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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번역자로서 산다는 것

Editor! 2013. 12. 7. 08:30

『지구의 정복자』의 과학 도서 전문 번역자이자 소설가로서 필봉을 날리고 있는 이한음 선생님은 실은 에드워드 윌슨의 책으로 번역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처음 출간된 『인간 본성에 대하여』가 그 책이지요. 『지구의 정복자』의 독자들을 위해서 과학 번역자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자 이한음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두 편의 글을 게재합니다.

첫 번째 글은 『과학이 나를 부른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사이언스북스, 2008년)에 실린 글로 「어느 과학 번역자의 소회」라는 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은 『지구의 정복자』에 실린 옮긴이 후기 「옮기고 나서: 세월의 흐름과 맞선다는 것」입니다.

책과 함께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한음 (과학 도서 전문 번역자 / 소설가)





과학이 나를 부른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어느 과학 번역자의 소회

한국에서 과학 번역을 한다는 것


번역자가 된 계기는 아주 평범했다. 출판사에 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 과학책을 한 권 내게 내밀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번역을 해 보라고 했고, 나 역시 ‘그러지 뭐’ 하는 식으로 별 고민 안 하고 받아들였다. 출판계 사정을 전혀 모르는 때였기에, 누군가에게 번역을 의뢰했다가 어떤 사정이 생겨서 되돌아 온 책이라는 것을 몰랐다. 즉 친구는 급하게 대타를 찾다가 옆에 있던 나를 점찍은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내 인생 경로가 한 번 바뀐 시점이었다.

얼떨결에 맡은 책은 사실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웠지만, 당연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리가 없었다. 당시 신춘 문예에 입선하고 소설을 쓰던 시기라서 우리말을 좀 한다고 자신하고 있었고, 영어도 대학 내내 영어 원서들을 끼고 살았고 부업으로 책의 일부를 맡아 번역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일이 어렵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몇 쪽을 읽는 순간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읽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말로 옮기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문장을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고 해도 잠시 뒤에 보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게다가 첫 번역이었고 주위에 번역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의역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초보자가 으레 그렇듯이, 문장 하나의 의미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지식 전달이 중요시되는 과학책이지 않은가.

끙끙거리면서 겨우 번역을 다 끝내긴 했지만, 내 자신이 창작한 글과 비교하면 도무지 읽히지가 않았다. 결국 친구에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친구는 다른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가벼운 책이니 먼저 해 보라고 말이다. 그 책을 펼친 순간 딴 세상을 만난 듯했다. 어려운 책을 붙들고 몇 달을 씨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번역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터에 갑자기 술술 읽히는 책을 접하니,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았다. 어려운 책도 있고 쉬운 책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셈이었다.

아무튼 몇 달간의 고생이 헛된 일은 아니었다. 그 고생은 일종의 실전 연습이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두 번째 책에도 좀 까다로운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번역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책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다시 첫 번째 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 책은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었다. 다시 끙끙거리며 원고를 고치고 있자니 퇴고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고쳤음에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미루고 다른 책을 맡아서 했다. 역시나 더 쉬웠고, 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번역을 하다 보니 서서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남보다 먼저 새 지식을 접한다는 기쁨도 느꼈다.

한편으로 내 교양이 아주 형편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PC 통신이 주류이던 시절이었기에, 책에 이름만 달랑 나와 있으면 도서관을 뒤져야 했다. 한참 뒤져서 찾아냈는데 유명한 음악가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고 좀 허망할 때도 있었다. 당시 대학 생활이란 것이 시위대 따라다니고 술 마시는 것이 거의 전부였으니, 이른바 교양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랬으니 번역 일은 뒤늦게나마 부족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번역의 맛을 알 즈음에 친구가 출판사를 그만두었고 후임자가 첫 번째 책의 원고를 달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원고를 다시 손을 보았고, 몇 년간 붙들고 있던 그 책도 번역되어 세상에 나왔다. 막상 나온 책을 보니 정말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능력도 안 되던 시기에 어려운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것이 미련한 짓이었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그런 미련한 성격 덕분에 번역가가 된 셈이다.

그런 성격이 책상 앞에 진득하게 붙어 앉아 번역을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안 좋은 면도 많았다. 번역가란 말 그대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인데, 그런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매일 같이 줄곧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를 익히 알고 있는 지금도 시간과 일에 쫓기며 사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취미 삼아 번역을 했기에 별 부담도 안 느꼈고 인세나 원고료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문제는 나중에 번역을 본업으로 삼은 뒤에도 그런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번역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위의 도움 없이 홀로 일을 했기에 안 해도 될 갖가지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야 했다. 과학책의 특성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인세로 계약을 하는 바람에 노력에 비해 수입이 보잘것없던 시기도 있었고, 원고를 보낸 뒤 몇 년이 지나도 책이 안 나오거나 출판사가 그냥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간간이 그런 일을 겪긴 했지만,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좋은 동료들도 만나고 나름대로 보람도 느꼈다.

과학책을 계속 번역하다 보니 어느새 과학책 전문 번역가라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과학책만 번역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고 할까? 처음에 번역한 책들이 과학책들이기 때문인지, 그 뒤로 번역 의뢰가 오는 것이 대부분 과학책들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의 책들도 있긴 했지만 처음에 과학책을 놓고 고생을 하다가 어떤 깊은 맛을 느낀 모양인지,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가 않았다. 이미 아는 사실들을 이리저리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 발견되는 지식을 맛보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과학책은 전문 용어를 잘 알고 그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지 않고서는 번역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번역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당시에 과학 쪽은 번역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참에 과학책을 번역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번역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거절을 요령 있게 잘 못 하는 성격 탓에 빨리 해 달라고 재촉하는 일부터 먼저 하다 보니, 계속 과학책이 먼저 손에 잡혔다. 좋아하는 책과 주로 의뢰가 들어오는 책이 같은 분야의 것들이었으니 딱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다른 분야의 책들은 사실상 손을 댈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아울러 소설 쓰기도 어느새 번역에 밀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과학 번역가로 굳어지게 되었다.

번역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곁다리로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이 영어 구절에 딱 맞는 우리말을 찾겠다고 국어 사전을 다 훑은 적도 있고, 생물을 묘사한 구절이 이해가 안 되어 그 생물의 사진을 찾겠다고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진 적도 있다. 하지만 계속 이어서 다른 책을 번역하다 보면 그렇게 애써 찾아놓고도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까다로운 영어 구절에 딱 맞는 우리말이 문득 떠오른다거나 할 때면 쪽지에 적어서 책상 앞 벽에 붙인 메모판에 붙여 놓곤 한다. 계속 들여다보면 기억하겠지 하는 생각에서이다.

벽에 붙이는 쪽지들이 또 있다. 앞으로 쓰자고 마음먹은 SF 소설의 제목이나 착상을 적은 것들이다. 과학책을 번역하다가 보면 문득 SF 소설에 딱 맞는 좋은 착상이 떠오르곤 한다. 한 권 한 권 번역이 끝날 때쯤이면 메모판에는 자주 나오는 용어들을 적은 쪽지들과 함께 그런 쪽지들이 다닥다닥 붙는다. 얼마 전에 한 권을 번역할 때 메모판에 새로 붙인 쪽지들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종을 낳는 자궁, 최후의 관찰자, 시간의 입자, 십장생, 전래 설화의 SF화 등등.

하지만 막상 나중에 그 쪽지들을 읽어 보면 왜 그렇게 썼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좀 더 길게 써서 붙여 놓았으면 좋으련만. 아니면 아예 줄거리라도 적어 두든지. 늘 그런 생각을 하지만 번역을 할 때는 대개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그런 착상은 으레 번역이 술술 잘 풀리고 있을 때 떠오른다. 한창 자판을 두드리다가 멈추고 쪽지를 적으려고 펜을 손에 쥐면, 순조롭게 이어지던 호흡이 끊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화면을 띄우고 거기에 적는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들여다보면서 떠올리는 데에는 차라리 쪽지가 더 낫다. 물론 어느 쪽이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시간이 남고 기억이 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번역할 때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곤 한다. 그런 소설들을 쓰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그쪽으로 생각하면 과학책을 번역하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과학책은 새로운 지식을 알려 주며,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이고 먼 과거는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자연에 관한 단편적인 사실들이 어떻게 서로 엮이는지 깨닫게 해 준다. 한마디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학책 번역과 연관지어 해 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과학 번역 용어들을 다루는 웹사이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 혼란스러운 용어들이나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된 용어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원서에 적힌 낯선 생물들의 이름은 언제나 고민을 안겨 준다. 아무리 검색해도 우리말 이름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지어 붙여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말 이름을 검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름을 짓느라 고심하는 데 드는 시간을 더하면 무시 못 할 정도가 된다. 나름대로 생물 이름 목록을 만들어 번역할 때마다 새 생물 이름을 추가하곤 하지만, 그 일도 번역할 당시에는 시간이 없으니 끝나면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가, 막상 번역을 다 마치고 나면 게을러져서 그냥 넘어갈 때가 많다. 그랬다가 다른 책에서 같은 생물 이름이 나오면 우리말 이름을 어떻게 지었나 찾아보느라 고생한다. 일을 체계적으로 하면 덧나는가 하고 자신에게 구시렁대면서 말이다. 그런 일을 되풀이할 때마다 웹사이트를 만들면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품지만 역시나 시간이 문제이다. 그러다 보면 왠지 과학 번역가로서 사명감도 느껴진다.

번역이 직업이니, 번역 오류가 있는 책을 내놓았을 때 가장 후회가 되고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번역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없을 수는 없지만, 원고를 교정하는 횟수가 늘수록 오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출간 일정이 있고 원고 마감일이 있기에 책 한 권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가 번역자의 게으름이 더해지면 미처 제대로 교정을 못 본 책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좀 더 세심히 볼 걸 하는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든다.

과학 전공자가 과학책을 번역할 때의 장점은 과학적 지식을 다룬 부분에서 잘못 번역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책이란 잘 읽히는 것이 중요하므로, 원서의 문장이 깔끔하지 못하더라도 깔끔하게 옮기는 것이 번역가의 역할이다. 과학 교양서가 과학자와 일반 대중의 의사소통을 돕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생각하면 그 점을 경시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점도 과학 지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하고 있다. 번역은 내용을 잘 알수록 수월해지고 문장도 깔끔해지는 반면, 잘 모르면 시간이 많이 걸릴뿐더러 알 듯 모를 듯한 문장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이 담긴 책들이 쏟아진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저자들도 조급증에 걸린 듯 잘 되새김질을 하지 않은 최신 지식들을 마구 적어 놓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과학 발전 속도로 볼 때 그렇지 않았다가는 책이 미처 출간되기 전에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와서 그 책이 낡은 것이 될 가능성도 있으니, 그런 조급증도 이해가 된다. 얼마 전에 한두 달 뒤 출간될 예정인 책의 원고를 파일로 받아 번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번역을 반쯤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는 바람에 저자로부터 원고를 다시 써야겠다는 연락이 와서 중단하고 말았다. 저자도 새 연구 결과를 보고 원고를 고치는 상황인데, 번역가라고 나태하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최신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 분야의 번역가는 계속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최근 들어 너무 정신없이 번역에 매달려 있다 보니 내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번역가치고는 너무 잡생각이 많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2008년)






지구의 정복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옮기고 나서 : 세월의 흐름과 맞선다는 것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노학자(老學者)가 쓸 법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정리할 나이쯤 되면, 전체를 한 번 아우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닌가. 곤충 연구에서 시작하여 인간사 쪽으로 조금씩 진출해 왔으니, 이제 윌슨도 인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살펴볼 때가 되지 않았나?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변죽만 울리다가, 십여 년 뒤에야 『인간의 유래』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듯이 말이다.

그런데 중반쯤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에 다윈의 사례를 떠올린 것이 너무나 적절한 비유임을 알아차렸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를 설명한 것이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깜박 잊고 있었다. 그 책은 자신이 원래 세웠던 원대한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왜 놓치고 왜곡시켜 해석하고 있었던 것일까?

역자가 어쭙잖은 태도를 보이든 말든 간에, 윌슨은 이 책에서 또 한 번 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있던 혈연 선택 개념이 틀린 것이라고 과감하게 내치고 있었다.

물론 정설로 자리를 잡도록 하는 데 자신이 큰 기여를 한 개념을 훗날 철저히 내던진다는 것이 진정한 연구자임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 대가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정한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설령 우리가 혈연 선택이 옳은지 오랜 세월 과학자들이 틀렸다고 내쳤던 집단 선택이 옳은지 판단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연구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자신이 지지했던 개념도 버려야 한다고 굳게 믿는 진실한 과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이 책은 감명을 준다.

역자는 사실상 윌슨의 책을 통해 번역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 뒤로 윌슨의 책과는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제야 비로소 다시 그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당연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책이겠지 했던 지레짐작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세상에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는 정신의 소유자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