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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과학자'와 함께하는 양자 공부 : 김상욱 편 ① 본문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바쁜 현대인을 위한 양자 역학 교양서를 펴낸 김상욱 경희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입니다. 2017년까지 부산 대학교 물리 교육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지만 최근 경희대로 옮겼습니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연구와 교육의 거점 변동으로 바쁜 김상욱 교수를 모셔 짧지만 깊은 수다를 나눴습니다. 양자 역학은 골치 아픈 가설이나 대학 상아탑 속 박제화된 이론이 아닙니다. 양자 역학은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고, 현대 문명을 가능케 한 절대 반지 같은 필수 지식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 전체가 양자 역학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연재는 모두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여섯 번째 이야기
'경계의 과학자'와 함께하는 양자 공부,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편 ①
드디어 출간된 ‘최고의 양자 역학 책’
SB : 선생님, 오랫동안 준비해 오신 책이 드디어 출간됐습니다. 출간되자마자 반응도 좋습니다. 저희 페이스북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에는 “2017년 최고의 양자 역학 책.”이라는 평가도 있고, 《한국일보》 같은 매체에서는 “저자와 출판사가 ‘작품’을 만들어 내려 한 의지가 읽힌다.”(한국일보 기사 링크)라고까지 절찬해 주기도 했죠. 굉장히 좋은 평가들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일단 출간과 관련해서 소감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상욱 : 사실 이 책은 처음 제가 계획했던 것보다는 좀 늦게 출간되었죠. 그래서 밀린 숙제를 다 끝낸 것 같아 속 시원하다고 할까요. 항상 책이라는 게 일간지나 잡지 같은 매체하고 달라서 ‘마감’이 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 보니 원고를 끝없이 고치게 되죠. 좀 아쉽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걸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다 보면 끝이 안 나죠. 하여튼 책이 나오니까 시원섭섭하네요. 이게 첫 번째 소감이라면 소감입니다. 그리고 ‘중첩’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양자 역학을 조감해 보자는 아이디어는 개인적으로는 하도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거라, 어떻게든 책으로 완성해 놓고 나니까 참 뿌듯해요. 기분이 좋아요.
김상욱 경희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SB : 시원섭섭하지만 좋다. 다른 소감은 없으신가요?
김상욱 : “최고의 양자 역학 책”이라, 글쎄요, 좀 과분한 평가 같아요. 사실 교양 과학책 분야에서도 지금까지 나온 양자 역학 책은 굉장히 많거든요. 양자 역학만 다룬 책도 지금 국내에 10권 이상이 나와 있죠.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을 소개하다 보면 양자 역학을 다루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 책을 다 포함하면 굉장히 많아요. 그중에는 좋은 책도 굉장히 많죠.
그러나 대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양자 역학을 다루죠. 첫 번째 방식은 양자 역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거죠. 또 다른 방식은 양자 역학을 다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기초 개념으로 소개하는 거죠. 브라이언 그린이나 미치오 카쿠의 책을 보면 양자 역학의 핵심이 잘 소개되어 있죠. 그리고 책 시작 부분에 잘 나와요. 그러나 이런 책들은 양자 역학만을 오롯이 설명하는 건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양자 역학만’을 소개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아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죠.
하지만 저는 통상적인 방식이랑 좀 달리 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양자 역학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책을 시작하고, 다른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양자 역학의 역사 같은 건 양자 역학의 핵심 개념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양념으로 삼아 버무려 놓는 방식을 취해 봤죠.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형태의 책이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요즘 많은 분들이 제 유튜브 강연 영상을 보고서 양자 역학을 많이 접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일반 독자 중에는 제 설명 방식을 높게 평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제 설명 방식이 양자 역학을 설명하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만약 제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착각이라고 꾸짖어 주세요. 양자 역학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학문이랍니다. 수많은 방식으로 설명되어 왔고, 수많은 천재들에 의해 해석되어 왔죠. 감히 최고라니요.
양자 역학의 중첩 현상을 잘 보여 주는 이중 슬릿 실험.
김상욱 교수의 책은 이 중첩 개념에서 시작해 양자 역학의 모든 것을 설명해 나간다.
ⓒ (주)사이언스북스.
SB : 겸손의 말씀을, 하지만 저 역시 선생님의 원고를 처음 봤을 때부터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양자 역학 교양서와는 다른 책을 써 보겠다는 의지 같은 게 느껴졌다 할까요. 책 끝에 있는 추천 도서 목록인 「양자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서 선생님께서 소개하고 계신 옛날 일본 양자 역학 책들이나 뉴에이지 사상가들이나 인문학자들의 양자 역학 해설서로 저도 양자 역학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양자 역학을 일종의 역사 이야기로, 또는 철학적, 사상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과학동아》 연재를 읽으면서, ‘아, 양자 역학이 과거의 학문이 아니라 지금도 과학자들이 최신 문제로서 연구하고 있고, 응용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이론을 낳고 있는 살아 있는 학문이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런 느낌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이 출판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양자 역학 책들과의 차별점인 셈이죠.
김상욱 : 사실 오랫동안 어느 나라에서든 양자 역학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방식은 그 역사를 설명하는 거였죠. 저 역시 그런 책을 통해 양자 역학을 처음 접했고요. 그런데 아마 양자 역학을 정공법으로, 그러니까 “이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양자 역학 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 ‘양자 정보학’ 분야가 뜨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양자 역학은 오랫동안 물리학도에게는 대학 때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일 뿐이었고, 대중에게는 100년 전에 만들어진 기묘한 이론일 뿐이었죠. 현역 물리학자들에게 있어 양자 역학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옛날에 만들어진 학문일 뿐이었죠. 그런데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양자 정보학이라는 분야가 뜨면서 양자 역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죠. 현재 진행형인 이론으로 보게 된 거죠. 그때부터 사람들이 양자 역학의 ‘에센스’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양자 역학을 설명할 때에도 이 에센스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번 책에서 시도한 양자 역학 설명 방식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최근 양자 정보학이 차세대 정보 이론으로 급부상하면서 기초 학문인 양자 역학 역시 대중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 (주)사이언스북스.
SB :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는 것처럼 새로운 독자를 위해서는 새로운 설명 방식이 필요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책은 ‘나름 의미’만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 교양 과학책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 같아요. 아마 한국 교양 과학 출판의 역사에서 양자 역학 분야 책들은 『김상욱의 양자 공부』 이전과 이후로 나뉘겠죠. 저희가 단 부제대로 “완전히 새로운 현대 물리학 입문”인 거죠. 책을 펴낸 저희로서는 이런 책을 낼 수 있어 영광일 뿐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책 출간 후 《머니투데이》하고 인터뷰(머니투데이 기사 링크)를 하시면서 “인생은 양자 역학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의 경우에는 어떻게 바뀌셨나요? 그리고 독자들은 어떻게 바뀌길 바라시는지요? (웃음)
김상욱 : 저는 바뀌었습니다. 기자님이 기사 제목을 좀 ‘오버’해서 뽑으셨네요. (웃음) 다른 자리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기도 했고, 「양자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서도 자세하게 썼지만, 제 인생은 일본 물리학자 가타야마 야스히사가 쓴 『양자 역학의 세계』를 읽고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하면서 했던 말의 취지는 양자 역학의 등장이 인류 문명사를 바꾼 일종의 과학 혁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인류 역사에서 몇 번 일어난 과학 혁명 때문에 인류 문명이 크게 바뀌었잖아요. 굵직굵직한 것만 따져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으로 이어진 고전 물리학의 혁명이 있었고, 다윈의 진화론 등장을 전후로 한 생물학적 혁명이 있었죠. 고전 물리학의 혁명으로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서 쫓겨났고, 진화론 혁명으로 만물의 영장 자리에서 물러났죠. 양자 역학은 이 두 과학 혁명에 이어서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거죠. 사실 양자 역학은 상대성 이론보다도 더 크게 뉴턴 역학의 세계 이해 방식을 뒤바꿨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듯합니다. 응용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만들었죠. 사실 20세기 중반 이후의 현대 문명과 19세기 후반 문명의 가장 큰 차이는 양자 역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 문명의 기반이랄까, 하부 구조랄까 하는 걸 송두리째 바꿨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까지야…….’ 하고 다들 비웃던데, 참 안타까워요. 어떤 의미에서는 양자 역학의 진면목을 잘 몰라서 그 중요성도 간과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과학에 대해, 그 이론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사회잖아요. 다윈의 진화론도 그렇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화론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이 무엇을 바꿨는지 잘 감을 못 잡으시는 것 같아요. 우리가 잘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여러 사고 방식에 진화론이 많은 영향을 줬잖아요. 다윈의 진화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서구 사회를 뒤흔들었고, 현대에 와서도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의 형태로 강력한 충격을 줬죠. 양자 역학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서양에서는 했죠. 양자 역학 등장 이후 서양 사회에서는 이성이라든가 논리학이라든가 결정론적인 체계라든가 하는 것에 대한 반성도 깊이 이뤄졌죠.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알려지지 않아 많은 영향을 못 준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서건, 다른 책을 통해서건,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건 양자 역학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을 보는 틀이 좀 바뀌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인생도 조금 바뀌지 않을까요?
“인생은 양자 역학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양자 역학의 힘!
SB : 양자 역학이 가진 문명사적 가치에 대해서 우리 독자들과 지식인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죠. 그러면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그래도 양자 역학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뭐 양자 화학 쪽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반도체들을 공부하는 고체 물리학 쪽으로도 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천체 물리학 혹은 입자 물리학 쪽으로 갈 수도 있는데 지금 하고 계신 전공을 선택하시게 되는 과정에 양자 역학이 어떻게든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거잖아요.
김상욱 : 저는 예나 지금이나 양자 역학에서도 오로지 한 가지 측면에만 관심이 있어요. 사실은. 수십 년간 그것만 해 오고 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죠. 저의 관심사는 양자 역학과 고전 역학의 경계 문제에요.
좀 쉽게 설명해 볼게요. 물리학자들은 학창 시절에 양자 역학이 고전 역학을 포함한다고 배우죠. 어떤 조건에서 양자 역학의 ‘극한’을 구하면 고전 역학이 나온다 겁니다. 마치 상대성 이론에서 속도가 느려지면 고전 역학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양자 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그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자꾸 알게 돼요. 의외로 양자 역학과 고전 역학의 경계가 깨끗하게 나뉘지 않는 거죠. 물리학자들은 그 경계 문제를 여러 가지 형태로 논하는데, 그중 하나인 ‘측정 또는 관측’의 문제가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일 거예요. 바꿔 말하자면 ‘왜 원자는 양자 역학으로 기술되는데, 이 세상은 고전 역학으로 이해가 되는가?’에 대한 깨끗한 답이 없다는 거예요. 제 이해 방식으로는 그래요. 이 경계 문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양자 역학이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여러 사람이 온갖 해석을 내놓는 거지요.
이 문제는 어릴 때부터 제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이 문제를 탐구해 왔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제 전공 분야가 뭐냐 궁금해 하세요. (웃음) 왜냐하면 제 박사 학위 연구는 양자 카오스 문제와 관련된 ‘상대론적 혼돈 및 고전적 혼돈계의 양자 국소화’에 대한 것이었고, 졸업한 다음에는 포항공대에 가서 비선형 격자 문제를 풀었고, 그다음에는 카이스트로 돌아와 레이저 문제를 붙잡고 있었으며, 독일에 가더니만 ‘중시 물리학’이라는 고체 물리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식으로 분야를 계속 옮겨 다녔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이해를 못 했지요. 한국에 들어와서도 처음에는 통계 물리학 분과에 있다가 그다음에는 중시 물리학을 하다가 결국에는 양자 정보학 분야로 갔죠.
보통 물리학자들은 한 분과, 한 분야에 천착하고 평생 뼈를 묻는데 저는 4개 분과를 넘나든 셈이죠. 그러다 보니 정체가 뭐냐고 하는 분들이 많아졌죠. 하지만 제가 풀고 싶었던 건 한 가지 문제였어요. 바로 ‘경계 문제’였죠. 저는 경계 문제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연구를 해요. 사실 박사 학위 연구였던 양자 카오스 문제가 대표적인 예이죠. 카오스 또는 혼돈 현상은 고전 역학에는 있지만 양자 역학에는 없어요. 왜 그럴까?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지요.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의 ‘경계 문제’ 중 하나인 카오스 현상. 카오스 현상은 고전 역학에는 있지만 양자 역학에는 없다. ⓒ (주)사이언스북스.
그다음에 독일에 가서 연구했던 분야가 중시 물리학이었습니다. 중시 물리학이란, 거시계와 미시계의 중간 영역인 중시계(中視界)를 다루는 물리학이거든요. 수 마이크로미터와 수십 마이크로미터 사이에 있는 고전 역학을 쓰기에는 너무 작고, 양자 역학을 쓰기에는 좀 큰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는 물리학이죠. 정확히 경계 문제지요. 독일에 있을 때부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그런 문제들을 연구하다 보니 문제의 핵심에 여전히 측정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측정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결어긋남(decoherence)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죠. 결어긋남 문제를 한참 파다 보니까 그 핵심에 ‘정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부터는 정보 문제를 집중 연구하게 되었죠. 왜 정보냐고요? 물리학에서 ‘정보’ 문제를 다루다 보면 ‘맥스웰 도깨비’라는 패러독스를 만나게 되거든요. 그런데 맥스웰 도깨비도 두 가지가 있어요. 양자 맥스웰 도깨비랑 고전 맥스웰 도깨비. 결국 경계 문제인 거죠. 지난 한 7년간은 양자 맥스웰 도깨비를 가지고 씨름했죠.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온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어요. 세상 만물이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는 양자 역학으로 기술된다. 이 원자를 많이 모으면 우리가 흔히 보는 거시 세계가 되고, 거시 세계는 고전 역학으로 기술된다. 그런데 이 두 역학은 절대로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주를 기술하는 2개의 이론 체계가 있는 걸까? 물리학자들은 그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 물리학자들이 그 연결 부위가 매끄럽다고 주장을 하고 저도 그렇게 배웠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 주장에 완전하게 동의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만족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이 문제를 계속 연구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거라면 어떤 것이든지 연구해요. ‘하나의 문제를 두 가지 방식으로 풀었는데 답이 다르게 나온다. 이럴 경우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게 저희의 영원한 연구 주제인 거죠. 앞으로 10년이나 20년 안에 제가 마지막 책을 쓰게 될 텐데 그건 아마도 ‘경계’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거대 분자 풀러렌은 경계 문제의 또 다른 예인 중시계에 속해 있다. (cc) Itamblyn /wiki
이 책은 결국 경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SB : 그 말씀을 들으니까 이 책이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에서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양자 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을 중심으로 역사와 개념 원리를 다루고, 2부에서는 양자 카오스, 양자 컴퓨터, 다중 우주, 양자 생물학 등의 주제를 다뤘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네요. 특히 2부의 경우는 박사 과정 이후 선생님께서 지난 20년간 연구해 오신 것들을 한 챕터씩 소개를 하신 거잖아요. 지금도 재해석되고 궁리되고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핵심 원리들이 1부에 있고, 지금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한창 연구되고 있는 주제들이 2부에 있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선생님 20년 연구 인생이 녹아 있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김상욱 : 책 마지막 부분이 ‘정보’로 끝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지요. 제 생각에는 양자 역학에서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다 동의하는 건 아니죠. 그래도 이제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 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만 그렇게 이해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게 되어 가고 있죠. 브라이언 그린도 『우주의 구조』(박병철 옮김, 승산, 2005년)에서 간섭성, 그러니까 결맞음과 중첩 개념이 양자 역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깨달은 거지요. 양자 정보학이라는 분야가 뜨면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고 생각했던 걸 다시 들춰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거죠.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아직 양자 정보학이라는 분야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죠. 외국에서도 몇몇 학자들이 논의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죠. 당시까지만 해도 교과서든 교양서든 언제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중성과 불확정성 원리였죠. 교과서조차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 하나만 추가하면 고전 역학에서 양자 역학이 나오는 것처럼 가르쳤죠.
SB : 저도 잘은 모르지만 양자 역학에 대해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상욱 : 네. 저 역시 그런 인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그래서 이중성과 불확정성 원리,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이 책도 그렇지만, 심지어 불확정성 원리 없이도 양자 역학을 이야기할 수가 있더라고요. 공부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죠. 그리고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중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첩과 결맞음, 결어긋남 이런 게 훨씬 중요한 개념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 거죠. 사실 전 지금도 물리학자들, 특히 대가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그래요. “불확정성 원리가 중요한가요, 이중성이 더 중요한가요, 아니면 중첩이 더 중요한가요?” 하고요. 아니면 이 세 개념이 서로 독립적인지, 하나에서 다른 것이 나오는 건지 묻곤 하죠. 그러나 누구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해요. 대가들도 실상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저는 답을 알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왔다 갔다 하는 거지요. 지금은 중첩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여기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전히 우리가 답을 깨끗하게 못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양자 역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양자 역학은 100년이나 된 학문이고, 다들 이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온전히 이해되지 못한 학문인 거죠. 그래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거예요.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토프트한테 “앞으로 20, 30년 내에 물리학에 큰 변혁이 일어난다면, 아니 또 한 번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혁명은 어디서 일어날까요?” 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는 다수의 물리학자들과 똑같은 답을 했죠. 물리학의 근본을 흔들 혁명은 양자 역학에 대한 이해 방식에서 올 것이라고. 아마 그 부분에 뭔가 좀 불편한 게 있는 거예요. 모두가.
SB : 양자 역학이 아직 ‘진행 중’인 학문이라는 뜻이군요.
김상욱 : 그런 표현은 좀 위험하죠. 저는 사람들한테 혼란을 줄까 봐 그런 식의 표현을 좀 아낍니다. 그러니까 마치 양자 역학이 아직 정립 안 된 학문인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어요. 제가 이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듯이, 양자 역학에서 문제가 되는 측면은 이해가 안 된다는 측면이지만, 그게 아직까지는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는 것이에요. 아직까지는. 그런데 어딘가 불편한 것뿐이죠. 다들 뭔가 불편한데, 그리고 그 불편함이 큰 변혁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고 안 줄지도 모르지만, 뭔가를 가져다줄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느낌만 받고 있는 거죠. 그게 현재 우리가 가진 양자 역학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양자 역학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학문입니다.
SB : 그럼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보어나 하이젠베르크는 인간의 일상 언어에 한계가 있어서 또는 인식이 일어나는 인간의 뇌 구조에 한계가 있어서, 수학적으로 완성된 양자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시는 편인지요? 우리가 언젠가 양자 역학을 이해하고 기술하기에 적절한 일상 언어와 인식 체계를 가지게 된다면, 말씀하신 그 ‘불편함’이 사라지게 될까요?
김상욱 : 당연히 저는 그런 질문에 답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양자 역학은 수학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니 당연히 자체 완결된 학문이라고 해야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아직 이해 못 하는 게 있어 찜찜할 뿐인 거죠. 특히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측정’과 관련된 부분이죠. 그래서 이 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해석들이 나온 거죠.
물리학에는 이것 말고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예컨대, 생명 현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 아직 못 하고 있고, 양자 복잡계, 그러니까 복잡한 양자 시스템들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있죠. 대표적인 게 고온 초전도체 같은 거죠. 그리고 양자 중력 같은 문제에서는 꽉 막혀 있죠.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이 문제들이 단순히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있어서 새로운 사실 몇 가지만 더 발견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오랫동안 풀었는데 안 풀리는 건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고 있는 우리의 이해나 해석이 실제로는 견고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므로, 우리 연구의 전제가 되는 이해나 해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고 있어요. 이런 문제에 빠질 때마다 ‘양자 역학’이 거론되는 거죠.
항상 그렇지만 뭔가 찜찜한 게 있으면 그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잖아요. 우리가 지금 풀고 있는 낮은 수준의 문제를 다루는 데 양자 역학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높은 수준의 문제를 다룰 때 양자 역학을 써도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이런 고민에 부딪힐 때마다 항상 양자 역학에 대한 이해 부족이 물리학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말들이 나오게 되는 거죠. 양자 역학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은 다 그런 측면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양자 역학은 아무 문제가 없지요.
아무튼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서 거의 다 이야기한 것 같아요. 하늘 아래 그 어떤 것도 새롭진 않기 때문에 부제처럼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 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죠.
SB : 겸손의 말씀이시고요. 그럼 주제를 좀 바꿔 볼까요?
김상욱 경희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다음 편에 계속)
※ 관련 도서 ※
※ <양자 번개> 강연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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