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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로 돌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충격 보고!: 『이웃집 살인마』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로 돌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충격 보고!: 『이웃집 살인마』

Editor! 2019. 7. 10. 09:59

『욕망의 진화』, 재밌게 읽으셨나요? 오늘 「사이언스-오픈-북」에서는 욕망의 진화로 진화 심리학에 막 발을 들이신 독자 여러분께 이웃집 살인마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욕망의 진화를 쓴 데이비드 버스의 또 다른 책으로, 살인이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이웃의 보통 사람들이, 심지어는 사랑하던 연인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 본성 안에 살인이 들어 있다 해도 그것이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진화 심리학을 통해 인간 본성을 더 잘 이해해야 살인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아래에 소개할 글은 인간의 살인 행동을 진화 심리학으로 연구했으며 이 책의 옮긴이이기도 한 홍승효 선생님의 옮긴이 후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로 돌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충격 보고!

『이웃집 살인마』

 

 

『이웃집 살인마』 표지. ⓒ (주)사이언스북스.

진화 심리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욕망의 진화』라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한창 연애에 관심이 많던 시절, 단순히 제목만 보고 선택했던 이 책은 뜻밖에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어째서 사랑은 공평하지 않은가, 왜 사람들은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히는가?’ 같은 사랑에 관한 고질적인 질문들에 지금껏 접해 왔던 답변들 중 가장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신비한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마음. 그것을 대담하게도 육체와 같은 진화의 산물로 보고 마음의 구조와 작동 기제를 파고드는 진화 심리학은 당시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탄탄한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접근 방식은 단순히 드러난 현상들 사이의 상관 관계를 추론하던 기존의 접근 방식들에 비해 상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욕망의 진화』를 비롯한 진화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몇 부 소개되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진화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맨 처음 내게 영향을 주었던 책이 바로 데이비드 버스의 저서였으니 결과적으로 데이비드 버스는 나를 진화 심리학으로 이끈 전도자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대학원에서 내가 연구했던 분야는 바로 인간의 살인 행동이었다. 그중에서도 남성 간 살인과 부모에 의한 자식 살해가 주요 연구 주제였다. 진화 심리학 자체가 역사가 길지 않은 신생 학문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많은 연구들이 주로 배우자 선택과 관련해 이루어졌던 까닭에 살인에 대한 연구는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연구가 거의 전부였다. 그런 상황에서 기존 연구들을 지지해 줄 만한 비교 문화적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구의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발생한 살인 사건의 수사 기록들을 조사하였다. 또 규장각에 보존된 조선 시대의 검안 문서를 통해 당시 발생했던 살인 사건의 양상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연구 결과들은 진화 심리학에서 예측하는 결과들과 상당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나의 지도 교수였던 최재천 교수님과 데이비드 버스는 오랜 동료다. 그러나 2003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인간 행동과 진화 심리학 학회’에서 직접 만나 보기 전까지는 데이비드 버스가 진행하는 연구들의 세부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살인 판타지’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발상이 너무 흥미로워서 하루 바삐 그의 연구 결과가 세상에 나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그의 책을 한국에 소개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몇몇 독자들은 인간의 마음에 살인을 위한 별도의 심리 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학계 내에서도 살인을 위한 별도의 심리 모듈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건 기사들을 조금만 분석해 봐도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들에 어떤 공통점들이 존재함을, 그리고 자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들을 예측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살인을 위한 별도의 심리 모듈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인간이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들이 존재하며, 그 지점들이 진화 심리학에서 예측했던 상황들과 일치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 살해의 경우를 한 예로 들어 보자. 부모들에게 자식을 살해하는 별도의 모듈이 존재한다고 믿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특정 상황에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아직 아이를 기를 여건이 안 되는 미성년자들이 갓난아이를 유기했다는 기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낙태’라는 형태로 이뤄지는 영아 살해도 많이 존재한다. 낙태와 영아 살해가 비단 현대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장화·홍련이나 콩쥐·팥쥐처럼 못된 계모가 의붓자식들을 학대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예외 없이 존재한다. 이런 얘기들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어서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변함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너무나 흔하고 익숙한 것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계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의 위험이 단지 편견과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대상으로 한 실제 연구 결과는 친부모 가정에서보다 계부모 가정에서 아동이 학대당하고 살해될 위험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물론 세상에는 의붓자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고 키우는 부모들이 훨씬 많지만 이런 위험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이삭의 희생」. 1635년.

혹자는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라서 그 사회적 파장에 대해 우려할지도 모른다. 내 논문의 심사를 맡아 주셨던 지도 교수님들도 논문의 사회적 파급 효과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다. 다행히도 졸업한 지 이제 3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논문으로 인해 우려했던 상황들은 아직까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이 책에 쓰인 내용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들에 대한 자료들이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스가 지적했듯, 적어도 이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그러한 논리가 어느 점에서 잘못된 것인지 지적해 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게다가 많은 법과대학 교수들이 버스와의 토론에서 얘기했듯이, 살인 심리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범행을 막고 자신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정신병자나 반사회적인 인물들로 치부되던 범죄자들을 이해하고 앞으로 혹 일어날지 모를 범죄의 양상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검찰청의 어두운 자료실에서 무시무시한 사건 기록들을 열람했던 경험은 내게 사람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다. 마지막 장에서 버스가 고백했듯이, 끔찍한 사건 기록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험은 살인 사건에 대한 감각들을 무디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뉴스에서 흥미를 위해 한껏 포장된 사건들만을 접하다가, 사건 전반에 대해 여과 없이 알려 주는 자세한 정보들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더 많은 인간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연쇄 살인범들의 얘기가 뉴스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살인은 우리와 같이 따뜻한 가슴과 뜨거운 피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물론 이들의 대다수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회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지만 성격적 결함이나 정신병, 나쁜 교육과 문화의 영향만으로 이들의 행동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자식 살해나 배우자 살해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전해 듣고 경악했을 많은 사람들도 이들이 놓인 상황에 자신이 놓였을 때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가해자들의 상황에 호소하여 그들의 범죄를 합리화시키려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특정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제가 마음속에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체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신체의 구조와 질병이 작용하는 방식을 알아야 하듯 마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작동하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이 그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진화 심리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책이 한국 과학자들에 의해 국내에서도 출간되기를 바라며 글을 끝맺으려 한다. 혹여 이 책에서 인용된 내용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들은 책 뒷부분의 주와 참고 문헌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6년 7월
홍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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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