕복선을 타고 첫 우주비행에 나선 미션 스페셜리스트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록)는 우주복을 입고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선외활동 중에 러시아 위성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파편들의 ‘습격’을 받고 우주 미아가 되고 만다. 선외 추진장치를 장착하고 있던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다행히 그녀를 구하지만, 그들이 타고 온 우주왕복선은 파편에 맞아 파괴됐고 승무원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들은 인근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지만, 그 와중에 코왈스키는 실종되고 스톤 혼자만이 남는다. 스톤은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중국이 건설중인 우주정거장 톈궁으로 가서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시작한다.

  제대로 된 대사가 있는 등장인물 단 두 명에 그나마 한 명은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사라져 버리고 나머지 한 명이 죽도록 고생하는 이 우주 ‘재난’영화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혹자는 과연 그런 메시지가 있기는 한지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들은 같은 영화 속에서도 서로 다른 메시지를 읽어 내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을 보면서 우주여행의 스릴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다른 어떤 사람은 텅빈 우주공간의 공허함과 공포를 느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은 우주로 진출해야 하는가?(Do humans belong in space?)’라는 고색창연한 질문이 절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2)

  20세기 초에 하나의 집단으로 등장해 줄곧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온 우주여행 지지자(space enthusiast)들은 지난 백여년 동안 이 질문에 대해 열광적인 ‘예스’로 답해 왔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은 답답하고 좁은 지구 위에 붙어 살도록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저 넓은 우주공간으로 퍼져나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이다. 인류의 ‘발상지’는 지구지만, 인류가 결국 향해야 할 곳은 그 바깥에 존재하는 우주라는 것이다. 때로 그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 정신을 인간의 본능으로 그려내며 우주여행을 정당화하기도 했고, 거대 운석의 충돌과 같은 궤멸적 상황이 지구에 일어날 때를 대비해 우주공간으로의 진출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들은 1920년대부터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에서 우주여행협회, 행성간여행협회 같은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고(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개발의 선구자들은 모두 이런 단체의 회원들이었다), 그 속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 줄 액체로켓 실험에 매진했다. 


잡지 『콜리어스 Collier's』 1952년 3월 22일자 기사에 실린 우주정거장의 상상도

(출전: http://farm9.staticflickr.com/8019/7175315437_0cb5159711_o.jpg)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은 앞으로 인간이 우주로 진출하게 될 때 밟아야 할 수순까지도 상세하게 정해 놓았다. 그들에 따르면 유인 우주여행은 다음과 같은 여섯 단계를 거쳐야 했다. ① 사람들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거대한 로켓 우주선을 건조한다 ② 우주로 진출한 후 우주정거장을 건설해 그곳에서 지구를 넘어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을 조립한다 ③ 달과 인근 행성(금성, 화성)으로 원정을 떠난다 ④ 달과 인근 행성에 영구 기지와 정착지(colony)를 건설한다 ⑤ 더 외부에 있는 행성(목성, 토성...)과 그 위성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⑥ 궁극적으로는 태양계 바깥의 지적 생물체와 접촉한다.

  당대의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일견 허무맹랑해 보였던 이러한 비전은 냉전기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처음에는 장거리 미사일 경쟁, 뒤이어 우주탐사 경쟁이 촉발되면서 일대 도약을 이루게 되었다. 우주여행 지지자들의 비전은 미국의 국립항공우주국(NASA) 같은 공식 기구들의 중장기 비전으로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고, 실제로 NASA는 1960년대 이후 우주탐사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②와 ③의 순서를 바꾼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 이는 1960년대 말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케네디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불가피했다 ― 거대한 로켓 우주선(새턴 5호), 달 유인탐사(아폴로 계획), 우주정거장 건설(국제우주정거장)에 이르기까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3)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지난 50여년간 진행된 유인 우주탐사의 ‘실제’ 경험 ―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물질적 수단도, 우주공간에 대한 경험도 없었던 1930년대의 공상적 비전이 아니라 ― 은 우주여행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인간은 우주로 진출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답할 수 있는가? 지난 50여년간의 경험은 우리에게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알려주었다. 우선 유인 우주탐사는 로봇이나 무인 우주선을 이용한 탐사에 비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면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폴로 계획에는 250억 달러(현재 화폐가치로 1,350억 달러), 우주왕복선 계획에는 도합 1,700억 달러,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는 (애초 예상했던 규모보다 크게 축소됐음에도) 720억 달러가 들어갔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화성 유인탐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는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유인 우주탐사에는 미래가 없다. 설사 수천억에서 수조 달러를 들여 화성 유인탐사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 추가적인 탐사 목표로 삼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며(금성은 내려앉을 수조차 없는 섭씨 400도의 가마솥으로 밝혀졌고, 목성과 토성은 너무 멀다), 달이나 우주공간에 영구 정착지를 건설한다는 계획 역시 비용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얼마나 현실성을 갖는가를 떠나 과연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우주왕복선과 특히 우주정거장에서의 장기 체류 경험 결과 지구 바깥의 우주공간은 인간에게 다양한 위험을 야기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비티』가 약간은 과장되게 그려내고 있는 우주 파편 내지 미세운석의 위협 외에도, 장기간의 무중력 상태가 사람의 뼈와 골격을 약하게 만드는 문제나 태양에서 오는 우주선(cosmic ray)이 인체 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할 가능성 등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이는 인간의 영구적 우주 체류는 말할 것도 없고,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 유인탐사까지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 장애물들이다.4)

  결국 우주여행과 관련해 현재 우리는 낡은 비전과 새로운 현실이 냉혹하게 대비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1930년대의 비전과 그것에 입각한 『스타 트렉』 같은 SF영화들은 우주를 모험과 흥분이 가득한, 언젠가 인류가 뻗어나가야 할 공간으로 그려내지만, 1960년대 이후 소수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을 타고 나가 실제로 경험한 우주는 그러한 낭만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한 공간으로 드러났다. 『그래비티』는 우주 파편으로 인해 우주왕복선, 국제우주정거장,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이 차례로 잿더미로 변하는 엄청난 재난 속에서 지구로 무사귀환해 땅을 딛고 일어서며 ‘중력’의 소중함을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지난 한 세기를 풍미한 질문에 대해 흥미로운 생각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1) 일례로 박종익, 「과학자들이 본 영화 ‘그래비티’의 ‘옥의 티’는?」, 『나우뉴스』 2013년 10월 22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022601011]이나 Jeffrey Kluger, “Gravity Fact Check: What the Season's Big Movie Gets Wrong,” Time (October 1, 2013) [http://science.time.com/2013/10/01/what-gravity-gets-right-and-wrong-about-space/]를 보라.


2) 이 질문은 특히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 유인 우주비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최근 논쟁의 쟁점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령 Thomas A. Easton (ed.), Taking Sides: Clashing Views i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10th ed. (Dubuque, Iowa: McGraw Hill, 2012)의 Issue 14에 실린 Jeff Foust와 Neil deGrasse Tyson의 글을 보라.


3) Howard E. McCurdy, Space and the American Imagination, 2nd ed.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1), chaps 1-3.


4) William Tucker, “The Sober Realities of Manned Space Flight,” The American Enterprise (December 2004); James A. Van Allen, “Is Human Spaceflight Obsolete?” Issues in Science and Technology 20:4 (Summer 2004); Steven Weinberg, “The Wrong Stuff,”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51 (8 April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