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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북 키네마] 분노의 전차, 호랑이를 만나다: M4 셔먼 본문
한국 전쟁 70주기를 맞아 『탱크 북』의 저자 이성주 선생님의 「탱크 북 키네마」 연재가 '앵콜' 연재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속에서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전차전의 명장면을 뽑아 소개할 예정입니다. 영화 화면을 압도했던 전차들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전차와 인간의 대결은 역사와 영화를 바꿔 나갔을까요? 영화 속 전차의 활약상을 세계 전쟁사와 함께 짚어나가는 (주)사이언스북스의 앵콜 연재 매주 금요일 「탱크 북 키네마」에 주목해 주세요!
분노의 전차, 호랑이를 만나다
M4 셔먼
영화 「퓨리(Fury)」의 주인공은 M4 셔먼 전차다. 이때까지 역사에서, 또 영화에서 독일군 전차에게 미친 듯이 깨지면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셔먼은 마침내 독일 전차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티거(Tiger)-I을 스크린으로 끌어내 격파한다.
“바이블 기다려!” 영화 안에서 가장 긴박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티거 전차와의 일전에서 티거의 가장 약한 후면 장갑을 노리기 위해(대부분의 전차는 후면 장갑이 얇다. 보통 피탄 확률이 가장 높은 정면이 가장 두텁다) 후진을 명령하는 전차장 워 대디(브래드 피트), 포수인 바이블은 장전수를 채근하며 티거의 꽁지에 철갑탄 2발을 먹인다. 불타는 티거를 뒤로한 채 머리를 감싸며, ‘하느님 맙소사!’를 웅얼거리는 장전수와 반쯤 혼이 나간 포수. 이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였다. “셔먼은 약하다.”
티거 I 한 대를 잡기 위해 전차 세 대가 차례로 박살나고(한 대는 매복에 걸려 티거를 보기도 전에 박살났다.), 셔먼의 75밀리미터 철갑탄을 정면에서 튕겨내고, 반대로 티거의 88밀리미터 주포(56구경장 88밀리미터 대공포의 위력!)는 셔먼의 정면 장갑을 버터 자르듯 뚫고 들어가 박살낸다.
론슨 라이터 논란
M4 셔먼을 말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 진위 논란은 차치하고 바로 론슨(Ronson) 라이터 논란이다. 한방 맞으면 바로 불이 붙는다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그 정도로 셔먼은 약했던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미군으로서는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셔먼 전차 개발이 1940년, 생산이 1941년부터였다. 이 당시 미군은 독일군의 3호 전차, 4호 전차를 기준으로 전차를 만들었다. 360도 회전이 되는 회전 포탑에 75밀리미터급 주포, 비록 차고가 높아 발견될 확률은 높았지만 당시 적으로 상정한 3, 4호 전차보다 장갑 면에서는 앞섰다. 셔먼 초기형의 정면 장갑은 51밀리미터에 56도로 실 방어력은 93밀리미터(당시 독일군 주력이던 4호 전차 H형이 80밀리미터 수준이었다.)에 이르렀다. 1941년 기준으로 봤을 때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면에서 결코 떨어지는 전차가 아니었다. 이 당시 셔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전차는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4호 전차나 소련을 승리로 이끈 T-34 정도였다.
문제는 독일의 ‘야수 시리즈’와 맞닥뜨리면서였다. 바로 5호 전차 판터(Panther, 표범), 6호 전차 티거(Tiger, 호랑이) 들이다. 높은 관통력을 자랑하던 70구경장 75밀리미터 포에, T-34에 영향을 받은 경사 장갑(경사각을 주어 직사화기에 대한 방어력을 올린 장갑 구조)으로 방어력을 높였고, 기동력도 나름 쓸 만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차들 중 공격, 방어력, 기동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물론, 이를 무색케 할 정도의 잔고장과 측면 장갑의 빈약함, 장거리 주행의 어려움 등등의 문제도 있었다.) 현대적인 전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연합군을 모두 공포에 떨게 했던 6호 전차 티거. 독일군의 이 야수 시리즈 앞에서 셔먼은 말 그대로 ‘학살’을 당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영화 「퓨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가솔린 엔진이라 피탄 한 번 당하면 바로 불이 붙어 버려.” 전차병들은 셔먼에 대해 악감정을 품는데, 군인 특유의 허풍과 과장이 섞인 말들이다. 요즘이야 전차의 엔진은 당연하게도 디젤 엔진이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디젤 엔진을 달고 전장을 내달릴 수 있었던 전차는 T-34 정도가 고작이었다. 원래 디젤 엔진이 불이 잘 안 붙는 장점은 있지만, 디젤 엔진은 같은 출력의 가솔린 엔진보다 크고 무겁다. 때문에 비싸다. 게다가 당시 기술력으로는 고출력을 낼 정도의 엔진을 만들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가솔린 엔진을 쓰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한 번 포탄에 피격되면 그대로 불이 붙는다고 했지만, 가솔린에 불이 붙는 것보다 탱크 안에 적재된 포탄이 유폭돼 불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탄약고 주변을 물로 채워서 유폭을 방지하는 습식 탄약고(wet stowage)를 채용하면서 화재 비율을 낮췄다.
장갑에 관해서도 언급하자면, 셔먼은 동급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2000cc 중형 세단을 가져와서는 6000cc 대형 세단의 안전성과 주행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M4 셔먼은 중형(中) 전차, 체급으로 치자면 미들급이다. 반면 독일군의 야수 시리즈는 아무리 낮게 봐도 라이트 헤비급(티거 2형은 슈퍼 헤비급)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셔먼의 잘못이 아니다. 소련의 사례를 보자.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연합국의 지원을 받았던 소련은 랜드리스(Lend-Lease, 무기 대여법)로 M4 셔먼을 받았다. 그러나 소련 내에서는 셔먼에 대한 불평 불만이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소련은 독일군의 야수 시리즈를 상대할 다른 헤비급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 전차 시리즈나, KV-1, KV-2 전차, 여기에 SU-100같은 구축 전차 형태의 ‘물건’들이 넘쳐났다. 야수 시리즈는 이런 헤비급 선수들에게 맡기고, 보병 지원 등에 나섰다. 소련 전차병은 거주성이 좋다며 셔먼을 좋아했다.
문제는 미국인데, 미국은 전쟁 말기까지 오로지 M4 셔먼 한 종류를 가지고 전쟁을 치르면서 이 사단이 터진 것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미국의 헤비급 선수라 할 수 있는 M26 퍼싱 전차가 나왔다. 1944년 11월에 생산이 시작됐고, 전쟁이 거의 끝났다 할 수 있는 1945년 2월이 돼서야 ‘겨우’ 242대가 생산됐다.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전장에서의 소모율 덕분에 병사들에게 온갖 악평을 들어야 했던 셔먼이지만, 셔먼은 전쟁 내내 엄청난 확장성을 보여 줬다. 5만 대 가까이 생산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모든 전선에 얼굴을 들이밀었고,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연합군들에게 공여됐다. 영국에서는 셔먼의 부족한 화력을 보완하겠다고 여기에 17파운드 포를 장착. 그 유명한 파이어 플라이(Sherman Firefly)를 만들어 냈다. 정작 영국군 전차병들은 파이어 플라이에 타기를 두려워했다. 독일군은 이 위협적인 전차를 제일 먼저 잡으려 했고, 영국군은 기다란 장포신을 감추기 위해 흰 페인트를 구해 포신 절반까지만 흰색으로 칠했다. 미군도 셔먼의 온갖 악평을 끝내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고, 개량 작업에 나섰고 그 결과가 그 유명한 ‘이지 에잇(Easy 8)’, 바로 영화 「퓨리」에서 ‘퓨리’로 등장한 M4A3E8형(E8형을 떼서 ‘Easy 8’이라 부른다.)이다. 그 동안 온갖 악평을 들어야 했던 VVSS 현가장치를 HVSS 현가장치로 변환시켜 서스펜션의 개량으로 셔먼은 전혀 다른 전차가 됐다. 주포도 76밀리미터로 바꾸면서, 셔먼의 기본적 형태는 완성된다. (『탱크 북』 85쪽에 영화에 등장한 바로 그 전차가 실려 있다.)
이후 셔먼은 한국 전쟁을 거쳐 이스라엘이 치른 4차례 중동전에 모두 얼굴을 들이밀게 된다. 건국 초부터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전차를 구하러 다녔던 이스라엘이 가장 원했던 전차가 바로 셔먼 ‘Easy 8’형이다. 무기 개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은 이 셔먼 전차에 프랑스 AMX-13 전차의 주포인 75밀리미터 포를 장착한 슈퍼 셔먼, 여기에 다시 105밀리미터 포를 장착한 아이 셔먼까지 갖가지 형태로 개조했고, 쓰다 쓰다 안 되니 구난 전차, 관측 전차, 의료 지원 차량 등등 수많은 파생형을 만들며 알뜰살뜰 사용했다.
영화상에서는 독일군 전차에 판판히 깨지는 엑스트라 같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M4 셔먼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나름의 역할을 다했던, 결코 약하지 않은 전차였다. 동 시대 유럽 전선에서는 야수들이 뛰어 다니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군의 저승사자였던 게 바로 셔먼이었다.
“아니 왜 나보고 야수들을 상대하라고 해? 퍼싱 언제 나와?” 셔먼으로서는 억울할 법 했을 것이다. 실제로 셔먼은 전장에서 나름 야수 시리즈를 잘 잡았다. 아라쿠르(Arracourt) 전투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독일군 3호 돌격포, 4호, 5호 전차를 상대로 승리했다.(나름 쓸 만 한 전차였다!) 잘 싸운 셔먼이지만, 독일 군 야수 시리즈의 강한 임팩트 덕분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었던 셔먼. 영화 「퓨리」의 제목처럼 셔먼으로서는 격노(fury)할 시절이었다.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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