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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엄지』 옮긴이 후기 비교 (1998년판 / 2016년판) 본문

책 이야기

『판다의 엄지』 옮긴이 후기 비교 (1998년판 / 2016년판)

Editor! 2016.05.20 14:53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 엄지』1998년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정부 기관에서 선정하는 우수 과학 도서로, 경영인을 위한 필독서로, 명문 대학 신입생 필독서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로 있으며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3만 원, 5만 원으로 거래되는 등 과학 독자들 사이에서 복간 희망 1순위로 거론되던 책이었습니다. 한국의 대표 과학 저술가이자 번역가인 김동광 교수님에 의해 18년이 지난 2016년, 『판다의 엄지』가 개정 출간되었습니다. 역자 김동광 교수님은 『판다의 엄지』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작들을 번역해왔습니다. 5월 20일,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기일을 맞아서 『판다의 엄지』 1998년판과 2016년판에 실린 김동광 교수님의 옮긴이 후기를 소개해드립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옮긴이 후기 비교

(1998년판 / 2016년판)



1998년판 옮긴이 후기

자연은 뛰어난 땜장이이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사람처럼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다는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판다의 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의 숫자가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인 것이다. 그렇다면 판다의 엄지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판다의 실제 엄지손가락은 다른 역할에 할당되어 있어서 별도의 기능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특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붙잡을 수 있도록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손가락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판다는 손에 있는 다른 부분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손목뼈를 확장시켜 엄지로 이용한다는 조금 꼴사납기는 하지만 일단 도움이 되는 해결 방법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뛰어난 신발명이 아닌 임시 변통의 처방"이었던 셈이다.


다윈의 난蘭에 대한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자연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임시 변통적 장치들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공학자가 생각해내는 가장 뛰어난 고안물도 역사의 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판다의 엄지는 자연이 "뛰어난 땜장이이기는 하지만 성스러운 공장工匠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 책 『판다의 엄지』의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라는 불완전하고 기이한 사레를 통해 진화의 진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굴드는 얼핏 보면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 현상을 제기하면서 우리를 중요한 질문으로 이끄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땜장이식 임시 변통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이것을 굳이 임시 변통이라고 부를 까닭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완전한 원래의 설계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필자가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 "진화란 어떤 목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완전한 무엇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화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관점, 즉 진화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굴드는 현대의 종합설이 진화를 어떤 틀 속에 가두어놓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국지적인 개체군 속에서 일어나는 점진적이고 적응적인 변화'라는 다윈주의의 기본 관점에 귀착시키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굴드는 자연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며 진화는 여러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진화란 누적적이고 점진적이라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와 엘드리지는 진화의 '단속평형斷續平衡punctuated equilibrium' 모형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속평형설이란 "대부분의 계통이 각각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 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분화라는 사건에 의해 그 평형이 단속되는 것, 그리고 진화란 이러한 단속의 전개와 생존이 뒤섞여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쟁은 아직까지 확실한 결말이 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복잡성 과학complexity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컴퓨터 모형으로 생물의 진화 과정을 시뮬레이트(모의 실험)한 결과는 단속평형설이 사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필자가 진화나 진화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나 풍부한 사고를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 우리 삶의 여러 굽이굽이에 고여 잇고 굳어 있는 숨낳은 것들을 판다의 엄지로 흔들고 휘저으면서 그 속에서 드러나는 숱한 문제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종주의를 뒷받침했던 두뇌 계측학, 그리고 IQ 검사를 비롯한 숱한 그 현대판들.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과학에 들씌워져 있는 숱한 인간들의 감정과 희망, 그리고 이해 관계들. '멍청한 공룡'이라는 인간들의 편견이 보여주는 인간중심주의. 사람이나 동물의 몸이란 유전자를 나르는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로 비약한 도킨스의 환원주의와 유전자 결정론…. 더욱이 그는 오늘날 복잡성 과학이나 체계 이론의 접근 방식을 자신의 연구 분야에 훌륭하게 수용시키고 있다. 그는 '역사적 과학'이라는 접근 방식을 통해 "생물은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의 무엇이며,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는 관점으로 환원론, 결정론, 원자론을 단호히 배격한다. 역사는 수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역사는 판다의 엄지를 만들어내고, 완벽한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순식간에 멸종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객관적인 것인 양 생각하는 과학 자체도 역사의 산물이다.


<심슨 가족>에 출연한 스티븐 제이 굴드. 캡쳐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명한 학자이자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다. 그는 진화생물학, 고생물학, 동물행동학 등의 전문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과학사, 과학사회학 등의 폭넓은 안목으로 과학의 중요한 주제들에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섣부른 주장을 펴기보다 독자들에게 풍부한 사실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견해를 공평하게 제기해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보기 드문으 재주를 지닌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굴드는 과학 글쓰기에서 한 지평을 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문장은 숱한 은유로 가득 차 있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능한 한 그 의미들을 살려내려 노력했지만, 얼마나 필자의 뜻을 올바로 전달했는지 무척 의심스럽다. 제대로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옮긴이의 책임임을 밝혀둔다. 좋은 책을 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세종서적과 까다로운 옮긴이의 주문에도 불평하지 않고 여러 차례 원고를 다듬어준 편집부원들에게 감사드린다.




2016년판 옮긴이 후기

결코 바래지 않을 굴드의 주장



『판다의 엄지』를 처음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 1998년이니 벌써 18년이 지난 셈이다. 이 책은 내가 굴드와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책이라서 유독 마음이 간다. 그 무렵 나는 40대 초반이었고 늦게 대학원에 입학해 과학 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 STS)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고 나름 정력적으로 글도 쓰고 번역도 햇다. 되짚어보인 그후 2003년에 굴드의 Mismeasure of Man을  『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으로, 이듬해인 2004년에 Wonderful Life를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로 번역했다. 2008년에는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을 후배인 손향구 선생과 함께 번역해쏙, 2014년에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를 출간했다. 지금도 굴드 평전 번역을 마무리하고 있으니 지난 20년 가까이 굴드와의 연을 놓지 않았던 셈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글쓴이인 굴드가 2002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저런 글을 통해 밝혔지만, 나는 굴드에게 큰 빚을 졌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적 유행에 민감하고 특정 저자나 관점에 대한 편향이 강한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그의 책들은 우리에게 과학, 사회, 역사, 진화 그리고 생명을 보는 깊은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지난 2004년에서 2005년까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의 과학 사기 사건은 우리 사회가 과학과 생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는지 여실히 보여 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 속에는 논문 저자 표기, 난자 매매, 논문 조작, 위계적인 실험실 문화, 과학의 국가주의와 과도한 정치화, 스타 과학자의 확성기로 전락한 언론 등 숱한 문제점들이 들어 있어서, 최근 서구에서 나오는 과학 사회학이나 과학 윤리 교과서들은 아예 이 사례 하나(Hwang's affair)로 과학 부정 해위를 모두 설명할 지경이다.


굴드가 『판다의 엄지』에서 다룬 필트다운인 조작 사레는 황우석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필트다운인 사건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등 풍부한 화석과 유물로 축복받은 프랑스에 비해 고인류 화석이 없었던 영국에서 20세기 초에 벌어진 희대의 화석 조작 사건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영국인들은 화석을 갈망했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머리뼈와 아래턱뼈를 오래된 것처럼 조작하고 동물의 이빨을 줄로 갈아 조합한 것이다. 본인도 밝혔듯이, 굴드가 이 사건을 깊이 다룬 까닭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궁금증 때문이 아니라, 과학 연구라는 실행(practice)의 본질을 드러내고 신화를 벗겨내려는 의도였다. 그는 왜 빤하고 엉성한 조작을 영국 최고의 고생물학자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토록 쉽게 받아들였는지 물음을 제기한다. 황우석 사건 당시에도 굴드와 똑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실험 노트 하나 없는 엉성하고 빤한 사기극에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그토록 쉽게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븐 제이 굴드


굴드는 이 조작극이 과학에 대한 흔한 신화, 즉 "사실은 견고하고 모든 것에 선행하며, 과학적 이해는 가장 작은 정보까지 끈기 있게 수집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츰 증대된다는 믿음"이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이 개인의 희망이나 문화적 편견, 영예에 대한 욕구 등을 통해서도 추진될 수 있으며,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한층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하는 인간 활동의 하나"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황우석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젊은 과학자들이 논문 조작을 밝혀냈고, 생명 윤리학계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가 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급진 과학 운동으로 잘 알려진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급진 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Genes, Cells, and Brains)』에서 우리 생명 윤리학계가 윤리 규정을 만들고, 논문을 철회시키는 등 "한국 학계는 본보기가 될 만한 방식으로 행동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 후 여러 기회로 젊은 연구자들과 면접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비록 우리가 엉뚱한 경로를 거쳤지만 그 과정에서 과학과 윤리, 사회 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일은 다윈 연합 학술 대회와 뒤이은 사회 생물학 심포지엄 개최이다.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진화론 발간 150주년으로 전 세계에서 다윈 학술 대회가 줄을 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속한 한국 과학 기술학회를 비롯해서 10개 학회가 공동으로 "다윈 진화론과 인간-과학-철학"이라는 주제로 연합 학술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 대회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에 사회 생물학을 주제로 한 본격적인 심포지엄이 "부분과 전체; 다윈, 사회 생물학, 그리고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이화 여자 대학교에서 열렸다. 다윈 연합 학술 대회에서 몇 사람이 사회 생물학을 주제로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해서 서울 대학교 사회 과학 연구원과 이화 여자 대학교 통섭원, 그리고 한국 과학 기술학회의 공동 주최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 생물학』을 번역하고 우리나라에 사회 생물학을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이병훈의 발표 "한국의 사회 생물학에 대한 회고"가 토론의 장을 열어서 무척 뜻 깊었다. 주제는 "사회 생물학과 환원주의", "사회 생물학과 문화", 그리고 "한국의 통섭 현상과 사회 생물학"이었다. 하루의 심포지엄은 사회 생물학을 둘러싼 쟁점들을 충분히 다루기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처음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함의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다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날의 발표와 토론은 2011년에 『사회 생물학 대논쟁』으로 묶여 나왔다.


이 심포지엄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 생물학, 또는 최근 개명한 진화 생물학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높은 영향력에 비해 그런 관점들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 생물학은 대중 과학 출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자연 과학 분야 스테디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고,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앞 다투어 국내에 번역되고 있다. 반면 사회 생물학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굴드나 리처드 르원틴과 같은 학자들의 책은 충분히 소개되지 못했고, 출간되어도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굴드는 1975년에 윌슨의 『사회 생물학』이 발간된 직후, '사회 생물학 연구 그룹'을 만들었고,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서신을 보내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확립하려는 모든 가설은 현상 유지와 일부 집단에서의 계급, 인종, 성에 따른 특권을 유전적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과 지배 집단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한 지지를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로부터 얻어 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명과 질병 등을 유전자로 모두 환원시켜서 이해하려는 이른바 유전자 중심의 사고 편향이 매우 강력하며, 범죄자 식별을 위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사회 문제를 과도하게 생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유전자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우리가 생명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거나, 그동안 철학이나 사회학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설명에서 실패했으니 생물학의 하위 분과로 들어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팽배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굴드는 역사를 통해 사회가 유전자를 비롯한 생물학적 특성이 인간, 사회, 도덕, 종교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치달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런 믿음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에게 더 큰 피해를 주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판다의 엄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학이 진리를 향하도록 설계된 객관적인 기계가 절대 아니며, 열정과 갈망, 문화적 편견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뭇 인간 활동의 전형이라는 관점을 강력히 지지한다. 문화에 얽매인 사고의 전통은 과학 이론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상상이나 선입견을 제약하는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 억측이라는 방향으로 끌려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 『판다의 엄지』 개정판을 준비하며 딴에는 꼼꼼히 잘못된 부분을 고치며 얼굴이 뜨뜻해졌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책상 한 켠에는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가 수정을 재촉하며 나를 흘겨보고 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그동안 냈던 굴드 번역서들을 다시 손봐서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다시 낼 작정이다. 개정판을 내도록 허락해 준 (주)사이언스북스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2016년

굴드의 기일을 앞두고

김동광



왼쪽에서부터 『판다의 엄지』 원서, 2016년판, 1998년판 순.



『판다의 엄지』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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