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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커넥션』, 나의 마지막 칼 세이건 퍼즐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코스믹 커넥션』, 나의 마지막 칼 세이건 퍼즐

Editor! 2018. 9. 10. 16:03

서울 SF 아카이브 대표이자 한국 SF 협회 회장이신 박상준 선생님이 『코스믹 커넥션』 리뷰를 보내오셨습니다. ‘코스모스 세대’의 영원한 멘토일 칼 세이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리뷰를 일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코스믹 커넥션』, 나의 마지막 칼 세이건 퍼즐 



거실 책장에서 낡은 책을 한 권 꺼내 든다. 속표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다. 대학 신입생이던 해의 어느 봄날.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인 종로의 대형 서점 3층인가 4층의 외서 코너에 이 책이 꽂혀 있던 서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칼 세이건의 The Cosmic Connection.


필자가 소장 중인 칼 세이건의 『코스믹 커넥션』. 영어판은 1973년에 처음 나온 페이퍼백 판본을 바탕으로 한 1985년 판본이다. ⓒ 박상준.


이제 내 앞에 새로운 모습의 『코스믹 커넥션』(김지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년)이 하나 더 있다. 3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건너 선을 보인 첫 한국어판. 마치 선물처럼 나의 마지막 칼 세이건 퍼즐 조각이 나타난 느낌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구입한 『코스모스』(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를 몇 년 동안 끼고 살다시피 했다. 고3이 되자 아버지께서 책을 숨겨버리실 정도였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칼 세이건의 다른 책들을 찾아다녔다. 학교 도서관에서 『지구의 속삭임』(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년) 원서를 찾아냈고, 해외 잡지 코너에서는 《디스커버(Discover)》에 일부가 연재되던 SF 소설 『콘택트』(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년)를 복사해서 친구들과 같이 영어 공부 삼아 읽었다. 『코스믹 커넥션』의 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구한 것이었다. 지금 같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서점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외서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장 이나스 이시도르 제라르 그랑빌, 「무한의 신비 연작(Les Mysteres des Infinis)」(1844년). 『코스믹 커넥션』 141쪽에서.


1980년대 초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와 함께 출간된 『코스모스』는 풍부한 그림들 덕분에 다른 교양 과학서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SF적인 그림들이 『코스모스』의 큰 매력 중 하나였는데, 알고 보니 『코스믹 커넥션』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73년에 이미 그런 형식으로 선을 보였던 책이었다. 특히 『코스모스』를 통해서 팬이 되어 버린 존 롬버그의 초기 일러스트레이션들이 들어 있어서 더 반가웠다.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외계 문명들을 시찰하고 와서 그려 낸 개념도 같은 느낌이었다.  


『코스믹 커넥션』의 내용을 보면 이후에 세이건이 『코스모스』나 『콘택트』, 또 그 밖의 저서들을 통해 드러낸 생각의 원형 내지는 단초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카르다쇼프의 우주 문명 단계설을 소개한 뒤 세이건 자신이 살을 붙여 더 세분화시킨 부분. 처음에 카르다쇼프가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행성 차원에서 항성 차원으로 에너지 이용도가 확장되는 단계를 설정했고, 여기에 세이건은 문명이 지니고 있는 정보의 총량이라는 척도를 새로이 덧붙였다. 나 자신 글을 쓰거나 할 때 즐겨 인용하곤 하는 내용이어서 익숙했는데, 바로 이 책이 그 아이디어를 처음 세상에 내보낸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존 롬버그, 「도토리(Acorn)」. 뒤편에 있는 희미한 밝은 기체 가닥들은 초신성의 잔해로부터 나온 것이다. 『코스믹 커넥션』 305쪽에서.



영원한 과학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설계도가 담긴 『코스믹 커넥션』

이번에 나온 한국판은 오랜 기간 소장하고 있던 원서에 비해 내용이 더 풍부하다. 2000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판에는 저명한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과 세이건의 반려였던 앤 드루얀이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모두 다 세이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이들이라 내용이 더없이 디테일하다. 세이건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들의 글 덕분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다이슨은 세이건과 함께 겪었던 정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씁쓸한 에피소드를 되새겼고, 드루얀은 소년 세이건이 처음 별에 대한 책을 접하는 순간을 마치 드라마처럼 멋지게 재구성해 주었다. 


그리고 권말에 상당한 분량으로 붙어 있는 데이비드 모리슨의 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세이건의 첫 제자 중 한 사람이자 그 자신 훌륭한 우주 과학자인 모리슨은 수십 년 전에 처음 출간된 이 책과 그 뒤 발전한 과학 기술과의 갭을 적절하게 메워주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는 여전히 신선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과학 기술적으로 낡은 내용이 되어 버려 잊히는 다른 대부분의 교양 과학서들과는 달리, 세이건의 저작은 이렇듯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보여 준다. 나는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세이건 특유의 집필 방식, 즉 SF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식 서술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그 수위를 절묘하게 조절해서 책에 더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예를 들어 그는 걸작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자문을 해 줄 때 인간과 비슷한 모양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휴머노이드 타입의 지적 생명체가 또 나타날 개연성은 너무나 낮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의견대로 외계인은 존재만 막연히 암시되는 선에 머물렀다. 그의 소설 『콘택트』와 그 영화에는 이런 조심스런 태도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외계인은 주인공의 아버지 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원래 어떤 형태인지는 전혀 실마리를 주지 않고 있다. 이렇듯 신중한 접근이야말로 오히려 작품의 설득력을 높이고 시대를 넘어서는 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세이건의 감각은 『코스믹 커넥션』이란 제목에도 깃들어 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이걸 “우주와의 연대”라고 번역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꽤 멋진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 외계의 지적인 존재들과 우의를 나눈다는 뉘앙스도 마음에 들었고, 궁극적으로는 우주 그 자체와의 연결이라는 함의도 좋았다. 이야말로 애초에 멋진 제목을 붙인 세이건의 센스 덕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고의 SF 작가이자 과학 저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가 『코스믹 커넥션』을 읽고 세이건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있다. 


“방금 일독을 마쳤습니다. 이 책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글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스타일이어서 마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의 모습이죠. 단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신이 어느 면으로 보나 나보다 더 스마트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싫네요.” 


아시모프 특유의 유머로 마무리되는 이 글은 세이건이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는지를 증언하는 훌륭한 보증서나 다름없다. 천재적인 집필가로 유명했던 아시모프는 생전에 자신이 만나 본 이들 중에서 딱 두 사람만이 자신보다 더 지적으로 뛰어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이 바로 세이건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인공 지능 과학자 마빈 민스키이다.) 


1974년, 파이오니어 10호의 명판에 실린 메시지에 대해 해설하는 칼 세이건. 

Ⓒ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 모두의 멘토, 칼 세이건

이번에 『코스믹 커넥션』을 보면서 어쩌면 『코스모스』는 『코스믹 커넥션』의 확장판이자 업데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스』에서 보여 준 모든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흥미로운 발상들,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지적 통찰이 이미 『코스믹 커넥션』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살짝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코스믹 커넥션』이 우리나라에도 일찍 소개되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중학생 때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 땅의 숱한 청소년들이 우주에 대한 동경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든든한 의지와 용기를 일찌감치 얻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나간 과거에 대한 가정은 부질없는 일. 사실 이런 생각은 이제 이 책을 접할 우리 젊은 독자들에 대한 부러움의 발로일 것이다.


「작은 우주 범선(A Space Caravel)」. 브뤼헐의 그림에 존 롬버그가 그림을 더한 것이다. 『코스믹 커넥션』 263쪽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 멋진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온 『코스믹 커넥션』을 다시 펼쳐보는 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우주 여행의 시작이었다.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한 생명력을 빛내는 책이란 이런 것이다. 그간 세이건의 저작들은 볼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구를 출발해서 태양계로, 그리고 다시 그 너머 우주로. 매번 각각의 단계에 얽힌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세이건 특유의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들로 수놓아져 조금도 식상함이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그의 책들이 집필된 시기는 수십여 년에 걸쳐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차이는 거의 알아채기 힘들다. 아마도 그 정도의 간극은 무의미할 만큼 그가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를 향한 동경의 진정성이야말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세이건만의 강한 호소력이다. 이번에 『코스믹 커넥션』을 보면서 새삼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세상살이가 고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처럼 밤하늘의 우주를 올려다보며 위안과 갈망을 품는 사람들은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세이건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멘토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 한국SF협회 회장)





◆ 관련 도서 ◆


『코스믹 커넥션』 [도서정보]


『혜성』 [도서정보]


『지구의 속삭임』 [도서정보]


『코스모스』(특별판) [도서정보]


『코스모스』(양장본) [도서정보]


『창백한 푸른 점』 [도서정보]


『에필로그』 [도서정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도서정보]


『콘택트 1』 [도서정보]


『콘택트 2』 [도서정보]


『에덴의 용』 [도서정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