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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1) 본문

(연재)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1)

Editor! 2019.07.08 10:15

1969년 7월 20일은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지요. 달 착륙은 냉전 시기 미국과 (구)소련 간 경쟁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향할 인류의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한 사건이었습니다.
2019년 7월, ㈜사이언스북스에서는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연재를 진행합니다. 네 차례로 나뉘어 소개될 이번 연재는 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의 김범준 교수께서 2019년 1학기에 하신 ‘코스모스와 인간’ 강의에서 학생들이 쓴 소감을 모아서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이 소감 하나하나에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의 관점으로 읽은 『코스모스』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코스모스』를 통해 우주로 첫발을 내디딘 때는 언제인가요? 이번 연재가 독자 여러분께 『코스모스』가 존재하는 방식을 다시 한번 궁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학기 성균관 대학교 인문, 사회, 예술 대학 학생들과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코스모스와 인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읽고,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책의 내용과 다른 학생들의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로부터 자신만의 생각을 갖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인문/사회/경영/예술 등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코스모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책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어도, 학생들이 제출한 글이 정말 다양하고 흥미로워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읽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조로 나눠 학생들이 토론한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같은 내용이어도,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토론한 주제가 다양해서 흥미로웠습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 많은 학생들이 인간과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코스모스』의 주요 메시지들이 학생들이 적은 소감문에 들어 있어서 기뻤습니다.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몇 글을 올립니다. 원 저자는 ‘코스모스와 인간’ 수강생입니다. 제게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회의감에 빠지지 않고


『코스모스』를 읽은 후, 나의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말에는 전혀 과장이 섞이지 않았다. 『코스모스』를 읽는 시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진지하게 내 존재를 성찰해 본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생긴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어떻게 무에서 대폭발(Big Bang)을 거쳐 우주가 시작되고,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태어났을까? 어떻게 그 속에서 물질이 생명을 가졌으며, 드디어 이성을 갖춘 ‘나’라는 인간이 『코스모스』를 읽고 감격할 수 있게 되었을까?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드디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감명 깊었다. 마치 어떤 대단한 연출가가 심사숙고 끝에 철저한 시나리오를 써 놓았듯이 『코스모스』는 드라마틱하게 흘러간다.

광막한 우주에서 별 볼 일 없는 우리 은하, 태양계, 행성 지구, 그 지구 생태계에서도 특별할 것 없는 종이 인간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인류가 지성을 갖추게 진화한 것도, 지구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하게 된 것도 수많은 변수와 우연의 산물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코스모스는 그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다.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분명히 인간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코스모스가 유일한 것인지, 최초로 탄생한 것인지, 그 끝은 어떨지, 더는 탄생하지 않을 것인지조차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코스모스 앞에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무력감을 느끼거나, 회의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저 아득하게 넓은 우주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차원 앞에 겸손해질 뿐이다. 내가 무력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비록 이 코스모스의 중심은 내가 아니지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엄청난 행운으로 나라는 존재가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선물처럼 주어진, 단 한 번뿐인 내 삶을 그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기에, 삶에 더 애착을 갖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게 된다. 나의 삶만 행운인 것이 아니다. 부모님도, 주변의 친구들도, 이름 모를 행인 한 명도, 하수구의 쥐 한 마리도 저마다 엄청난 행운으로 태어났으며, 각자 삶의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나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배운다. 『코스모스』라는 과학책에서 그 어떤 가르침보다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학창 시절에 지구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문과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과학이라는 분야와 벽을 쌓은 채 살아왔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 존재의 근원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들었고, 다시 과학 공부를 진지하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인간이 우리의 근원 코스모스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날에는 저절로 눈물이 흐를 만큼 감격스럽지 않을까?

─ 오민아 (영상학과)

 



흐름을 거슬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우리 사회는 유달리 ‘글 잘 쓰는 과학자’나 ‘글 잘 쓰는 의사’ 같은 표현을 사랑하는 것 같다. ‘글 잘 쓰는 한문학자’나 ‘글 잘 쓰는 정치학자’ 같은 표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아주 어릴 때부터 수험 공부를 위해 문·이과를 나누는 교육을 해 온 탓에 “이 사람은 이과” 혹은 “이 사람은 문과”라는 식으로 사회적 구분이 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확률로 생각해 봐도 100퍼센트 문과형, 100퍼센트 이과형처럼 양극단에 있는 인간이 그리 많을 리 없다. “나는 수학 점수가 잘 안 나와서 문과로 왔지만 과학은 정말 좋아해.”라든지 “나는 소설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부모님께서 나더러 이과로 가라 하셔서 이과로 왔어.”라는 적당한 느낌의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문학적인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딱딱한 숫자와 기호가 지배하는―혹은 그렇게 느껴지는―‘이과인’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탓에 우리 사회는 글 잘 쓰는 ‘이과인’들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코스모스』를 완독한 후, 문학적 소양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훌륭한 과학자, 최소한 훌륭한 천문학자가 되기 위한 필요 조건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서, 인류와 사회에 대한 애정과 낙관주의적 가치관이 없다면 과연 과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여태까지 읽은 문학 작품 중에는 작가가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 있거나, 최소한 인간 군상의 치열한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허무주의에 빠져 “다 쓸모없어. 우리는 어차피 우주의 먼지 한 톨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천문학자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연구에 뛰어들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과학이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주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데 가치를 두는 학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는 수많은 학자를 좀 더 존경하게 된다. 그들은 날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뛰어난 머리와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법칙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머리가 좀 이상한 것 아니냐는 비난과 조롱을 듣고, 가끔은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멍청이로 보이기도 하고, 미친놈이나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는, 그 모든 것을 감내했음에도 수없이 실패하는 이들이 오늘날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상식’을 만든 사람들이다.

“원천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라고 폴란드의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Zbigniew Herbert)가 말했다. 4학년이 된 나는 평생 나와 함께였던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다른 것으로 바꿔 달 준비를 하고 있다. 주변과 사회의 보호가 당연시되던 학생이라는 좁은 세계를 넘어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지구에서 우주로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두렵고 막막하기만 하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막 착륙해 계단을 내려가는 암스트롱의 사진 

『코스모스』를 읽기 전에는 다른 책도 아니고 과학책이 나에게 이렇게 위안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칼 세이건은 고통 또한 우주가 정한 질서의 하나라고 말했다. 알지 못하는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은 망망대해 한복판에 버려진 것처럼 고독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나 혼자만 고통스러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고등 동물로 진화한 대가로, 우주는 우리에게 고통과 혼란과 폭력이라는 책무를 부여했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두렵고 당황스럽지만 고독과 고통, 혼란은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둘러메고 가는 책임이자 숙명이다. 많은 것을 알기에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죽기 직전까지 고민하던 칼 세이건의 모습에서 나는 이러한 것을 느꼈다. 우리가 이 좁디좁은 지구에서 인류로서 살아가는 이상,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바로 그곳에서 인류애와 인류의 존재 의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 이수민 (소비자 가족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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