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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수다』 정재승 교수 <추천의 말> "과학자의 수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수다!"

Editor! 2015. 6. 26. 11:06

추천의 말

과학자의 수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2005년 여름, 몇몇 과학자들은 매주 포항 공과 대학교 무은재 기념관 5층에 모여 유쾌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 회의에 여념이 없었다. KAIST 총장으로 잘 알려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박사가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Asia-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APCTP)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과학자들의 생각을 세상이 읽을 수 있도록 과학 미디어를 만들라.’는 미션을 던졌다. 그것이 과학이 오래 살아남는 법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를 위해 《크로스로드(Crossroads)》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됐고, 나는 그 잡지의 초대 편집장이 되었다. 과학자와 문학 평론가로 구성된 편집 위원들은 매주 모여 과학을 문화처럼 향유하는 생활양식을 갖기 위해, 과학적인 주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논쟁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위해, 과학 소설을 환대하는 매체를 만들기 위해, 날마다 토론을 했다.


도시락을 먹으며 출발한 점심 미팅은 어느새 저녁을 지나 새벽이 되어야 끝났다. 그리고 매번 진지하게 출발한 회의는 이내 유쾌한 수다로 마무리되곤 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수다는 더 깊고 보다 넓어졌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주고받곤 했다. “우리의 수다를 책으로 만들면 이게 진짜 대박인데!”


우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크로스로드》에 ‘과학자들의 수다’를 한 코너로 만들려고 했다. 바쁜 과학자들에게 원고를 요청하는 것보다 두세 시간 수다를 요청하는 게 훨씬 손쉬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대화는 지적이고 유쾌하고 기발할 것이며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내 실현되지는 못했다. 신중하지 못한 말들을 잡담처럼 쏟아 내는 것에 대해 과학자들이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그 후, 한국 물리학회의 학회지인 《물리학과 첨단 기술》에서도, 또 KAIST가 야심차게 대학 출판부를 만들어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책을 만들기로 하면서, 과학 수다는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 과학 수다에 대해 내가 깊은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사이언스북스 편집장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야심차게 시작해 보자고 의기투합이 되기도 했다. ‘과학 분야에, 이제 콘서트의 시대가 가고 수다의 시대가 온다.’ 식의 광고 카피를 쓰면 어떻겠느냐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과학이 일상의 수다처럼 우리들의 삶 속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KAIST 명강’ 시리즈를 먼저 출발하면서 과학 수다는 ‘앞으로 만들어야 할 책 리스트’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 사이 누군가라도 먼저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아이디어를 뺏기고 싶은 그런 책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유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크로스로드》에 함께 참여했던 강양구 기자가 《프레시안》이라는 유연한 매체에 과학 수다를 기획해 연재하고, 지금은 《크로스로드》의 편집 위원들이 된 김상욱 교수, 이명현 박사 등이 여기에 참여하면서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한 이 기획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결과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으며 전혀 경박하지 않았다. 기생충에서부터 암흑 물질까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양자 역학에서부터 복잡계 과학까지 온갖 이론이 난무하면서, DNA 같은 머리 지끈거리는 개념에서부터 빅 데이터와 3D 프린팅 같은 트렌디한 이슈까지, 과학자들의 수다는 종횡무진 거침이 없었다. 나는 이 책이 이렇게 근사하게 출간되는 데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오랜전부터 ‘과학 수다를 하면 좋겠다.’는 수다를 떨었다는 이유만으로 영광스럽게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할 수 있게 됐다. 기쁘고 영광스런 순간이다.


생각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이 책의 공로는 오롯이 ‘수다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과학자이자 재담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물질과 에너지로 가득 찬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복잡한 세상의 이면을 살펴보는 데 인간의 지성 정도면 충분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주었다. 무엇보다도,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은 그 자체로 더없이 경이롭지만,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지적 노력도 그 못지않게 경이롭다는 것을 일상의 언어로 일깨워 주었다.  


과학자들과의 수다는 진지하고 유머러스하며 즐겁다. 이 책의 미덕은 과학자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데 있다. 그들은 종종 (심지어 술자리 앞에서도!) 자신의 직업병을 숨기지 못하고 논쟁하길 즐겨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지하면서도 유익한지 이 책은 깨닫게 해 준다. 과학자들을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었던 것들을 모더레이터들이 대신 물어 준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과학자들과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과학자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과학을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유쾌한 과학 수다 때문에 콘서트의 시대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과학 수다』 1, 2권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