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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을 읽는 나침반: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연속 리뷰 ④ 본문
반도체와 AI는 이제 미중 경쟁의 핵심 언어이자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결정짓는 변수가 되었습니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중국의 첨단 컴퓨팅 산업 전략을 따라가며, 반도체와 AI가 오늘의 국제 정치와 산업 질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추적합니다. 기술, 지리, 정치라는 세 축을 연결하는 기정학(技政學)적 반도체 산업 분석을 담은 이 책에 전직 외교부 장관, 정치외교학자, 언론계 인사, 인기 지식 유튜브 채널 운영자까지 많은 분들이 애정을 담아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국제정치경제와 경제 안보를 연구해 온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추천사를 전합니다. 이번 추천사는 딥시크 쇼크 이후 더욱 복잡해진 중국의 반도체+AI 전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경쟁이 왜 한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지를 새삼 일깨웁니다.
19세기 패권 경쟁이 드레드노트급 전함 수로 상징되는 제해권으로 가려졌고, 20세기 패권 경쟁이 핵탄두 수와 투발 능력으로 측정되었다면, 21세기 패권 경쟁의 척도는 반도체와 인공 지능에서의 초격차다. 권석준 교수의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바로 이 21세기 패권 경쟁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침반을 제공한다.

이 책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반도체 생산을 둘러싼 과학적 배경과 기술적 난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온갖 난해한 문제들, 그리고 반도체 기업이 직면한 경영상의 도전까지 — 중국 반도체 굴기의 총체적인 지형을 이토록 입체적으로 조망한 책은 찾기 어렵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기업 간 경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치열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책의 메시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21세기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인공 지능 산업과 이미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 경쟁이 기술 선점과 수익 확보를 둘러싼 거대한 치킨 게임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미국의 기술 제재 속에서 기술 자립과 내수 수익 확보에 내몰린 중국은, 화웨이를 중심으로 인공 지능 생태계를 자체 구축하는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딥시크의 등장 — 저비용 기술 혁신의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한 사건 — 은 중국에겐 환호였고 미국에겐 충격이었다.

저자는 ‘딥시크 쇼크’가 중국 AI·반도체 굴기의 첫 번째 승리임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수많은 난관이 중국 앞에 놓여 있음을 냉정하게 짚는다. 대규모 투자로 인해 사실상 ‘자국 경제와 전투를 벌이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과잉 투자, 장비의 빠른 감가상각, 수익 사이클의 악화,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익 기회 박탈, 핵심 공정 장비에 대한 수출 제재 등 겹겹이 쌓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나 대만이 걸어 온 고도화 경로를 중국이 그대로 밟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국의 ‘리디렉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인공 지능이라는 토끼를 쫓으면서 반도체라는 토끼까지 함께 잡으려는 두 마리 토끼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의 가장 큰 위험은 공산당 일당 체제라는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약점에서 비롯된다. 수익 악화와 금융 부실을 계속 감추면서 무조건적인 투자를 밀어붙이다 보면, 결국 파괴적 혁신 선점이라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거나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실패를 맞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극단적인 결말에 이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금 그 위태로운 치킨 게임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박종희
서강 대학교 정치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 대학교 외교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에서 무역 보조금 연구와 베이지안 방법론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로 부임하며 국제 정치 경제와 정치학 방법론을 가르쳤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미시간 대학교 ICPSR에서 베이지안 방법론을 가르쳤다. 2012년부터 서울 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국제 정치 경제와 사회 과학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 대학교 국가 미래 전략원 경제 안보 클러스터 연구클러스터장, 국민 경제 자문 회의 경제 안보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베이지안 전환점 모형에 대한 연구로 2010년 미국 정치학회 방법론 분과 최우수 논문상인 해롤드가즈넬 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MCMCpack으로 미국 정치학회 방법론 분과가 수여하는 통계 소프트웨어 상을 수상했다. 『힘과 규칙: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사회과학자를 위한 데이터 과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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