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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지구의 속삭임』 김명남 선생님의 번역 후기

Editor! 2016.09.20 15:22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의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 그 안에 담긴 사진 118장과 음악 27곡, 55가지 언어로 된 인사말과 지구의 소리 19개를 소개하는 책, 『지구의 속삭임』의 번역을 맡아 주신 김명남 선생님의 번역 후기를 독자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2013년 9월, 미국 국립 항공 우주국(NASA)은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2012년 8월 25일자로 우리 태양계를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 태양이 내는 태양풍의 영향보다 바깥 우주로부터 오는 하전 입자의 영향이 더 커지는 지점인 태양권계면을 탐사선이 넘어섰다는 것이다. 보이저 1호는 이미 1998년에 이전까지 지구로부터 가장 먼 거리를 나아간 탐사선이었던 파이오니어 10호의 거리를 추월했다. 하지만 태양계 밖으로 나선다는 건, 가장 멀리 나아간 탐사선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또 다른 사건이다. 우리 별을 벗어나 항성 간 공간으로, 별들 사이의 우주로 발을 내딛다니.


목성을 탐사 중인 보이저호

(이미지 출처 : NASA/JPL-Caltech 제공)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의 애초 프로젝트 기간은 겨우 5년이었다. 두 탐사선에게 주어진 임무는 태양계 외행성들, 특히 목성과 토성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이었다. 벌써 1973년과 1974년에 파이오니어 10호와 11호가 역사상 최초로 목성에 다가갔고, 소행성대를 가로질렀고, 토성에도 다다랐지만, 두 탐사선이 보내온 정보는 그다지 상세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외행성들과 그 위성들을 처음으로 자세히 알려 준 것은 두 보이저호였다. 두 보이저호는 목성의 위성인 이오에서 화산 활동을 목격했고, 유로파의 표면에 얼음이 덮여 있을지 모른다는 걸 관찰했으며, 목성에도 고리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토성에서는 고리를 근접 촬영하여 그 장엄하면서도 다채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영상으로 전송해주었다. 탐사선들은 많은 위성을 새로 발견했고, 자기장에 관련된 측정을 수행했다. 두 보이저호가 알려 준 바깥 태양계에 대한 새 지식은 천문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많았다(이 책 『지구의 속삭임』은 보이저호 발사 1년 뒤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후 탐사 사업의 성과는 담고 있지 않다. 그 성과와 여파가 궁금하다면, 가장 최근 출간된 책 중에서는 우주 생물학자 크리스 임피(Chris Impey)와 홀리 헨리(Holly Henry)가 쓴 『스페이스 미션(Dreams of Other Worlds)』에 잘 요약되어 있으니 참고하라.).


하지만 두 보이저호가 찍은 사진들 중 과학적 가치는 몰라도 문화적 가치로 따지자면 군말 없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은, 카메라가 영영 작동 중단되기 전 보이저 1호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1990년 밸런타인데이, 막 명왕성 궤도를 넘어서던 보이저 1호는 태양 쪽으로 카메라를 돌려서 60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수성, 화성, 명왕성은 안 보이지만 나머지 여섯 행성과 태양이 다 찍힌 그 연속 사진은 태양계의 첫 ‘가족사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특히 무지갯빛 반사광 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지구의 모습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바라보면 지구도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바로 그 점 위에서 인류의 모든 삶과 죽음이 펼쳐졌으며 그 점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라는 것, 선명하지 않고 오래 구경할 것도 없는 그 사진은 백 마디 말보다 또렷하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인류에게 겸허를 가르치는 동시에 태양계 가족사진을 찍을 줄 알게 된 스스로를 자랑스레 여기게도 만드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그 멀리서 지구를 찍어야 한다고 NASA를 설득했던 사람, 1994년에 쓴 『창백한 푸른 점』으로 그 사진의 의미를 세계 독자들에게 알린 사람이 칼 세이건이었다. 세이건은 그런 사진이 다른 어떤 참신한 발견을 밝힌 사진보다도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있으리란 걸 내다보았던 것이다.



창백한 푸른점 실제 사진과 관련 책

(이미지 출처 : NASA/JPL-Caltech 제공)



그런데 세이건이 보이저호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잊지 못할 집단 서사를 만들어 준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두 보이저호에 실린 금제 레코드판, 일명 ‘골든 레코드’를 기획, 제작한 사람도 세이건이었다(물론 그는 보이저 탐사 사업 영상 팀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일했으니, 그가 사업에 기여한 바는 이 두 일화보다 훨씬 더 크다.). 이 책 『지구의 속삭임』은 인류가 우주에게 보내는 인사, 인류가 띄워 보낸 병 속의 메시지, 인류가 남기는 타임캡슐이자 방주인 그 레코드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자료이다.


118장의 사진과 한 시간 반 분량의 음악을 비롯한 레코드판의 내용을 어떻게 골랐고 저장했는지를 시시콜콜 기록한 글을 지금 읽으면, 무엇보다 그들이 썼던 기술이 구식 인 데 놀라게 된다. 16⅔ 회전의 아날로그 LP판이라니! 하지만 보이저호 자체가 8트랙 테 이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오늘날 광대역 인터넷의 겨우 몇 만분의 1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구식 기기이니, 하지만 그런데도 기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일부 기능이 튼튼하게 작동하고 있으니, 골든 레코드의 기술도 비웃을 일은 아니다. 음성 저장 매체로서 콤팩트디스크(CD)는 보이저호가 천왕성에 다다랐을 때에야 발명되었다.


그다음 인상은, 세이건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골든 레코드 제작을 몹시 진지한 과제로 여겼던 것 같다는 것이다. 빠듯한 시간과 한정된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만이나 미국만이 아닌 인류 전체의 초상을 그리려고 애썼다. 그들은 인류의 좋은 점만을 수록해도 양심에 걸리지 않는가, 미술이 포함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비틀스를 빠뜨리는 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 등을 놓고 열심히 토론하여 하나하나 신중하게 정했다(웹사이트 goldenrecord.org에서 골든 레코드에 실린 모든 음악과 녹음 인사말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보이저호에 실린 지구의 컬러 사진

(이미지 출처 : 칼 세이건 외, 『지구의 속삭임』,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사실 이 레코드가 정말로 우주의 누군가에게 가 닿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천문학적으로 낮다. 골든 레코드의 제작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여기에서 잠시 긴 여담: 태양계를 벗어날 탐사선에 외계인에게 보내는 레코드를 싣는다는 발상이 낭만적이기는 하되 허황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더러 있다. 가령 입자 물리학자 리사 랜들(Lisa Randall)은 저서 『암흑 물질과 공룡(Dark Matter and the Dinosaurs)』에서 “지구에 있는 우리도 요즘 그런 (적절한 재생) 장치를 찾으려면 깨나 애먹을 텐데” “불과 수백 년 안에 다른 외계 문명이 이 음반을 재생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랜들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골든 레코드는) 최소한 한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앤 드루얀이 음반의 제작 책임을 맡아서 칼 세이건과 함께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음반은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에게는 아마 해독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멋진 러브 스토리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렇다, 바로 이 골든 레코드 제작 작업에서 드루얀과 세이건이 만나고 연인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활자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헌사 중 하나를 갖게 되었고(『코스모스』의 헌사는 이렇다. “앤 드루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만일 드루얀이 없었다면 천문학자 닐 더그래스 타이슨을 새 진행자로 내세워 2014년 방송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새 ‘리부트’ 시리즈도 없었을 것이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 사진

(사진 : Peter Morenus)


그렇지만 골든 레코드를 우주로 내보낸 행위는 무엇보다도 지구에 남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서사를 안겨 주었다. 골든 레코드는 우리가 더 넓은 세상을 알길 원하는 호기심 많은 종임을, 우주에 우리 말고도 다른 누군가 있기를 바라는 외로운 종임을,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반가움과 선의로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상냥한 종임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성과 종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지도 모를 만큼 어리석고 문제투성이인 존재이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한순간이나마 우리가 가없는 낙관과 희망의 표시를 기약 없는 미래로 쏘아 보낼 지성과 유머를 갖췄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골든 레코드의 제작 과정을 엿보며 깨닫게 되는 바, 우리가 외계의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행위 자체가 한없이 철학적인 존재론적 자문자답이었다. 대체 어떤 감각과 사고를 갖고 있을지 모르는 완벽한 타자에게 우리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레코드판 한 장에 인간을 담을 수 있을까? 인간, 문명, 지구를 정의하는 속성들은 무엇일까? 골든 레코드 제작자들이 어떻게든 답해야 했던 이런 질문들에 오늘날의 독자들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한 답을 내놓을까?



골든 레코드 커버(위)에는 레코드판(아래)을 재생하는 방법이 과학 언어로 표시되었다.

(이미지 출처: NASA/JPL-Caltech 제공)



기적적으로 우주의 누군가가 골든 레코드를 수거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인류는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놀라운 내구성과 효율성으로 발사 후 4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활약을 펼쳐 온 두 보이저호도 언젠가 에너지가 바닥나서 2025년과 2030년 사이에 모든 작동을 멈출 것이다. 탐사선들은 별일 없는 한 계속 캄캄한 항성 간 공간을 나아가겠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연락을 받지 못할 것이다(NASA가 관리하는 보이저호 웹페이지에는 지금도 계속 정보가 업데이트되는데, 특히 다음 링크에서는 매초 수십 킬로미터씩 죽죽 멀어져 가는 두 보이저호의 이동 거리를 실시간 계수기로 지켜볼 수 있다. http://voyager.jpl.nasa.gov/where/index.html).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뒤 태양이 적색 거성으로 팽창하여 지구가 열기에 타 버릴 때, 두 보이저호와 골든 레코드는 어디 있을까? 어쩌면 그로부터 벌써 한참 전에 우리는 사라지고 없을지 모른다. 그때, 우리가 한때 존재했었음을 알리는 (전파를 제외한) 물질적 증거는 골든 레코드뿐일 것이다.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과 고래들의 노랫소리, 바흐와 척 베리의 음악,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담은 골든 레코드는 우리가 남긴 유일한 물리적 기록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제일 멋진 자랑거리만을 골라 담은 과장 선전이란 점은 좀 겸연쩍지만, 저 멀리 어딘가의 수신자는 인류가 마지막으로 부린 욕심을 분명 귀엽게 여길 것이다.



김명남



『지구의 속삭임』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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