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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3부작」 출간 기념 특별 SF : "인류는 어디로 갔나요?"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세 3부작> 옮긴이 후기

「인류세 3부작」 출간 기념 특별 SF : "인류는 어디로 갔나요?"

Editor! 2018. 2. 22. 17:56

「인류세 3부작」 출간 기념 특별 SF

"인류는 어디로 갔나요?"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화두를 던지며 『지구의 정복자』와 『인간 존재의 의미』, 『지구의 절반』으로 이어지는 에드워드 윌슨의 「인류세 3부작」이 완간되었습니다.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물권의 일원이자 인류세의 건축가인 인류를 고찰하는 한 생물학자의 원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데요. 「인류세 3부작」의 옮긴이이자 SF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이한음 선생님이 「인류세 3부작」 완간을 기념해 단편 SF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류세 이후를 살아가는 가상의 생명체 ‘냐낭’과 여러 생물들의 이야기에서 통섭적 상상력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런 질문들의 답을 얻은 뒤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냐낭은 답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이런. 냐낭의 더듬이가 향하는 곳마다 학생들은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홍점알락나비 애벌레는 깔고 앉아 있던 팽나무 잎을 갉아 대는 척 했고, 고린내 풍기는 돼지 콧구멍 위에 앉아 있던 금파리는 돼지 코털 밑동에 침을 퉤 뱉고는 녹기를 기다리는 시늉을 했다. 저쪽 뒤에 앉아 있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가뜩이나 짧아진 한쪽 앞니를 줄로 갉아 대기 시작했다. 신경 회로의 신호가 때때로 끊기곤 하는 터라 자신이 앞을 못 본다는 사실과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떠올리려고 다시금 애쓰는 모양이었다. “대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 질문을 또 받기 전에 냐낭은 재빨리 더듬이를 옆으로 옮겼다.

그래 맞아. 너라면 대답을 해 주겠지?


왼쪽에서부터 홍점알락나비, 벌거숭이두더지쥐, 딱총새우.


몸이 마르지 않게 투명한 막을 한 겹 둘러쓰고 있던 노란줄무늬딱총새우는 막 안에서 집게발을 닫았을 때 생기는 공기 방울이 유체 역학적으로 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창 고심하던 중이었다. 한마디로 막이 터질까, 안 터질까 하는 문제였다. 사실 딱총새우는 이 야외 실습 강의를 들을 때마다 집게를 딱 닫아서 소리와 빛의 현란한 이중성을 실감나게 보여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구기가 다 끊겨 나갈 지경이었다. 강의가 재미없을 때는 더욱 그랬다.

그때 딱총새우는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것을 알아차렸다.

응? 뭔 일이래?

좌우를 둘러보던 그는 냐낭의 더듬이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딱총새우는 자신도 모르게 집게발을 탁 닫았다.

앗, 실수!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살을…….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쩍 쳐다보니, 이런. 막이 집게발 사이에 걸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낄낄 웃음이 터졌다.

“아, 물론 어려운 질문이지. 고맙네.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보여 주어서 말이야.”

냐낭은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잠시 뒤 소동이 가라앉자, 냐낭은 설명을 시작했다.

“다 알겠지만, 아직까지 우리 지구 생명이 해결하지 못한 커다란 문제들이 있어요. 그중 하나는 바로 사회성과 지능의 상관 관계이지요. 20세기 말에 인간은 사회성이 지능 출현의 필수 요소임을 알아냈어요. 맞아요. 지금 우리가 쓰는 정교한 네트워크 지성의 원형을 개발한 종이지요. 지금은 클라우드 안에서 우리 지구 생명체들의 의사소통에 기여하는 한 요소로만 남아 있지만요.”

그때 오른쪽 덤불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한 무리의 개미들이 몰려나왔다. 붉은군대개미의 척후병들이었다.

“와, 여기 먹이가 널려 있는걸?”

대장이 입 양쪽의 갈고리를 쫙 벌리면서 말했다.

학생들은 움찔했지만, 냐낭은 당당하게 대장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좋은 꿈 꾸셨나 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꿈에서 본 장소는 여기가 아니라고 장담하지요. 우리는 범생물권 보전 국제 협정의 적용을 받는 동물들입니다. 지구 생명 공존 대학교에 소속되어 있어요.”

그러자 군대개미 대장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런, 죄송합니다. 멀리에서 오느라 좀 정신이 없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어요.”

“괜찮습니다. 요즘 먹이 찾기가 힘들지요?”

“그렇죠. 빙하기가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먹여야 할 군식구가 많아서요.”

대장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무리를 이끌고 떠났다. 냐낭은 학생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저런 인사 방식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이론가들이 있어요. 물론 여러 생물들에게 공통된 몸짓이지만, 의례화한 종이 인간이라고 보는 거지요.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인간이라는 종은 뛰어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잘못된 개념에 집착한 것으로도 유명했어요. 스스로도 알았지요. 그것을 인간 중심주의라고 했는데, 그 말을 자조적인 의미로 썼는지 아니면 자아도취적인 의미로 썼는지는 논란이 있어요. 아무튼 그들은 지능의 종류가 단 한 가지라고 가정했어요.”

“자기들의 뇌에 든 거요?”

박각시 모충이 몸으로 풍선을 불면서 물었다. 옆에 있던 곤충들이 짜증을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까지 뱀 흉내를 내야겠니?

“맞아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류에서 양서류와 파충류를 거쳐서 포유류에 이르는 경로로 발달한 뇌였어요. 쓸데없이 뇌가 커지면서, 쓸데없이 복잡해진 형태의 뇌를 말해요. 하지만 인간은 그 뇌를 써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냐낭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고서, 더듬이로 죽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냐낭은 이 말을 할 때가 가장 뿌듯했다.

“바로 자신들의 지능이 우리 같은 고등한 무척추동물들의 지능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그들은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점점 깨닫기 시작했어요. 아하, 고도의 지능이라는 게 그냥 단순한 반복 행동의 통계적 집합에 불과한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어요. 바로 우리 같은 동물들이 쓰는 방식이지요. 여러분은 바둑을 좋아하나요?”

“예!”

절반이 대답했다. 냐낭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인간은 가로×세로 19칸으로 된 바둑을 두었어요.”

여기저기서 애걔,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조차도 최고의 지능을 지닌 인간만이 둘 수 있는 고상한 활동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게다가 겨우 두 사람이 두면서요. 지금처럼 가로 세로 4,600칸에, 196마리까지 둘 수 있는 바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인간은 정말 머리가 나빴나 봐요.”

육지에서 사는 덕에 등각류의 대표자로 존중받고 있는 쥐며느리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지금은 모든 종족이 뇌 이식물을 통해 공통의 네트워크 지성체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게 없던 시절에는 그나마 좀 머리가 좋은 편이었어요. 어쨌든 인간은 바둑을 통해서 그 점을 깨달았답니다. 우리 같은 무척추동물들이 쓰는 단순하고 통계적이고 분산적인 형태의 지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들은 그런 지능을 창안할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가 쓰는 네트워크 지성체의 원형이에요. 여러분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유적 중 하나예요.”


(좌)군대개미, (우)노래기


학생들은 앞에 있는 거대한 유적을 올려다보았다.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할 듯한 원통형 구조물이 까마득히 높이 솟아 있었다.

“겉에 말라붙은 고치 같은 것들이 보이지요? 인간이에요.”

“인간도 탈바꿈을 했나요?”

“자연 상태에서는 아니에요. 하지만 알다시피, 인간은 우리 무척추동물을 닮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인위적으로 탈바꿈을 하고자 했어요. 저렇게 스스로 만든 고치 안에 들어가서 하나가 되고 싶어 했답니다. 가상 현실 속에 들어가서요. 쉽게 말해, 우리가 페로몬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과 비슷해요. 놀라운 점은 인류가 수백 년 전에 이미 자신들의 미래를 내다보았다는 거예요. 그런 영화를 만들었지요. 물론 그 장치를 지구의 모든 동물들, 아, 미안, 끈끈이주걱 학생, 모든 생물들이 쓰게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요.”

“쓸데없이 너무 크네요.”

진드기가 끙 하고 꽁무니에 단물 방울을 맺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사실 인간이라는 종은 이 지구에서 비효율과 낭비의 대명사였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인간이라는 종이 그저 우리가 쓰는 네트워크 지성체의 원형을 개발했다는 것 말고는 전혀 쓸모없었던 존재 같아요. 제 생각이 맞나요?”

왕빨강노래기가 뒤쪽의 발 두 개로 슬쩍 진드기의 단물을 거두면서 물었다.

냐낭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아, 그나마 좋게 봐줄 만한 것이 한 가지 더 있긴 해요. 최근에 너무 불어나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솎아 내기를 해야 했던 메뚜기 종을 기억해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들은 대개 그런 본능이 있어요. 닥치는 대로 마구 먹어 치우면서 불어나고 싶어 하지요. 메뚜기처럼 몇 년마다 환경이 좋을 때 대규모로 깨어나는 바람에, 미처 뇌 이식을 받지 못하는 종들이 잘 보여 주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였어요. 너무 불어나다 보니 하마터면 지구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뻔했지요. 다행히도 인간 종 중에도 좀 깨어 있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런 이들이 지구의 절반을 우리 같은 다른 생물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적극적으로 설파한 덕분에,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요. 그 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 종들과 좀 달랐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네트워크 안에 살려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냐낭은 바람에 날려서 더듬이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 내면서 말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유적 관람은 앞으로 한 시간만 허용됩니다. 그 뒤에는 네트워크 지성체가 관여하지 않는 영역이 되니까, 몸조심하고요. 참, 그리고 내일까지 네트워크 안의 인간을 한 명 골라서 대화를 할 기회를 주겠어요. 인간 종에게 관심이 있는 학생은 신청하세요.”

“아까 말한 인간도 있나요?”

“음, 아마 있을 거예요. 가상 인격이지만요.”


에드워드 윌슨.



이 이야기가 시작된 에드워드 윌슨의 「인류세 3부작」.

각 도서명을 누르면 자세한 책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지구의 정복자』 [도서정보]


『인간 존재의 의미』 [도서정보]


『지구의 절반』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