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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과학의 민낯

AI는 어떤 직업을 공격할까?

Editor! 2025. 9. 4. 17:03

과학과 사회,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파헤치면 과학의 품격을 따지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지식 큐레이터 강양구 기자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1년간 매달 2편씩 과학의 민낯이라는 연재 제목으로 인공 지능이나 기후 위기부터 스멀스멀 다가오는 새로운 팬데믹과 기존 지식 체계를 모조리 뒤흔드는 생명 과학과 뇌과학까지 우리 시대의 과학 문제들을 깊이 읽어 갑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함으로써 언젠가 인간성 그 자체도 위협할지 모르는 AI의 민낯을 살핍니다. 사이언스북스 독자들의 깊은 관심을 바랍니다.


인공 지능의 시대, 우리는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의 첫 자격증은 놀랍게도 운전 면허증이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술 마시며 허송세월 보내다 운전 면허 학원을 등록만 해놓고서 무단 결석하면서 면허증을 딸 기회를 놓쳤다. 그러고 나서 세기말에 끌려가듯이 군대에 입대했다. Y2K 같은 공포가 대중을 덮친 밀레니엄 전환기에도 국방부 시계는 다행히 멈추지 않았다.

 

제대할 무렵, 모든 병장에게 자격증 시험을 보라는 권고(?)가 있었다. 인터넷 정보 검색사 2. 이름처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능력을 평가하는 자격증이었다. 이런 자격증이 존재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이 시작한 인터넷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능력이 중요해질 거야.’ 여기까지는 맞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서 미래 직업의 가능성을 찾았다. 이런 식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특별한능력을 갖춘 사람이 미래 인재가 될 테고, 심지어 그들은 인터넷 정보 검색사로 불리게 될 거라고.

 

물론, 우리는 21세기가 되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안다. 정보 검색사 같은 직업은 20세기는 물론이고 21세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곧바로 누구나 구글같은 검색 사이트를 통해서 원하는 정보를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과학 기술 혁신이 직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평소 10대를 상대로 강연할 때마다 미래 직업 탐험같은 제목을 단 책은 손에 들지도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 나타나고 지금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렇게 새로 나타난 직업 가운데 어떤 직업이 유망할지를 예측하는 일은 거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다.

 

아직도 긴가민가하는 독자가 있을 테니,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20163월 바둑 인공 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AI 탓에 사라질 직업과 다행히 살아날 직업을 놓고서 여러 전문가의 전망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한국 고용 정보원이 2016324일 발표한 보고서가 중요한 출처였다.

 

당시 전망에 따르면, 화가 및 조각가(1), 사진 작가 및 사진사(2), 작가 및 관련 전문가(3), 지휘자 작곡가 및 연주가(4), 애니메이터 및 만화가(5) 등은 대체 가능성이 낮았다.” 반면, 콘크리트공(1), 정육원 및 도축원(2),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 조립원(3), 청원 경찰(4), 조세 행정 사무원(5) 등은 대체 가능성이 높았다.”

 

어떤 독자는 여기까지만 읽고서 하고 웃을 테다. 맞다. GPT 같은 생성형 AI가 나오고 나서 가장 먼저 공격받은 직업이 바로 화가, 사진 작가, 작가, 작곡가, 애니메이터 등이었으니까. 반면, 2016년의 예상과는 반대로 지금은 정교한 손동작이 필요하거나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처럼 몸을 직접 써야 하는 일일수록 AI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지금도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 지능이 직업의 미래를 놓고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놓고서 수많은 말이 오간다. 그 가운데 30년쯤 지났을 때 쓸 만한 얘기는 거의 없을 테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서 신기술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일자리 더 넓게는 노동에 어떤 영향을 줄지 특정한 경향성 정도는 따져볼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 보겠다.

 

챗GPT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브리 화풍으로 생성해 줘.”라는 프롬프트로 생성한 이미지

 

일자리를 둘러싼 AI와 인간의 경쟁, 역사에 답이 있다

경제사학자 여럿이 갑론을박하는 주제 가운데 대분기(Great Divergence)’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거칠게 요약해 보면, 언제부터 동양보다 서양이 잘살게 되었는지, 또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산업화가 왜 동양(예를 들어 중국)이 아니라 서양(대표적으로 영국)에서 시작했는지 등을 따져 묻는 논쟁이다.

 

앞의 질문은 대충 답이 나왔다. 서양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820,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여전히 전 세계 부의 59퍼센트 정도는 동양에 있었다. 하지만 1913, 20세기가 시작하던 때로 돌아가면 전 세계 부에서 동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25퍼센트 정도로 쪼그라들고 대신 유럽과 미국의 비중은 57퍼센트 정도로 역전된다.

 

이렇게 19세기의 어느 순간에 동양에서 서양으로 부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그 이유는 누구나 안다. 서양은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동양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왜 산업화는 동양이 아니라 서양에서 시작했을까? 또 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도 하필이면 영국에서 시작했을까?

 

이 후속 질문을 놓고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역사학자와 경제학자가 논쟁 중이다. 예를 들어,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카메르 다론 아제몰루(Kamer Daron Acemoğlu) 같은 경제학자는 중국과는 달랐던 영국의 제도와 문화를 그 동력으로 꼽는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는 없었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야말로 산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제몰루의 시각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제임스 앨런 로빈슨(James Alan Robinson)과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4장(「작은 차이와 결정적 분기점」), 역시 노벨 경제학상을 함께 받은 사이먼 존슨(Simon H. Johnson)과 쓴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 5장(「중간 정도의 혁명」)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1686년 명예 혁명 이후 영국에서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고 나서 왕과 귀족의 권력이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평범한 배경 출신인 사람사업가 정신을 발휘하면 한몫 잡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과정에서 각종 발명과 혁신 그것을 사업화하려는 시도가 꽃 피우면서 영국의 산업화가 가속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심각한 허점이 있다. 유럽에는 영국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산업화를 이룬 영국 이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던 네덜란드 공화국(1579~1795)이 있었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17세기에 이미 투자, 무역, 혁신의 기회를 제공할 여러 경제 제도를 채택했고, 실제로 세계사의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산업화는 영국보다 훨씬 늦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로버트 카슨 앨런(Robert Carson Allen)은 이런 허점을 보완해서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들려준다. 앨런은 산업화를 추동하는 아주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기술 혁신의 수익성(profitability)’을 꼽았다. 간단히 말하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는 일이 직접적인 돈벌이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설 때 기업은 기술 혁신에 투자한다.

 

이런 전제를 깔고서, 앨런은 영국에서 산업화에 가속도가 붙었던 19세기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실질 임금을 비교한다. 영국 특히 런던의 실질 임금은 19세기에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럼, 가장 낮았던 곳은 어디일까? 바로 중국의 베이징이었다. 앨런은 영국의 고임금이야말로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여기 19세기로 진입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있다. 영국만큼이나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발명품과 그것을 산업화하려는 사업가 정신을 가진 발명가-기업인이 많았다. 예를 들어, 양쪽 모두 수력이나 증기력으로 움직이는 방적기나 방직기를 공장에 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영국은 인건비가 비쌌던 반면에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쌌다. 새로운 방적기나 방직기를 공장에 도입하려면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합리적인 기업인이라면 당연히 계산기를 두드려 볼 것이다. 새로운 기계를 도입할 때의 투자금이 기계를 도입해서 줄일 수 있는 노동자의 인건비보다 적다면? 기계화!

 

반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할 때의 투자금이 기계를 도입해서 줄일 수 있는 노동자의 인건비보다 되레 많다면? 기계화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앨런은 19세기에 유럽에서는 영국(고임금)과 프랑스(저임금), 전 세계 차원에서는 영국(고임금)과 중국(저임금) 사이에 바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고임금을 감수해야 할 영국의 기업인은 산업 혁명에 나설 이유가 있었다.

 

(앨런은 여기에 덧붙여서 영국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 쉽게 캐낼 수 있었던 석탄의 존재도 강조한다. 고임금 노동자는 줄일 수 있으면서 그들을 대신할 방적기나 방직기의 동력이 될 증기 기관의 원료인 석탄 가격은 싼 상황. 아제몰루가 얘기한 사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인이라면 기계를 도입하는 일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 기계가 싸다면 기계를, 인간이 싸다면 인간을.

 

로봇은 인간에 좋은 일자리를 남겨 줄까?

고임금의 중요성을 언급한 앨런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과학 기술 혁신, 예를 들어 AI와 로봇의 부상이 직업과 노동에 영향을 줄 때의 한 가지 경향을 유추할 수 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 여럿을 대신할 수 있다고 치자. 그때 가장 먼저 AI와 로봇의 압박을 받을 기업은 바로 고임금의 일자리다.

 

이런 경향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여기 고액 연봉을 받는 화이트칼라 전문직(변리사, 변호사, 세무사, 애널리스트, 의사, 회계사 등)과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는 돌봄 노동 종사자(보육 교사, 요양 보호사)나 사회 필수 인력(경찰관, 소방관, 환경 미화원 등)이 있다. 만약 AI와 로봇이 전자와 후자의 노동을 비슷하게 대신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이 좀 더 빨리 대체될까?

 

지금까지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조금 삐딱한 얘기도 해 보자. 내가 아직 소년이었던 20세기, 정확하게는 1980년대에는 조악한 과학 학습 만화가 유행했었다. 그 만화 속에서 묘사되는 21세기 세상에서 인간은 위험한 일, 지루한 일, 하기 싫은 일은 AI와 로봇에게 미루고 인간은 안전하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했다.

 

요즘에도 텔레비전 강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AI와 로봇 등과 함께 하는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는 과학자-엔지니어가 많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지금 다수가 선망하는 고임금의 안락한 그래서 흔히 좋은이라고 수식을 받는 일자리가 제일 먼저 AI와 로봇에 대체되고 나면 인간의 자리에 남은 일자리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면 꼭 이런 반론이 나온다.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엄청난 충격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좋은일자리가 새로 나타났다고. 비록, AI와 로봇으로 지금 우리의 일자리와 그것과 뗄 수 없는 삶이 큰 충격을 받더라도,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등장할 거라고. 다음 연재에서는 이런 질문에 답해 보자.

 

앞의 사진을 챗GPT로 바꿔 그린 그림. 인간 노동자 찰리 채플린 대신,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로 바꿔 보았다.

 

하나 더

마지막으로 이 얘기도 덧붙이자. 한국 정보 통신 진흥 협회가 운영하고 발급했던 인터넷 정보 검색사 자격증은 1997년 첫 시험이 치러지고 나서 무려 2022년까지 존속했다. 심지어 2022년까지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위해서 2023, 2024년까지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한때 이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일부 9급 공무원 시험에서 공채 가산점을 얻기도 했다고.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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