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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주의자 : 반쯤 잠긴 무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Editor! 2019. 11. 26. 14:39

반쯤 잠긴 무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습지주의자

김산하 지음

 

나는 습지에서 내 삶의 방식을 느꼈다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의 습지 예찬

 

현대 사회에서 습지는 ‘노는 땅’,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땅으로 폄하됩니다. 설령 지구 표면적의 6퍼센트를 차지하며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는 경제 논리에 의해 쉽게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간혹 일부 습지가 시혜적으로 생태 보전 구역으로 할당되어 개발을 면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에 둘러싸인 채 다른 생태계와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된 습지는 실질적으로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저 환경이 보전되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킬 뿐입니다. 이처럼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공감하지만 생태학적 지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나, 생태학적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가치와 감각 체계에 변화를 주는 것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가 요청되어 왔습니다.

 

생태학과 예술의 통섭을 모색하고 실천하면서 생태학의 목소리를 꾸준히 앞장서 내 온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신작 『습지주의자』가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픽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습지라는 공간을 생명의 서식지이자 다양한 생각과 감수성,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조명합니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습지가 지닌 독특한 위상을 탐구하는 한편, 습지가 선사하는 충만한 감각들을 도시 사람들에게 일깨워 줌으로써 생태적 관점을 체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생태학은 자연이 스스로를 표현하게 해 주는 언어이며, 픽션은 평범한 한 인물이 습지주의자가 되기까지를 탐구하는 형식입니다. 본격적인 ‘생태 예술’로 꼽힐 만합니다.

 

이 책을 쓴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인 김산하 박사는 이미 『비숲』에서 과학적 탐구와 인문학적 사색을 결합한 글쓰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유유히 나무를 타고 달아나는 긴팔원숭이와 쫓고 쫓기는 모험을 펼치며 그들과 차츰 연결되어 간 그가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 ‘비숲’을 지나 이번에 당도한 곳은 습지입니다. 생태학 연구자인 그가 습지에 매료된 까닭을 이 책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연구자이자 그림작가, 비건이자 환경 운동가로 활약 중인 김한민 작가가 변화무쌍한 습지의 모습을 표지에 담아 보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습지는 생성과 소멸의 변주곡이 울려 퍼지는 곳

이 책은 ‘나’라는 인물이 영상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가 ‘장’이라는 축으로, ‘나’가 듣는 습지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가 ‘무대’라는 축으로 교차 배치되는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총 24개의 장과 무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나’가 「반쯤 잠긴 무대」를 들으면서 생태적 감수성을 경험하고, 그것을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영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들려줍니다.

 

‘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현재는 부업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나’는 도시에 사는 도시 부적응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세상으로 나와서 모든 것이 짜여 있는 연결망에 접어들었다가,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해프닝이랄 것 없이 하루를 마치는 도시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되풀이하며 권태를 느낍니다. 게다가 부업을 해 가며 만든 영상마저도 다수는 세상에 내놓을 이유가 없게 느껴진다고 ‘나’는 말합니다.


그런 ‘나’가 어느 날 인터넷을 헤매다 우연히 「반쯤 잠긴 무대」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마침 한 환경 단체로부터 영상 제작을 의뢰받습니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이용할 ‘생태 통로’를 주제로 하는 홍보 영상입니다. 처음에 ‘나’는 이 일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며, 또한 세상 곳곳을 연결하는 것으로만 보이던 인간의 도로가 두꺼비나 개구리에게는 차단과 죽음을 뜻한다는 모순을 깨달으며 내면에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도시인이자 창작자로서 ‘나’의 내면에 생겨나는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한편, ‘나’의 시선을 통해서 도시의 광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합니다.


"이곳은 습하면서도 마르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합니다. 물과 땅이라는 지구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상호 이질적인 물질들이 마법처럼 공존하는 곳입니다. …… 두 세상의 경계이자 어엿한 하나의 독립 세계, 수분과 대지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곳. 네, 그렇습니다. 습지가, 반쯤 잠긴 무대입니다." ―본문에서

 


 

온라인 서점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차례 

1장 / 무대 1 / 2장 / 무대 2 / 3장 / 무대 3 / 4장 / 무대 4 / 5장 / 무대 5 / 6장 / 무대 6 / 7장 / 무대 7 / 8장 / 무대 8 / 9장 / 무대 9 / 10장 / 무대 10 / 11장 / 무대 11 / 12장 / 무대 12

에필로그
참고 문헌
도판 저작권

 


 

김산하
서울 대학교 동물 자원 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생명 과학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 국립 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해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로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태학자로서 자연과 동물을 과학적 방식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뿐 아니라 자신과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를 더욱 설득력 있게 알리기 위해 생태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 영국 크랜필드 대학교 디자인 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비숲』, 『김산하의 야생학교』,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STOP!』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