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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대담 (16)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vs.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본문

완결된 연재/(完) 책 대 책

책 대 책 대담 (16)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vs.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Editor! 2013.01.10 10:23

책 대 책 12월 18일자 대담(제16회 - 마지막 회) 


왜 궁극의 답은 42인가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vs.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열여섯 번째 대담회가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12월 18일(화) 오후 7시 민음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역사상 가장 시크하면서도 가장 코믹한 과학 소설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이하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절묘한 풍자와 비유로 전 세계에 1500만 부가 팔린 이 소설의 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 책은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음반, 컴퓨터 게임, 연극, 심지어 수건에 이르기까지 온갖 버전으로 확장되었으며, 급기야 영국에서 손꼽히는 과학 전문 기자가 쓴 소설 속 과학 소재를 하나하나 찾아서 설명하는 책인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이하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이 나오기까지 이르렀다.

12월 책 대 책 대담회에서는 확률 이론, 슈퍼컴퓨터, 시간 여행, 외계 생명체, 빅뱅과 우주의 종말 같은 기상천외한 소재들을 비슷하면서도 또한 다르게 다루는 두 책을 통해, 과학과 SF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했다. 김창규 SF 작가가『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김상욱 부산 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가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의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이명현 세티코리아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대담자와 사회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다.


이명현(사회자): 오늘은 과학 소설 한 권이 우리들의 주제입니다. 보통 이런 소설은 과학이 만들어 내는 배경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지는데, 이번에는 소설이 먼저 나오고 그것에 열광한 과학자가 소설에서 과학적인 내용을 찾아내는 책을 썼어요. 영화로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니까 오늘은 내용을 전부 보기보다는 과학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점을 뽑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김창규 작가님께 작가와 책 내용의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김창규(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작가인 더글러스 아담스는 원래 영국 BBC의 드라마 ‘닥터 후’의 라디오판 각본을 쓰던 각본가입니다. 추리소설도 몇 권 썼지만,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로 제일 유명합니다. 장편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 2권은 냉소적임에도 분위기가 밝은데, 이는 라디오 드라마를 소설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권부터 소설로 발매되는데 이때부터 갈수록 허무주의로 빠집니다. 원래도 냉소적이었만 마지막에는 정말 허무한 엔딩으로 끝이 나거든요. 결말을 밝은 쪽으로 바꾸는 책을 쓰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만 못 쓰고 죽었습니다. 한 과학 소설 작가가 유족들의 허락을 받고 후속편을 썼지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습니다.

소설을 보면 스토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기승전결을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대신 세부적인 부분에서 풍자를 어떤 식으로 하는가, 얼마나 하는가에 중점을 둔 소설입니다. 더글라스 아담스 자신이 과학 쪽 지식, 특히 현대 과학이나 물리학 이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뒤집어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이번엔 김상욱 교수님에게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을 쓴 사람의 소개, 그리고 왜 이런 책이 나왔는지 이야기를 조금 듣기로 하죠.



김상욱(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는 수많은 과학이 나옵니다. 물론 이게 제대로 된 과학, 말이 되는 과학보다는 비틀어 놓은 과학이 훨씬 많습니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은 이것을 설명하고 보충하는 과학 교양서입니다. 

저자는 마이클 핸런이라는 과학 작가입니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이라는 일간지에서 과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나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문에서부터 ‘소설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선언을 합니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특유의 유머를 유지하면서 과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루는 범위도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제가 처음 책을 부탁받았을 때는 두께도 얼마 안 되겠다 싶어 안심했는데 정말 지옥과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이 책이 외계인부터 평행 우주, 시간 여행, 뇌과학, 철학에서 우주란 무엇인가까지 전부 아우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늘 평소와는 다른 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과학자는 모르는 것은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시간 여행을 물어보면 “미래로는 되는데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은 안 됩니다.” 이렇게 짧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거든요? 저희에게는 그게 정말 좋은 자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그렇게 하다가는 이야기가 안 될 테니 모르는 것도 막 이야기하겠습니다. 대신 “잘 모르지만”이라고 지금 미리 선언해 둡니다. 그런 식으로 오늘은 좀 편안하게, 청중분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저희끼리 앉아서 저런 게 될까, 안 될까, 그렇게 수다를 떠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명현(사회자): 작가가 마구 던진 소재를 과학자가 과학으로 묶어내는 고통이 담긴, 그런 책 같습니다. 이 안에 1년 4개월 동안 책 대 책 대담회에서 다뤄 온 주제 대부분이 함축되어 있기도 하고요. 오늘은 각자 자신이 소설 속에서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들을 말하고 그걸 설명하는 구성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창규(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고, 특히나 과학 소설에서는 개연성이나 합리성을 마치 강박처럼 자기 점검하면서 써야 합니다. 그런 태도에 항상 얽매여 있다 보니 이 비상식적인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불가능 확률 항법장치였습니다. ‘도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있다.’


김상욱(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그 이야기를 하려면 결정론/비결정론 문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물리학의 할아버지가 갈릴레오라면 아버지로는 아이작 뉴턴을 들 수 있죠. 뉴턴 역학의 우주는 초기 조건에서 운동 법칙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우주입니다. 이것을 결정론적 우주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순간 우주 안 모든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알면, 계산을 해서 미래를 알 수 있어요.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하면, 여러분의 현재 위치와 운동은 우주가 생길 때부터 결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 자리에 자신의 의지로 왔다고 믿으시겠지만, 사실은 빅뱅 때부터 정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유 의지가 정말 존재하냐는 물음이 나올 수가 있는데, 19세기 사람들은 ‘자유 의지는 의식이니까 의식과 운동은 별개다.’라고 생각을 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열역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의문이 하나 발생합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엔트로피 문제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왜 시간이 흐르는지 잘 몰랐어요. 공을 위로 던져서 떨어지는 현상을 카메라로 찍어서 거꾸로 돌리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죽음이나 물에다 떨어뜨린 잉크가 퍼지는 일을 찍어서 거꾸로 돌리면 굉장히 이상하거든요. 자연에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물리학이 통계 역학입니다. 이때 도입된 개념이 확률이에요.

제가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종이에 자국이 남잖아요? 누가 와도 이 자국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종이의 깨끗한 면을 이룰 수 있는 원자의 배치는 단 한 가지밖에 없지만 망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배치 가운데 하나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게 확률적으로 너무나 힘들거든요. 제가 지금 통계역학 1년짜리 강의를 한 번에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도입된 확률이 20세기에 양자 역학과 만납니다. 양자 역학에서는 본질적으로 확률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뉴턴의 결정론이 다 깨지게 되는데, 양자 역학에 따르면 모든 사건에 다 확률이 있습니다. 단지 작아서 일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양자 역학에 의하면 제가 벽으로 갔을 때 벽을 뚫고 지나갈 확률이 있어요. 고전 역학에서는 이게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에 안 일어나지만 양자 역학에서는 확률이 0이 아닙니다. 단지 너무 작을 뿐이죠. 심지어 제가 갑자기 고래로 바뀔 수도 있어요. 고전 역학에서는 불가능한데 양자 역학에서는 그럴 확률이 있거든요. 불가능 확률 엔진이 바로 그런 낮은 확률을 일어나게 하는 기관입니다.


김창규(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또 인상이 깊은 것을 말하자면, 평행 우주 이야기가 책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등장합니다. 보통 평행 우주 이야기를 소설에 넣으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잘못 쓰면 독자에게 혼란만 주기가 더 쉬운데, 이 소설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다가 전통적인 영미권 과학 소설의 ‘인과율이 정해져 있는 세계관’과 ‘우리가 유일무이한 세계관’을 엎어 버렸어요. 그래서 과학 이론을 배웠거나 아니면 착상이라도 가져 본 적이 없으면 전체적인 시점을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그 정도로 평행 우주 이야기를 소설 줄거리에 많이 집어넣었다는 것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상욱(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사실 이것에 과학자로서 답변하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론입니다.” 하고 끝내면 됩니다. 평행 우주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고 실험적 증거도 없습니다. 과학 소설에 가까운 것이고, 설사 있다고 할지라도 평행 우주 사이의 의사소통은 전혀 허용 안 된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여기서는 양자 역학 이야기만 조금 하고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양자 역학에서 나온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확률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양자 역학에 있는 괴상한 원리 중 하나가 입자성과 파동성 문제입니다. 오늘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하면 입자가 어느 한순간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결과입니다. 이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비약하면 저는 동시에 두 곳에는 앉을 수가 없어요. 이것은 입자의 숙명입니다. 그런데 양자 역학은 제가 양쪽에 동시에 있는 그런 상태가 가능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양자 중첩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데 양자 역학적 대상에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선 한 번도 본 적 없잖아요? 그런데 머리카락을 십만 분의 1로 자른 그 정도 크기에서는 지금 말씀드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어요. 여기까지도 어려울 텐데,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도약을 해야 합니다. ‘전자들은 중첩하는데 왜 인간은 중첩 못 하는가?’ 이게 양자 역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양자 역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작은 세계, 미시 세계가 있고요.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가 있습니다. 우주를 둘로 나눕니다. 이것이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미시 세계처럼 행동하던 것이 우리가 어떤 짓을 하면 어느 순간 우리 같은 거시 세계로 바뀐다는 거예요. 전자도 퍼져서 중첩 상태에 있다가 내가 어디 있는지를 보면 어느 한 장소에 딱 있게 돼요. 그때 이 전자의 질량과 전하가 나옵니다. 안 보면 다시 퍼지고요. 이게 너무 불편하잖아요? 코펜하겐 해석대로 우주를 둘로 나누면 경계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거든요. 원자 하나는 미시 세계이고 많이 모이면 거시 세계인데 원자가 얼마나 모여야 거시 세계냐는 경계가 필요한데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주를 둘로 나누지 않으려는 개념이 바로 평행 우주입니다. 둘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미시 세계에서 중첩 상태에 있던 것이 우리의 어떤 조작을 통해서 한 개의 상태로 귀결되는 거시 세계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우주 자체는 계속 중첩 상태를 유지하는데 단지 우리가 두 상태 가운데 하나의 우주에만 살 수 있도록 우주가 찢어진다는 거예요. 평행 우주에서는 우주 전체는 중첩 상태를 유지하면서 굴러가고, 단지 우리는 그중 한 우주에 살 따름입니다. 이렇게 하면 수학으로는 단 하나의 수학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편안해지죠. 대신 굉장히 많은 우주가 존재해야 하니까 마음은 불편하지만.


이제 제가 재밌었던 부분을 이야기해도 될까요?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책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숙고(Deep Thought)’ 컴퓨터가 계산하는 ‘인생과 우주 그리고 세상 만물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지구도 그것 때문에 만들어진 거대 컴퓨터였으니까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에서도 컴퓨터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궁극의 컴퓨터가 무엇일까? 궁극의 컴퓨터를 만들어서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올까?

물리학자들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컴퓨터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계산해 봤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만들지는 않아요. 대신 뭐가 안 되는지는 이야기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노트북 컴퓨터가 있다면 이것으로 대략 1기가플롭스 정도의 계산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노트북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다 사용해서 계산한다면, 1초 동안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할 수 있을까요? 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질문인데 답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원자의 상태가 빨리 바뀔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정리가 있거든요. 결국 물체의 전체 에너지 나누기 어떤 상수 한 것 이상으로는 빨리 움직일 수 없어요. 물체의 전체 에너지는 아인슈타인 이론에 의해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mc^2)이 있거든요. 그것에 비하면 물체가 가진 온도 에너지는 작아서 무시할 수 있어요. 그것 나누기 어떤 상수 한 것만큼의 속도가 한정된 자원으로 계산할 수 있는 궁극의 한계입니다.

그 계산을 해 봤더니 노트북 컴퓨터로는 1초 동안에 1하고 0이 50개 붙은 것만큼 질량(=에너지)를 다 사용해서 계산할 수 있어요. 이 계산을 확장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를 가지고 계산을 해요. 우주 자체를 컴퓨터로 만듭니다. 우주의 전체 에너지 나누기 상수 하면 어떤 속도가 나올 거예요. 결과를 1초 동안 우주가 10의 105승 번 계산할 수가 있습니다. 10의 100승을 구골(googol)이라고 합니다. 검색 엔진 구글의 이름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좀 실망했어요. 이것밖에 안 되나? 여러분이 우주의 모든 입자, 질량을 에너지로 다 바꿔서 계산을 해도 1초에 10의 105승 번밖에 못 합니다. 우주가 만들어진 지 지금까지 137억 년이 되었는데 이 시간을 곱하면 우주가 지금까지 10의 122승 정도의 계산을 수행한 겁니다. 이게 다에요. 그뿐만 아니라 우주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을 텐데 수소 원자가 대략 1제곱센티미터 안에 몇 개 들었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것으로 환산해 보면 우주가 가질 수 있는 총량이 10^90 비트밖에 안 됩니다. 우주가 광활하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10^90개의 비트를 가진 유한한 크기의 컴퓨터고요, 탄생 이래 지금까지 10^122번의 계산을 수행한 것이 다입니다. 그게 우주 전체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를 컴퓨터라고 보는 게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는 아닌 거지요.


이명현(사회자): 소설 속에서는 ‘숙고’ 컴퓨터를 통해서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결론’을 42라고 내리지요. 저는 그 주제로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허블 상수라는 문제가 있었어요. 우주가 팽창을 얼마나 빨리하느냐는 계수인데, 이게 우주의 나이와도 관련이 있고 중요한 계수거든요. 제가 대학원생 때만 하더라도 ‘허블 전쟁’이라고 불렸습니다. 50과 100이라는 값을 가지고 싸우는 두 파벌이 있었습니다. 100이라고 하면 우주의 나이가 100억 년이고 50은 200억 년입니다.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불쌍한 사람은 대학원생입니다. 발표를 할 때 모든 절댓값에 이 값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불쌍한 대학원생들은 75를 썼어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안전한’ 값으로 대학원생 허블 상수라고 불렸습니다. 그게 2000년대 들어와서야 해결이 되었는데 옳은 값이 71, 72 정도 했습니다. 대학원생 값이 얼추 맞았던 거죠. 절박한 사람일수록 맞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50이라고 주장했던 교수 중에 42를 주장하는 논문을 쓰신 분이 계십니다.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았는데 갑자기 신이 나타나서 42라고 했대요. 그래서 42가 허블 상수다. 이 논문이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논의가 많이 되었고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가 허블 상수를 계시해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계산할 때 늘 75를 쓰면서도 42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우리가 뭔가 잘못하는 것 같고 그랬거든요.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습니다.


김상욱(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신 이야기와 결부될 것 같은데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서도 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 이야기한 대로 우주의 시작과 끝, 우주의 근원, 이런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이 아직 답을 모르잖아요. 과학이 모를 때 필요한 게 신입니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을 보면 재미있는 예가 많이 나와요.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우주가 무엇이고 도대체 우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우주를 설명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물리학이 기반을 두는 철학입니다. 우주를 어떤 간단한 한두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오컴의 면도날’이라고도 하는데 한 현상을 다섯 개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고 두 개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으면 두 개 쪽을 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걸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물리학자들이 믿고 추진을 하는 중인데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이런 경향에 대해서 물리학자 존 휠러가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궁극의 법칙이 있다면 그 녀석은 반드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선험적 법칙으로부터도 나올 수 없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라는 거예요. 신이 가지는 딜레마랑 비슷해요.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되었는데 빅뱅 전에는 뭐가 있었는가? 항상 그것 때문에 신이 도입되는데요. 종교를 믿는 분들은 기뻐하시지만 금방 모순이 나오죠. 그 신은 또 누가 만들었을까? 똑같아요. 궁극의 이론이 나오는 순간 그 이론은 누가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론이 홀로 서지 않는 한은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여기서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게임 이론의 아버지인 폰 노이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공집합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공집합 플러스 정신(mind)이 있으면 자연수의 집합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는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잘 들어 보세요. 먼저 공집합이 있습니다. 공집합은 원소를 갖고 있지 않은 집합이에요. 여기 정신이 있어요. 그 정신이 공집합을 쳐다봅니다. 아무것도 없죠. 이제 정신은 공집합이 공집합을 포함함을 깨달아요. 공집합의 중요한 특징이 그 자신을 포함할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1개의 부분 집합을 가지고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도약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1을 만들어 냅니다. 그 부분 집합인 공집합이 다시 자기 안에 자신과 같은 똑같이 비어 있는 공집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순간 2가 만들어집니다. 무에서부터 자연수를 만들어낼 수가 있어요. 일단 자연수가 나오면 끝입니다. 그다음에 유리수, 무리수가 만들어지니까요. 동의하시나요?

우주의 근원이나 우주의 본질을 어떤 대상으로 만들면 그 대상의 존재를 설명해야 해요. 물리학은 유물론이니까. 이걸 피해 가는 방법은, 이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바꾸면 됩니다. 여러분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시면 안에서 게임 캐릭터들이 왔다갔다 움직이잖아요. 우리가 보면 한심하지만 캐릭터 입장에서는 그게 실재라고 믿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우주 안에 있고요. 눈앞에 놓인 아이템이 진짜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어요. 먹으면 힘이 납니다. 아이템은 사라지고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그것이 실제 있는 게 아니라 ‘아이템이 있다.’라고 써 놓은 것이거든요. 문장인 겁니다.

그래서 지금 과학자들은 우주의 근원이 물질이 아니라 정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 볼펜이 있다가 아니라 여기 볼펜이 있다는 문장이 있다는 거예요. 우주가 입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런 상태를 기술하는 진술(statement)의 집합이라는 거죠. 그렇게 해 버리면 어려움을 피해 갈 수 있어요. 법칙은 문법이, 프로토콜이 됩니다. 우주는 10의 122승짜리 계산밖에 못 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압니다. 모든 정보는 0과 1로 쓸 수가 있어요. 어떤 종류의 정보도 다 0과 1로 쓸 수가 있고요. 0과 1은 결국 0이라는 비어 있는 것과 1이라는 자연수로 쓸 수가 있어요. 여러분이 공집합으로부터 1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우주를 무에서부터 만들어낼 수가 있죠.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주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논리학에서 모순이 생기는 극명한 상황이 자신이 자기 자신을 기술할 때 모순이 생길 수가 있어요.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그 자신이 한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양자 역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어떤 답을 내기 위해서 내가 대상이 있을 때 그 대상을 내가 측정하면 답을 얻을 수가 있어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뭐냐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 두 개가 분리되어 있어요. 그래서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시 세계만 측정할 수가 있어요. 미시 세계는 측정을 못 해요. 측정하는 순간 거시 세계로 환원이 됩니다.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건데, 따라서 양자 역학적 해석에 의하면 외부의 어떤 관측자 없이 내부의 시스템이 그 자신을 자신이 측정할 수가 없어요. 측정이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외부의, 나와 다른 존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주 전체에 대해서 무슨 질문을 했을 때 (이 우주가 양자 역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우주 밖에서 우주를 측정하지 않는 한 우주를 측정한 결과를 얻어낼 수가 없어요. 이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양자 역학적인 중첩 상태에 있습니다. 어느 하나의 정보로 귀결되지가 않아요. 이게 하나의 중요한 문제이고요. 또 한 가지는 제가 예를 들어서 지금 여기 앉아 있는데요. 저기 앉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여기 아니면 저기 앉아 있으니까 이 상황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1비트의 메모리가 필요해요. 내가 기술하는 물질이 가질 수 있는 상태만큼의 메모리가 있어야 이 상태를 기술할 수가 있어요. 만약 여기 상태가 하나 둘 셋 네 개 내가 어디든 앉을 수 있다고 합시다. 네 개의 상태가 있지만 내가 메모리가 1비트밖에 없으면 이 상태를 기술할 수가 없어요. 우주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우주 전체만큼의 비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주 전체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그것을 우주 안의 유한한 자원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해요. 원래는 안 되는 겁니다. 어딘가 빠뜨릴 텐데 빠뜨려도 된다는 이론이 있지 않은 한은 완벽한 설명은 불가능해요. 결국은 우리가 유한한 자원으로 하면 어딘가 불확실하고 빠진 게 나오기 때문에 답이 불확실하고요. 계속 키워 갈 거예요. 자원을. 그래서 답을 얻는 순간은 그 컴퓨터가 우주 자신이 되는 순간일 겁니다. 그런 걸 깔고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명현(사회자): 이 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나오는 소품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수건입니다. 도대체 왜 나왔을까요? 김창규 작가님이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서 답변해 주시지요.


김창규(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작가가 쓴 소재의 모든 스펙트럼을 개인이 다 감지하긴 힘듭니다. 이 소설 같은 경우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게 별 게 아니다.’, ‘뭔가 없어 보이는 게 대단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막 섞어 쓰거든요. 이 소설에서 수건은 마지막으로 챙겨 가야 할, 특히 모든 걸 다 버리고 우주를 무전 여행할 때 챙겨야 할 것이 수건이라고 하는데 정작 책에서 수건이 하는 역할은 거의 없어요. 그런 테크닉, 아이템의 하나로서 썼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이명현(사회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 발언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못다 한 아쉬운 이야기 한마디씩.



김창규(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사실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를 누군가에게 추천해야 한다고 하면 상당히 어려워요. “그냥 읽어 봐라. 너랑 취향이 맞나 안 맞나.”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거든요. 이걸 멋들어지게 해 보면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세상에서 예술가나 창작자라는 직업이, 혹은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하면 상식적인 사람과 광인이 있고 그 사이 어딘가에 모든 사람이 분포를 할 거예요. 그 상식과 광인 사이에서 이 소설 같은 경우 아주 치밀하게 쓴 추리소설이 상식 쪽, 그러니까 상식을 알고 있으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추리소설이라면 이 책은 아마도 상식보다는 광인 쪽에 가깝지요. 특히나 과학 이론도 모르고 있는 독자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진입 장벽을 어떻게 낮출 것이냐 하면 중간에 별을 새로 조립을 하고 그 별을 조립하는 데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모르는 독자가 있다고 하면, 당황하지 않도록 익숙한 물건을 징검다리처럼 두어야 해요. 이 책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했고, 그래서 진입 장벽이 좀 높긴 하지만 광인 쪽에 가까운, 그런 창작의 맛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상욱(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이 책을 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과학을 가지고 이렇게 유머러스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고요. 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과학을 많은 사람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이 그런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모두 갖고 있는 궁극의 질문, 그게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목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물론 과학이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죠.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고 과학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42라는 답이 나왔는데 숙고를 한 컴퓨터가 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한 마디를 해요. 바로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입니다. 사람들이 분노를 하죠. 750만 년 걸려서 계산을 했는데. 저는 비슷한 말을 끝으로 해 드리고 싶은데요. 과학자들은 이 순간에도 밤잠 설쳐가며 열심히 연구를 해서 왜 우리가 존재하는지 우주의 신비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합니다. 여전히 이것이 여러분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유머만을 즐기시지 말고요. 우주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이해해 주시고 항상 과학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부탁을 드리면서 마치고 싶습니다.


이명현(사회자): 그럼 이것으로 12월 책 대 책 대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년 1월에는 대담에 더 초점을 맞춘 ‘과학 수다’가 양자 역학을 주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2년 12월 책 대 책 대담회는 1년 4개월 동안 진행된 대담회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자리답게 그동안 진행된 주제들이 모두 등장했으며, 과학과 과학 소설을 통해서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대담회 준비에 ‘피를 토했다.’라는 대담자의 고백답게 하나만 가지고도 대담회를 열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 계속 이어졌으며, 열역학, 양자 역학, 정보, 우주의 기원 같은 무게감 있는 주제들이 대담자들의 유머러스한 경험과 함께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청중들은 코믹 SF 장르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이 소설이 과학과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전한 열매들을 맛보고,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와 과학의 매력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지적 논리와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과학과 또한 SF 소설이지만,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나 평행 우주 개념에서 보는 것처럼 정작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상상력의 폭발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과학은 그 상상력 안에 진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있다. 새해부터 더욱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는 ‘과학 수다’의 새로운 성공을 기원하면서, 책 대 책 대담회는 16개월이라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책 대 책이 끝나 아쉬우신 분들을 위한 소식! 위에서도 밝혔습니다만,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주최/ 프레시안 공동기획 과학 수다가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 1월부터 '프레시안 books와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가 펴내는 웹진 <크로스로드>에 '과학 수다'가 게재되고 있고,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도 곧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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