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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송기원 편 ① 본문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송기원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교수입니다. 2018년 10월 출간과 동시에 APCTP(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의 ‘올해의 과학책’으로 선정, 2019년에는 국립 중앙 도서관의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으로 선정되는 등 화제를 부르고 있는 『포스트 게놈 시대』를 펴낸 송기원 교수는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제5기 위원으로 활동하며, 현대 문명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생명 과학 연구의 근본을 성찰하자는 메시지를 진중하게 사회에 보내고 있습니다. 연구와 활동으로 바쁜 송기원 교수를 과학책방 갈다에 모셔 짧은 시간이지만 식사를 겸한 수다를 나눴습니다.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생화학자로서,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헤쳐 나온 여성 과학자로서, 과학의 민주화를 고민하는 한 사람의 시민 과학자로서의 송기원 교수를 여기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모두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아홉 번째 이야기
여자 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 송기원 편 ①
세포 주기와 바이오 플라스마를 연구하는 생화학자
SB : 오늘은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님을 모시고「과학+책+수다」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먼저 송기원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 내신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를 포함해서 여러 권의 책을 내시면서 유전자 편집 같은 최근의 생명 과학 연구에 대해 인문학적,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계시죠. 물론 최근 CRISPR 같은 새로운 유전자 편집 기술이 노벨상을 받느니 마느니 하는 식으로 언론에서 화제가 되면서 이런 최신 생명 과학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책들이 여럿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 기술을 소개하고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데 그칠 뿐, 그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 인문학적 성찰을 더하는 책은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눈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는 교수님의 이번 책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생명 과학자 ‘송기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이언스북스 편집부에서 연재하고 있는 저자 인터뷰 시리즈인 「과학+책+수다」 첫 번째 꼭지에서는 먼저 교수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연구실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연구실 이름이 “세포 주기 및 바이오 플라스마 연구실”이더군요. 저도 이공계 출신이기는 하지만 생물학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세포 주기나 바이오 플라스마 같은 용어들이 일종의 암호 같습니다. 세포 주기하고 바이오 플라스마가 뭔지 한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의 세포 주기 & 바이오 플라즈마 연구실 홈페이지. 홈페이지(http://web.yonsei.ac.kr/cellcyclenbioplasma) 화면 갈무리.
송기원 : ‘세포 주기’는 영어로 하면 ‘셀 사이클(cell cycle)’이에요. 번역이 좋지 않아서 이해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 그리고 그 기본 단위인 세포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 복제’인데요, 세포가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 복제를 수행하는 그 주기를 세포 주기라고 해요. 특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갖고 있는 유전 정보를 복제하고, 복제가 된 유전 정보를 ‘똑같이’ 나누는 것인데, 저는 똑같이 나누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어요. 어떻게 똑같이 나눌까? 무언가가 잘못되어서 똑같이 나눌 수 없게 되면 세포 주기가 멈춰요. 잘못된 걸 고치고 다시 나누기 시작하죠.
나눌 때 특히 중요한 게 나뉘는 방향이에요. 세포를 몸 밖에서 키우면 이렇게 나뉘든 저렇게 나뉘든 방향이 별로 상관이 없지만 실제 몸 안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뉘느냐에 따라서 나뉘고 난 후 생성된 두 개의 세포가 같은 특징을 갖느냐, 다른 특징을 갖느냐가 결정이 되거든요. 이게 요즘 줄기 세포(stem cell) 연구자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얘기되는 이슈예요. 줄기 세포가 분열해서 온몸의 세포들이 만들어지는데, 줄기 세포가 이 방향으로(두 주먹을 세로로 떨어뜨리며) 분열을 하면 한쪽에 있는 줄기 세포는 계속 줄기 세포로 남아 있는 반면 그 반대쪽에 있는 세포들은 분화를 하기 시작해요. 그러지 않고 이런 방향(두 주먹을 가로로 떨어뜨리며)으로 분열을 하면 두 개가 다 줄기 세포가 되는 거예요.
동물 세포의 세포 주기. (cc)Kelvinsong/wiki.
SB : 중력에 반응을 하는 건가요?
송기원 : 중력이라기보다……, 제가 손짓으로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사실은 우리 몸의 조직에서 니치(niche)라고 하는 곳에 줄기 세포가 붙어 있게 되거든요. 이 니치에 양쪽으로 다 붙어 있는 상태로 분열이 되느냐, 한쪽이 니치에서 떨어져 나가는 식으로 분열을 하느냐의 문제이지요. 저는 이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그건 아직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예요.
이걸 연구하려면 비교적 복잡한 유기체로 실험을 해야 하는데 제가 생물 죽이는 걸 싫어해서 세포로 실험을 하게 되었어요. 세포 분열의 방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세포 중에 효모라는 단세포 생물이 있거든요.
SB : 그럼 그 효모 세포를 갖고 실험을 하시는 거군요.
송기원 : 유기체를 다루게 되면 쥐 같은 동물로 실험을 해야 되는데 저는 그걸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제가 동물을 다루고 죽이기 싫어했다는 것이에요. 박사 학위 때 초파리를 했었어요. 그때 초파리가 굉장히 중요한 실험용 유기체였거든요. 전 그때 난자만 필요했기 때문에, 걔네를 엄청 증식시켜서 알만 받은 후 다 죽여서 버려야 했어요. 별로 즐겁지가 않았어요.
그즈음 마우스 유전학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고, 유전자 제거 생쥐(knockout mouse, 넉아웃 마우스) 같은 걸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많은 동료들이 마우스 쪽으로 옮겨 갔어요. 초파리 유전학에서 마우스 유전학으로. 그런데 저는 생물을 계속 죽여야 하는 게 불편해서 마우스를 하기가 싫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더 복잡한 시스템으로 갈 때, 저는 세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효모 쪽으로 거꾸로 온 거죠.
SB : 효모가 세포 분열의 방향을 연구하기 좋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이죠?
송기원 : 효모는 출아법으로 분열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포가 작은 눈(bud)이 나오듯 돌기 모양으로 솟아올라요. 이 돌기가 자라서 떨어져 나오면 분열한 거죠. 그럼 새로운 세포가 솟아오르는 과정에서 복제된 유전자가 새로 생겨나는 세포 쪽으로 전달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유전자 수준에서 세포 분열의 방향을 연구하기가 좋아요. 만약 유전자 복제가 끝났더라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거기서 더 이상 세포 주기가 진행되지 않아요. 새로운 세포에 세포핵이 전달이 안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방향이 굉장히 중요하게 돼요. 그 시스템을 효모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 질문 자체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고 아직 우리가 풀고 있지 못한 질문이에요. 이 문제가 풀리면 줄기 세포를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SB : 실제로 줄기 세포의 분열에 어떤 요소들이 중요한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거군요?
송기원 : 거의요. 최근에 유전자 몇 개가 중요한 것 같다고 알려진 바가 있긴 해요. 제가 말씀드린 분열 방향은 발생 과정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분열해서 세포가 어떻게 배치가 되느냐에 따라서 발생 프로그램이 달라지는데, 그런 건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SB : 저는 세포나 세포 주기, 효모 같은 건 이미 이해가 끝난 줄 알고 있었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군요.
송기원 : 생명 현상 중에서 이해가 끝난 건 없어요. 저희 실험실에서 또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이 얘기도 해도 되나요? 최근 막 사람들이 관심 갖기 시작한 건데요, 우리 몸 안에서 많은 단백질이 만들어지잖아요. 여태 우리는 단백질이 그냥 가만히 만들어져서 기능하고 사라지는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 연구실에서 세포 주기 연구하다 찾아낸 단백질 중에 하나는 그냥 기능을 하는 게 아닌 거예요. 사실 단백질을 조절하는 굉장히 중요한 통제 기전(regulation step)이 있었던 거죠. 그걸 상 분리(phase separation)라고 해요. 단백질들이 뭉쳐서 용해도(solubility)가 떨어진 상태로 있다가 용해도가 좋아지면 다시 기능하게 됐다가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이 중요할 것이라고 새로이 밝혀지기 시작했어요. 단백질이 용해도가 떨어져서 뭉치면 문제가 된다는 건 현재 우리가 알고 있거든요. 반대로 단백질이 기능을 잘하려면 물에 녹아 있는 상태가 제일 좋아요.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이니까요.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역시 단백질이 뭉쳐 응집(aggregation)이 되어 버려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얘가 뭉치는지, 왜 풀리는지 또는 풀리지 않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 못해요.
SB : 그렇군요.
송기원 : 만약 단백질이 응집을 한다면 기능을 막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단백질이 세포에서 뭉쳤다 풀렸다 하는 이 과정이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요소가 될 거라는 생각들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어요. 저희가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단백질을 찾다가 그런 단백질을 찾아냈고, 지금 연구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이런 과정이 그냥 임의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그냥 농도가 높아지거나 하는 이유로 단백질에 변형이 생기면 뭉쳐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단백질이 뭉쳐졌다가, 자극을 없애 주면 싹 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역동적인 조절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과정도 전혀 몰라요.
이런 걸 보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을 해도 안되고 너무 알려진 것을 해도 안되고, 막 몰랐다가 확 알려지는 그 찰나에 그걸 해야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발한 질문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더라도 그 질문을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못 찾았다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어렵고요. 물론 그냥 열심히 하는 걸 훌륭하다고 하면 그런 과학자 역시 훌륭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그런 타이밍이 잘 맞아야죠.
한 손에는 기초 연구, 다른 손에는 융합 연구
SB : 우리가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상당히 제한적이군요. 선생님이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끊임없이 탐구하시는 이유와 이런 것이 관계가 있겠네요?
송기원 : 맞아요. 재미있는 현상인데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정말 많고도 많죠.
SB : 그렇군요, 그럼 또 다른 연구 주제인 '바이오 플라스마'가 무엇인지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기원 : 우리나라에서 연구를 하려면, 연구 과제를 계속 수주해야 해요. 과제가 응용을 하기 좋은 것이어야 수주가 잘 되지요. 금방 상업화가 되고 신약 개발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 의도로 제가 화학 물질 목록(library)을 가지고 신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 있을지를 검사하는 신약 스크린을 해 봤어요. 세포 주기를 변화시키는 물질이 다 새로운 약이 될 수 있거든요. 항암제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화학 물질들은 굉장히 독성이 심하고, 여러 단백질을 건드리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약이 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화학적인 방법으로 특이적인 약을 만들거나 세포의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요즘도 여전히 신약 개발하시는 분은 화학 물질을 기초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눈을 돌리지 않았던 물리적인 자극을 사용해서 세포의 생리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도 잘 몰랐는데 우주가 원래 플라스마라고 하거든요. 기체가 이온화된 상태로 존재하는 걸 플라스마라고 한대요. 플라스마 텔레비전 이런 것 있잖아요. 그런데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했으니까, 플라스마가 생명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던 차에 마침 플라스마의 생물학적 기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를 만나게 됐어요.
SB : 플라스마가 생물학, 생명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송기원 : 그걸 지금 연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영향을 미쳐요. 굉장히 복합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그게 에너지니까 하전 입자가 있고, 하전 입자가 돌아다니니까 아주 미세한 전류도 있고, 전자기장 효과도 있어요. 그러니까 기체가 플라스마의 장치를 통과해 세포로 오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그 효과가 세포에서 나타나요. 세포에 실제 화학적,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그걸 연구하는 연구실은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최근에 의학에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기존에 쓰던 방사능보다는 훨씬 에너지가 적어 안전하니까요. 이전에는 기압이 없는 진공 상태에서만 플라스마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의학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못 했었죠. 그런데 플라스마를 상압 상온에서 만들 수 있는 장치들이 개발이 되면서 의학에 응용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플라스마가 세포에서 생리적인 효과를 일으킬 거라는 가정을 하고, 생리적인 효과를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죠. 규명을 해야 의학 분야에 적용을 하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연구한 지 거의 한 10년 가까이 됐어요.
SB : 처음에 들었을 때는 바이오 플라스마가 세포 소기관이나 어떤 세포 골격 같은 특정한 곳에 존재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플라스마를 생물학에 응용하겠다는 굉장히 융합적인 분야군요.
송기원 : 네. 굉장히 융합적이죠. 너무 순수한 연구만 하면 요즘은 학생들이 재미없어 해요. 아까 얘기했던 세포 분열 방향에 관한 연구는 굉장히 기초 과학적인 질문이라서 그런 질문으로 연구비를 많이 따기도 어렵고 금방금방 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답이 쉽게 나오는 질문이라면 여태까지 우리가 못 풀고 있겠어요? 제가 학생 때에도 그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고, 당시에 이미 연구를 시작하셨던 분들이 한두 분 정도 계셨을 거예요.
SB : 1980년대 후반, 1990년도 초반 이럴 때겠네요.
송기원 : 네. 예쁜꼬마선충 배아 발생 과정에서, 세포가 1개에서 4개로 분열할 때 방추체의 방향이 잘못되면 발생이 안 된다는 걸 당시 제 박사 과정 부지도 교수셨던 케네스 켐퓨에스(Kenneth Kemphues) 선생님이 밝히셨어요. 중요한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그분은 방향에만 관심이 있으셨지만, 저는 방향이 잘못되면 세포 주기를 멈추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송기원 연세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SB : 정말 재미있는 주제를 하고 계시는군요.
송기원 :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연구비를 받기에는 적당한 주제가 아니에요. 응용 연구를 같이 해야지 학생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바이오 플라스마 연구를 같이 하게 되었어요.
SB : 기초적인 분야하고 응용적인 분야를 다 같이 하시네요.
송기원 : 그렇게 된 거지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근본적인 질문만 찾아가다가 보니, 정말 이렇게 해서는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응용이 가능한 다른 연구들을 여럿 하다가 ‘아, 이건 정말 재미있겠구나.’ 하는 걸 만난 거예요. 바이오 플라스마라는 걸.
SB : 그렇군요. 교수님 연구실 홈페이지를 둘러봤더니 학생들이 여성분들이 많더라고요. 특별히 의도하신 학생 구성은 아니시지요?
송기원 : 제가 특별히 여학생만 받는 건 아니에요. 저희 방에 남학생들만 있던 시절도 있었어요. 이 성비는 현재 생명 과학 분야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자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언제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사회에서 잘 나가는 분야를 백인 남성이 하고, 분야가 저물어 가면 비백인, 여성 등의 수가 비교적 늘어 가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 한국 생명 과학 연구 분야에 물론 남학생들도 있지만 여학생들이 더 많아요. 찾아보시면 제 연구실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실에도 여학생들이 더 많은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SB : 하지만 지금 이 추세가 일종의 틈새처럼 순간일 수도 있고, 언젠가는 갑자기 주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송기원 : 그럴까요? 우선 저의 경우에는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어요. 바이오 플라스마는 세계적으로 하는 사람이 적고, 생각보다 되게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요. 저도 꽤 오래 했으니 이제 비슷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꽤 생겨서 제가 가면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알아주는 커뮤니티도 생겼어요. 세포 주기는 중요한 질문이지만, 과학 연구도 유행이 있어서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갖고 가는 게 미국 과학자라고 해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모르겠어요. 중요한 질문이라 하더라도 제가 연구하는 효모 시스템으로 정말 생명 과학의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요. 세포의 분열에서 축의 회전 방향 문제는 다세포 생물의 줄기 세포에서 훨씬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이 줄기 세포를 밖으로 꺼내면 그 성질이 없어져서 연구가 어려워요. 몸 밖에 나온 세포들은 방향 감각이 중요하다는 걸 잊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유기체를 다루지 않고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있어요. 하지만 쥐를 이제 기르자니 하기도 싫고, 제가 있는 학교에 쥐를 기르고 연구할 만한 시설도 충분히 없고요. 한 5년쯤 전에 그래도 한번 해 볼까 생각을 했는데요, 당시 쥐로 연구하고 계시던 분도 쥐를 둘 우리가 없어서 지금 난리니 몇 년 기다려 보라고 하시더군요. 전 그냥 “혹시 하게 되면 협업 연구로 하고 일단은 내가 하는 일을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SB : 예전 책을 내신 분 중 카이스트에서 쥐 가지고 연구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들어 보니까 관리하는 게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더라고요.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기원 : 어마어마한 일이고, 비용도 엄청 많이 들어요.
나를 생화학자 만든 건, 혈액형
SB : 그럼 다음 질문으로 가 보겠습니다. 교수님의 커리어를 보면 생화학을 평생 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화학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생화학자를 떠올리며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오해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생화학이 뭔지 한번 소개를 해 주시고 생화학에 왜 매력을 느끼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송기원 : 인정하기 싫겠지만, 결국 생명은 화학 반응으로 유지가 되거든요.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이 화학 반응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생화학이에요.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생명 현상을 유지시키는 화학 반응을 이해를 해야 조절 기작 등을 다 이해할 수가 있는 거니까요. 물론 화학 반응만이 생명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생명 현상은 화학 반응을 통해 유지되니까요. 생화학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화학 반응들이 적절하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공부를 하는 학문이죠.
꼭 생화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청소년 때 수학을 잘했어요. 수학을 잘했지만 사실 제가 관심 있던 건 역사, 문학 이런 것이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여자는 확실한 전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커리어를 갖기가 힘들다, 하셨죠. 제가 자랄 때는 1970년대니까요.
전 착한 딸이었기에 싫다고 못하고 그냥 이과를 간 거예요. 갔더니 옆에 제 친구가 너무너무 수학을 잘하는 거예요. 저는 공부해서 잘하는 애였는데 얘는 그냥 딱 보면 알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정말 이과 타입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 친구는 수학이랑 물리는 잘하는데 영어, 문학 이런 거는 저보다 못하더라고요.
그 친구 주위에 있던 공부를 잘하던 몇몇 친구들은 다 예민하게 그런 상황을 느꼈지요. 그래서 그중에 2명은 “나는 이과 공부를 안 하겠다.” 하고 혼자 공부를 해서 문과 시험을 봤어요. 저는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바꾸면 문제가 많고 부모님은 얼마나 실망하실까…….’ 이런 생각 때문에 그냥 계속했어요. 또 그 당시에 이과에서 의과 대학을 가서 정신과 공부 같은 걸 해 볼까 그런 생각도 있긴 했죠. 근데 저는 피도 잘 못 보고 생물을 막 죽이고 이런 걸 싫어해요. 무서워하고요.
SB : 위대한 생물학자들 중에 그런 분들 꽤 많잖아요. 찰스 다윈도 그렇고.
송기원 : 그런가요? 저는 제가 피가 나거나 병원에 가도 치료하는 걸 못 쳐다봐요. 그러니까 제가 의대 간다는 게 어불성설이잖아요. 부모님은 의대를 가라고 하시고. 근데 제가 그때 시험을 못 봐서 의대를 갈 성적이 안 됐어요. 그런데 과학 중에 화학은 좋아했고요. 그냥 화학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생화학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생명 현상을 공부하는 거니까.
그리고 또 제가 이과 공부를 계속했던 이유는 제가 Rh-형(아르에이치 음성)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혈액형을 중학교 때 알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Rh-가 되게 희귀했고 소설책에 주인공으로 나오고 그랬어요.
SB : 수혈이 필요하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고 그랬었잖아요.
송기원 : 사고 나면 무조건 죽는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사실이 사춘기 예민할 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 식구 중에서 저만 Rh-예요. 주워 온 것도 아니래요. 아버지랑 너무 닮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식구가 저 때문에 가서 다 검사를 했는데 저만 Rh-인 거예요. 그래서 유전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되게 갖게 됐어요. 어떤 이유로 나는 Rh-이고, 다른 사람들은 Rh+(어르에이치 양성)지? Rh+,-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런 궁금증 때문에 이과 공부를 계속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너무나 독립심이 강해졌어요. 나는 Rh-니까, 다른 사람 인생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커리어를 갖고 혼자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전엔 Rh- 관련해 여러 가지 일화나 괴담이 많았잖아요. 요새는 미리 알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지만요.
SB : 옛날 미디어에선 거의 백혈병 수준의 취급을 받았지요.
송기원 : 소설이나 만화책에서 거의 그런 수준으로 취급을 했죠. Rh-인 아이를 낳으면 애가 죽고 이렇게 매체에서 다뤄졌어요. 잘 모르니까 공포심도 있었고요. 저의 사춘기 성격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SB : 그래서 생화학에 관심을 가지셨군요.
송기원 : 네.
SB :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에 입학하시면서부터 생화학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잘 알려진 동문들이 많으시죠? 같은 동기인 83학번들 중엔 이정모 서울 시립 과학관 관장님, 김수영 한국 출판 문화 산업 진흥원 원장님도 계시고요. 대학 다니시면서 재미있었던 일들 한두 가지 소개해 주세요. 혹시 모르지요. 지금 생화학과를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송기원 : 한미약품, 보령제약 같은 커다란 제약 회사의 연구 소장님들이 다 저희 생화학과 출신이에요. 박순재 박사님이나 성영철 박사님은 저와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셔서 제가 학교 다닐 때 뵙지는 못했지만 성영철 박사님 같은 경우는 포항공대 계실 때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잘 알게 된 선배님이시고요. 학교 다닐 때 이정모 관장과 김수영 원장은 정말 친한 친구들이었어요.
제가 연세 대학교에 처음 가본 게 고등학교 1학년 때 문예 백일장 때였어요. 그때가 1980년이었는데 데모 때문에 백일장이 취소됐어요. 갑자기 학생들이 쫙 모여 가지고 스크럼을 짜고 나가더라고요. 봄이었는데, 캠퍼스가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이양하의 「신록예찬」 같은 걸 배우던 시절이었잖아요. ‘나는 연세 대학교에 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입학하니까 정말 재미있는 애들이 많았어요. 재미있는 선배들도 많이 만났고, 좀 자유로운 생각들을 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친했던 친구가 이정모 관장이랑 김수영 원장이에요. 김수영 박사는 굉장히 문학적인 센스가 좋고 아는 게 많았어요. 그땐 운동권 같은 거 하면서 사람들이 대학교 와서 책을, 특히 이념 서적을 많이 읽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나는 운동권 서클에 들어가기에는 마음이 너무 심약하지만 대학에 왔으니 책은 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김 박사에게 “내가 읽었으면 좋겠는 책 리스트를 좀 적어다오.”라고 부탁을 했어요. 김 박사가 리스트를 줘서 읽고 그러면서 친해지게 됐지요. 2학년 때인가 김수영 박사가 그러지 말고 우리 스터디 그룹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겨울 방학 때 철학 공부를 했어요. 사실 김수영 박사가 열심히 공부해 와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식이었죠. 4명인가, 6명이서 했어요. 김수영 원장은 그 스터디를 하면서 더 철학 쪽으로 끌려서 철학과 강의를 많이 듣기 시작했어요. 이정모 관장은 맨날 같이 몰려다니며 밥 같이 먹는 친구 서너 명 중 한 명이었어요.
SB : 이정모 관장하고는 텔레비전 화면에도 잡히신 적도 있다면서요?
송기원 : 아, 네. 우리가 도시락을 매일 싸서 모여서 같이 먹었는데 그 당시 축제 때 동기 한 명이 권투 시합에 나갔어요. 축제 때 권투 시합을 해서 챔피언 뽑고 그런 것도 했거든요. 그 친구를 응원하러 수업 끝나고 과 전체가 노천 극장에 갔는데 애들이 경기 끝났는데도 안 올라오기에, 우리 둘이 먼저 올라가서 먹고 있자고 잔디밭에 올라갔죠.
거기서 밥 먹고 있는데 멀리서 망원 렌즈로 우리를 잡아서 대학 축제 풍경이라고 텔레비전에 나온 거예요. 커플이 점심을 싸와서 다정하게 먹고 있다 이렇게요. 저는 몰랐는데 친구들이 그다음 날 와서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해서 알게 된 거지요. 이정모는 키도 저랑 비슷하고 친구나 형제 같았어요. 정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였죠.
SB : 대학 시절에 선생님이 필기한 노트를 잃어버리셔서 83학번 생화학과 학생들이 모두 다 패닉에 빠진 적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송기원 : 그런 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 노트가 없으면 우리 과 대부분 친구들이 공부를 못하거든요. 복사 안 한 친구들이 별로 없었어요. 30부 막 이렇게 복사를 했는데 수업 다녀오니 노트 전체가 들어있던 가방이 없어졌어요. 도서관에 놔뒀는데 누가 가방을 집어가면서 노트까지 갖고 가서. 그래도 친구들이 잊지 않고 고맙게 생각한다니까 저도 고맙지요. 제 노트가 도움이 돼서 다행이고요. 사실 운동권 친구들이 공부하기 힘들었잖아요. 그 친구들 중 노트 덕분에 그래도 대학 졸업했다고 나중에 얘기하는 친구들이 좀 있었어요.
“어떤 이유로 나는 Rh-이고, 다른 사람들은 Rh+지? Rh+,-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런 궁금증 때문에 이과 공부를 계속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송기원 연세대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SB : 교수님은 그러면 대학 다니실 때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셨던 건 아닌 거지요?
송기원 : 제가 운동하기에는 너무 심약한 사람이었지요. 물론 갈등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너무너무 공부하러 유학 가고 싶었거든요. 제가 한번 운동권 농활에 따라갔는데 운동하는 친구들의 닫힌 사고라고 해야 할까, 상명하달식의 권위주의적 분위기라고 할까 이런 분위기에 크게 놀랐어요. 이쪽도 닫혀 있지만 그쪽도 마찬가지로 닫혀 있더라고요. 그리고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나? 이 방법이 옳은가?” 같은 질문을 할 수 없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느꼈죠. 저는 그런 게 굉장히 싫었어요. (웃음) 하지만 과학은 ‘질문’의 세계였고, 과학의 세계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당시의 저에게는 유학에 대한 바람으로 다가왔어요. 그때는 쉽게 외국에 갈 수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저는 정말로 혼자 유학 가서 열심히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웃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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