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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 흔적을 찾아 지질 시대로 여정을 떠나다 본문
공룡처럼 생겼지만 타조처럼 두 발로 걷는 악어가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2020년 6월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전원주택 부지 공사 지역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에 따르면, 1억 1천만 년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대한민국에는 몸길이 3미터의 ‘이족보행 원시 악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BBC,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유수의 언론과 전 세계 고생물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 세계 최초의 발견을 한 과학자가 바로 진주 교육 대학교의 김경수 교수님입니다.
공룡 화석 분야의 세계적 학자들에게 ‘이글 아이(매의 눈)’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놀라운 발견을 계속해서 이루어낸 권위자이자, 진주 교육 대학교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으로서 한국 사회에 화석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 데에도 열정을 쏟고 계신 김경수 교수님. ㈜사이언스북스와 기초연구연합회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기초 연구자를 이야기하는 「최강 과학, 기초 과학」 연재 6편은 화석 발굴로 과거와 대화하고, 화석 보존으로는 미래를 준비하는 김경수 교수님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고생물 흔적을 찾아 지질 시대로 여정을 떠나다
김경수 진주 교육 대학교 교수
이미 사라져 알 수 없고 흔적만 가지고 유추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이 바로 고생물이다. 18세기 사람들은 지구의 역사가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 나섰다. 바로 땅속에 감춰져 있던 생명의 흔적인 ‘화석’이었다. 이 작은 흔적은 미지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생물의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덕분에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며 오늘날 화석은 과학 발전과 함께 지구의 오래된 기억을 복원하기 위한 탐구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화석은 지질 시대의 고생물이 죽어서 남긴 유해(遺骸)ㆍ인상(印象) ㆍ흔적(痕跡) 등을 의미한다. 화석은 크기별로 맨눈으로 감정할 수 있는 거화석, 현미경으로 감정이 가능한 미화석, 전자 현미경으로만 식별이 가능한 초미화석으로 구분된다. 화석 중에도 전 세계에 분포하며, 짧은 기간만 생존했던 동식물 화석을 표준 화석(혹은 시준 화석)이라고 한다. 이는 지질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생대는 삼엽충-갑주어-방추충(fusulina). 중생대는 암모나이트-공룡-시조새, 신생대는 화폐석(nummulite)-매머드 등이 대표적인 표준 화석이다.
한편 화석은 보존 대상에 따라 체화석(體化石, body fossil)과 생흔 화석(生痕化石, ichnofossil)으로 분류된다. 체화석은 생명체의 몸 전체 또는 일부가 그대로 퇴적물에 묻혀서 화석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뼈, 이빨, 껍질과 같은 단단한 골격 요소로 이루어진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생명체의 유해가 부패해 사라졌거나 다른 광물의 침투로 골격에 변형이 생겨도 체화석으로 간주하며, 몰드(mold), 캐스트(cast), 인상(imprint)의 현상으로 생명체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체화석은 형태 보존이 되어 있는 만큼 생물체의 모습 재현에 유용하다.
이에 비해 생흔 화석은 생명체가 활동하며 남긴 걸어간 자국, 기어간 자국, 땅을 판 흔적,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흔적이 화석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과거 생명체가 살았던 환경이 어떠하며, 어떤 것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등 생명체의 전반적인 생활과 환경 적응 방식, 동물의 행동을 파악하기에 매우 유용한 화석이다. 다만 생명체의 유해를 직접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흔적을 보는 것이므로 어떤 동물인지 특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자연히 고생물학에서 암석에 남겨진 작은 흔적을 면밀히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생흔 화석학(ichnology)이 발전하게 되었다.
생흔 화석학은 1950년대 독일의 고생물학자 아돌프 자일라허(Adolf Seilacher)가 정립했다. 이전까지 고생물학에서 생흔 화석은 생명체의 직접적인 형체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체화석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일라허는 파키스탄 탐사에서 삼엽충이 기어가는 흔적 화석을 발견하고, 이것이 생물체가 살았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그는 고생물의 형태로 기능적인 환경 적응을 살피는 방식을 비판하고 생흔 화석으로 행동 양상을 추적해 당시 생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생흔 화석은 화석 연구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1. 이상하게도 눈에 띄던 생흔 화석
생흔 화석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정착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세계적인 화석 산지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중생대에 큰 강과 넓은 호수가 발달해 동물이 많이 서식했고, 다양한 생명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게다가 공룡 발자국 화석이 세계적으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많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연구들이 나옴으로써 한국의 생흔 화석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고생물학자인 김경수 진주 교육 대학교 교수의 활발한 활동에 적지 않게 힘입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생흔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는 10명도 채 안 된다. 그중 김경수 교수는 누구보다 많은 생흔 화석을 발굴했으며, 몇몇 업적은 국제 학회에서도 탁월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덕분에 연구자가 크게 부족한 한국 생흔 화석학의 위상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가 처음 화석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때였다. 유명 학자의 에피소드에 나올법한 이유인 “어려서부터 화석이나 공룡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1991년 1학년 때 갔던 지질 답사가 계기였다. 당시 4학년 야외 고생물학 답사 수업에 1학년으로 참여했던 그는 화석 찾기가 적성에 맞았고, 지질학 전반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 진학 때 고생물학에 흥미는 있었으나 암석학이나 지진학 같은 분야를 두고서도 고민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학부 때 소속되었던 고생물학 연구실에 들어가긴 했으나, 이는 고생물학이나 화석에 애정이 있어서라기보다 다른 연구보다 익숙해서 택한 것이었다.
1997년 한국 교원 대학교 김정률 교수의 고생물학 연구실로 들어간 그는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석사 논문 주제를 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선배들은 지도 교수의 조언을 따라 대부분 ‘고생대 무척추동물 생흔 화석’을 주제로 논문을 썼으나, 김경수 교수는 남이 하지 않은 주제를 연구하고 싶었다. 몇 달간 고민한 끝에 그는 공룡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중생대 연구를 위해 공룡 뼈를 찾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홀로 배낭을 메고 답사를 떠났다. 하동-남해-사천 일대를 일주일간 둘러본 그는 공룡 뼈보다 생흔 화석이 자신의 눈에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생물학 연구실에 있으면서 어느새 생흔 화석 발견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김경수 교수는 답사를 통해 중생대 무척추동물 생흔 화석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경상남도 남해 지역의 하산동층과 진주층에서 산출되는 생흔 화석과 연체동물 화석에 관한 고생물학적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석사 학위를 받은 김경수 교수는 1999년 9월 제천 여자 중학교의 교사로 부임했다. 교직에 몸담고도 연구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그는 이듬해 곧바로 교원 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런데 교사 활동과 연구를 겸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찾아낸 방법은 청주 인근으로 전근을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충북 과학 고등학교로 전근이 가능했다. 과학고는 교사의 수업 시수가 적어 연구 활동을 병행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과학고로 전근한 그는 평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국교원대 연구실로 갔고, 주말에는 화석을 찾으러 답사를 다녔다. 그렇다고 교육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탐구 등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탐구 수업을 누구보다 중시했다. 또한 탐구 수업이 학업 성취로 이어지도록 국내외 과학 경진 대회에 학생을 출전시켜 열정적으로 지도했다. 그 결과 충북 과학고는 탐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로 탈바꿈했고, 교육청도 이러한 노력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학생지도상을 수여했다. 그는 연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교사로서의 노력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2000년 한국 교원 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한 김경수 교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5년 안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는 대학원생은 학위 취득 기간이 길어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김경수 교수는 잠자는 시간과 자투리 시간을 줄여서라도 빨리 학위를 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화석이 나오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채비를 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답사를 떠나 학위 논문의 주제가 될 만한 화석을 찾아 나섰다. 그는 무척추동물로 석사 논문을 썼기 때문에 박사는 척추동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대상을 새 발자국으로 정했다. 그 이유는 국내외적으로 연구 사례가 드물다고 판단해서였다. 석사 때도 그랬지만 김경수 교수는 남이 잘 안 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화석 발굴에 자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한 후 김경수 교수는 첫 1~2년은 생흔 화석을 찾아 남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화석을 찾았고, 그중에는 학술 가치가 높은 화석도 상당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석사 학위 내용을 세계적인 학회지 《식물 및 동물 흔적에 대한 국제 저널(An International Journal for Plant and Animal Traces, Ichnos)》에 2002년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Cretaceous Nonmarine Trace Fossils from the Hasandong and Jinju Formations of the Namhae Area, Kyongsangnamdo, Southeast Korea」였다. 이처럼 일찍부터 좋은 화석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답사를 하러 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생흔 화석이 눈에 잘 띄었다.”라고 회고했다.
2002년 무렵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제주도에서 새로운 화석 조사에 집중했고, 그 결과 2만 5천 년 전 구석기 시대 사람 발자국 화석 100여 점을 비롯해 사슴 발자국 1,000여 점, 새 발자국 200여 점, 매머드 발자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수많은 경험으로 화석 찾기에 특화된 그의 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쾌거였다. 그가 찾은 화석 산지는 구석기 시대 제주도 환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고, ‘제주 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 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되어 등록되었다. 이 성과를 종합해 그는 2004년 「제주도 하모리층에서 산출된 조류와 우제류 발자국 화석 및 무척추동물의 생흔 화석에 관한 연구」로 4년 6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2. 땅을 파면 화석은 무조건 나온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경수 교수는 한동안 교사로 활동하다가 2008년 진주 교육 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로 임명됐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진주 혁신 도시 개발 사업 부지의 화석 조사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법적으로 명시된 국가 개발 부지에 대한 환경 영향 평가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었다. 때마침 화석 전문가인 그가 진주교대에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은 경남 개발 공사는 조사 사업을 의뢰했다. 그는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생각지 못하고 별 기대 없이 연구에 착수했다.
김경수 교수는 경남 개발 공사 측에 1주일에 한 번 부지에 방문해 조사하겠다고 했다. 당시 개발 공사는 다른 교수들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온다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는 공사 속도로 인한 화석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자주 방문해 조사하는 것이 학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약속대로 1주일에 한 번씩 부지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생흔 화석을 발견했다. 화석이 발견되면 공사를 중지해야 하는 개발 공사는 난감해했지만, 그에게 화석 발견은 주어진 책무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땅을 파면 화석은 무조건 나온다.”라는 것이다. 실제 그는 어딜 가든 화석을 발견해 내고 이런 김경수를 동료들은 “신의 손” 혹은 “이글 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의 예상대로 개발 사업 부지에서 다수의 생흔 화석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경남 개발 공사와 협의해 2010년 4월부터 2개월에 걸쳐 “진주 혁신 도시 (제1차) 화석 발굴 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 생각지도 못한 매우 흥미로운 성과가 나왔다. 바로 한국 최초의 악어 발자국 화석과 진주층 최초 새 발자국 화석이 발굴된 것이었다. 이는 곧 이 지역이 화석 산지로서 가치가 높다는 의미였다. 1차 화석 발굴 조사를 마무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귀한 화석이 발견되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공룡 발자국 화석이었다.
진귀한 화석이 발견된 이상 경남 개발 공사는 발굴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경수 교수는 2010년 10월에서 12월까지 “진주 혁신 도시 제2차 화석 발굴 조사”를 시행했다. 연구팀에는 진주 교육 대학을 졸업한 교사를 비롯해 다른 연구 기관의 전공자와 대학원생이 참여했다. 이들과 함께 조사에 착수한 그는 한층 놀라운 생흔 화석을 발견했다.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백악기 도마뱀 보행렬 화석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raptor) 발자국, 다수의 육식 공룡 발자국을 찾았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화석으로 인정받았고, 도마뱀 보행렬 화석과 랩터 발자국에 대한 연구 결과는 2018년과 2019년 《네이처(Nature)》 자매 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되었다.
김경수 교수가 시행한 화석 발굴 조사로 진주 혁신 도시 개발 사업 부지가 화석 산지로서 가치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해당 지역을 2011년 10월 ‘진주 호탄동 익룡·새·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천연기념물 제534호)로 지정했다. 해당 지역의 익룡 발자국이 숫자와 밀집도 면에서 세계 최대 수준이며, 좁은 장소에서 익룡 발자국 화석이 다수 발견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학술 가치가 매우 높다는 점이 이유였다.
해당 지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김경수 교수는 “진주 혁신 도시 제3차 화석 발굴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2012년 2월에서 2014년 5월까지 무려 27개월의 일정이었다. 발굴 기간이 긴 만큼 대량의 생흔 화석이 발굴되었다. 예비 조사에서 익룡 발자국이 많다는 사실은 알려졌으나, 그 수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호탄동 화석 산지에서 익룡 발자국 2,486개, 새 발자국 1,220개를 포함해 총 4,000여 개의 생흔 화석을 발굴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된 모든 익룡 발자국 개수를 더한 것보다 많은, 세계 최대 규모였다. 이는 익룡이 땅 위를 움직이는 양식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영향을 주리라고 기대되는 성과이다.
김경수 교수는 제3차 조사를 마치고 현장에서 사용했던 “발자국 화석의 발굴 방법(등록번호 10-1557662)”에 관해 특허를 신청했다. 이 기술은 발굴 후 수집 시 화석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기존에는 넓고 큰 화석을 발견하면 이를 분해해서 옮겨 다시 조립해 사용했다. 그렇다 보니 형태가 변형되거나 손상이 가해져 화석 보존에 어려움이 컸다. 이와 달리, 김경수 교수가 출원한 특허 기술은 암석을 통째로 절단해 화석 표면에 손상을 주지 않고 옮기는 방식이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발굴부를 확정한 후 주변 지역을 절개해 작업 공간을 형성한다. 2. 와이어로 발굴부 둘레를 감싼 체 절단하면서 아래에 버팀목을 끼워 넣는다. 3. 버팀목 사이로 강재지지 부재를 설치한다. 4. 지지 부재를 기초로 한 프레임을 형성해 발굴지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 채 이송할 수 있게 한다. 이 기술은 3차 발굴 조사에서 실제로 사용되어 1~2차 때보다 상태가 좋은 생흔 화석을 발굴할 수 있었다.
3차 발굴 조사를 마치고 김경수 교수팀은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호탄동 화석 산지에 대한 “입회 및 수습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에서도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흔 화석들이 더 발견되었다. 김경수 교수는 수시로 현장을 찾아 계속해서 발굴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세계 3번째이자 국내에서 두 번째(첫 번째도 김경수 교수팀이 발견)로 육식 공룡 구애 행위 흔적 화석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뜀걸음형 포유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구리 발자국도 발견했다. 이처럼 호탄동 화석 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덕에 그의 연구는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
3. 발견 지역에 작은 화석 전시관을 만들다
현재도 진주 혁신 도시 내 화석 산지에서 김경수 교수팀의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2017년 뜀걸음형 포유류 발자국 화석 논문을 시작으로 2018년 육식 공룡 발자국, 가장 작은 랩터 공룡 발자국, 2019년 가장 오래된 개구리 발자국, 가장 큰 도마뱀 보행렬, 2020년 동북아시아 최초 악어 발자국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올해는 작은 익룡 발자국 화석에 관한 논문이 심사 중이고 새 발자국 화석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역 외의 발굴 현장은 곧 철거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귀중한 문화재가 사라짐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지역 경제와 연결된 혁신 도시 개발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역시 화석 발굴 때문에 지역 발전 사업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대신에 그는 발굴한 화석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김경수 교수가 그동안 발굴한 중요 화석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고성공룡박물관 등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많은 화석이 보관처가 없어 개인 소장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그가 지금까지 발견한 화석은 한반도 전역을 고려한다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제대로 발굴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화석이 대부분인 만큼 화석의 보존은 그의 연구 활동의 최종적 고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을 그는 “기껏 발굴했는데 버릴 수는 없잖아요?”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보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발굴한 화석을 수집, 보관, 전시까지 하는 박물관 같은 문화 시설이다. 화석 중에서 희귀한 것은 잘 보존 처리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개수가 많은 것은 수장고에 보관해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다행히도 문화재청은 진주 호탄동 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에 경남 개발 공사가 전시관을 짓도록 지시했다. 김경수 교수는 전시관 부지 선정부터 전시물 및 수장고 관리까지 관여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로 준공된 진주 익룡발자국전시관은 2019년 11월 정식 개관에 들어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익룡발자국전시관은 2층 규모의 관리동과 전시동으로 구성되었다. 관리동은 1층에 수장고, 2층에는 사무실과 유구 분석실을 갖추고 있다. 전시동은 발자국 화석 등을 유리가 설치된 벽 속에 넣고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전시관에는 진주 혁신 도시 화석 발굴 조사로 수집한 화석들이 전시 수장되어 있다. 전시관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혁신 도시라는 배후 지역을 끼고 시민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4. 논문도 중요하나 화석 발굴에 힘써야 한다
익룡발자국전시관의 설립 과정에서 우연히 알려진 사실이 있다. 진주 혁신 도시의 화석 발굴과 관련된 모든 일에 김경수 교수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처음 조사 사업을 시작할 때 공사 관계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겠다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행보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생흔 화석을 한국에서 찾아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덕분에 한국의 생흔 화석학은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고생물학계에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는 저명한 학자들이 있지만, 그처럼 화석 발굴에 열정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생흔 화석을 연구하는 인력 자체가 10명 내외일 정도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연구하려는 후학도 많지 않아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에 대한 김경수 교수의 지적은 매우 단호하다. 이 분야에 직업으로서의 전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고생물학계는 젊은 세대의 이목을 끌만한 직업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선배 학자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는 자신이 화석 조사 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화석에 대한 ‘사전 환경 영향 평가’라는 장치가 마련된 덕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고생물학계가 이 영역을 직업화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 고생물학계는 후학을 위한 노력은커녕 적당히 기관이 원하는 환경 영향 평가를 해주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그간 고생물학을 이끌어왔던 교수들의 방식도 고생물학계 위축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화석을 발굴, 보존하는 일보다 유명 학술지에 논문 한 편 게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분야에 따라 논문이 중요하긴 하나, 김경수 교수는 화석을 다루는 분야만큼은 화석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처럼 국토 면적이 좁고 개발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화석의 유실 가능성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김경수 교수는 많은 화석을 발굴하면서도 수준 높은 논문도 많이 썼다. 학술지 등재 논문은 20건. SCI급 논문은 35건이나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대부분 자신이 발굴한 생흔 화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진주 혁신 도시 이외에도 진주 정촌 뿌리 산업 단지에서 ‘발바닥 지문이 고스란히 보존된 소형 육식 공룡 발자국 화석’과 사천시 자혜리에서 ‘세계 최초 두 발로 걷는 악어 발자국 화석’을 발굴, 《네이처》의 자매 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화석 발굴 노력이 진정한 연구 논문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입증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화석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현장을 경시한 탓에 알게 모르게 이미 많은 화석을 잃었고, 한국이라는 화석의 보고에서 좋은 화석을 수집할 기회와 함께 학자로서 더 성장할 계기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수 교수는 작금의 고생물학계를 보며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자신은 좋아하는 현장에서 귀중한 생흔 화석을 발굴해 가며 연구자로서 성장했지만, 후학들은 고생물학계의 현실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이라도 고생물학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익룡발자국전시관이 잘 운영되길 바라고, 한 명의 연구자라도 더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 좋은 화석을 발굴해 두려고 한다. 한국의 생흔 화석이 세계적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계속 화석을 발굴해 나가면 언젠가는 이 분야도 번창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참고 자료
“수억 년 전 발자국 따라 퍼즐게임, CSI만큼 짜릿”, 『동아일보』 (2012. 8. 20).
“진주서 대규모 공룡 발자국 발견됐지만, 해체 위기”, 『단디뉴스』 (2018. 5. 25).
김경수 외, 「경남진주혁신도시개발사업 제2차 화석문화재발굴조사용역」 (경남개발공사, 2019).
김경수 외, 「경남진주혁신도시개발사업 제3차 화석문화재발굴조사용역」 (경남개발공사, 2016).
김경수 외, 「경남진주혁신도시개발사업 화석문화재 발굴조사」 (경남개발공사, 2019).
김경수 외, 「진주혁신도시 E-4 블록 대지조성사업부지 화석 문화재 입회 조사 보고서」 (진주교육대학교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 2016)
김경수, “Avian and artiodactyla footprints and invertebrate trace fossils from the hamori of jeju island, korea = 제주도 하모리층에서 산출된 조류와 우제류 발자국 화석 및 무척추동물의 생흔 화석에 관한 연구”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4).
김경수, “Paleontological study on the trace fossils and molluscs from the Hasandong and Jinju formations of Namhae area, Kyongsangnamdo, Korea”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9).
김경수, “발자국 화석 발굴방법” (등록번호 10-1557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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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초연구연합회의 「2018년도 기초 연구 성과 사례 모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의 작성은 전북 대학교 부설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의 김근배 교수님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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