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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왜 섹스를 하냐고? 진화 심리학이 답한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여자들이 왜 섹스를 하냐고? 진화 심리학이 답한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Editor! 2019. 8. 1. 10:47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책은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입니다. 이 책은 앞서 소개한 『욕망의 진화』와 『이웃집 살인마』의 지은이이자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와 임상 심리학자 신디 메스턴이 1,000여 명의 여성들에게 섹스를 하는 이유를 묻고, 그에 대한 여성들의 답을 무려 237가지로 정리해서 낸 책입니다. 섹스가 담고 있는 인간 심리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면모를 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로 직접 표현할 기회였다고 하는데요. 오늘 「사이언스-오픈-북」에서는 데이비드 버스의 제자인 전중환 경희 대학교 교수의 리뷰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진화 심리학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여자들이 왜 섹스를 하냐고? 진화 심리학이 답한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다양한 민족, 다양한 연령,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1000여 명의 여성이 들려준 실제 경험담!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표지. ⓒ (주)사이언스북스

지하철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라는 기이한 제목을 단 책을 탐독하는 변태로 여겨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의 시간에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Why women have sex)』(신디 메스턴, 데이비드 버스,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0년)의 공저자이자 내 스승인 미국 텍사스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버스를 언급하면서 정작 그의 최신 저서가 얼마 전에 번역·출간되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책 제목만 들은 학생들이 그 제자인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섹스를 하는 이유는 빤하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해서, 혹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다.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의 성애를 연구하는 심리 생리학자 신디 메스턴과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5년에 걸쳐 3,000명이 넘는 피험자를 조사한 대규모 협력 연구를 통해 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성적 동기 237가지를 밝혀냈다.

 

빈번하게 언급된 동기로서 “섹스가 즐거워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상대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외모에 반해서” 등이 있었다.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동기로서 “에이즈나 헤르페스 같은 성병을 옮겨 주기 위해”, “두통을 없애려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직업을 얻기 위해”, “관계를 끝장내려고”, “섹스를 하면 돈을 준다기에”, “내기에 져서”, “강제로 복종당하고 싶어서”,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경쟁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이어트 하려고”, “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 “남편이 하도 들볶아서” 등이 있었다. 이 책은 다채롭기 그지없는 여성의 성행위 동기 237가지를 상대방의 특성, 성적 쾌감, 정서적 유대, 정복, 질투, 의무감, 자부심 상승, 교환 등 11가지 묶음으로 크게 나눈 다음, 각각의 묶음들을 진화 이론, 임상 의학, 심리학, 생리학 등의 이론 틀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여성의 성애를 연구하는 심리 생리학자 신디 메스턴과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5년에 걸쳐 3,000명이 넘는 피험자를 조사한 대규모 협력 연구를 통해 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성적 동기 237가지를 밝혀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로 섹스를 한 이유를 생생하게 털어놓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실으면서 심리 생리학과 진화 심리학의 과학적 분석을 절묘하게 맞물려 놓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저자들은 일반인 독자가 어렵고 생소한 과학 설명에 지레 움츠러들지 않고 구체적인 실제 사례와의 접점을 스스로 깨닫게끔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자원을 얻는 대가로 섹스를 허락하는 교환 행위의 한 가지 예로 저자들은 다음 반응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반대할 것 같으면 섹스를 해 줍니다. 그를 설득하거나, 방임 하에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죠.”―이성애자 여성, 31세(271쪽)
“여자라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배우자를 성적으로 즐겁게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어디 가서 저녁을 먹을지 결정하는 일부터 말이죠.”―이성애자 여성, 25세(272쪽)

 

이토록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독자들은 성을 매개로 자원을 얻는 교환 행위는 정직한 연애 혹은 성매매로 딱 부러지게 경계를 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결론에 기꺼이 동의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의도가 여성이 왜 섹스를 하는가 살펴보기 위함이니만큼, 여성의 성행위 동기들을 11가지로 세분한 다음에 장마다 설명을 담는 형식이 아마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나로서는 이 책이 하나의 단일한 이론 틀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야무지게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특히, 두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저술한 게 아니라, 각자 업무를 나누어 어떤 장은 메스턴이 맡고 어떤 장은 버스가 맡는 바람에 진화 심리학과 심리 생리학의 유기적인 결합은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어떤 장은 진화 심리학 설명이 대세이고 다른 어떤 장은 심리 생리학 설명이 대세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진화 심리학과 심리 생리학이 번갈아 나오는 코스 요리이지, 두 학문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상승 효과를 내는 창조적인 퓨전 요리는 아니다.

 

성적 희열과 오르가슴을 논의하는 2장(「그 짓의 즐거움」)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들(사실은 메스턴)은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하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부, 젖가슴, 생식기, 음핵, 질의 생리적 변화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오르가슴에 따른 심리적 변화,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방법, 일부 여성들이 오르가슴 장애를 겪는 까닭도 친절히 알려 준다.

 

하지만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진화적 설명은 2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세 쪽에 걸쳐 언급될 뿐이다. 그전의 심리 생리학 부분에서 나오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예컨대 여자는 삽입 성교보다 음핵 자극을 통해 훨씬 더 쉽게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오르가슴을 누리는 방법을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는 등의 사실들―을 그냥 나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 사실들을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할지 함께 논의했더라면 더 유익했을 것이다.

 

메스턴과 버스는 종종 미묘한 불협화음도 낸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는 대로,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건물에서 메스턴 심리 생리학 실험실과 버스 진화 심리학 실험실은 바로 이웃해 있다. 두 저자는 무척 친한 사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신디 메스턴은 여성의 성행동 장애를 주로 탐구하는 심리 생리학자이자 임상 심리학자이지, 인간 심리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는 아니다.

 

신디 메스턴(왼쪽)과 데이비드 버스(오른쪽).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홈페이지에서.

그래서일까, 메스턴이 주로 쓴 것으로 보이는 몇몇 장들에서 진화적 설명은 그저 고만고만한 여러 설명 가운데 하나로 건조하게 취급될 뿐이다. 예컨대 6장(「의무감」)에서 저자는 대개 남편이 아내보다 섹스를 더 바란다고 전제한 다음에 “남자들이 더 높은 성 충동을 갖도록 진화했고, 섹스를 주도하면서 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사회화되었다면 불가피하게도 여자들은 원하지 않는 섹스에 응해야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205쪽)라고 설명한다. 다른 곳에서 저자는 “여성들은 보살피는 사람이 되도록 사회화된다.”(209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자 할 때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을 일단 높이 설정하는 전통적인 사회 과학적 설명 방식이다. 즉 성 충동을 만드는 호르몬이나 뇌의 배선 양식은 어느 정도 생물학적 진화에서 기인할지 몰라도 본성의 영향력은 거기에서 멈춘다. 인간이 정작 어떤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사회화되느냐에 따라 최종적인 행동 결과물은 양육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른바 ‘빈 서판 주의(Blank slatism)’다.

 

메스턴은 인간 행동이 사회화나 학습,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연구 대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섹스를 주도하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을 잘 보살피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는 궁극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할 현상들이다.

 

진화 심리학자인 나로서는 데이비드 버스가 주로 쓴 것 같은 장들이 어쩔 수 없이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인간 성행동의 진화 심리학 연구 내용은 버스의 책 『욕망의 진화(Evolution of Desire)』(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년) 같은 여러 책을 통해 국내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지식이 또 재탕되지나 않았을까 우려되어 책을 선뜻 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다행히, 버스는 배란 주기에 따른 여성의 욕망 변화 같은 최신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반영해 여성의 성행동에 대한 한층 더 새롭고 흥미로운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특히 1장(「여자는 무엇에 흥분하는가?」)는 국내에 번역된 다른 어떤 진화 심리학 대중서보다 여성의 배우자 선호에 대해 가장 신선하고 업데이트된 설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연인을 고를 때 상대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는다든지, 여성들은 어깨 대 엉덩이 비율이 높은 이른바 V자형 몸통에 성적으로 끌린다든지, 노래 잘하는 남성보다 바리톤의 그윽한 저음 목소리를 가진 남성에 더 끌린다든지 등의 발견들은 남녀 독자들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여성이 섹스하는 수많은 이유에 대해 진화 심리학과 심리 생리학의 관점에서 유쾌한 설명을 제공한다. 두 학문적 시각이 완전히 섞이고 어울리기보다는 종종 서로 데면데면하게 따로 논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가 모두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 부담 없이 한번 쭉 훑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버스나 지하철에서 대놓고 펼쳐 읽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침대에서의 입맞춤(Dans le lit, le baiser)」(1892년).

 

※ 이 글은 2010년 9월 17일 《프레시안》에 실린 글을 옮겨 실은 것이다. 당시 《프레시안》에서는 전중환 교수의 이 글을 실으면서 20~49세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여성이 섹스를 하는 이유’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가 46퍼센트로 1위였고,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서"(36퍼센트), "남편, 남자친구가 졸라대서 할 수 없이"(22퍼센트),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서"(20퍼센트)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이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당시 한국 여성들의 대답은 기사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사 링크)

전중환

서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의 최재천 교수 연구실에서 「한국산 침개미의 사회 구조 연구」로 행동 생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버스 교수 연구실에서 「가족 내의 갈등과 협동에 관한 진화 심리학적 연구」로 진화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족들 간 협동과 갈등, 먼 친족에 대한 이타적 행동, 근친상간이나 문란한 성관계에 대한 혐오 감정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 왕립 학술원 회보(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행동 생태학(Behavioral Ecology)》,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American Naturalist)》, 《심리학 탐구(Psychological Inquiry)》 등의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사촌에 대한 이타적 행동 연구는 《가디언(Guardian)》,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슈피겔(Der Spiegel)》 등의 일간지 및 잡지에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이화 여자 대학교 통섭원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면서 진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본 인간 본성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래된 연장통』, 『본성이 답이다』, 『진화한 마음』이, 옮긴 책으로 『욕망의 진화』, 『적응과 자연선택』이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도서정보]

 

『욕망의 진화』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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