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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의 독서법 2: 조선 시대 이후 우리 지식인들의 독서사 본문
공자와 맹자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조각난 독서 정신을 매섭게 질타했던 「이권우의 독서의 과학」이 이번에는 유학의 영토를 확장하고 조선의 사상적 뼈대를 세운 거인들의 독서법으로 깊이를 더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쇠락하던 유학을 부활시키며 “글과 마음과 몸이 일체를 이루는 독서의 윤리”를 정립한 남송의 주자, 그 주자학을 수입하는 수준을 넘어 독창적인 지평으로 넓혀나간 조선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그리고 유배지에서 500여 권의 대작을 길어 올린 실학의 거두 다산 정약용의 지독한 공부론을 톺아봅니다.
책 읽기를 시간 때우기나 지적 사치로 여겨 온 현대인들에게 이들의 독서법은 서늘한 각성을 선사합니다. 마치 등 뒤에 칼이 와 닿은 듯 목숨을 걸고 텍스트에 육박했던 주자의 ‘무사적 숙독’부터, 내 뜻을 먼저 세우고 그에 맞는 지식을 그물 치듯 낚아채는 다산의 ‘초서법(抄書法)’까지! 스마트폰 화면 위를 얄팍하게 서핑하는 디지털 시대, 온몸과 영혼을 던져 텍스트 이면의 천리(天理)를 꿰뚫었던 현인들의 찬란한 독서 투쟁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천 년의 유학을 다시 세우다!
‘공부’를 새로 정의한 주자
공자 철학은 한나라 이후 통치 철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법, 도교와 불교의 강력한 도전으로 그 위상이 낮아지더니 급기야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불교가 천하를 지배했다. 쇠락한 공자 철학을 되살려 낸 유학자가 남송의 주자(朱子, 1130~1200년)다. 도교와 불교에 대한 대대적인 사상적 공세를 펼친 셈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년)를 복권하고 『예기(禮記)』에 있는 글을 따로 뽑아 유가 철학의 입문서로서 『대학(大學)』, 유가 철학의 형이상학으로서 『중용(中庸)』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세 권에 『논어(論語)』까지 포함해 집주를 달아 펴냈는데 이를 『사서집주(四書集註)』라 하고, 이후 유가 사상의 ‘교과서’가 되었다. 조선이 받들었던 성리학이 바로 주자 철학을 가리킨다.

한형조(韓亨祚, 1959년~)는 『논어』 1편 1장에 관한 주자의 주석을 바탕으로 주자 특유의 공부론을 풀이했다. 주자는 공자(기원전 551〜479년)의 ‘학(學)’을 ‘깨달음’이라 풀이했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한소식’이 아니라,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자각과 각성을 뜻한다. (뱀 다리를 달면, 주자는 “학은 본받는다(效)는 말”이라고 했다. 이어서 사람의 품성은 모두가 착한데 깨달음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다고 했다. 한형조는 ‘학’은 먼저 깨달은 이를 본받는 것이라 보아 깨달음에 더 방점을 찍어 설명한 셈이다.) 예외적인 선각(先覺)만이 이 경지에 이르는 법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이는 선각이 걸어간 길을 뒤쫓으면 된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자신의 본성을 마주하고 자신의 존재를 되찾을 수 있다. 주자는 악을 본원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무지와 미성숙, 잘못된 습관의 결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서 본성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학’의 도정이라 했다. 이렇게 되면 삶의 과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明善), 그 본래의 선한 모습을 되찾는 것(復其初)이 된다.
주자의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 말한 명덕(明德)은 영혼이 타고난 빛과 힘이다. 문제는 유전적 제약과 이기적 관심, 나르시시즘적 자기기만, 감정적 편향 등속의 영향으로 그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장애물은 기질이 만든다. 주자는 기질은 선천적으로 차등이 있는데, 환경과 교육에 따라 변한다고 했다. 기질의 혁신이 한 인간에게 주어진 존재론적 과제라는 말이다. 한형조의 말대로 “몸의 자세를 가다듬고 물뿌리고 응답하는 소학(小學)에서 감정과 의지의 정화에 이르는 심학(心學), 사회적 정치적 참여와 역량의 발휘라는 대학(大學)”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기질은 서로 달라도 공부하면 하학상달(下學上達)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주자는 ‘하학’은 사물의 탐구라 풀이했고, ‘상달’은 사상과 식견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거나 천리의 오묘함에 통달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주자의 공부론은 한마디로 하면 거경궁리(居敬窮理)라 할 만하다. 한형조는 ‘거경’은 정신이 자기 각성을 유지하는 것을, ‘궁리’는 사물의 이치를 획득하는 것이라 풀이했다.
『주자어류』가 제시하는
‘독서의 현상학’
주자가 제자와 나눈 대화록이 『주자어류(朱子語類)』다. 이 책의 10권과 11권의 제목이 「독서법(讀書法)」인데, 두 권을 합치면 무려 245조목에 이른다. 주자 철학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위상을 어림짐작할 수 있을 테다.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아, 쉽게 읽힌다는 장점에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흥미롭게도 철학 신학(philosophical theology) 전공자인 강영안(1952년~) 교수가 주자 독서론의 특징을 “글과 마음과 몸이 일체를 이룬 독특한 공부법”이라 하며 『주자어류』의 독서법 텍스트를 독특한 시각으로 분류하고 해설한 바 있다. 동양 철학자가 분류하고 해설한 것과 달리 상당히 현대적이라는 장점이 있는지라, 강 교수의 분류에 따라 주자는 왜,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톺아 본다.
강영안은 가장 먼저 주자 독서법에서 ‘무엇을, 왜 읽을 것인가?’라는 주제를 추출해 내고 이를 ‘독서의 현상학’이라 이름 붙였다. 주자는 성인의 수많은 말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도리를 말한 것일 뿐”이라 했다. 이들이 책을 남긴 이유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해서다. 고대에 성인이 발명한 나무에 새긴 문자를 가리키는 서계(書契) 이래 『서경(書經)』의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을 말하는 이전(二典)과 『서경』의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을 말하는 삼모(三謀), 이윤(伊尹, 미상), 무왕, 기자(箕子, 미상), 주공(周公, ?~기원전 1032년), 공자, 맹자가 모두 이와 같을 뿐이라면서 이들이 완전히 말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자어류』 11:86) 책을 쓴 목적을 달리 설명하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은 사사로운 생각을 품은지라 성현이 수많은 말을 남겨서 사사로운 생각을 없애고, 사람마다 측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온전히 품도록 하였다. (『주자어류』 11:89)
비슷한 구절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본래의 마음이 물욕에 빠진 지 오래 되어 마땅한 도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우선 책을 읽어서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 항상 끊임없이 그렇게 한다면, 물욕에 빠진 마음은 마땅한 도리를 되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마음이 지닌 마땅한 도는 안정되고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주자어류』 11:5)
사람이 학문하는 것은 마음에서 깨닫고, 몸에서 체득하기 위해서다. 만약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에서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주자어류』 11:1)
그러니 장횡거(張橫渠, 1020~1077년)가 말한 대로 책은 본래 타고난 마음을 유지해 주는 것이다. 한순간 책을 내려놓으면, 덕성에 나태함이 생긴다. 이러니 어떻게 책 읽기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주자어류』 11:3)

유교는 ‘성인(聖人) 되기 프로젝트’다. 누구나 다 성인이 될 가능성을 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기심과 물욕 탓에 그 가능성을 잃고 만다. 그런데 세속에 치인 사람은 자신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맹자식으로 말하면 선한 마음을 간직(존심(存心))하지 못하고 그 마음을 놓치고 만(방심(放心)) 셈이다. 책은 거울이다. 여기에 비추어 보니 내가 마땅한 도리에 벗어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역할을 해 줄 만한 책은 성현의 말씀을 담은 경서다. 요즘 말로 하면 고전이다. 강영안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성인이 되고자 하는 무한한 열망이 일어나고 이 열망을 바탕으로 끈질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맹자식으로 하면 잃었던 본디 마음을 찾는 구방심(求放心)이다. “경서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동시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되는 법이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확실해진다.
마음을 비워야 글이 보인다
주자의 첫 번째 독서 원칙, 허심
다음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인데 이를 ‘독서의 윤리’라 명명했다. 첫 번째는 ‘허심(虛心)의 독서: 마음을 비우는 글 읽기’다. 주자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치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가령 책을 읽으려 한다면,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켜서 밝은 거울이나 고요한 물처럼 만들어야 한다. 어두운 거울은 사물을 비추지 못한다. (『주자어류』 11:12) 책을 볼 때는 반드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을 넓게 하며, 반복해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오랜 시간 이렇게 하면 책의 내용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주자어류』 11:34) 배우는 사람은 아주 고요하고 순수하게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상 생활에서 밖으로 달아나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치밀하고 자세하게 글을 볼 수 있다. (『주자어류』 11:8) 마음 비우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지금 바로 마음이 책 위에 있도록 하면 된다. (『주자어류』 11:14) 복잡한 세상사와 절연해야 비로소 책에 집중할 수 있다. 이때 비로소 저자가 쌓아 놓은 상상과 인문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몰입하면 치유되고 반성하고 각성하게 마련이다. 오늘날로 치면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하자는 말로 보면 된다. 끊고 몰입하자!

“마음을 비운다.”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자기 뜻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성현의 말에 옮겨서는 안 된다. (『주자어류』 11:65) 글을 볼 때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면 모두 어긋나 버리는 탓이다. (『주자어류』 11:23) 자신의 견해를 억지로 끼워 넣지 말고, 그 책에서 옛사람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주자어류』 11:62) 맹자가 말한 이의역지(以意逆志)의 독서법과 유사하다. 지은이의 사유를 치밀하게 분석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책 읽기의 기본이다.
허심의 독서의 세 번째 의미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의 경전을 해설할 때, 항상 자기 자신을 없애고 완전히 마음을 비우면, 그 도리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워 성현의 책을 읽으면, 그 본의를 간파할 수 없다. (『주자어류』 11:31) 비유하자면 재판하는 것과 똑같다. 마음에 미리 을을 지지하는 생각이 있으면, 곧 갑의 옳지 않은 점만 찾게 된다. 미리 갑을 지지하는 생각이 있으면, 곧 을의 옳지 않은 점만 보게 된다. 갑과 을의 설명을 잠시 놔두고, 천천히 살펴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듯 책을 읽어야 한다. (『주자어류』 11:73)
몸으로 읽고 마음에 새겨라
주자의 두 번째 독서 원칙, 체인
허심의 독서를 잇는 두 번째 독서의 윤리는 ‘체인(體認)의 독서’로, 글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글 읽기다. 주자는 책을 읽어서 이치를 궁구할 때는, 마땅히 몸에서 체득해야 한다고 했다. 제자에게 평소에 익히고 강론하고 궁구한 것을 날마다 항상 마음에서 깨닫고 있는지 물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끝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경고했다. (『주자어류』 11:2) 주자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마땅한 도리를 체인하라고 했다. 하루 종일 항상 책을 읽으면 마음이 달아나지 않지만. 간혹 일 속에 섞이게 되면 마음이 쉽게 그 일에 빠져 버린다. 그러니 책을 읽으면서 의리를 체인하면 마음을 불러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주자어류』 11:4) 강영안은 독서의 목적이 바른 이치를 깨달아 아는 데 있는데, 마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를 이룰 수 없는지라 주자가 마음을 강조한 것은 자연스럽다고 평했다.

천천히 씹어야 맛이 난다
주자의 세 번째 독서 원칙, 숙독과 열독
세 번째 독서의 윤리는 숙독(熟讀)과 열독(熱讀)으로, 서두르지 않고 읽기와 생각하면서 읽기다. 기실 『주자어류』의 「독서법」 10편은 전편이 숙독과 열독을 키워드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독과 열독은 깊이 읽기를 권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단마다 자세하게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하루 혹은 이틀 동안 오직 한 문단만 읽는다면, 이 한 문단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이 한 문단을 내 것으로 한 뒤에 다시 두 번째 문단을 읽는다. 이렇게 차례차례 많은 것을 힘들게 읽어 나가면 여러 가지 도리를 깨우치기 마련이다. (『주자어류』 10:48) 읽는 시간은 늘리고 분량은 적게 하라고도 했다. (『주자어류』 10:37)
숙독과 열독은 사유하며 읽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일찌감치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논어』 2:15)라고 말한 바 있다. 주자는 이 뜻을 이어서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읽으면 자연히 의미가 생긴다고 보았다. (『주자어류』 10:66) 읽되 생각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생각하되 읽지 않으면, 설사 이해했다 하더라도, 결국 위태로워서 편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자어류』 10:65) 숙독과 열독은 당연히 느리게 읽기를 권한다. 성현의 말을 볼 때는 너무 지나치게 서두르면 안 된다. (『주자어류』 11:70)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느긋하게 하면, 도리는 저절로 나온다. 거꾸로 걱정하고 조급해한다면, 도리는 끝내 나올 길이 없다. (『주자어류』 10:30) 책 읽기는 음식과 같다. 천천히 씹으면 그 맛이 오래 가지만 대강 씹어서 삼키면 맛을 알 리 없다. (『주자어류』 10:64)
등 뒤에 칼을 품은 것처럼
주자가 남긴 다섯 가지 독서의 규칙
강영안은 주자 독서법의 세 번째 특징을 ‘독서의 실천적·해석학적 규칙’이라 했다. 먼저 쉬운 책부터 읽으라 했다. 『예기』의 「학기(學記)」 편을 보면 쉬운 것을 먼저 하고 세밀한 부분은 나중에 한다고 했다. 좋은 도리는 대부분 쉬운 곳에 있는 법이다. (『주자어류』 11:52) 다음으로는 본문을 중시해야 한다. 책 읽을 때는, 먼저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본문을 숙독해야 한다. 비유하면 책 읽기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이다. 상대방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야지, 말을 끊고서 곧바로 자기 의견을 내세워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상대방 말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없어 끝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본문을 숙독하고 글자마다 잘 씹어서 맛이 나게 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생기면 깊이 생각하는데 끝내 이해되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주석과 해설을 보라 했다. (『주자어류』 11:105)
세 번째로는 문맥을 살펴야 한다. 책 읽을 때는 반드시 위아래 글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고 글자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주자어류』 11:113) 같은 글자라도 의미의 얕고 깊음, 경중이 있으니 반드시 위아래의 글을 보아야 한다. (『주자어류』 11:114) 네 번째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찾는 것이다. 책 읽을 때는 반드시 관통하는 곳을 알아야 한다. (『주자어류』 10:31) 공자는 박문약례(博文約禮)라 했고, 맹자는 박학설약(博學說約)이라 했으니 다 같은 뜻이다. 다섯 번째는 성찰적 독서와 독서의 무사도이다. 책을 읽을 때 의심이 없다면, 반드시 의심이 생기게 해야 한다. 의심이 생기면 반대로 의심을 없애야 하니,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크게 진보한다. (『주자어류』 11:78) 숙독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이미 깨달은 다음에는 그 의미가 여기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해야만 진보하게 된다. (『주자어류』 10:55) 피상적이고 게으르게 공부하는 데다 정밀하게 사유하려고 힘쓰지 않는 이들이 의심할 곳이 없다고 말하고는 한다. 의심할 만한 게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이해하지 못해 의심할 줄 모를 뿐이다. (『주자어류』 10:64) 지은이가 말한 바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다음 단계는 이를 비판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야 지은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독서와 무사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을 테다. 하지만 주자는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새삼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성인의 길을 걸으며 중생 구제의 길을 가고자 했다. 이런 소명을 자임한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단순한 시간 메우기나 지적 오락거리로 여길 리 없다. 참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정신이 요구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삶은 늘 긴장된 정신을 요구한다. 우주와 세상사와 삶의 진리에 육박하려고 책을 읽는다. 그러니 글을 볼 때는 반드시 정밀하고 분명하게 보아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몸을 곧바로 세워서 피곤하게 여겨서는 안 되니, 마치 등 뒤에 칼이 있는 듯해야만 한다. (『주자어류』 10:21) 글을 볼 때는 용맹한 장수가 전쟁터에서 죽고 살기로 싸우는 것처럼 치열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옥사를 다스릴 때 끝까지 심문하고 조사해서 결코 죄인을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주자어류』 10:25) 악착같이 읽어야 한다. 글을 읽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 나오면, 반드시 죽도록 공부해야 하니, 도리를 깨우쳤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멈추어야 한다. (『주자어류』 10:26) 심심풀이로 책을 읽거나 박람강기를 자랑하려는 치기로 책을 읽지 않았다. 삶의 여정에서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참된 사람의 길을 걷는지 되살피고(反求諸己), 잘못된 것은 서슴없이 고치어(過則勿憚改)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다. 그 삶은 지극히 문사(文士)적이지만, 그 방법은 지독히도 무사(武士)적이었던 셈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모두 주자 키즈(kids)였다?
이황과 이이의 학문 세계
조선의 유학자들은 한 마디로 ‘주자 키즈’라 할 만하다. 주자학을 성리학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시대의 유학자를 성리학자라 하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통치 철학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은 크게 두 번의 변화를 겪었다. 고려 왕조에 역성 혁명을 일으키고 조선을 개국하고 국가 통치의 기반을 다지면서는 의리(義理)와 대의(大義)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16세기 들어서는 이황(李滉, 1501~1570년)과 기대승(奇大升, 1527~1572년)이 벌인 논쟁, 이황과 이율곡의 대결 등에서 볼 수 있듯 이기심성(理氣心性)을 이론적으로 정밀화해 나갔다. 주자학을 수입해 이를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더 깊고 넓은 사유를 통해 주자학의 영토를 확장해 나간 셈이다.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은 독서의 목적을 성현의 말과 행동을 마음에 본받아서, 조용히 찾고 가만히 익히는 것이라 했다. (『언행록』, 「독서」) 옛 선비의 학설에 기대어 성현의 본뜻을 연구하고, 성현의 말에 기대어 천지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삼가 생각하고 밝게 분별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그냥 두지 않았다. 한 가지 일, 한 가지 물건의 작은 데서부터 천지 만물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연구했는데, 그 깊이를 다하고 해석해 그 정밀함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행록』, 「언행통술」)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년)도 독서의 목적을 뚜렷하게 밝혔다. 도(道)에 들어가려면 이치를 궁리해야 하고, 이 이치를 궁리하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성현이 마음 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한 것이 모두 이 글에 들어 있어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숙독과 열독도 강조했다. 한 가지 책을 익히 읽어서 그 의리와 뜻을 모두 깨달아 통달하고 의심이 사라진 연후에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탐내서 이것저것 얻으려고 바쁘고 분주하게 섭렵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격몽요결』, 「독서장」)
18세기 조선의 사상 혁신
다산 정약용의 초서법
조선의 성리학은 18세기 말부터 혁신의 길에 들어선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년),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 박지원(朴趾源, 1737~1805년)으로 대표되는 북학파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명나라를 떠받드는 소중화 의식을 버리고 청나라를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청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낙후한 조선을 개혁,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이루고자 했다. 사상 분야에서 주자학과 맞서면서 독창적인 해석의 지평을 연 인물은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다. 한형조는 정약용이 조선의 혼란과 무능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주의, 남에게 이익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는, 정치에서 현실주의를 고취한 점, 군사, 재정, 형벌 등의 실무적 영역의 존중과 학습의 필요성을 크게 내세웠다고 분석했다. 서학의 충격을 받아들여 상제(上帝) 개념을 부활시켜 『중용』과 『논어』를 새롭게 해석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정조 사후 정치적으로 불우한 상황에 놓인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 차례 독서법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지 챙겼고, 뜻대로 하지 않으면 엄하게 꾸짖었다. 몰락한 가문을 되살리려는 다산의 절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다산의 독서법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만한 것은 초서(抄書)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만 뽑아서 써 놓는 것을 이른다. 다산은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 만들 책의 규모와 목차를 세우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남의 책에서 간추려 내야 조리에 들어맞는 묘미가 있다고 했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 외에도 꼭 뽑아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 넣으라 했다. 유배지에서 500여 권의 책을 썼던 비결이 바로 초서라 할 만하다. 가장 좋은 독서법은 쓰려고 읽는 것이니 “어망을 쳐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잡히게 마련이지 어찌 놓치겠느냐.”라는 다산의 격언을 늘 기억해야 한다. 이밖에 흩어져 있는 조선 유학자의 독서론은 정민(1960년~)의 『오직 독서뿐』(김영사, 2013년)에 집성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될성싶다.
참고 자료
이황, 장기근 옮김, 『퇴계집』 (명문당, 2003년)
이율곡, 이민수 옮김 『격몽요결』 (을유문화사, 2022년)
이주행 외 옮김, 『주자어류』(1~13권) (소나무, 2001년)
강영안, 「주자의 독서론」, ≪철학연구≫, 제53집, 1999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리학」, 2026년 7월 13일 최종 검색.
이권우
도서 평론가. 경희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출판 전문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정리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글쓰기 강연을 업으로 삼고 있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고전 한 책 깊이 읽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죽도록 책만 읽는』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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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의 숨결이 닿은 새로운 글쓰기 지침서

글쓰기 교수님과 현장 연구자가 들려 주는 과학 글쓰기의 모든 것!

우리는 왜 과학이 아니라 미신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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