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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영국이었을까?: 노벨상이 놓친 마지막 퍼즐 조각 본문
2025년 노벨 경제학상 깊이 읽기 두 번째 글입니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은 서양과 동양이 왜 다른 역사를 밟게 되었는가 하는 ‘대분기’ 문제들을 다룬 연구자들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국과 중국의 대회전을 앞둔 세계 정세가 노벨상 위원회에 어떤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학 기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STS의 렌즈가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줄지 모릅니다. 함께 읽어 보시죠.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산업 혁명의 원인을 딱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면 ‘문화’다. 17세기 과학 혁명과 함께 형성된 생산의 문화(문예 공화국과 ‘유용한 지식’에 대한 욕구 확산 등)가 18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산업 계몽주의를 낳았고, 그렇게 진화한 문화가 산업 혁명을 추동했다.
이 대목에서 지난 연재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문예 공화국과 유용한 지식에 대한 욕구 확산은 당대 영국 엘리트만의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엘리트도 그 문화 네트워크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산업 계몽주의 또 (모키르의 주장을 따르자면) 그것이 추동한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을까?
바로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가 바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메르 다론 아제몰루 등과 그의 여러 동료다. 이들에 따르면, 1688년 명예 혁명을 기점으로 영국에서 형성된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가 산업 혁명과 같은 혁신을 추동한 유인(incentive)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프랑스만 하더라도 발명가나 기업가의 혁신은 언제든 왕이나 귀족에게 빼앗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 혁명 이후에 사유 재산권과 지식 재산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결정적으로 법의 공정한 적용(법치주의)과 시민의 정치 참여 등이 자리 잡는 중이었다. 영국의 발명가나 기업가는 이런 포용적 제도에 혁신으로 답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감을 잡았겠지만, 이렇게 ‘문화’와 ‘제도’를 강조하는 두 그룹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서 축적한 혁신의 문화(모키르)가 17세기 말에야 영국에서 완성된 포용적 제도를 통해서(아제몰루 등) 산업 계몽주의(다시 문화!)를 낳았고, 이것이 산업 혁명을 꽃피울 수 있게 되었다는 상당히 정교한 논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키르가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세상에 내놓은 『번영으로 가는 두 갈래 길: 1000∼2000년의 유럽과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문화’와 ‘제도’의 상호 작용을 중요하게 여겨 온 경제학자 애브너 그라이프(Avner Greif), 귀도 타벨리니(Guido Tabellini)와 공동 작업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혈연 기반 씨족의 몰락



『번영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은 원서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모키르가 『성장의 문화』에서 살펴본 1500년부터 1700년 즉 16~17세기보다 무려 500년을 앞선 1000년, 즉 11세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계몽된 경제』(2009년)→『성장의 문화』(2016년)→『번영으로 가는 두 갈래 길』(2020년) 순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모키르는 이 책에서 왜 하필이면 유럽에서 16~17세기에 생산의 문화, 즉 ‘명제적 지식(Ω 지식)’과 ‘처방적 지식(λ 지식)’을 융합해 ‘유용한 지식’을 창출하려는 욕구가 확산하고 문예 공화국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나아가 그것을 산업 계몽주의로 유도할 포용적 제도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었는지 등의 좀 더 근원적인 답을 찾는다.
모키르가 내놓은 대답은 ‘씨족(clan)’이 아닌 ‘코퍼레이션(corporation)’, 즉 ‘법인’의 등장이다. 1000년부터 1500년까지의 유럽처럼 국가가 부재하거나 약할 때, 개인은 누구와 어떻게 협력해서 공공재(안전, 분쟁 해결, 신용 등)를 생산했을까? 인류가 추구해 온 전통적인 대응은 혈연 기반의 씨족이었다.
모키르와 그의 동료에 따르면, 1000년 즉 11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씨족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기반으로 한 코퍼레이션, 즉 법인이 등장했다. 11세기부터 유럽에서 혈연 기반의 씨족 구조가 파괴되었고 이 전통적인 ‘안전망’을 잃어버린 유럽 인은 혈연과 무관한 낯선 사람들(strangers)과 협력할 새로운 사회 조직, 즉 길드, 수도원, 자치 도시, 대학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이후 특정 목적을 가진 이해 당사자가 모인 결사체, 즉 현대적 의미의 법인을 낳았다. 당연히 이 새로운 ‘법적 실체’가 재산 소유권, 지적 재산권 등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안정적으로 기능하려면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하는 법의 지배(법치주의)가 전제되어야 했다. 또 그에 대한 상향식 요구의 결과가 바로 포용적 제도의 국가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어땠을까? 11세기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여전히 혈연 기반의 씨족이 사회 조직의 근간이었다. 그 덕분에 유럽과 중국은 1000년 정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모키르 등에 따르면, 중국은 권력을 가진 왕조가 지역의 씨족을 통제할 방편으로 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수백 년의 씨족과 국가의 상호 작용이 중국이 유럽과는 다른 길을 간 이유다.
위어드와 코퍼레이션의 탄생

그렇다면, 도대체 1000년을 기점으로 유럽에서 혈연 기반의 씨족 구조가 파괴되고 혈연과 무관한 결사체(법인의 초기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모키르는 ‘진화와 문화의 공진화’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인류학자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의 역작 『위어드(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2020년)의 핵심 주장에 의존한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헨릭은 현대 미국인과 유럽 인, 즉 위어드(The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가 전 세계 인구의 90퍼센트와 다르다(즉 ‘이상하다(weird)’)고 주장한다. 위어드는 개인주의적이고 보편주의적 도덕관을 가지고 있으며(예를 들어, 낯선 사람에게도 자기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하고) 비대면 신뢰가 높다.
헨릭은 이렇게 서양인이 위어드해진 시점이 바로 약 1000년부터라고 주장한다. 가톨릭 교회는 세속 권력과 경쟁하고자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게르만 족의 강력한 혈연 기반의 씨족 구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려고 했다. 그 결과가 사촌 간 결혼 금지, 근친혼 금지, 레비라트혼(Levirate marriage, 형사취수제) 금지, 입양 금지, 일부다처제 금지 같은 결혼과 가족 제도 개혁이었다.
이 결혼과 가족 제도 개혁이 수백 년간 시행되면서, 혈연 기반의 대가족과 씨족 구조가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사라진 ‘씨족 안전망’을 대신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길드, 수도원, 자치 도시, 대학 등의 자발적 결사체였다. 가족을 잃은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만든 ‘비혈연 네트워크’가 바로 모키르 등이 강조한 코퍼레이션 즉 법인의 등장을 가속화했다.
헨릭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서양인(위어드)의 ‘심리’와 그것에 기반을 둔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물었다면, 모키르와 그의 동료는 그 심리를 가진 사람이 형성한 문화가 어떻게 조직과 제도를 만들어서 국가와 상호 작용했는지, 나아가 산업 계몽주의 같은 번영(산업 혁명)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문화-제도를 낳게 되었는지 살폈다.

모키르는 (1) 조지프 헨릭의 진화 인류학 토대 위에서 (2) ‘문화’와 ‘제도’ 또 ‘국가’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고 (3) 그것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모키르의 ‘유용한 지식’의 확산과 ‘산업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져서 산업 혁명을 낳았는지를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그림으로 완성했다. 대분기 논쟁에서 ‘문화’와 ‘제도’를 강조하는 양쪽 시각을 통합한 셈이다.
영국이 선택받은 이유?
그렇다면, 영국의 ‘고임금’이야말로 기술 혁신(수력과 증기력에 의존하는 방적기와 방직기 등의 도입)을 추동해서 산업화를 낳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로버트 카슨 앨런의 주장은 이쯤에서 기각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문화’와 ‘제도’에 더해서 앨런의 주장까지 아우를 때 왜 유럽 특히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키르와 또 ‘제도’를 강조하는 경제학자와 역사학자의 주장을 모두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이라는 특정한 시간대에 왜 영국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훗날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급속한 산업화가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논리의 빈구석이 곳곳에 보인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앨런의 주장이 여전히 강력한 설명력을 가진다.
양쪽을 통합해 보자. 강력한 증기력을 가능하게 하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 탄생할 수 있었던 문화가 16~17세기에는 서유럽 전체에서 확산했다. (문예 공화국과 ‘유용한 지식’에 대한 욕구 증대) 마침, 그 시점에 영국에서는 명예 혁명(1688년)을 통해 포용적 제도의 국가가 등장해 기업가와 발명가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문을 열어 주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산업 계몽주의 같은 진화한 문화가 등장했고 그 대표적 결과물이 와트의 증기 기관이다.
여기서 앨런이 등장한다. 이 시점에 영국 특히 런던은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임금이 가장 높았다.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는 일이 직접적인 돈벌이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설 때, 기업은 기술 혁신에 투자한다. 고임금은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수력 방적기나 와트의 증기 기관과 같은 기술 혁신이 낳을 노동 절약의 가능성에 기업이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문화’, ‘제도’, ‘임금’이라는 세 조각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출 수 있다. 모키르는 ‘왜 영국(넓게는 유럽)에서 와트의 증기 기관과 같은 혁신의 아이디어가 공급될 수 있었는가?’(역량)에 답한다. 앨런은 ‘왜 하필 그 시점에 영국에서 기업이 노동 절약 기술에 열광했는지?’(방향)에 답한다. 아제몰루 같은 경제학자는 그런 혁신의 문을 연 조건이 무엇이었는지(제도)에 답한다.
수력은 왜 증기력에 패배했나: 산업 혁명의 진짜 승부처

이 대목에서 숨은 그림도 한 가지 있다. 지난 연재 말미에 잠깐 언급한 안드레아스 말름의 『화석 자본』에 따르면, 와트가 뉴커먼 증기 기관을 개선한 1776년부터 그가 세상을 뜰 때인 1819년까지만 하더라도 증기 기관은 실을 뽑고(방적기) 면을 짜는(방직기) 기계와 결합하지 않았다.
놀라지 마라. 와트가 증기 기관을 팔고자 세운 기업 ‘볼턴 앤드 와트(Boulton and Watt)’가 1775년 창업하고 나서 19세기가 시작한 1800년까지 영국 전체에 설치한 증기 기관은 수천 대가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영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면직업 공장 약 1,100곳에 쓰인 증기 기관은 10분의 1 미만일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탄광에서 물을 빼는 용도로 사용했다.)
와트가 석탄 소비량을 4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증기 기관을 내놓았으나 당대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증기력이 아니라 수력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1860년대가 되어서야 수력 대신 증기력이 대세가 되었다. 2016년에 나온 『화석 자본』은 산업 혁명 초기에 수력이 ‘왜’ 또 ‘어떻게’ 증기력으로 대체되었는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역작이다.
말름에 따르면, 수력이 몰락하고 증기력이 대세가 된 진짜 이유는 당대의 자본과 노동의 역학 관계의 변화였다. 당시 수력 기반 공장은 어쩔 수 없이 하천 근처, 대부분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물의 흐름에 따라서 24시간 가동했던 수력 기반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에는 전국 각지(도시)에서 모여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사는 주거 단지가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한동안 문제없이 돌아갔던 이곳에 문제가 생긴다. 전국 각지에서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노동자 파업 물결이 수력 기반 공장 마을까지 덮쳤다. 이곳에서 노동자가 파업하면 기업가(공장주)는 속수무책이다. 그 파업 노동자를 해고하면 대체 인력(산업 예비군)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833년 최초의 실효성 있는 공장법이 통과되면서 ‘9세 미만 아동 노동 금지’ 같은 조항 외에도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단축하고, 야간 노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수력 기반 공장은 결정타를 맞았다. 물의 흐름에 따라서 24시간 가동했던 수력 기반 공장의 경쟁력이 상실된 것이다.
결국 기업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언제든 산업 예비군(실업자)이 넘쳐나는 도시로 공장을 옮기는 일이었다. 마침, 하천이 없는 도시의 공장에서도 방적기나 방직기의 동력으로 쓸 수 있는 와트의 증기 기관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또 잉글랜드 북쪽의 얕은 탄광 지대에서 가져올 석탄의 가격도 (수력만큼은 아니지만) 쌌다. 이것이 말름이 파악한, 증기력이 승리한 이유다.
여기서 앨런과 말름의 주장을 통합해 보자. 영국의 ‘고임금’(경제적 비용)은 앨런이 주장했듯이 노동 절약적인 혁신이 추동했다. 하지만 그 혁신의 방향은 모키르가 산업 계몽주의의 상징으로 꼽은 와트의 증기 기관이 아니라 수력(수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초반에 선택지였던 수력 기반 자동화는 ‘노동자의 파업과 저항으로 인한 손실’(사회적 비용)에 취약했다.
기업이 경제적 비용(앨런)과 사회적 비용(말름)을 최소화하면서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지가 바로 그 시점에 대안으로 존재했던 와트의 증기 기관이었다. 여기에 잉글랜드 북쪽의 값싼 석탄(앨런)은 증기 기관 선택의 유인이었을뿐더러, 산업 예비군이 가득한 도시로 공장을 옮길 수 있는 조건도 되었다.
대분기의 4단계 퍼즐

21세기 대분기, AI는 제2의 증기 기관이 될 것인가?
이렇게 ‘문화’ ‘제도’ 그리고 고임금이라는 ‘경제적 비용’과 자본과 노동의 역학 관계라는 ‘사회적 비용’ 나아가 ‘자원’(석탄)까지 대분기 논쟁의 그림의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물론, 이렇게 그린 복잡한 그림은 나만의 시각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사를 딱 하나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하기보다는 이렇게 복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슬기로운 대응이 아닐까?
모키르도, 아제몰루도, 앨런도, 말름도 옳다. 그렇다면, 산업 혁명만큼이나 큰 충격을 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인공 지능(AI)이 본격적으로 삶 속으로 들어오는 지금을 놓고서는 200년 후에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는 어떻게 평가할까? 지금 우리는 모키르, 아제몰루, 앨런, 말름 등이 내놓은 그림 조각을 제대로 맞추고 있을까?
만약, 산업화 초기의 교훈이 맞다면 AI 시대의 번영 역시 기술(알고리즘)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어떤 ‘문화’로 받아들이고, 어떤 ‘제도’로 통제하며, 그 이익을 누구에게 ‘얼마나’ 또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19세기의 영국이 그랬듯이, 이 선택이 21세기의 대분기를 결정할 것이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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