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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북 뮤지엄] <썬더볼트의 밀리터리 여행> 아르덴을 가다: 프랑스 침공과 밴드 오브 브라더스 본문
[탱크 북 뮤지엄] <썬더볼트의 밀리터리 여행> 아르덴을 가다: 프랑스 침공과 밴드 오브 브라더스
Editor! 2020. 7. 16. 16:13
썬더볼트의 밀리터리 여행
아르덴을 가다:
프랑스 침공과 밴드 오브 브라더스
아르덴,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룩셈부르크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삼림 지대를 말합니다. 위치의 특성상 이 곳에서는 과거부터 수많은 세력들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분수령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전 회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독일은 양면 전쟁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피해 제2차 세계 대전 또한 단기 결전으로 끝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여기에는 크나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바로 마지노선(Maginot Line)입니다. 지난 대전에서 참호의 위력을 톡톡히 맛봤던 프랑스는 독일과 맞닿는 전 국경에 걸쳐 거대한 요새선을 구축해 왔습니다. 참호를 넘어 육중한 장갑과 콘크리트를 두른 벙커들이 건설되자 독일로서는 도저히 이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르덴 남쪽으로 향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벙커들을 견학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전력을 다해 만들어 낸 방어선인 만큼 지금까지도 그 견고함을 자랑합니다.
벙커들은 마치 빙산과 비슷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구조물보다 지하에 만들어진 시설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능선을 따라 지하로 연결된 총안구와 포탑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폭격과 포격을 아무리 퍼부어도 무력화가 불가능한 이런 시설이 수백 킬로미터나 겹겹이 구축되어 두꺼운 종심을 형성했습니다. 전후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는 관용어가 되어 버릴 정도의 막강한 마지노선을 앞에 두고 독일 제3 제국 참모들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을 해결한 사람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장군입니다. 전략적인 방면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던 만슈타인 장군은 1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했던 슐리펜 작전을 수정하여 지헬슈니트(낫질)작전이라 명명하여 2차 대전에 적용시켰습니다.
사실 마지노선은 반쪽짜리 방어선이었습니다. 동맹이었던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개전 시 자신들이 마지노선 앞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해 마지노선의 연장을 격렬히 반대하여 결국 마지노선은 벨기에 국경을 옆에 둔 채 건설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방편으로 벨기에 방면으로는 대규모 연합군이 배치되었지만 마지노선과 연합군 주력 사이에는 아르덴 숲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만슈타인은 아르덴 숲을 주목합니다.
기갑 부대가 아르덴을 통과해 스당을 공격한다는 것은 쥘 베른의 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하다.
─ 프랑스 육군 참모부
스당 돌파는 문제를 공세적으로 해결하는 작전의 열쇠가 될 것이다.
─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이제야 우리는 스당 돌파에 성공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있는데 우리의 전투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실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천천히,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성공 적으로 마스 강을 도하했음을 적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의 후방으로 우리의 기갑 부대가 진격하고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숨겨야 한다.
─ 독일 국방군 제2 기갑 사단 전투 보고서
프랑스는 아르덴의 빼곡한 삼림을 믿었습니다.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이곳으로 대규모 군대가 공세를 가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은 채 최소한의 방어선만 구축하게 됩니다. 만슈타인과 독일 기갑 부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데리안 장군은 아르덴 숲을 답사하며 프랑스 참모부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렇게 독일군의 주력은 아르덴을 관통하여 프랑스의 도시 스당으로 몰려듭니다.
일부러 아르덴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봤습니다.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달려도 끝이 나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삼림이 저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보다도 정비가 훨씬 안 되어 있었던 1940년, 야전군 단위의 병력이 이곳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아르덴 숲과 마스 강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이중으로 구축된 이곳의 방비를 소홀히 한 연합군의 대처도 조금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연합군의 방심은 전략적인 실책이 되었고 독일군은 아르덴과 스당을 지나 프랑스 내부로 진격, 연합군의 주력을 포위 섬멸하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는 개전 6주 만에 어이없이 항복을 선언합니다.
스당은 19세기에도 프랑스에게 패배를 안겼던 지역입니다.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프로이센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날린 프랑스. 보불 전쟁에서 제대로 된 병력 동원 없이 무리하게 공세를 지속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는 프로이센의 역습에 스당 성으로 군대를 물리게 됩니다. 프로이센 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당을 포위해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아 내었습니다. 이렇게 제정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스당 성은 성 전체가 보불 전쟁 박물관 겸 호텔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포격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근대 요새의 특유의 투박하고 각진 모습과 호화스러운 내부 호텔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서 꼭 묵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시간이 지나 1944년 12월,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었던 아르덴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전투가 일어납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발지 대전투,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독일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연합군을 몰아붙인 아르덴 대공세(Battle of Bulge)입니다.
1944년 말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 모두 전투가 진정 상황에 들어갑니다. 영미군과 러시아군 모두 길어진 종심으로 인하여 보급에 난황을 겪으며 공세 종말점에 도달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연합군 수뇌부의 욕심으로 인해 네덜란드에서 무리하게 수행한 마켓 가든 작전은 참패로 끝났습니다. 이 상황에서 독일에게는 한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잠깐의 재정비를 마친 독일군은 개전 초기와 같이 아르덴 숲을 통하여 서쪽으로 대공세를 펼치게 됩니다. 아르덴 공세는 독일에게 마지막으로 승패를 뒤집겠다는 모든 것을 걸은 도박이었습니다. 그 결과 1944년 12월 연합군은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되었고 독일은 위의 지도같이 서쪽으로 향한 돌출부(bulge)를 가지게 됩니다. 바스토뉴에서 포위되어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겨울 내내 공방전을 벌여야 했던 부대는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유명한 제101 공수 사단입니다.
“할아버지는 전쟁 영웅이었어요?”
“아니 단지 그들과 함께 싸웠을 뿐이란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제101 공수 사단 506연대 소속 이지 중대는 바스토뉴 북쪽의 작은 마을 포이를 맡았습니다. 포이 앞 숲속에서 독일군의 포화를 맞으며 얼어붙은 땅을 파 참호를 만들었습니다. 그 때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조용한 숲속에서 그들의 전우애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스피어스 중위의 포이 공격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윈터스의 후임자인 무능한 중대장을 대신하여 이지 중대를 맡은 로널드 스피어스는 총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와해된 이지 중대를 구해냈습니다. 바로 그 현장입니다.
바스토뉴를 중심으로 워낙 극적인 포위 공방전이 이뤄졌기 때문에 바스토뉴 곳곳에서 당시 전투를 기념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맥클리프 장군은 사단장이 작전 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포위된 제101 공수 사단에서 사단장 대리를 맡아 끝까지 바스토뉴를 사수했습니다. 그를 기리는 흉상이 바스토뉴 가장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이곳에서 제101 공수 사단의 위상은 바스토뉴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구세주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겨울 동안 눈과 포탄을 맞으며 참호에서 생활해야 했던 고통이 짐작되지 않습니다. 보기만 해도 추워지는 듯한 실감나는 실물 사이즈의 마네킹과 디오라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힘겨운 전투 속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바스토뉴에 포위된 제101 공수 사단에게 사절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한 맥클리프 장군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Nuts!(미친놈!)” 그리고 공식 항복 거절 서한에도 그대로 적어 되돌려 보냈습니다.
제101 공수 사단 박물관은 전쟁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착검한 소총으로 적을 찌르고, 치명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동료를 응급 수술하는 모습은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관람객이 직접 전투를 체험할 수 있는 셸터가 있습니다. 지하 대피소를 재현한 이곳은 총탄과 포탄 소리가 귀가 아프게 이어지며 방 전체가 흔들립니다. 군인들이 전투에서 경험하는 셸 쇼크 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지 중대원들의 추모비가 바스토뉴 외곽에 서 있습니다. 1944년 12월부터 다음해까지 두 달간 이어진 공방전에서 제101 공수 사단은 끝까지 바스토뉴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며 포위에서 풀려났습니다. 추위와 물자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텨 낸 희생과 헌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다음화에서는 지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이어집니다.
글쓴이 손건(썬더볼트)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발전소 엔지니어로 재직 중이다. 역사, 밀리터리, 자동차에 관련된 컨셉으로 각국을 탐방하는 아마추어 여행가이자 사진 작가이다. 루리웹과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night_thunderbolt)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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