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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콩 유전자 변이 표지로, 콩 분자 육종의 기반을 마련하다 본문

(연재) 최강 과학, 기초 과학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콩 유전자 변이 표지로, 콩 분자 육종의 기반을 마련하다

Editor! 2021. 8. 13. 11:00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콩이 한국인의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대변하는 우리네 속담들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콩은 한식의 기본이 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의 원료이자 두부, 콩나물, 조림, 두유까지 다양한 형태로 오랫동안 우리 밥상을 지켜 왔습니다. 이 콩의 기원지(origin)가 한국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콩은 인류의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세계 4대 작물 중 하나이면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이 기원지인 곡물로, 이 지역 일대는 콩의 기원지 지표로 사용되는 야생종이 분포하는 유일한 지역입니다. 농촌 진흥청 국립 농업 유전 자원 센터에는 한국 고유 재래종 8,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해서일까요? 이처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콩이지만, 최근 소비량의 90퍼센트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국가 지원과 국민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학계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에서 전업으로 콩을 연구하는 사람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콩 연구에 두각을 보이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생명 공학 연구원에 근무하고 계신 정순천 박사님입니다. ㈜사이언스북스와 기초연구연합회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기초 연구자를 이야기하는 「최강 과학, 기초 과학」 연재 7편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콩 유전자 변이 표지로 콩 분자 육종의 기반 마련을 꿈꾸시는 정순천 박사님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콩 유전자 변이 표지로

콩 분자 육종의 기반을 마련하다

정순천 한국 생명 공학 연구원 박사

 

1. 콩의 기원지이자 유전 자원의 보고 한반도

 

2016년은 국제 연합(UN)이 지정한 세계 콩의 해. 콩을 비롯해 완두콩, 강낭콩, 땅콩 등의 콩과 작물을 단백질과 필수 영양소의 주요 원천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콩은 인류에게 중요한 작물이고, 특히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까지 한다. 콩과 함께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자.”라고 역설했다. 호제 그라지아노 다 실바(José Graziano da Silva) 세계 식량 농업 기구(FAO) 사무총장은 수 세기 동안 인류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콩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더불어 환경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인식시키기 위해 콩의 해로 정했다.”라고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2016년 세계 콩의 해 엠블럼.   사진 출처: https://upload.wikimedia.org

이처럼 콩은 높은 단백질 및 지방 함량으로 풍요 속의 빈곤, 영양 결핍, 기아 같은 전 지구적 식량 문제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작물 중 하나다. 인류의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세계 4대 작물로 벼, , 옥수수, 콩을 꼽는다. 콩은 다른 주곡(主穀)보다 재배 면적이 적고 생산성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세계 생산량을 보면 2018년 기준으로 대략 옥수수 11억 톤, 7억 톤, 7억 톤, 3억 톤이었다. 그렇지만 콩은 단백질과 지방의 주요 식물성 공급원이라는, 다른 작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남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다. 콩은 구성 성분 중 단백질과 지방이 각각 40퍼센트와 20퍼센트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풍부한 함량을 자랑한다. 실제로 인류는 육류보다 오히려 콩에서 더 많은 단백질을 얻고 있다. 때문에 식량 부족으로 기아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에서도 콩은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다.

 

콩은 질소를 고정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뿌리혹박테리아(leguminous bacteria)와 같은 미생물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공기 중의 질소 성분을 이용해 질소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 질소는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의 생육에 꼭 필요한, 모든 단백질의 기본 구성 물질이다. 결과적으로 콩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주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가뭄에도 강해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도 재배 가능하다. 이와 같이 콩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중요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는 작물인 것이다. 지구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현 상황에서 콩이 지닌 지구적, 미래적 가치는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콩 생산량은 매우 많은 편이었다. 콩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지이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와 주변 지역이 기원지인 주요 곡물은 콩뿐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일대는 콩의 기원지 지표로 사용되는 야생종이 분포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농촌 진흥청 국립 농업 유전 자원 센터에는 한국 고유 재래종 8,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그만큼 콩에 관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유전 자원이 한국에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사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콩이 본격적으로 재배된 시기는 20세기 들어서였고, 남아메리카 대륙은 그보다 늦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현재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3대 콩 생산 국가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콩의 기원지와 주산지가 달라진 셈이다.

 

주요 콩 품종의 지역적 분포도.   출처: Jeong et al. (2019), “Genetic diversity patterns and domestication origin of soybean”, Theoretical and Applied Genetics 132: 1182.

 

한국에는 콩을 이용한 식품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몇 천년 전부터 콩을 재배한 까닭에 콩을 이용한 음식이 다양해졌다. 발효 식품인 된장, 간장, 청국장을 비롯해 두부, 콩나물, 조림, 두유까지 광범위하다. 또한 콩을 키워서 채소 형태인 콩나물로 먹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콩나물은 자체로도 먹지만, 국이나 찌개 등의 재료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는 콩과 관련한 속담도 80건가량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등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콩 재배와 생산량은 급속히 줄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최고치인 32만 톤을 기록한 후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준다. 2018년에는 콩 전체 소비량의 약 7퍼센트에 해당하는 9만 톤 정도만을 자체 생산했을 뿐, 나머지는 외국의 수입에 의존했다. 그렇다 보니 콩에 대한 연구도 활기를 띠지 못하는 형국이다. 주력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낮아지는 것은 피하기 힘들다. 작물의 사회적 가치와 과학 연구의 중요도는 서로 밀접히 맞물려 있다. 콩의 기원지로서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

 

2. 한국 콩의 유전적 변이와 생산성 연구

 

우리나라에서 콩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자가 있다. 바로 한국 생명 공학 연구원에 근무하는 정순천 박사다. 한국에서 전업으로 콩을 연구하는 사람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들이 주축이 된 단체가 한국 콩 연구회와 콩과 유전체 육종 연구회다. 다만 전문적인 학술 단체라기보다는 다분히 소규모 연구자 모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국내에는 콩에 관한 전문 학술지도 따로 없다. 연구자 풀이 너무 적다 보니 콩 연구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에서 콩 연구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정순천 박사가 콩과의 작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그는 1989년 서울 대학교 석사 과정에서 식물 유전학을 전공 분야로 선택했다. 연구 대상으로 삼은 식물은 콩과 작물의 하나인 강낭콩이었고 강낭콩의 뿌리 발달 단계에 따른 식물 생장 호르몬의 변화를 살폈다. 1993년에는 미국 오레곤 주립 대학교 박사 과정에 진학해 식물 생리학을 연구했다. 질소 고정 관목과 미생물의 공생 관계의 진화 과정을 분자 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밝히는 연구였다. 그는 박사 논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여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정순천 박사가 콩 유전체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7년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였다. 콩 유전 육종 연구의 권위자였던 이란계 지도 교수 사가이 마루프(M. A. Saghai Maroof)의 권유로 콩 모자이크 바이러스(Soybean Mosaic Virus, SMV)와 관련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콩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지닌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콩에서 특히 콩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방지할 수 있는 일종의 유전적 변이를 찾아내 밝히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바이러스는 잎의 생장을 저해하며 일부 맺힌 종자에는 심한 주름과 황색 반점이 생겨 생산량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질병으로 당시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병해 중 하나였다. 그는 이를 계기로 콩 유전자 연구를 4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하며 국내에서 연구를 계속할 학문적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2002년 한국 생명 공학 연구원에 자리를 잡은 정순천 박사는 한국의 재배종과 야생종을 이용한 콩 유전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우선은 콩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저항성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며 그 피해를 방지하는 방안을 찾고자 했다. 콩 수확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 연구였다. 이와 함께 유전자 연구에 기반해 수확량의 절대적 증가를 꾀하는 새로운 연구도 추진했다. 마침 농촌 진흥청 작물 과학원 문중경 연구관으로부터 콩 모자이크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를 가진 우수 품종인 소원콩의 콩나물 수율 등 적성은 잎 모양(엽형) 발현과 관련이 있고 꼬투리당 콩 개수(협당립수)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온실에서 재배 중인 야생 콩을 돌보고 있는 정순천 박사.    사진 제공: 정순천 박사

한국은 콩 생산성에서 미국에 현저히 뒤쳐져 있다. 1헥타르당 콩 수확량이 미국은 4, 한국은 3톤으로 무려 1톤의 차이가 날 정도다. 정순천 박사는 이때부터 콩의 생산성에 미치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적극 추진했다. 장엽형 콩이 높은 협당립수를 가지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관찰되어 왔으나, 당시까지도 유전자 지도에서 잎 모양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정순천 박사는 대상 유전 집단에서 엽형과 협당립수 형질을 조절하는 염색체 부위를 지도화하는 연구부터 추진했다. 그는 나아가 그 조절 유전자를 클로닝(cloning)함으로써 이것이 하나의 동일 유전자에 의해 각각의 형질이 조절되는 다면발현(pleiotropy) 현상임을 검증했다. 이를 계기로 콩의 수량 구성 요소에 대한 연구는 야생종에서 수량을 획기적으로 높일 유전자를 찾는 작업과 함께 그의 주 관심사 중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국내 나물콩의 신품종 개발에서 이러한 연구 성과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콩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6~7월 생육기의 장마성 기후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 정확한 요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3. 빅 데이터 기반 콩 집단 유전체학 연구

 

2010년 미국 연구자들이 콩의 전체 염기 서열을 밝혀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후속 연구의 길이 열렸다. 미국의 제레미 슈무츠(Jeremy Schmutz) 등이 주축이 된 공동 연구 팀의 주도로 콩 유전체 염기 서열이 완전히 분석된 것이었다. 또한 고속 염기 서열 분석 기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콩 유전체 연구도 빅 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유전체 수준에서 변이 데이터를 대량으로 확보해 집단 유전학적 분석이 가능해졌다.

 

정순천 박사는 많은 한국 재배종과 야생종 콩의 유전체 염기 서열을 분석해 다양한 유전적 변이를 얻어냈다. 그가 여러 해에 걸쳐 연구 대상으로 삼은 한국 고유 콩은 4,000여 점에 달한다. 서로 다른 종의 콩 유전자와 염기 서열을 비교함으로써 타국의 연구에 비견될 만큼 풍부한 유전적 변이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예컨대 콩의 색깔, 성분, 크기, 잎 모양, 그리고 직립 여부 등에 관한 방대한 유전적 변이를 판별해 낼 수 있었다. 이로써 한국 재배 콩과 야생 콩 집단의 유전자 지도를 처음으로 작성했고 수많은 변이 지표도 확인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한국 고유 콩의 유전체 연구를 주도할 분자 유전학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정순천 박사가 우선 목표로 삼은 연구는 콩 유전적 변이 표지를 손쉽게 판별할 수 있는 종합 분석 칩(Array)의 개발이었다. 이는 콩들이 저마다 가진 유전적 차이를 찾아내고 신품종 개발에 이용하는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추진하려면 대규모 예산이 동반되어야 했다. 칩 제작에만 5억 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 연구 재단과 농촌 진흥청 연구비는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특히 250종 한국 고유 생물 자원의 유전체 연구(차세대 유전체 연구 사업단)를 포함한 농촌 진흥청의 차세대 바이오 그린21’ 사업은 결정적인 재원이 되었다. 그는 국립 식량 과학원, 국립 농업 유전 자원 센터의 연구자와 함께 콩 유전 변이 종합 분석 칩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5년 정순천 박사 주도의 공동 연구 팀은 세계 최고 밀도(180K)콩 단일 염기 다형성 표지(Soya SNP Array)’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한반도 유래 야생 콩과 재배 콩 16건에 대한 유전체 분석을 시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적 변이를 판별했다. 이를 통해 단일 핵산 염기 다형 현상(SNP) 380만 개 및 염기 입출 현상(indel) 50만 개를 동정할 수 있었고, 이들 변이를 이용한 다양한 집단 유전적 분석을 수행해 콩 염색체 상에 206개의 순화(domestication) 후보 위치를 예측했다. 여기서 단일 핵산 염기 다형 현상(SNP)이란 DNA 염기 서열에서 하나의 염기 서열(A, T, G, C)의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이를 말한다. 나아가 다양한 콩 유전체의 염기 서열 차이를 광범위하게 분석해 엄선된 표지 인자 18만여 개가 심겨진 칩을 개발했다. 한국에서 인간, 가축 또는 작물에 대해 자체 제작한 고밀도 칩으로서는 첫 사례였다. 180K Soya-SNP Array는 한국 재배종과 야생종 16점에서 유래한 SNP(380만 개)와 중국 콩 31점에서 유래한 SNP(100만 개) 다양성을 모두 반영한 세계 최대 집적도의 칩이었다. 2013년 미국에서 개발된 칩보다 3배가 넘는 집적도를 지녔다.

 

180K Soya SNP Array.   사진 제공: 정순천 박사

새로이 개발된 이 칩은 유전 변이의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고 유전체 선발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구체적으로는 분석의 반복 재현성이 뛰어나고(99퍼센트 이상) 유전 자원의 중복성 확인이 가능하며 콩의 핵심 집단 구축에도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였다. 이 칩은 콩이 보유한 전체 유전자 46000개의 86퍼센트 이상에서 다양성 SNP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콩 유전 자원 2,800점에 대해 분석한 결과 재배종 189점과 야생종 199점으로 구성된 핵심 집단 구축이 이루어졌다.

 

이 종합 분석 칩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유전 자원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콩의 유용한 유전 자원 선발이라는 목표에 이 종합 분석 칩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 기초 연구에 힘입어 콩의 유전체 육종이 가능한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육종 소요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고 아주 세밀한 맞춤형 분자 육종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수입 콩을 포함한 모든 콩 품종을 판별해 부정 유통 방지 검사에도 부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현재 이 칩에 관한 정보는 국립 식량 과학원 농생물 게놈 활용 연구 사업단에 “Korean Soya Base”라는 이름의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널리 제공되고 있다.

 

Korean Soya Base 웹사이트.    사진 출처: http://k-crop.kr/ksoyabase/index.php  

종합 분석 칩이 완성될 무렵부터 정순천 박사가 가장 크게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빅 데이터에 기반한 콩 유전체 연구였다. 이를 위해서는 빅 데이터와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했다. 그 역사가 짧은 융합적 과학 분야라 할 생물 정보학(Bioinformatics)이었다. 콩의 유전적 정보에 관한 1차 자료만 해도 무려 10테라바이트가 넘고 그것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국 과학계는 학제적 공동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고 학문 간의 장벽이 강고해 새로운 지식과 기법을 습득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관련 전공자를 찾아 접촉하고 교류하는 일도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생물 정보학을 배우고자 늦은 나이에 한국 방송 통신 대학교 통계데이터과학과에 진학해 2019년 졸업했다. 그 결과 빅 데이터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높이고 컴퓨터 프로그램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 역량에 기반해 수백 점의 콩 유전체 재분석(genome resequencing) 데이터로 콩의 유전체 수준의 변이 지도(genome-wide variation map) 작성을 진행하고 있다.

 

4. 콩 연구의 미래 가치 증대

 

콩은 단백질과 지방을 제공하는 중요한 상업 작물이자 질소 고정 작용을 통해 생물체에 꼭 필요한 영양 성분을 공급하는 환경 친화적 작물이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 곡물은 환경에도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다. UN에서 세계 콩의 해까지 지정한 이유는 콩이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분자 유전학을 포함한 과학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콩이 지닌 학문적, 실용적 가치의 지평도 훨씬 더 넓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콩은 한국이 기원지로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유전 자원을 가진 대표 작물이다. 여전히 수많은 야생종이 연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중에는 생물 연구에 탁월한 유전자, 육종 연구에 유용한 유전자, 희귀한 형질을 지닌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현재는 전 세계가 생물체 유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한반도에 널리 펴져 있는 콩의 유전체를 연구하고 그 유전 자원을 잘 보존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콩은 세계적인 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기도 하다. 2019년 미국과 중국 간에는 심각한 무역 분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콩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고, 중국은 동물 사료의 급속한 증가로 세계 최대의 콩 소비국이다. 2017년 미국의 콩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퍼센트였고 액수로는 13조 원이 넘었다. 미국의 중국산 제품 규제 조치에 반발해 중국은 콩을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 관세를 대대적으로 부과했다. 결국 미국은 콩 수출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고 농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0년 이래로 식물 연구의 모델로는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가 널리 사용되어 왔다. 들에서 흔하게 자라는 십자화과(Brassicaceae)의 애기장대는 연구-가설 실험에 적합한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다른 식물에 앞서서 그 유전체 해독이 완료되어 참고 대상으로 널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실험실에서 재배하고 연구하는 데 적합한 특성을 지닌 점도 주목을 끌었다. 대표적인 특성으로 크기가 15~35센티미터로 작고 한 세대가 6주로 짧으며 많은 씨앗을 생산하고 인공 빛에서도 잘 자라 실내 재배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게놈의 크기가 작아 돌연변이가 쉽게 이루어지고 분석 연구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점이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애기장대 연구를 집중함에 따라 연구 성과도 많이 쌓이게 되었다.

 

정순천 박사는 장차 콩이 생물 연구의 새로운 모델이 되리라고 전망한다. 무엇보다 콩의 유전 정보는 애기장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주 방대하다. 최근에 콩 게놈을 비롯한 분자 유전학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그 유전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매우 높아졌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 및 형질 연구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활짝 열리고 있다. 나아가 콩은 육종 연구의 대상으로서도 새롭게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애기장대가 지닌 단점의 하나는 종자 결실이 부실하고 그 기간이 길어 수량 연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콩은 수량과 맛의 연구가 어느덧 분자 생물학적 수준에서 가능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 콩 유전체 종합 분석 칩의 개발은 이를 위한 중요한 토대의 일부다.

 

한국에서 새로운 콩은 본격적으로 유전체 육종에 의해 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유전적 변이 표지를 활용해 토착 재래종 콩에 있는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를 생산성이 높은 소원콩에 이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같은 콩 유전자를 사용해 위해성이 없고 병해에도 강하고 생산량도 많은 신품종을 개발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화콩소원2010’ 등의 신품종을 출시했고, 신화콩은 정부 장려 품종의 하나로 선정되어 꾸준히 재배 면적을 넓혀 가고 있다.

 

우리나라 콩 연구자들은 우수한 콩 문화 전통과 콩의 기원지에서 연구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 중심은 콩연구회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자연히 1990년대부터 국내에 콩과학관을 설립해 국내외적으로 우리 콩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귀결되었다. 콩과학관 설립의 주요 목적은 콩 문화와 이용 기술의 중심이 될 세계적 차원의 과학관을 건립해 우리 콩 문화를 지구촌에 널리 알리고 콩의 다양한 이용과 발전 등을 전파함으로써 인류의 건강한 삶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다. 이 과학관은 단순히 콩에 대한 옛 것을 모아 보관,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다양한 콩 관련 자료들을 수집 분석하고 연구하며, 국제적인 정보교류와 연구교육의 중심이 되는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콩 문화 과학관을 지향한다.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2015년 세계 최초의 콩세계과학관이 경북 영주에 세워졌다. 콩세계과학관은 크게 전시실, 국제정보센터, 수장고 등의 과학관과 체험실, 실습실, 카페테리아, 생육장 등의 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콩세계과학관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미래 콩 문화유산의 전당이 될 전망이다. 세계적인 주요 작물들은 국제미작연구소와 같이 유엔 산하 전문국제연구소가 설립되어 국제적인 공동 연구의 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현재 콩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제 연구소는 없는 실정이다. 콩과학관의 설립 이후에 정순천 박사와 국내 콩 연구자들은 우리나라 콩 연구 수준을 국제적으로 선도적 수준에 끌어올려서 국제 콩연구소를 영주를 비롯한 국내에 유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콩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경북 영주 콩세계과학관.      사진 제공: 콩세계과학관

정순천 박사는 언제나처럼 콩의 분자 유전학적 기초 연구에 매진할 생각이다. 그는 정부 출연 연구소 소속의 과학자로서 당장 돈이 되는 실용적 연구보다 원리를 규명하는 기초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국민의 세금에 대한 과학자의 보답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육종 연구와 같은 실용적 연구도 기초 과학이 뒷받침되어야 그 정밀성과 우수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응용이나 성과를 목표로 하는 활동이라기보다 관심과 흥미로 유발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의 과학 목표는 콩을 학문적, 작물적 모델 식물로 만들기 위한 연구 기반을 확고히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의 고유 식물이자 다양성이 높은 식물에 대한 더 집중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남다르게 제기한다. 그가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인 콩을 비롯해 들깨, , 조 등은 그 대표적인 식물이다. 한국과는 또 다른 차이를 지닐, 현재 빈 부분으로 남아 있는 북한 야생종에 대한 협력적 연구도 중요하다. 그는 우리 주변의 식물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빛나는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길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비교 우위의 식물에 대한 연구를 앞장서서 이끄는 연구 그룹을 형성하고 학문적 자부심을 얻고 싶은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는 정부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여러 연구자가 서로 합심해서 노력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참고 자료

 

김근배, “정순천 박사와의 인터뷰” (2019. 8. 4).

농촌진흥청 작물기초기반과 (2015), “국립식량과학원, 세계 최고 밀도 180K SNP array 개발”, <농촌진흥청 보도자료>.

정순천 (2019), “연구실 소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평가센터 유전분석실험실”, <한국유전학회 E-letter>.

정순천 (2019. 5. 17), “콩 유전학 연구”, <금요일에 과학터치> (서울시립과학관).

홍인철 (2015. 3. 31), “농진청, 세계 최고 밀도 콩 단일염기다형성 표지 개발”, <연합뉴스>.

FAO 홈페이지 (http://www.fao.org/faostat/en/#data).

Jeong, Namhee, Su Jeoung Suh, Min-Hee Kim, Seukki Lee, Jung-Kyung Moon, Hong Sig Kim, and Soon-Chun Jeong (2012), “Ln is a key regulator of leaflet shape and number of seeds per pod in soybean”, The Plant Cell 24: 4807-4818.

Jeong, Soon-Chung, Jung-Kyung Moon, Soo-Kwon Park, Myung-Shin Kim, Kwanghee Lee, Soo Rang Lee1, Namhee Jeong, Man Soo Choi, Namshin Kim, Sung-Taeg Kang, Euiho Park (2019), “Genetic Diversity Patterns and Domestication Origin of Soybean”, Theoretical and Applied Genetics 132: 1179-1193.

Lee, Yun-Gyeong, Namhee Jeong, Ji Hong Kim, Kwanghee Lee, Kil Hyun Kim, Ali Pirani, Bo-Keun Ha, Sung-Taeg Kang, Beom-Seok Park, Jung-Kyung Moon, Namshin Kim and Soon-Chun Jeong (2015), “Development, validation, and genetic analysis of a large soybean SNP genotyping array”, The Plant Journal 81: 625636.

Schmutz, Jeremy et al. (2010), “Genome sequence of the palaeopolyploid soybean”, Nature 463: 178-183.


이 글은 기초연구연합회의 2018년도 기초 연구 성과 사례 모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의 작성은 전북 대학교 부설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의 김근배 교수님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식물 대백과사전』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