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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독서법: 강박을 버리고 즐거움과 마주하라! 본문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癡)’라 부르며 향기로운 글자를 갉아먹던 옛 문장가들처럼, 우리 안에도 저마다 책벌레가 되었던 결핍과 몰입의 기억이 숨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방과 삼중당 문고의 퀴퀴한 활자의 향기를 좇던 소년은 어느덧 평생을 읽고 써 온 ‘책벌레’이자 지독한 독서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이권우의 독서의 과학」 4편에서는 이권우 선생님의 독서 일대기와 함께 텍스트힙(texthip)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독서의 기술을 정리했습니다.
몰입을 돕는 ‘하루 1시간의 법칙’부터 종이책과 디지털 매체를 넘나드는 ‘양손잡이 독서법’, 완독의 강박을 깨는 ‘ADHD식 병렬 독서’, 그리고 지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요약과 메모의 지혜까지! 향기로운 활자를 느리게 갉아먹으며 마침내 스스로 사유하는 창조자로 우화(羽化)하는, 깊이 있고 실용적인 독서의 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책벌레의 탄생,
결핍이 몰입을 낳다!
개인적으로 책벌레라는 말을 좋아한다. 벌레라고 하면 어딘가 음습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무언가를 물거나 갉아먹는 장면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언뜻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런데, 갉아먹는 무언가가 활자라면 어떨까? 느리게 기어가 마음에 드는 활자를 천천히 갉아먹으며 음미하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기실 이런 모습을 일찌감치 그린 인물이 있으니 스스로 간서치(看書癡)라 부른 이덕무(李德懋, 1741~1793년)다. 그의 글에 맥망(脈望)이라는 벌레가 나온다. 이 벌레는 주제넘게도 신선(神仙)이라는 글자만 파먹었다고 한다. 먹는 대로 된다는 격언에 따르면 그 벌레는 신선이 되고도 남았을 터다. 다른 글에는 흰 좀벌레가 나온다. 이 벌레는 추국(秋菊), 목란(木蘭), 강리(江籬), 게거(揭車) 등속의 글자만 골라서 갉아먹는다. 이덕무는 이 벌레를 잡아 죽일까 잠시 고민했는데, 향기로운 풀만 갉아먹는 것이 기특해서 사로잡으려 했단다. 만약 책으로 내리쳐 벌레를 잡았다면, 꽃향기가 났으려나?
책만 읽으며 사는 삶을 꿈꿨다. 일상을 사느라 오직 읽지만은 못하고, 밥벌이를 하느라 동분서주했지만, 그게 다 책 읽고 나서 한 일이라 어느 정도 꿈을 이룬 듯싶다. 운이 좋았다. 마침 책 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특히 대학에서 읽고 쓰는 강의가 늘었다. 그 덕에 강의 교수나 특임 교수라는 직책을 얻기도 했다. 내세울 만한 업적은 없으나, 헛된 삶은 아니었으리라 자위한다. 그런데 나는 어떡하다 책벌레가 되었을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구체적 경험은 달라도 대략 엇비슷한 상황을 거치며 뭇사람이 책벌레가 된다 싶어서다.
나중에 보니 시집도 펴낸 미술 선생님이 갓 고등학교에 올라온 신입생을 데리고 학교 탐방을 했다. 나는 같은 재단의 중학교를 나온지라 별 흥미 없이 따라다녔다. 비록 위성도시이고 가난의 대명사로 알려진 지역이었지만,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로 소문난지라 내로라하는 주변 중학교의 인재가 몰려들어 그 탐방은 약간은 긴장과 설렘, 그리고 수선거림이 있었다. 음악실과 매점이 있는, 무척 낡은 건물로 들어가 그 두 군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도서관으로 학생을 데려갔다. 그때 내가 그 재단의 중학교를 나왔지만,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미술 선생님은 굳게 닫힌 학교 도서관 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봉인된 자물쇠를 가리키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우리 학교는 도서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만큼 학업 증진에 무척 전념하는 학교라는 뜻이다, 너희도 어렵게 들어온 학교니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를 바란다. 그날부터 내 독서 이력도 곧바로 단절되고 말았다.
누가 책벌레가 되는가? 아마도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책을 읽게 할 터다. 대한민국의 가난한 동네는 다 떠돌아다니면서 느낀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넘쳐난다면 위안받을 거리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극히 드물 적이었다. 손쉽게 접할 매체가 라디오였다. 그리고 뒹구는 책들. 그 책도 내가 사는 집에는 없었다. 방학 때마다 입이라도 하나 덜어 보겠노라고 나를 시골에 있는 외가로 내려보냈는데, 일찌감치 도회지로 탈출한 막내 이모와 삼촌이 보던 책이 있었다. 일단은 교과서. 그 궁벽한 시골에 어린아이가 읽을 책이 제대로 있었겠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가 찢어진 채 뒹굴어 다녔다. 소일거리가 없었으니, 그거라도 게걸스럽게 읽어 젖힐 수밖에. 그리고 그곳까지 굴러들어 온 교양 잡지. 아마 명절을 맞이해 고향으로 내려온 이모나 외삼촌이 터미널에서 사서 읽고는 집에 두고 간 것이었을 터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 그럭저럭 시간 메우기에 적절했다.

개학해서 집으로 올라오면 만화방이 성소였다.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한 적이 있나 싶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만화방에 열 번 오면 1시간 정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인쇄된 만화에서 움직이는 만화를 보면 신천지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 나중에 정착한 도시의 초등학교에는 교실 한 칸짜리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비로소 마음껏 읽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영혼은 충만해 있었다. 뜻밖에도 결핍된 삶이라 하여 좌절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있으면 된다. 나는 그게 책이면 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빛난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 삶을 풍요롭게, 화려하게 수놓아 주었다. 비록 책을 덮는 순간, 또는 학교 도서관을 나서는 순간 물거품이 되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수수께끼가 있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집에 덜컥, 계몽사판 「소년 소녀 세계 문학 전집」을 들여놓았을까?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남자아이를 부모가 좋아할 리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책 읽는 아들이 좋았던 모양이다. 아니, 친구가 만화방에서 빌린 만화를 빌려와 읽다가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아들이 기왕이면 동화책을 읽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책벌레가 되어가고 있던 나는, 이 전집으로 아예 책벌레가 되고 말았다. 그저 놀라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시민권을 얻었다.
사달은 중학교 때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고등학교는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 추첨으로 온 중학교가 학생을 닦달해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보내려고 했다. 그래야 고등학교가 더 많은 학생을 이른바 명문 대학으로 보낼 수 있다는 속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과정을 잘 이수해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한 동창이 있으니, 학교 정책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답답했다. 교과서와 참고서만 보고 배우고 익히는 단조로운 삶이 말이다. 부모님도 학업에 대한 부담을 더 주셨다.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라도 잘하는 자식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터다. 지하실에 갇힌 갑갑한 심정에 환풍구 역할을 해 준 책이 있으니, 바로 삼중당 문고였다. 당시에는 문고본 열풍의 끝자락이었고, 삼중당 문고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 갈 때였다. 교과서에 한두 편만 실린 시인의 시가 다 실려 있었고, 역시 교과서에 중동무이된 채 실린 소설의 전편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책값이 싸서 없는 용돈이지만 사 볼 만했다. 책 좋아하는 다른 친구랑 바꿔 보면 돈도 적게 들었다. 기갈 들린 영혼이 그나마 해갈되는 순간이었다.
단점이라면 국내 문학을 빼고는 상당히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철학 분야로 가면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나중에 보니 대학생도 읽기 어려운 책이었으니, 이건 책이 아니라 난수표였다. 그럼에도 어릴 적처럼 책 읽기는 즐겁고 행복했다. 성적은 오르지 않고, 부모님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퇴행인지도 모른다. 나이에 걸맞은 새로운 도전을 감내하면서 더 성장해야 했을 터다. 그러나 어쩌랴, 책을 읽으면 마치 어미의 자궁으로 되돌아가 양수에 둘러싸인 안정감과 행복감을 만끽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만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내 독서 이력은 강제 봉인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얻은 두 개의 날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하고 언쟁을 했다. 나는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데 담임은 영문과를 지원하라고 채근했다. 왜 그 마음을 모르냐, 나중에 사회에 나오려면 문과 계통은 그나마 외국어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여겼다. 오죽하면 국문과를 ‘굶을과’라 했겠는가. 그리고 내가 국문과를 선택한 데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문재(文才)가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 시를 잘 쓴다는 말을 들었거나 소설 창작에 열망이 있지도 않았다. 비록 입 밖으로 내세우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저 책을 죽어라 읽고 싶어서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입시라는 주술에 걸려 내가 좋아하던 일을 못 한 것이 억울했다. 사회에 나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나중에 고민해도 될 일이라 여겼다.

친구들은 현명했다. 학벌을 포기하고 졸업하면 공무원 자리가 보장되는 학교를 선택하기도 했고, 평소 책 좋아하던 친구가 경영학과를 택하기도 했다. 가난한 아이들은 뜻밖에 세상 잇속에 밝은 법이다.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담임이 보기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을 터다.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들어왔다. 운이 좋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적에 마침 나중에 문명(文名)을 날린 선배들이 복학했더랬다. 신이 났다. 이 선배, 저 선배 찾아가며 그들이 읽은 책은 무엇인지,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어떤 글을 썼는지, 그리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귀동냥했다. 동기도 만만찮았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이름을 날린 친구도 있었다. 교양 수업에서 막 일본에서 철학 박사를 받고 돌아와 강의를 맡은 분을 만났다. 조를 짜고 각 조에 과제를 주고 이를 발표하게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받지 못했던 수업인지라 신났다. 도서관을 찾아가고 자료를 복사하고 이를 발표 자료로 만들며 공부하는 법을 새롭게 배웠다. 문학 수업에서는 좀처럼 듣도 보도 못한 이론가의 책을 읽고 리포트를 써 오라 했다. 다시, 도서관으로, 선배를 찾아가 책을 빌리고 무슨 말인지 물어보며 하나씩 깨우쳐 나갔다. 내가 문학을 제대로 보는 눈을 키운 건 빼어난 선배와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 덕분이었다. 누가 책벌레가 되는가? 새로운 앎에 대한 갈망이 강렬한 사람이 책을 읽는 법이다.
대학에 들어가 만난 또 다른 부류는 운동권 선배였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 자리에서 일어났을 적에 누군가 다가와 아는 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보니 수업을 지켜보며 문제 의식 있는 학생을 눈여겨보았다가 이른바 지하 서클에 가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인연으로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 역사, 사회, 철학 등을 아우르는 광범한 책을 읽고 토론하며 1년을 보냈다. 엄혹한 시절이라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뜨겁게 보냈던 데는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주 항쟁이 벌어졌는데, 대학에 와서 이런저런 자료를 보고, 그리고 천주교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독일 공영 방송이 찍은 광주 항쟁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야말로 눈을 덮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정권욕 때문에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그 진상을 숨겨 국민을 우롱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으며, 더 나은 정치 체제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읽은 책은 대체로 조악한 우리말로 서둘러 번역한 일본에서 나온 넓은 의미의 좌파 도서였다. 하지만 그때는 마른 논에 비가 내리는 듯한 지적 희열을 느끼며 열독했더랬다. 공식적으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사상과 역사의 뒤안길을 홀로 걸으며 깊게 사고하고 넓게 전망하는 법을 배웠다. 과연 누가 책을 읽는가? 금기를 넘어 참된 것을 알고자 하는 청년의 도전 의식이 책을 읽게 하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행운아였다. 과에서 만난 친구나 선배한테서는 문학과 예술을 배웠고, 운동권 선배한테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청년이 알아야 할 것들을 익혔다. 나중에 보니, 나는 두 개의 날개로 날고 있었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피한 미학주의의 미망에 빠지지 않았고, 자신만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도덕적 오만이나 세상사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다. 균형과 중용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온통 인공 지능만 말하는 시대에 여전히 책벌레들이 어디선가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희한하다. 온통 책 읽지 않는 시대라 죽는소리를 하는데, 책 읽는 사람의 명맥은 쉬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텍스트힙이라 하여 젊은 여성 독자가 문학 중심으로 책을 읽는다며 걱정스런 말이 많다. 문학이라도 읽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하는 부류와, 힙(hip)이라는 말에서 눈치채듯 일시적인 유행일 수도 있는 데다 인문학 도서는 읽지 않는 점은 문제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책벌레가 멸종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기 짝이 없다.
몸에 배는 독서 습관
‘하루 1시간의 법칙’
아직 책벌레가 되지 않은 이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귀띔해 줄 수 있을까? 당연히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해야 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쉽고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으며 책의 세계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가마타 히로키(鎌田浩毅, 1955년~)는 ‘배우기보다 익혀라.’라는 명언을 소개하면서 “책 읽기가 친숙해져야 독서 기술도 는다.”라고 했다. 책 읽기가 익숙해지려면 욕심내지 말고 문턱을 낮춰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도 했다. 추리 소설이건 자기계발서건 상관없다면서 파격적으로 아동서부터 읽어도 좋다고 했다. 어린이 장편 동화는 상당한 내공을 들여 쓰였고, 그 사유의 깊이가 만만하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권유다.
책 읽기가 몸에 배는 두 번째 방법은 ‘공부의 신’이 말해 주는 것을 참조할 만하다. 그들은 일정한 시간을 반드시 고정해 공부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고 도움말을 준다. 시작은 1시간 동안 몰입해서 공부하기. 양승진은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 봅시다』 (메멘토, 2019년)에서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거나 기존 습관을 바꾸려면 일정 기간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라며 “1시간 학습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형성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통으로 1시간 정도 내어 책을 읽는 버릇을 익혀야 한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년)도 같은 뜻의 말을 했으니, “독서의 방법은 일과(日課)를 정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질질 끄는 것보다 나쁜 것이 없다.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속히 읽으려고도 하지 말라. 몇 줄을 읽을지 정하고 횟수를 정해 놓고 날마다 읽어 나가라.”고 했다.
한꺼번에 1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합해서 1시간 이상을 마련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통학이나 통근하는 시간, 친구 기다리는 시간 같은 짬을 잘 활용하면 좋다. 교사이면서 철학 저술가인 안광복은 직장인으로서 독서 시간을 마련하는 요령을 말한 바 있다. 출근길 30분, 퇴근길 30분으로 합하여 1시간, 점심 시간 자율 학습 감독하는 30분, 보충 수업하기 직전에 남는 30분, 집에 돌아와 변기에 앉아 읽는 20분. 이렇듯 자투리 시간만 모아도 하루에 2시간이 훌쩍 넘으니 1시간 내기는 어렵지 않을 터다. 이동진은 책을 읽을 시간을 정해 두지 않고 시간이 나면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이런저런 변수로 책을 읽지 못하니 늘 책을 들고 다니면서 짬만 나면 언제든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짬을 내 책을 읽기로 했다면, 상황마다 집중도가 다르니 여러 권의 책을 준비하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을 만한 책, 친구 기다리면서 읽는 책, 잠자리에 들기 전 읽는 책처럼 말이다. 요즘에는 이런 방법을 ‘병렬 독서’라 말한다. 한소범은 ‘T(Time) P(Place) O(Occasion)’ 전술을 추천했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고려해 손 닿는 모든 곳에 적절한 책을 배치해 두고 자연스럽게 집어 들도록 하는 전략이다. 한소범은 침대 머리맡에는 하룻밤에 독파하기 어려운 벽돌책을 둔다. 읽다가 졸리면 자면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몇 주 하면 책을 돌파하기 마련이다. 소파 근처에는 늘어진 자세로 읽기 좋은 에세이를 둔다. 화장실에는 지루한 시간을 아름답게 꾸며 주는 시집을 둔다. 한소범은 사이토 다카시(齋藤孝, 1960년~)가 권한 방법을 소개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업무 기술이나 정보를 얻는 책을 읽으며 워밍업하고, 퇴근할 때는 재미있는 소설로 머리를 식히고, 집에 들어오면 인문서나 평전을 읽고, 잠들기 전 종교나 명상 책을 읽으란다. 안광복은 이런 책 읽기를 일러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식 독서법이라 이름 지었다. “앉아서 보다가 누워서 읽고, 배를 깔고 읽다가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고” 읽는데, 그때마다 읽는 책이 바뀌니 소설을 읽다가 역사 책으로, 다시 수학 책으로 갈아탔다가 나중에 보니 미술 책을 들고 있더란다.
완독의 강박을 버려라!
독서가 쉬워지는 두 가지 방법
누구든 책을 읽다가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서 중단한 적이 자주 있을 터다. 왜 그랬을까 되짚어 보자. 일단 자신의 지적 수준보다 어려운 책을 고른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 어려운 책을 읽을 적에는 힘들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듯한 소리를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 책 읽기가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재미라는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 이동진은 정보를 얻으려고, 있어 보이기 위해 책을 읽는데 이를 목적 독서라 하며, 이런 책 읽기는 목적이 사라지면 읽지 않게 되어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재미있어 책을 읽으면 책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지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논어(論語)』에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반드시 새겨들을 말이다. 재미있으면 즐길 수 있고, 즐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앎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만약 책을 잡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독서력이 낮은 데 한방에 이해하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첫 번째는 훑어보는 것이다. 모르는 부분은 표시해 놓으면서 끝까지 읽어 나가다 보면, 지은이가 덧붙여 놓은 설명을 읽어 나가면서 대강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잦다. 특별히 달리 말하자면, 덧붙인다면, 요약하면, 그러므로 등속에 이어지는 단락을 주목해서 읽으면 핵심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다 읽고 나서 곧장 다시 읽어 볼 필요는 없다. 그 책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책을 먼저 읽어 보고 다시 읽어 보는 게 좋다. 배경 지식을 쌓은 다음에 도전하면, 이미 책의 윤곽은 알고 있는지라 훨씬 빠르고 쉽게 읽어 나가면서 첫 번째 읽었던 때와는 달리 훨씬 깊게 이해하게 된다.

두 번째는 지금 읽는 책을 반드시 다 읽어야 한다는 모범생 콤플렉스를 버리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읽고 중단해도 무방하다. 잘 팔리는 책이라, 꼭 읽어 보라는 책이라, 남들도 읽는 책이라 읽다 보니 여러 이유로 읽는 이와 안 맞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이동진은 완독에 대한 부담을 버리라고 했다. 사람은 의지가 강하지 않아 목적만을 위해 행동할 수 없는데, 반드시 다 읽겠다는 부담감 때문에 책 읽기가 즐겁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한소범은 완독 강박을 두고 사이토 다카시와 그레첸 루빈(Gretchen Rubin, 1965년~)의 독서법을 소개했다. 먼저 사이토 다카시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는 것은 집착이며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양한 책을 접할 것인지, 책과 얼마나 교감할 것인지라며 전체 분량의 20~30퍼센트만 읽어도 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루빈은 지루한 책을 포기하는 만큼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했고, 덜 가치 있는 책은 훑어보라고 권유했다.
회화적 독서, 음악적 독서,
그리고 느리게 읽기의 즐거움
책을 목차대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골라 가며 순서에 관계없이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가마타 히로키는 회화적인 독서와 음악적인 독서라는 조어로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준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볼 적에 굳이 전시된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 간혹 건너뛰어 가며 그림을 감상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회화적인 독서는 첫 장부터 읽지 않는다. 관심 있는 부분이나 관련 있는 내용부터 읽고, 호감 가지 않는 주제는 건너뛴다. 내용에 연속성 없이 각자 독립된 파트로 된 책을 읽을 때 좋다. 음악은 다르다. 공자가 노나라 국립 교양 악단장에게 말했다. “악의 구성 원리를 이제 알 만합디다. 시작할 적엔 느긋이 펼쳐지더니(翕), 점점 하나로 어우러지고(純) 환해지면서(皦) 죽 이어져(繹) 한 악장을 이루더군요.” (『논어』 3:23) 이 말에 알 수 있듯, 음악은 순서대로 전체를 들어야 이해하게 마련이다. 이름하여 음악적인 독서는 특히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요긴하다. 도입부부터 푹 빠져들어 작가가 만들어 놓은 복선을 따라 끝까지 읽으면 된다.
책 읽는 속도를 고민하기도 한다. 독서력이 낮으면 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속독법을 익힐 필요는 없다. 책을 빨리 읽는다는 것은 읽는 이가 아는 게 많아 책에 나온 내용을 잘 이해해 술술 읽어 나가는 뜻이다. 독서 경험이 풍부하면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내용이 나올 때 건너뛰기도 하는지라 빨리 읽는 것처럼 보인다. 책 읽는 속도를 높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이다. “쓰인 구절의 주제에 대한 독자의 선행 지식이 풍부할수록 속독이 쉬워진다.”라는 피터 쿰프(Peter Kump, 1937~1995년)의 말을 기억해 두자.

책벌레들은 이구동성으로 느리게 읽기를 권한다. 이동진은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있는 법이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책 읽기인데, 책과의 만남 자체, 지은이와의 소통, 책 읽고 난 자신과의 대화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을 읽다 보면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게 마련인데, 이 생각에 집중하거나 넓혀 나가거나 소화하기 위해 책을 덮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굳이 이런 빛나는 순간을 억제하면서 단 몇 시간 만에 책을 독파하려는 욕심은 “참 미욱한 짓”이라 했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아니라 끊임없는 방해 속에서도 몰입을 사수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말한 한소범은 데이비드 미킥스(David Mikics, 1961년~)의 ‘느리게 읽기’를 위한 14가지 규칙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내심을 가져라 2.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3. 목소리를 파악하라 4. 문체를 감지하라 5. 처음과 끝에 주목하라 6. 이정표를 찾아라 7. 사전을 적극 활용하라 8. 핵심 단어를 추적하라 9. 작가의 기본 사상을 발견하라 10. 의심의 기술을 길러라 11. 작품을 분해하라 12.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13. 다른 길을 탐험하라 14. 또 다른 책을 찾으라
개인적으로도 빨리 읽기를 꺼린다. 책을 축지법 쓰듯 읽어 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책을 읽으면 그 내용에 자극받아 새로운 삶을 상상하거나 오늘 나의 삶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책 읽기는 남이 다 만들어 준 것을 단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의미를 재구성하는 (그러니까 읽어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과 사유의 지평이 열리게 마련이다. 에밀 파게(Émile Faguet, 1847~1916년)는 책 읽기를 포도 먹는 방식에 빗대었다. 글 쓴 사람이 전력을 다해 작품에 채워 넣은 “풍경이나 울림을 꺼내 보는 것은 바로 잘 익어서 껍질이 팽팽하게 긴장된 포도 한 알을 느긋하게 혀로 느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란다. 먹을거리를 허겁지겁 먹는 사람이 그 맛을 음미할 리 없다. 천천히 씹어 먹을 때 비로소 맛을 느낄 수 있다. 입안에 포도알을 굴리며 그 싱싱한 맛을 음미하듯, 책도 천천히 읽어야 하는 법이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의 딜레마
해답은 “양손잡이 읽기 뇌”
전자책이 일반화되면서 종이로 읽어야 할지 디지털로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이런 고민은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 1947년~)가 해결해 준다. 매리언 울프는 어린 시절 감동하며 읽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년)의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를 나이 들어 다시 읽다가 깜짝 놀랐다. “문체는 고집스럽도록 불투명”했고, “글은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로 빽빽”했고, “뱀 같은 문장 구조”가 자신을 혼란에 빠트렸고, 결국은 더디게 읽고 말았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정보의 양을 조사했다. 한 사람이 여러 기기로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평균 약 34기가 바이트로, 10만 개의 영어 낱말을 읽는 셈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로저 본(Roger E. Bohn)은 “우리의 주의는 보다 짧은 간격으로 쪼개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루 동안 웬만한 소설 한 권 분량을 읽는데, 연속적이고 지속적이며 집중적인 읽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 기기를 통해 읽는 정보의 과부하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정보를 단순화하고, 정보를 최대한 압축해 빠르게 처리하고, 가려 뽑아 보게 되어서 나타난 현상이란다.
비슷한 사례는 노르웨이 학자의 연구에서 확인된다. 학생을 두 부류로 나누어 단편 소설 「제니, 내 사랑(Jenny, My Love)」을 한쪽은 킨들(kindle)로, 다른 쪽은 종이책으로 읽게 했다. 결과는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 쪽이 줄거리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보면, 디지털로 글을 읽을 때는 F자형이거나 지그재그로 텍스트의 단어 스폿(spot)을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다음, 맨 끝으로 내려가서 결론을 읽고서는 가끔 이해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세부 내용을 골라서 보려고 본문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른바 ‘블리딩 오버(bleeding over)’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디지털 매체를 읽다가 종이책을 읽으면 디지털 매체 읽기의 특징이 지속된다는 말이다. 책벌레였던 매리언 울프가 책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깊이 있게 읽기에는 종이책이 유리하다. 당연히, 디지털 매체를 부정하고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인공 지능이 일상에 파고든 마당에 어떻게 그리할 수 있겠는가. 매리언 울프는 ‘양손잡이 읽기 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상황에 따라 종이책과 디지털 매체를 잘 활용하자는 말이다. 천천히 깊게 읽어야 하는 내용은 종이책을, 훑어 읽으며 빠르게 정보를 얻거나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 문학 같은 경우 전자책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서문, 목차, 옮긴이 후기……
책의 지도를 그리려면, 부속(附屬)을 읽어라!
책을 파죽지세로 빨리 읽어버리겠다고 하면, 그 독서는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종의 예열(豫熱)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책 제목을 읽으면서 그 책의 전체 주제를 짐작해 보아야 한다. 이승연의 『손절 사회』 (어크로스, 2026년)는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파악하게 해 준다. 인간 관계를 쉽게 단절하는 사회 현상을 깊게 다루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어서다. 책의 부제목인 “손익 계산이 되어 버린 인간 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를 보면 주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 관계를 단절하는 이유 가운데 손익을 표적으로 삼았으니, 신자유주의 시대에 벌어진 인간 관계의 파국을 다루었겠거니 할 만하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손절 사회’의 결과를 다루었겠다 싶다. 분명히 1인 가구 문제를 다루었겠지만, 어떤 틀로 분석했을지는 짐작하기는 어렵다. 부제도 없어 더 짐작하기 어려운데 저자가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짚이는 게 있다. 책 제목을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책 내용을 미리 그려 보기 위해서다. 기대에 맞으면 맞을수록, 기대에 어긋나면 어긋날수록 더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된다.
제목이나 부제목만으로는 그 책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면 책 뒤표지에 있는 글귀를 눈여겨보면 된다. 여기에 실린 글은 책 내용을 압축해서 설명해 준다. 저자의 글을 인용하거나 편집자가 애를 써서 요약한 내용이다.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다는 말이다. 애덤 베커(Adam Becker)의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동아시아, 2026년)의 책 뒤표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리콘밸리의 살아 있는 신화로 추앙받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샘 올트먼 같은 기술 억만장자들은 ‘기술이 주도하는 미래’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르기를,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AI가 인류의 미래를 ‘최적화’하고 무한한 성장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정착하는, 마치 SF 같은 유토피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기술 유토피아’이다. 이들의 주장 이면에는 어떤 의도가 흐르고 있을까?
이 책은 실현될 수 없는 기술에 대한 집착들이 인간 모두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독점하여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로 탈출하기 위한 욕망에서 나오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우생학 같은 유사 과학과 뿌리 깊은 식민지주의에서 나온 AI 만능주의는 지구온난화, 소득 불평등, 인종차별을 가속화한다. 저자는 AI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윤리적·과학적으로 비판하면서 그 허상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를 통해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강력하고 사악한 ‘기술을 통한 구원 이념’의 어리석음과 위험성,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인류 모두가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통찰을 제시한다.
실리콘밸리는 한동안 혁신과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작금의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는 극우적인 행태를 보이는 데다가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럴까, 이들을 사로잡은 가치관은 무엇일까 궁금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이 점을 논픽션 형식으로 치밀하게 파헤쳤다. 여러 사유가 얽히고 설켰지만 궁극에는 무한한 성장과 영생을 누리며 자신이 이룬 부와 권력을 누리고자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는데, 이런 사항을 책 뒤표지에 요령껏 그리고 흥미롭게 요약해 놓았다.
다음으로 서문을 읽어 본다. 만약에 책에 관한 정보 없이 서점에 나가 눈에 띄는 책을 손에 들었다 치자. 과연 이 책이 내가 읽을 만한 책인지, 그러니까 평소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관심 없었는데 관심이 가게 하는지, 그리고 지은이의 필력을 믿고 살 만한 책인지를 감별하는데 서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더욱이 책의 문제 의식과 주제 의식을 한눈에 파악하는데 서문만 한 것이 없다. 지은이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서문은 전체 원고를 다 마치고 쓰는 경우가 잦다. 그만큼 온정성을 들여 책의 핵심 사항을 지은이 스스로 밝혀내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맹자』 해설서 『최소한의 윤리』 (어크로스, 2025년)를 펴낸 적이 있다. 편집자가 골머리를 앓고 나서 정한 제목이다. 제목을 받아 든 순간, 무릎을 쳤더랬다. 정말 책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서다. 대체로 책 편집 과정 끝날 무렵 서문을 썼는데, 이번에는 미리 써놓았던지라 제목에 맞게 일부 내용을 바꿨다. 그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맹자가 철학사에 일으킨 혁명은 선한 마음이 본성임을 발견하고 이를 논증한 데 있다. 이 발견을 토대로 맹자는 두 갈래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그 하나는 선한 마음을 존심양성하여 성인(聖人)에 이르는 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인인 요순이 될 수 있고(人皆可以爲堯舜, 『맹자』 12:2), 순임금과 같이 한다면 누구나 다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맹자』 5:1) 이것은 최대 윤리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조건적이고 계약적 관계의 형성으로 가는 길이다. 한 사람이 맺는 다섯 가지 관계를 뜻하는 이른바 오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맹자는 오륜이 전제하는 조건과 계약이 실현되지 않으면, 그 관계는 파기되거나 해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자 관계는 예외이다.) 맹자가 성선설을 설파하고, 이를 확충하여 인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왕도를 펼쳐야 하며, 이를 이루지 못할 때 역성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 이유다. 내가 주목한 맹자 철학이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윤리’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하고 투쟁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궁극의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최소한의 가치는 공유해야 마땅하다. 아니면 이념적인 내전 상태가 펼쳐질 공산이 크다. 맹자가 제시한 최소한의 윤리는 오늘 우리가 맞은 공멸의 위기를 넘어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될 터다.
물론 부제가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우리의 선한 본성에 대하여”인지라 『맹자』 해설서겠다 하겠지만, 정확하지는 않은지라 제목만 보고서는 무슨 내용인지 모를 터다. 이런 점을 고려해 맹자 철학을 ‘성인 되기’라는 최대한의 윤리와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로 나누고, 이 책은 최소한의 윤리에 초점을 맞춰 『맹자』 사유를 풀이했노라 설명했다. 이 서문을 읽는다면 책의 고갱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터다.

번역서의 경우라면 서문과 함께 옮긴이 후기를 읽어 보면 좋다. 기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은 번역하기일 성싶다. 그야말로 이 잡듯이 꼼꼼하게 읽지 않고서는 번역할 수 없는 데다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면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지은이보다 더 많이 더 정성스럽게 읽은 번역자가 쓴 후기야말로 최고의 독후감이라 할 만하다. 지은이의 삶, 지적 배경, 핵심적인 내용, 출간 이후 평가, 우리 사회와 관련된 점 등속을 써놓았으니, 책의 내용을 한눈에 간파하기 좋다. 문학 작품의 경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이것은 고급 독자에 해당한다. 책 읽기의 고수가 아니다 싶으면 옮긴이 후기부터 보는 것이 조감도를 확보하고 지은이가 세운 성체에 들어서는 격이 된다.
서문이나 옮긴이 후기로 책의 주제 의식과 다루고자 하는 방향을 짐작했다면 다음으로는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목차는 압축 파일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은 그 압축 파일이 풀리면서 내용이 펼쳐져 나오는 격이다. 거꾸로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고 치면, 목차야말로 가장 간략한 요약본이다. 그러니 목차는 책을 이해하는데 쓸모 있을 뿐 아니라 만약 내가 책을 쓴다면 어떤 식으로 설계도를 짜야 하는지를 미리 익히는 데도 좋다.
국내에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한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년~)의 『정의란 무엇인가』 (와이즈베리, 2014년)의 목차를 보자.
이 책에 쏟아진 찬사 / 한국어판 서문
1장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2장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
3장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자유 지상주의
4장 대리인 고용: 시장 논리의 도덕성 문제
5장 동기를 중시하는 시각: 이마누엘 칸트
6장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 존 롤스
7장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 권리 vs. 자격
8장 정의와 도덕적 자격: 아리스토텔레스
9장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충성심의 딜레마
10장 정의와 공동선
목차를 얼핏 보면 정의를 주제로 한 서양 철학의 사조를 나열한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샌델은 정의를 둘러싼 서양 윤리학을 변증법적 구조로 치밀하게 구성해 놓았다. 먼저 변증법의 정(正)에 해당하는 것은 공리주의다. 이에 대한 반(反)으로 제기한 것은 자유 지상주의와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와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년)로 대표되는 공평주의다. 그러고 나서 자유 지상주의와 공평주의의 대립점과 논쟁점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합(合)으로 내세운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널리 읽힌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구체적 사례를 놓고 벌이는 철학 논쟁을 흥미롭게 풀어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용에만 빠지다 보면 책의 구조를 알지 못해 책을 더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어 내지 못한다. 이 책을 서로 다른 윤리학끼리 벌이는 일대 논쟁으로 읽을 적에 흥미가 배가 된다. 더욱이 샌델이 정의를 둘러싼 여러 관점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으로 공동체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을 때와 그러지 않을 때는 책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큰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읽고 나서 말하고 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책을 무턱대고 읽기만 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방금 읽은 책의 지은이나 심지어 책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기적이라고 다 좋을 리 없다. 읽었으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다 휘발되고 마니 망연해지기 십상이다.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읽었으면 말해 보고 써 보는 것이다. 읽고 나서 말해 보고 써 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우선 책을 읽어 나가면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특히 논증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 표시해 놓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은이의 생각에 동조하면 그 이유를,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비판적인 의견을 적어 놓는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요약해 놓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책의 핵심을 부분 정리하게 된다. 요약은 각 장을 정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각 장의 요약을 합친다고 해서 저절로 전체 내용의 핵심을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하고 메모하고 정리하게 되면서 책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그 내용을 숙지하게 된다. 수잔 와이스 바우어(Susan Wise Bauer, 1968년~)도 요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용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자신의 말로 재진술해 보는 것인데, “내용에 정통하려면 요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별히 책을 읽고 나서 주변에 말하기를 염두에 두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읽게 된다. 지은이는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을 무엇으로 뒷받침하고 있나, 지은이를 지지하는 다른 책은 무엇이 있나, 그 뒷받침은 적절한가, 지은이의 주장에 반대하려면 어떤 근거를 들어야 하나, 이 문제를 두고 이미 논쟁한 책은 없는가, 이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토론해 볼 만한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등속을 물어보게 된다. 주자(朱子, 1130~1200년)도 일찌감치 “책을 읽을 때 의문이 크면 진보다 크다.”라고 했다.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글로는 크게 독후감과 서평이 있다. 독후감은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을 1인칭 관점에서 진솔하게 쓰면 된다. 서평은 객관적 관점에서 책을 평가하면 되는데, 무리해서 비판적 관점만 내세우는 서평을 쓰려하지 말고, 그 책의 장점과 비판할 만한 것을 겸비해서 쓴다.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책을 능동적으로 읽게 된다. 밀리언셀러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2022년)를 쓴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郎, 1956년~)도 같은 생각이다. 읽고 나서 글을 쓰면 책 읽는 자세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수동적으로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사상을 스스로 검증해 보거나 저자의 사유에 자극을 받아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책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읽은 책의 핵심을 기억한다는 것은 다른 책을 읽거나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책을 읽을 적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언젠가 읽는 이에서 쓰는 이로 전환하는 데 바탕 힘이 된다. 책벌레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의미의 수용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궁극에는 의미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벌레라면 허물을 벗고 마침내 우화(羽化)하여 비상해야 하는 법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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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김명철 옮김, 『정의란 무엇인가』 (와이즈베리, 2014년)
매리언 울프, 전병근 옮김, 『다시, 책으로』 (어크로스, 2019년)
모티머 애들러, 찰스 밴 도렌, 독고 앤 옮김,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시간과공간사, 2024년)
수잔 와이스 바우어, 이옥진 옮김, 『독서의 즐거움』 (민음사, 2020년)
애덤 베커, 박주용 옮김,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착각』 (동아시아, 2026년)
양승진,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봅시다』 (메멘토, 2019년)
에밀 파게, 이휘영 옮김, 『독서술』 (서문당, 1997년)
이권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한겨레출판, 2015년)
이권우,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오도스, 2022년)
이권우 외,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 (그린비, 2009년)
이권우 외, 『나는 이렇게 읽었다』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이동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위즈덤하우스, 2022년)
이권우
도서 평론가. 경희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출판 전문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 생활을 정리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글쓰기 강연을 업으로 삼고 있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고전 한 책 깊이 읽기』,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죽도록 책만 읽는』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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