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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여행] 7화 꽃보다 네안데르탈인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학 여행

[인류학 여행] 7화 꽃보다 네안데르탈인

Editor! 2016. 10. 12. 11:57

ⓒ이희중.

『인류의 기원』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학 교과서를 선보였던 이상희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님께서 고인류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최근 인류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통해 고인류학의 생생한 면모를 알린 자연 과학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번 「인류학 여행」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소개한 고인류학의 세계들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예정인데요. 급속히 발전 중인 유전학과 오랜 역사와 정보가 축적된 고고학이 만나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학문인 현대 고인류학의 놀라운 면모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 교수님이 미국에서 고인류학자로 자리 잡는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 고인류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자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 고인류학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될 「인류학 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몇 년 전에 방송됐던 「꽃보다 누나」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뒤늦게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김자옥 씨가 프로그램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던 기억도 납니다. 여기서 여러 배우들이 찾아간 나라 중에 크로아티아가 있었죠. 오랜만에 크로아티아의 풍경들을 보면서 꽤 놀랐습니다. 제가 크로아티아에 갔던 2003년만 해도, 이 나라는 제 주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었기 때문이죠.


동유럽에 위치한 크로아티아를 구글맵으로 표시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유럽이 아니라 중유럽에 속한다고 이야기한다.


10여 년 전에 찾아갔던 크로아티아는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수도인 자그레브에 갔을 때는 한여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해안에 면한 도시인 스플리트나 두브로브니크로 피서를 떠나고 조용했습니다. 저는 크로아티아 국립 자연사 박물관 맞은편에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구소련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의 2층이었죠. 특유의 냄새부터 무뚝뚝한 주인집 아주머니까지 1990년에 방문했던 시베리아의 가정집을 방불케 했습니다. 


자그레브에서 지내던 방. 발굴장의 간이 침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퍼석퍼석한 빵, 잼, 버터가 놓인 접시와 함께 커피가 들어왔습니다. 


작은 식탁.


그렇게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바로 길을 건너서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자연사 박물관. 유명한 크라피나 네안데르탈인 머리뼈를 조각해서 간판으로 만들었다.


크로아티아는 고인류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크로아티아는 네안데르탈인의 동굴 유적인 크라피나와 빈디야로 유명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생물학자인 드라구틴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Dragutin Gorjanović-Kramberger, 1856.10.25~1936.12.22)의 업적이 가장 밝게 빛납니다. 그리고 보니 올해 2016년은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 탄생 160주년이자 사망 80주년이기도 하네요.


네안데르탈인 유적인 빈디야 동굴의 안에서 바깥을 내다본 모습.


드라구틴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 (이미지 출처)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는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 동굴 유적에서 불소 연대 측정법을 고안하고 시험했습니다. 1899년에 발견된 크라피나 동굴 유적에서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풍부하게 발굴되었죠. 그는 크라피나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대상으로 불소 연대 측정법을 고안하여 시험했고,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인 엑스선으로 화석 내부의 사진을 찍는 등 획기적이며 혁신적인 발굴 보고서를 1906년에 발표했습니다. 그가 개발한 불소 연대 측정법은 훗날 필트다운인이 가짜라는 확증을 제시하기도 했죠.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 크라피나 등의 이름이 프랑스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적이나 프랑스 인 고인류학자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 업적이 그보다 못해서가 아닙니다. 과학적인 업적은 그 절대적인 수준만큼이나 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둘러싼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인 요소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예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혁신적인 분석 방법 외에도, 또다른 이유로 고인류학자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라는 논쟁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는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이 식인의 흔적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굴에서는 수십 명분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는 관찰 결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부서진 조각들이 많았습니다. 팔다리뼈의 수에 비해 두개골이나 얼굴 부위의 수가 적었습니다. 젊은 여성과 아이들의 뼈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뼈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죠. 그는 이것을 식인 행위의 증거로 해석했습니다. 집단의 성원 중에서 연약한 성원을 잡아 먹었기 때문에 살점이 많이 붙은 팔다리뼈의 수가 많다고 본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네안데르탈인이 폭력적, 공격적, 원시적이라는 생각과 맞아 떨어졌습니다. 


크라피나 동굴은 발굴이 끝나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 자리에는 기념 공원이 세워졌는데 네안데르탈 어른과 아이 두 사람이 불 주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어른은 몸을 굽혀 구워진 동물 뼈를 뒤집어 보는데, 뼈 중에는 유명한 크라피나 네안데르탈인의 머리뼈와 턱뼈 모조품도 놓여 있다. 사람을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다. 머리뼈는 앞서 말한 박물관의 간판에도 등장한다.


『인류의 기원』 1장에서도 다루었듯이 식인 행위는 인류학에서 자주 논쟁의 주제가 됩니다. 인류가 식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아마 누구라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뉴스에서 나오지만, 현재의 식인 행위는 범법 행위로서 처벌을 받거나,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용납이 됩니다. 논의의 초점은 식인 행위를 주기적으로, 정상적으로 하는 집단이 있었는지의 여부죠. 여기에 “원시인은 식인종”이라는 편견까지 합세했습니다. 원시인이 식인종이었다면 원시인의 대표격인 네안데르탈인은 당연히 식인종이었겠죠? 크라피나 네안데르탈인 집단에서 보이는 여러 정황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었다는 심증을 확인하는 물증이었습니다. 


매리 러셀(Mary Russell)은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정말 식인 행위를 했는지 밝히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사람 뼈에 칼자국을 낼 수 있는 두 가지의 상황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먹기 위해서 고기를 저미는 상황입니다. 다른 하나는 2차장을 위해서 뼈를 손질하는 상황입니다. 2차장이란 주검을 묻고서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 뼈를 깨끗이 손질해 다시 묻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에서도 경남 진주 등지에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다른 짐승을 잡아먹을 때 칼로 손질한 흔적과 비슷해야 합니다. 하지만 2차장에서 비롯한 칼자국은, 장례 절차를 위해 뼈를 세심히 손질한 흔적입니다. 사람 뼈에 칼자국이 나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른 행위죠.


러셀은 큰 짐승을 잡아먹은 장소라고 알려진 고고학 유적지에서 나온 짐승의 뼈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2차장을 치룬 인골들을 모아둔 골당에서 나온 사람 뼈들을 관찰했습니다. 뼈에 칼자국이 났다는 점은 같지만, 그 위치가 달랐습니다.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들의 경우에, 도축한 짐승 뼈보다는 2차장을 겪은 사람 뼈에서 나타나는 칼자국과 더 비슷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크라피나 동굴에 쌓인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식인이 아니라 2차장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후로 네안데르탈인의 식인 행위를 보여주는 자료는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잡아 먹었는지, 사람 고기를 먹는 취향과 문화가 자리 잡았던 것인지의 여부는 계속 논쟁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발굴된 유물들이 상자째로 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굴 일정이 워낙 촉박해서 일단 파내고 난 다음에, 정리는 ‘나중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중’이 10년, 20년, 수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아예 영영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정리를 하면서 중요한 “발견”을 하는 경우도 많죠. 다시 한번 발굴되는 셈인데요. 바로 크로아티아 박물관에서도 그런 일이 몇 번 일어났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크라피나 동굴에서 발굴된 독수리 발톱에 인공적으로 자른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독수리 발톱을 다듬어서 장신구로 이용했겠죠. 이로써 13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은 자신의 몸을 꾸밀 줄 아는, 지극히 인간다운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또다시 밝혀진 셈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이 독수리 발톱에 주목하고서, 따로 골라내 두었던 사람이 바로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였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어느 날, 야코브 라도브치치와 다보르카 라도브치치는 미국의 데이비드 프레이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독수리 발톱의 잘려진 흔적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야코브 라도브치치와 다보르카 라도브치치는 부녀지간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유적에서 네안데르탈인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찾아낸 두 사람,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와 러셀은 학자로서는 매우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는 정통적인 학자의 길을 가서, 한 우물만 팠고 뛰어난 업적을 냈습니다. 고인류학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일들을 여러 번 해냈습니다. 러셀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샛길로 빠진 경우입니다. 교수를 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작가의 길을 걸었죠. 


매리 도리아 러셀.


러셀의 소설들.


그의 첫번째 역작인 <스패로>에서는 고인류학, 인류학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명작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인류학 개론 시간에서도 보조 교재로 몇 번 사용했죠. 얼마 전에는 이 책에 관해 서평을 쓰기도 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제가 어렸을 적에는 고리아노비치크람버거처럼 학자로 오롯이 한 길을 걷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다릅니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정도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파 내려가는 우물보다는, 굽이치는 강물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