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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3) 본문

완결된 연재/(完)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3)

Editor! 2019. 7. 15. 09:29

1969년 7월 20일은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지요. 달 착륙은 냉전 시기 미국과 (구)소련 간 경쟁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향할 인류의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한 사건이었습니다. 
2019년 7월, ㈜사이언스북스에서는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코스모스』와 인간, 그리고 나」 연재를 진행합니다. 네 차례로 나뉘어 소개될 이번 연재는 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의 김범준 교수께서 2019년 1학기에 하신 ‘코스모스와 인간’ 강의에서 학생들이 쓴 소감을 모아서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이 소감 하나하나에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의 관점으로 읽은 『코스모스』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코스모스』를 통해 우주로 첫발을 내디딘 때는 언제인가요? 이번 연재가 독자 여러분께 『코스모스』가 존재하는 방식을 다시 한번 궁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학기 성균관 대학교 인문, 사회, 예술 대학 학생들과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코스모스와 인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읽고,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책의 내용과 다른 학생들의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로부터 자신만의 생각을 갖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인문/사회/경영/예술 등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코스모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책에서 같은 내용을 읽었어도, 학생들이 제출한 글이 정말 다양하고 흥미로워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읽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조로 나눠 학생들이 토론한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같은 내용이어도,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토론한 주제가 다양해서 흥미로웠습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 많은 학생들이 인간과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코스모스』의 주요 메시지들이 학생들이 적은 소감문에 들어 있어서 기뻤습니다.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몇 글을 올립니다. 원 저자는 ‘코스모스와 인간’ 수강생입니다. 제게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쓸모없고 소중한


‘나’의 존재, 그 자체에 의문을 품은 날들이 참으로 많았다. 나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은 갓 스무 살이 되어서부터 시작해 가끔씩 나를 찾아와 밤낮으로 괴롭혔다. 정답을 찾기 위해 철학책을 탐독해 보기도 하고, 성당에 가서는 신부님께, 절에 가서는 스님께 찾아가 내가 무엇으로부터 존재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무엇도, 누구도 내게 명쾌한 해답을 내려 주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최고가 아니면 돌아봐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면서 더욱더 특출한 사람이 되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왜 그들같이 뛰어나지 못한가?’라는 자괴감은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번져 갔다. 그때의 나는 열등하고 도태된 인간이었다.

『코스모스』에서는 우리의 “특출하고 대단한” 지구를 광막하고 새까만 우주 속 작고 부서지기 쉬운 점 따위로 강등시켜 버린다. 또한 우리의 인생을 우주적 시간에 비해 아주 짧은 찰나로 묘사하며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갖고 있는 오만함의 콧대를 짓밟아 버린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코스모스의 이런 멸시에 희열을 느꼈으며 심지어 따뜻한 위로의 감동까지 받았다.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이 별 먼지에서 태어난 광활한 우주 속 아주 티끌만 한 존재임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특별하게 태어나지 않은 나 자신을 향한 평생의 질책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내가 겨우겨우 붙잡고 있는 하찮고 쓸모없는 연극이라는 예술에 내 찰나의 생애를 바칠 만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이 책, 『코스모스』를 통해 나에게 메시지를 줄곧 보내오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아도 가치 있으며, 쓸모없을지라도 소중하단다.”


─ 조다은 (연기예술학과)



과학과 인문, 신화와 위인전


『코스모스』는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지만 두께 때문에 차마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던 책이었다. 인문계이기는 하지만 중학교 때 천문대를 다니기도 했고, 천문학을 사랑하는 행정학도가 되고 싶었던 나는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꼭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코스모스와 인간’이라는 강의를 신청했으며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듣게 되기는 했지만, 내가 과학 서적과 물리학 교수님의 수업을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코스모스』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책은 내게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코스모스』를 다 읽은 지금, 이 책은 나에게 지구와 우주에 대한 지식이 담긴 과학 서적이면서, 하늘을 갈망하고 동경하던 고대 신화와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주의 근원을 알아내려고 애쓰던 많은 과학자의 위인전이기도 한 동시에 나 자신의 근원을 돌아보게 하는 인문 서적이다. 강의 시간에도 과학적인 지식은 학우의 발제와 교수님의 설명으로 듣고, 학우들끼리 모여 토의하는 시간에는 현재의 천문학 이슈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시간이 주어져 재미있었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토의 시간마다 거의 빠짐없이 나온 주제는 이 거대한 우주가 질서를 유지하며 존재할 확률과, 우주 속에서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가 이 지구라는 행성에 알맞게 진화할,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하게 작은 확률로 우리가 존재할 가능성이었다. 나는 인류의 문화가 이 믿을 수 없는 확률을 의심하면서부터 발전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근원에 대한 확률을 믿지 못해 전지전능한 신과 종교를 만들어 냈고, 그 확률을 탐구하면서부터 자연 과학이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런 확률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고찰한다면 그것이 인문 과학이 된다. 이 수업을 수강하는 지금도 나는 그 엄청난 확률을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그 모든 확률과 질서, 그리고 진화의 주체인 자연과 억겁의 시간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졌다. 

또 말할 수 없이 작지만 가장 특별한 이 행성 위에서 세대를 이어 나가며 수학적, 철학적, 경험적으로 진리를 탐구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책을 읽기조차 두려워했던 내가 보잘것없어지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전공인 행정 즉 국가 경영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어 국가 시스템을 진화시키고 구축하는 일 아닐까? 자연에서는 진화의 주체가 시간과 자연이고 인간은 그 대상이지만, 사회에서는 인간이 진화의 주체가 되니 말이다. 또 『코스모스』에서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화성 착륙과 탐사를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지금도 연구 중인 연구원들처럼 끈기를 갖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잘못된 믿음과 싸워 동경하던 우주의 일부가 된 케플러처럼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광활한 우주를 끝없이 나아가는 보이저 호처럼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성간 우주로 진입하는 보이저 1호의 상상도. (NASA/JPL-Caltech)


─ 김민주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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