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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를 만나다 본문

책 이야기/사이언스 스케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를 만나다

Editor! 2016. 12. 29. 11:09

지난 12월 20일 고등과학원(KIAS)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덩컨 홀데인 교수(프리스턴 대학교), 데이비드 사울레스 교수(워싱턴 대학교), 그리고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브라운 대학교)입니다. 특히 사울레스 교수와 코스털리츠 교수는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수상하여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요. 그중에서 제자인 코스털리츠 교수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적절한 시기(right time)에 제대로 된 문제(right thing)를

코스털리츠 교수는 2004년부터 매년 고등과학원을 방문하며 1~2개월간 공동 연구를 진행해 온 만큼 고등과학원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고등과학원 입장에서는 10년 이상 함께 해 온 그가 노벨상을 받은 사실이 뿌듯한 일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배출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노벨상에 목마른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방문한 만큼, 역시나 수상 비결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 질문에 코스털리츠 교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사회적인 조건으로, 적절한 연구에 국가가 경제적으로 든든하게 지원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조건이에요. 바로 운입니다. 노벨상을 타려면 돈이나 실력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운이란, ‘적절한 시기(right time)에 제대로 된 문제(right thing)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노벨상을 목적으로 연구하는 게 아니라 새롭고 중요한 문제를 남과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다 보면 운이 따를 지도 모릅니다.”


“결국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등과학원 이용희 원장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이클 코스털리츠 교수(왼쪽)와 이용희 원장(오른쪽)

(사진: 고등과학원)




“무슨 소리인지 아시겠어요? 아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코스털리츠 교수의 연구 분야와 인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박권 교수는 코스털리츠 교수를 대신하여 노벨 물리학상 연구 주제에 관한 청중의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수상자 세 분 중에서 사울레스 교수님과) 코스털리츠 교수님이 (노벨상 공로로 인정)받으신 부분은 ‘위상학적 상전이’입니다. 교수님께서 이론을 내시기 전까지 사람들은 2차원에서 물리 질서를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3차원 물질을 보면 물리 질서가 있잖아요? 2차원에서는 없다고 여긴 거죠. 그런데 사울레스 교수님과 코스털리츠 교수님께서 2차원에서도 물리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보였습니다.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2차원 물질의 상전이 과정을 살펴보면 위상학적 소용돌이가 치는데, 이것이 상전이를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한 거예요. 나중에 이론으로 인정받아서 이것은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박권 교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이용희 원장은 청중의 반응을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시겠어요? (웃음) 아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유쾌한 웃음이 이는 청중석에서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본 간담회가 물리학 강연 자리는 아니었기에 청중석의 웃음이 가라앉은 이후로도 과학적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대중화’, 그리고 ‘대중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사이언스북스는 이번 노벨 물리학상 주제인 ‘위상학적 상전이’가 과학 분야의 최신 유행이 된 만큼 모든 이들이 이 유행을 따라 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렵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 즉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찾아 끼워 맞추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다

우선 코스털리츠 교수가 살아온 흔적을 따라가 봅니다. 그가 어떻게 적절한 시기(right time)에 제대로 된 문제(right thing)를 만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가 이론 물리학자가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아버지 한스 코스털리츠 박사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1934년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스코틀랜드로 망명한 아버지는 원래 이론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것을 반대했어요. 의사가 되라고 한 거죠(한국에도 그런 부모님들 많잖아요?). 하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생리 의학자의 길을 택함으로써 할아버지와 ‘타협’했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학계 최초로 엔도르핀을 발견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코스털리츠 교수에게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해 보라고 장려했습니다. 학창 시절 코스털리츠 교수는 본인이 암기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학문이 아닌 물리학을 선택했습니다. 물리학이란 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간단한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기에 암기보다는 이해와 통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해 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공교롭게도 그는 물리학자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앞서 말했지만 물리학은 그의 아버지가 품고 있었던 어린 꿈이기도 했죠.




떨쳐 내지 못한 미련

그렇게 물리학자가 된 코스털리츠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입자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곧바로 유럽 공동 원자핵 연구소(CERN)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하여 맥없이 그 꿈이 좌절되고 맙니다. 미아가 된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사울레스 교수입니다. 후에 각별한 스승과 제자가 된 두 사람은 ‘케미가 폭발하여’ 결국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되죠.

1972년 사울레스 교수의 권유로 코스털리츠 교수는 버밍엄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post doctor)으로 근무합니다. 사울레스 교수를 따라 응집 물질 물리학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입자 물리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입자 물리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죠. 그래서 사울레스 교수와 함께 응집 물질 물리학을 연구하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어김없이 입자 물리학을 연구했습니다. 어느 날은 자신이 오랫동안 몰두했던 입자 물리학 문제를 힘들게 계산해서 학계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간발의 차로 누군가가 똑같은 계산을 먼저 해서 발표했다고 합니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매우 속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겪고 나니까 자연스레 입자 물리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동안 사울레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 주제를 그에게 어필하며 같이 해 보자고 끊임없이 ‘구애’했던 터라, 그는 결국 연구 방향을 입자 물리학에서 응집 물질 물리학으로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미싱 링크-1: 입자 물리학과 응집 물질 물리학

입자 물리학은 세상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기초 입자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주의 기본 단위가 원자라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 물리학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를 발견했고 다시 양성자를 쿼크 등의 기초 입자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분야가 입자 물리학인데, 쿼크를 포함한 17종의 기초 입자는 빛 알갱이보다도 작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양자 역학을 이용한 매우 정교한 탐구 작업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실험 역시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두 양성자를 정면 충돌시켜 그 속의 내용물(기초 입자)을 분석하는 실험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필요로 합니다. 근래에 입자 가속기를 통해 발견된 힉스도 기초 입자 중의 하나였죠. 코스털리츠 교수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가고자 했던 CERN은 세계적 규모의 입자 가속기 연구소이기도 합니다.

한편 응집 물질 물리학은 작은 입자들을 별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응집되었을 때 나타나는 성질들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 물체들이 모두 작은 입자들이 응집된 상태입니다. 개별 입자 하나가 아닌, 1024개 정도의 집단을 기본 단위로 하기 때문에 통계 역학적인 분석을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체와 액체, 기체, 그리고 금속과 비금속 등에 대한 연구가 모두 응집 물질 물리학에 속합니다. 특히 매우 많은 수의 입자들이 모이면 단순히 개별 입자의 성질이 양적으로만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없던 전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 이른바 ‘창발(emergence)’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입자 물리학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응집 물질 물리학의 고유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을 따라 들어간 2차원 위상학의 세계

1972년 당시 사울레스 교수는 원자들이 한 층의 막(film) 형태로 응집된 2차원 물질을 연구하는 중이었고, CERN으로의 서류 제출이 늦어지는 바람에 입자 물리학자의 꿈이 한차례 좌절된 코스털리츠 교수가 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미싱 링크-2: 2차원 물질

2차원 물질이란 말 그대로 2차원의 평면 모양으로 이루어진 물질입니다. 가로, 세로 방향으로만 원자들이 배열되어 있고 높이 방향으로는 원자들이 오직 하나의 층만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3차원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이상 높이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원자 하나의 지름에 해당하는 수 옹스트롬(1옹스트롬=10-10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가로, 세로 방향과 달리 높이 방향으로는 서로 상호 작용하는 원자들이 없기 때문에 가로와 세로 두 개의 차원에서의 상호 작용만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차원 물질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래핀, 실리신,  MoTe2 등 다양한 2차원 물질들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의 구조

(cc) AlexanderAlUS/ wiki



그들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2차원 물질의 기묘한 특성들을 설명하고자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2차원 물질은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당시 이론대로라면 2차원 물질에서는 초전도, 초유체 현상이 없어야 했지만, 실험적으로는 있었거든요. 이론과 실험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사울레스와 코스털리츠 두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2차원 상전이 과정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2차원 물질에서 초전도, 초유체 현상이 있고 없고의 구분이 바로 이 소용돌이의 유무로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리학에 위상학을 접목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초전도 현상이란 전기 저항이 0이 되어 전기가 자유롭게 흐르는 현상이고, 초유체 현상이란 점성(마찰)이 0이 되어 물질이 자유롭게 흐르는 현상입니다.


미싱 링크-3: 위상학

위상학은 수학의 한 분야입니다. 케이크와 도넛, 프레첼을 재료나 모양, 무게 등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의 개수로 구별하는 것, 그것이 위상학의 관점입니다. 위상학에서는 연결성에 주목합니다. 거리와 위치는 왜곡된 채 오직 연결에 대한 정보만이 중요한 지하철 노선도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위상학적으로 케이크와 사발은 각각 내부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같습니다. 하지만 사발과 컵은 다르죠. 컵에는 손잡이를 이루는 구멍이 하나 존재하는데, 이것은 모양이나 크기를 변화시켜서는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연결성이기 때문입니다. 끈을 늘이거나 줄인다고 매듭(구멍)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컵은 사발이나 케이크가 아니라 도넛과 같습니다. 둘 다 하나의 구멍을 갖고 있으니까요. 위상학적으로 케이크와 도넛, 프레첼은 각각 0, 1, 2개의 구멍을 가진 서로 다른 빵들입니다. 이것이 물리학에 적용되면 물질에 뚫린 구멍의 개수에 따라 같은 물질이라도 다른 상태로 규정짓습니다.


(cc) Kenny Louie/ wiki


게다가 당시에는 2차원 물질의 상태 변화를 설명하는 것 역시도 난제로 꼽혔습니다. 그들은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고체 상태의 2차원 물질이 액체 상태로 변화(상전이=상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령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과정은 우리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 분자들이 결합을 통해 단단한 육각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고체 상태에서 온도를 높여 주면, 결합이 끊어져 육각 구조가 무너지고 물 분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는 액체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2차원 물질의 상태 변화는 설명할 방법이 없던 거죠. 이때 두 사람은 고체 상태와 달리 액체 상태의 2차원 물질에서 소용돌이가 더 많이 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마침내 ‘위상학적 상전이’라는 이론을 세웁니다. 그들의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물이 끓듯 2차원 물질 표면에서 소용돌이가 하나 둘씩 생깁니다. 이 소용돌이는 위상학적으로 구멍과 같은데 온도가 높아질수록 구멍이 많아지는 겁니다.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져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멍이 만들어졌을 때, 고체 상태의 2차원 물질이 비로소 액체 상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즉 2차원 물질의 고체와 액체 상태의 경계를 구멍의 개수 변화로 정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게 위상학적으로 분석한 2차원 물질의 상태 변화를 코스털리츠 교수와 사울레스 교수의 이름을 따 ‘KT 상전이’라고 부릅니다.


(cc) Willa/ wiki




바다 건너 소용돌이를 일으킨 최초의 날갯짓

하지만 이것은 당시에 알려져 있던 기존 이론과 모순된다는 이유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모든 과학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쓴 방법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제가 하고 있던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제 연구 결과가 결국 묻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무명 물리학자로서 살아가던 도중, 본인의 인생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기회를 맞이합니다. 1977년 코넬 대학교에서 헬륨 막을 이용한 실험이 있었는데요. 그 실험의 결과가 우연히 사울레스 교수와 코스털리츠 교수의 이론을 입증하게 되었거든요.


(cc) Anastasiya Markovich/ wiki


미싱 링크-4: 1977년 코넬 대학교 헬륨 막 실험

코스털리츠 교수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을 때, 바다 건너 코넬 대학교의 비숍(Bishop)과 레피(Reppy)는 헬륨 원자들을 한 층의 막 형태로 배열한 헬륨 막을 실험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극저온(2K 이하)에서 온도와 표면 밀도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이때 표면 밀도라는 것은 단위 면적당 질량으로서 [g/cm2의 단위를 갖습니다. 일반적인 밀도의 의미가 단위 부피당 질량 [g/cm3]인 것에 비해 2차원 물질은 높이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 밀도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 결과를 얻었습니다.


헬륨 막 실험의 결과

(사진: D. J. Bishop and J. D. Reppy, 「Study of the Superfluid Transition in Two-Dimensional He4 Films」, Phys. Rev. Lett. 40, 1727 – Published 26 June 1978, p.552)


그래프(a)를 보면 가로축에 절대 온도(T)가, 세로축에 헬륨 막의 표면 밀도(ρs)가 놓여 있습니다. 1.25K의 온도에서 약 5.0*109g/cm2의 표면 밀도를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0.75K에서는 3.0*109g/cm2, 0.25K에서는 1.0*109g/cm2의 표면 밀도를 가집니다. 세 점을 이어 보면 원점을 지나는 아주 깔끔한 직선을 얻습니다. 즉 온도와 표면 밀도가 정비례하는 거죠. 그리고 이것은 절대 영도(0K, 영하 273.15℃)에서 헬륨 막의 표면 밀도가 0이 된다는 뜻입니다.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헬륨 막의 표면 밀도는 0으로 수렴하고 면적은 무한대로 발산합니다. 이 경우 헬륨 막은 면적이 무한정 넓게 퍼져 나가는 초유체가 됩니다(높이는 헬륨 원자 하나의 지름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통념상으로는 어떤 물질이든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증가하고 부피가 감소합니다. 물을 제외하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물질은 기체, 액체, 고체 순으로 갈수록 부피가 감소하고 밀도가 증가하잖아요. 그런데 극저온 상태의 2차원 물질은 온도와 밀도가 정비례하는 겁니다. 코스털리츠 교수의 이론이 인정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통념 때문이었습니다. 온도가 낮아지는데 부피가 증가하다니, 그 당시로서는 허무맹랑한 소리였습니다. 운 좋게도 전혀 모르는 비숍과 레피에 의해 코스털리츠 교수의 이론은 실험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극저온의 헬륨 막이 초유체로서 거동하는 현상은, 코스털리츠 교수가 주목한 소용돌이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그 후로 그의 이론은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더욱 발전해서 2차원 물질이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수수께끼를 풀게 됩니다. 오늘날 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 공로는 바로 그 시절의 연구 활동에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기까지 제법 오래 걸린 셈이죠.


미싱 링크-5: 양자 홀 효과

코스털리츠와 사울레스의 이론으로 해결한 수수께끼 중의 하나는 ‘양자 홀 효과’입니다. 표면과 수직 방향으로 자기장(magnetic field)을 가하면 표면에서 전기가 흐르는 현상이 발생합니다(홀 효과). 이때 전기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에 대한 척도로서 ‘전기 전도도’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장의 세기와 ‘연속적으로’ 비례합니다. 그런데 2차원 물질에서는 전기 전도도가 자기장의 세기에 비례하긴 하되, ‘불연속적으로’ 비례합니다. 즉 자기장의 세기가 증가함에 따라 전기 전도도 값이 하필 자연수 배로만 계단처럼 한 칸, 두 칸 뛰는 겁니다. 이를 양자 홀 효과라고 부릅니다. 어떤 물리량이 자연수 간격으로 불연속하게 측정되는 현상은, 매우 작은 입자들이 사는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묘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죠. 코스털리츠 교수는 자신의 이론에 사용된 소용돌이(구멍)의 개념을 바탕으로 이를 설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구멍의 개수는 반드시 자연수여야만 하잖아요. 2차원 물질에 자기장을 가하고 그 세기를 증가시키면 2차원 물질에서 하나 둘씩 구멍이 생기는데, 구멍이 한 개씩 추가될 때마다 전기 전도도 값도 계단처럼 한 칸, 두 칸 뛴다는 겁니다.


(cc) Sotiale/ wiki




My hero is Richard Feynman

롤 모델을 묻는 질문에 그는 스승인 사울레스 교수와 더불어 리처드 파인만을 꼽았습니다. 파인만을 ‘히어로’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파인만은 관습에 따르지 않고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했던 물리학자로 유명합니다. 그 결과 전자기학과 양자 역학을 접목하여 ‘양자 전기 역학’을 정립시킨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새롭고 독창적인 연구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파인만은 당시 학생이었을 코스털리츠 교수가 닮고 싶은 영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과 달리 연구 주제를 자주 바꿔 왔습니다. 입자 물리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따고 CERN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가도 응집 물질 물리학 연구에 몰두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연구를 갈망해 왔습니다. 그동안 브라운 대학교 교수로 지내면서 시도할 수 없었지만 언젠간 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일들을 이번에 고등과학원에 머물면서 마음껏 해 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리계의 평형 상태에 관한 연구가 그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연구 성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세월에 묻혀 사라질 수도 있겠죠. 반대로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문제로 인정받는다면 학계에 또 다시 커다란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위상학적 상전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 그가 지녔던 차분한 마음가짐은 지금도 여전한 듯합니다. 그는 절대로 노벨상 수상 혹은 기술 분야에서의 획기적인 응용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탐구하는 것, 그것이 이론 물리학자의 자질이자 노벨상을 받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자연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보편적이다.” ─마이클 코스털리츠




이제 아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물론 노벨상도 좋지만 앎에서 오는 기쁨 그 자체를 만끽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관련해서 새로운 앎을 모두와 공유하고자 쓴 이 글의 마지막에 다시 누군가의 물음이 들려옵니다. 이제 손을(반만이라도) 들어 볼 수 있겠어요?




※ 관련 도서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도서정보]


『뫼비우스의 띠』[도서정보]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