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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이효석의 과학 페퍼민트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Editor! 2016.07.19 15:20

「이효석의 과학 페퍼민트」 두 번째 이야기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외신 큐레이션 서비스의 대표 주자 뉴스페퍼민트와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합니다. 2016년 7월부터 매주 뉴스페퍼민트와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서 뉴스페퍼민트가 엄선한 최신 과학 정보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격주로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서 뉴스페퍼민트 대표 이효석 박사님의 「이효석의 과학 페퍼민트」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톡톡 튀는 과학 기술 관련 통찰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효석의 과학 페퍼민트」 두 번째 이야기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를 읽고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나 역시 국내의 많은 다른 이들처럼(아마도) 굴드보다 리처드 도킨스를 먼저 알았다. 1997년, 도서관 4층에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저 특이한 제목이라 생각하며 책장에서 뽑아 읽었던 『이기적 유전자』는 나를 그 책을 읽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일 이후로 데니얼 데닛이나 스티븐 핑커, 마이클 셔머 등을 읽게 됐다. 굴드를 처음 접한 계기 역시 도킨스의 책(『악마의 사도』에는 절반의 상찬과 절반의 비판으로 이루어진, 굴드의 책에 대한 서평과 그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한 챕터를 이루고 있다)이었고, 실제로 굴드의 책을 읽게 된 것은 그보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굴드는 도킨스와 다르다. 도킨스가 명쾌하고 시원하다면 굴드는 보다 불확실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도킨스가 때로 가볍고 불안하다면, 굴드는 진중하고 침착하다. 이런 차이는 두 사람의 과학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도킨스가 자신이 과학이라는 진리의 편에 서 있고 따라서 때로 상대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자세를 보이는 듯하다면, 굴드는 과학은 사회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과학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늘 강조하는 이처럼 보인다. 이런 배경에는 보다 깊은 과학사적 흐름이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를 설명할 만한 지식까지는 지니지 못했다. 단지 굴드는 그가 관련된 모든 논쟁에서 결국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라고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등장한 장면. 그는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굴드와 도킨스의 여러 논쟁 중,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한 마디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물론 이 단순한 주장에는 누구나 지적할 수 있는 허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진보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이다. 당장 도킨스 역시 ‘적응론적’ 진보에 대해 이야기하며 ‘적응 적합성을 누적적으로 개선하는’, 곧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것을 진보의 정의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 경우에 진화는 거의 연역적으로 진보를 낳는다.

그러나 굴드가 이런 반론을 몰라서 이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진화라는 단어 자체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곧 “더 고등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연상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실제 자연과 진화의 모습(그의 표현을 빌면, “방향성 없는 방랑(undirected wandering)”)과 다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택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인간이 모든 생명체 중 가장 고등한 존재이며 진화의 사디리 꼭대기에 위치한다는 생각에 일침(그것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에 가깝다는)을 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21세기의 황금률이다. 곧 굴드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아치 위의 삼각형 공간인 스팬드럴을 장식한 부조. ©Thesupermat


적응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담은,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쓴 스팬드럴(Spandrel) 논문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식상한 설명이겠지만, 스팬드럴은 중세 건물의 지붕을 세울 때 아치를 올리고 남은 옆 공간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말로 된 설명만으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스팬드럴을 언급하는 글에는 대부분 사진이 따라 붙는다.) 

스팬드럴은 지붕을 올리면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그가 하고자 한 말은, 생물의 형태, 구조, 기능이 언제나 적응, 곧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진화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은 누구도 “모든 것을 적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면서, 곧 굴드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어떤 구조나 기능에 대해 이를 적응으로 설명하려는 유혹을 느꼈을 것이며, 특히 ‘그냥 이야기(just so stories)’라는 비아냥을 종종 듣는 진화 심리학에 대해 이 비판은 더욱 유효하다. 그는 이 주장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기 쉬운 유혹에 경고를 보내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굴드의 또 다른 저서인 『인간에 대한 오해』와, 지능과 관련한 논쟁 등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그의 경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인간이 가진 얼핏 눈에 보이는 차이들이, 어떤 물리적, 객관적 실체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세상은 간단하지 않으며, 또한 그런 유혹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경고한다. (이 부분은 사회적, 아니 정치적으로 다소 복잡한 문제로서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공룡 화석 앞에 선 스티븐 제이 굴드. 그는 단속평형설을 주창함으로써 진화론에 대한 오랜 반론 중 하나였던 “잃어버린 고리”의 문제를 설명해 냈다.


이러한 주장들에 비하면 굴드의 가장 유명한 업적인 단속 평형설(이 이론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진화의 패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만)은 오히려 다양한 의미에서 흥미롭다. 여기서 “단속 평형”이란 영어로 punctuated equilibria를 의미하며, 평형 상태(equilibria)가 끊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곧 생물의 진화에 있어 긴 기간의 평형 상태, 곧 생물의 진화가 크게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짧은(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긴) 시간 동안 급격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당시의 상식이었던 단순한 점진적 진화(진화가 서서히 이루어졌다는 이론)에 대해, 이 경우에는 고생물학(화석 증거)을 바탕으로 반박하는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단속평형설은 진화론이 답해야 했던 중요한 질문에 해답을 제공한다.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로 불리는, 중간 단계의 화석이 드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나 짧은 시기를 단속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문제부터 같은 맥락에서 기존의 점진적 진화 역시 완벽하게 고른 속도의 진화를 가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까지(특히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같은 외부 요인이 존재할 때) 이것을 새로운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판다의 엄지』 표지.


물론 이 모든 굴드의 특징만큼이나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것은, 그의 타고난 글솜씨일 것이다. 사이언스북스에서 새로 출간된 『판다의 엄지』를 들자마자 순식간에 첫 챕터를 읽고 말았다. 굴드는 판다가 앞발을 이용해 아주 능숙하게 대나무 줄기를 잡고 잎을 뜯어낸 후 새순을 먹는 장면을 보고 놀란다(이 장면을 상상하며 우리가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은 보너스다). 그리고 판다가 이 동작을 위해 엄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는 다른 손가락과 마주보는 엄지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바로 인간은 손의 기능을 계속 향상시켰지만 다른 포유류들은 달리기 등을 위해 이것을 희생시켰다. 

그는 판다의 손가락을 세보고 다시 놀란다. 판다는 엄지를 제외하고도 5개의 손가락이 있었다! (한편 나는 글 중에 놀랐다거나 당황했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의 주의를 지속시키는 기술임을 배웠다.) 판다의 엄지에 감춰진 비밀은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니, 이야기를 꺼냈으니 마저 답을 말해 주겠다. 사실 판다의 엄지는 사실은 손목을 이루는 작은 뼈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근육이 붙은 것이었다. (앞발의 이러한 변화 때문에 뒷발에도 불필요한 엄지가 자라났다는 사실 역시 굴드는 언급한다.) 이 판다 이야기 이외에도 수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독자는 내가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교훈을 굴드에게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효석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양자 광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연구원으로 LTE 표준화에 참여했고, 미국 하버드 대학 전자과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의료재활기기 벤처회사인 (주)네오펙트에서 CAO로 데이터 사이언스팀을 맡고 있다. 옮긴책으로 『내일의 경제』가 있으며, 2012년 외신 번역 큐레이션 사이트인 뉴스페퍼민트를 만들어 현재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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