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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4. 영국을 지킨 검, 스피트파이어

Editor! 2017. 6. 26. 10:44


4. 영국을 지킨 검, 스피트파이어



인류 분쟁의 영역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적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윈스턴 처칠(1874~1965년)


처칠 수상이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에서 활약한 영국 파일럿들에게 헌사한 말이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 독일의 침공을 막아 낸 본토 항공전 시기를 자랑스러워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기념일들을 만들어 지금까지 기리고 있다.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영국은 한줌도 안 되는 전투기와 파일럿에 의지해 위기를 헤쳐 나갔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코벤트리(Coventry)가 독일 전략 폭격에 당하자 처칠은 이자까지 쳐서 독일에게 돌려준다. 2년 뒤인 1942년 5월 31일 폭격기 1,000대를 동원해 독일의 천년 고도 쾰른을 박살낸 것이다.

1940년 여름, 유럽은 히틀러의 손아귀에 거의 다 들어가고 이제 영국만 남은 것으로 보였다. 히틀러는 1940년 7월 영국에 대한 공격을 선언한다.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시작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일군의 승리를 예측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부터 실전으로 다져진 독일 공군(Luftwaffe)은 무적이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1939년 9월 1일 이후 이어진 승리로 독일 공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질적 우수함에 더해 양적으로도 영국 공군을 앞서 영국 공군 보유 전투기는 590여 대 남짓인 데 반해 독일 공군은 1,300여 대의 전투기를 자랑했다. 영국이 믿을 것이라고는 해안선을 둘러싼 레이더와 스피트파이어 전투기(호커 허리케인도 훌륭히 역할을 수행했지만 스피트파이어가 주인공이었음)밖에 없었다.


지금도 영국인들은 가장 아름다운 전투기로 스피트파이어를 꼽는다.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특별한 인연이 아니더라도 우아한 곡선의 주익(主翼)을 본다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평가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Bf-109와는 호각지세의 싸움을 벌인다. 엇비슷한 성능이라면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긴다는 게 정설이지만 본토 항공전의 승자는 영국이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Bf-109의 짧은 항속 거리와 영국군이 보유한 레이더로 인해 변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타원형 날개를 뽐내는 스피트파이어. 영국을 구한 전투기이자 역사를 바꾼 전투기다. (Transferred from fr.wikipedia to Commons by Padawane using CommonsHelper.)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슈나이더 트로피다. 슈퍼마린 사의 설계 주임인 레지널드 미첼(Reginald Mitchell)이 설계한 슈퍼마린 S6B 모델은 영국에게 3회 연속 슈나이더 트로피를 안겨 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S6B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상기 타이틀을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전투기 타이틀에 도전해야 했다. 이미 유럽은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영국이 황급히 신형 전투기 개발에 뛰어든다. 가상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전금속제 단엽 전투기를 개발했기에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결실이 호커 시들리 사가 내놓은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사가 내놓은 스피트파이어다. 전투기 성능 자체로만 본다면, 스피트파이어가 우세했다. 목재 골조에 방수천을 씌운 허리케인은 전금속제 단엽 전투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영국 공군은 이 두 전투기를 모두 신형 전투기로 선정했다. 스피트파이어가 성능 면에서는 뛰어났지만, 비용과 생산성에서는 아무래도 미덥지 않았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영국을 방어할 수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최고의 판단이었다. 스피트파이어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수량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다면 독일군의 파고를 넘을 수 없는데 그 부족한 수량을 메워 준 게 호커 허리케인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 동안 독일 공군의 Bf-109 전투기는 스피트파이어가 상대했고, 나머지 폭격기들은 주로 호커 허리케인이 담당했다. 이 두 전투기의 콤비네이션 덕분에 영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Bf-109A. Bf-109는 작은 기체에 강력한 엔진으로 나는 기관총좌라 불렸지만 좁은 유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짧은 항속 거리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발목을 잡았다. 낙하식 연료 탱크를 개발해 장착했을 때는 이미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항공 전사(戰史) 중에서 ‘동등한 라이벌’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전쟁사는 드물다. 항공기 성능이 비슷하면 조종하는 파일럿의 기량에서 차이가 나고, 파일럿 기량과 전투기 성능이 비슷하다면 동원할 수 있는 수량에서 차이가 나거나 전장의 환경이 걸린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의 스피트파이어와 Bf-109의 전투는 거의 대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공격하는 독일 측이 수적인 우위를 가졌으나 홈그라운드 이점과 신무기 레이더의 조력이 이런 수적인 우위를 상쇄시켰다. 여기에 더해 당시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다. 전투기의 전력은 수량도 중요하지만, 출격 횟수(sortie)도 고려해야 한다. 즉전투기 1대가 1번 출격하면 1대의 역할만 하지만, 1대가 2번 출격하면 2대 몫을 한다. 당시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는 하루에 최소 2번, 많게는 8번까지 출격했다. 반면 독일군은 프랑스에서 날아올라 도버 해협을 넘어 영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기에 1일 출격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를 향해 달려가는 파일럿들. 평균 10분 내외의 전투 이후 보급을 위해 기지로 돌아왔고, 짧은 휴식 후 재출격, 하루에 최소한 2번 이상 출격했다. 이렇게 석 달 이상을 지내자 햇병아리 파일럿들은 어느새 에이스가 돼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의 기량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독일군을 상대할 만한 최소한의 기초는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경험은 실전이 해결해 줬으니, 첫 실전에서 살아남으면 한 사람 몫을 했다. 남은 것은 전투기 자체의 성능이다. 상승력과 강하 능력에 있어서는 Bf-109가 약간 우세했지만, 수평 비행 속도와 기동성 면에서는 스피트파이어가 우세했다.


스피트파이어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슈나이더 트로피 수상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상승 속도에서는 밀리지만, 수평 비행 속도만은 자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동일한 속도를 가진 그 어떤 기체보다 작은 선회반경과 뛰어난 운동성을 보여 줬다. (물론 Bf-109를 압도한다고 하기는 힘듦) 시계(視界)의 문제, 화력의 근소한 차이 등등 서로 우위를 지닌 부분이 달랐지만, 종합적으로 엇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영국인들은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해 독일군 전폭기들과 상대했다. 민방위 대원은 하늘을 감시했고, 레이더 요원은 적기의 동태를 주시했으며, 소방대원과 응급대원은 폭격 이후를 대비했다. 모두가 영웅이었지만, 이 당시 모든 영국인들이 모두 인정한 영웅은 영국군 전투기 파일럿들이었다. 영국인들이 사랑했던 전투기는 스피트파이어였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의 스피트파이어와 Bf-109는 라이벌끼리의 진검승부라 말할 수 있다. 그 뒤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둘 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양국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독일의 경우는 Bf-109에 이어 Fw-190을 투입하고 개량해 나갔다. 영국의 경우도 스피트파이어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쭉 개량해 발전시켜 나갔다. 대전 초 MK 1으로 시작한 스피트파이어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이 되면 무려 40종이나 되는 개량형, 개조형 모델을 만들어 낸다. 영국 해군 항공 모함용 함재기인 시파이어(Seafire)도 포함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시작부터 끝까지 영국과 함께 했고, 멸망의 위기 속 온 국민의 눈앞에서(BBC 방송에서 라디오 생중계를 함) 싸웠던 스피트파이어는 영국인들에게는 거북선과도 같은 특별한 전투기였다. 1940년 7월부터 10월까지 영국은 한줌도 안 되는 스피트파이어와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구원받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스피트파이어를 구국의 전투기라 칭하며 애정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전투기’라는 찬사 앞에 ‘사랑받는’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114-115쪽.


『비행기 대백과사전』 114~115쪽에서 스피트파이어의 내외장 사진을 좀 더 볼 수 있다.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