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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통령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 『대통령을 위한 뇌과학』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한국의 대통령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 『대통령을 위한 뇌과학』

Editor! 2019. 6. 20. 10:00

대통령은 정치가다. 정치가란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소개하는 첫 번째 정의다. 나는 “이익이 상충할 때 이를 조정하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권위를 통해 가치나 이익을 배분하거나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는 관점은 정치가가 다루는 일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의 가치는 주관적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종종 가치의 문제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때 이를 조율하는 것이 정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재화는 유한하고 욕망은 무한하므로 서로의 이익이 부딪힐 수 있다. 가치와 마찬가지로 욕망이 부딪히는 문제에서 객관적으로 옳은 답은 없다. 법이라는 최소한의 규정, 관습, 사회적 통념에 기초해 대략의 타협안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충돌하는 욕망들 사이의 합의를 끌어내거나 때로 힘으로 강제하는 것이 정치다. 따라서 정치는 인간을 잘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치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인간을 잘 알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거대한 인간 조직을 조화롭게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은 인간의 일에 능숙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과학은 인간적이지 않다. 지구는 편평하지 않고, 우주의 중심도 아니다. 밤하늘의 작은 점으로 보이는 별들은 사실 태양과 같은 것이며 관측된 것만 100,000,000,000,000,000,000,000개에 달한다. 세상 만물은 원자라는 작은 입자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다. 원자들은 완벽하게 똑같아서 서로 구분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한순간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사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인간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되는 것은 없다. (…) 따라서 우주를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을 버려야 한다. 인간의 가치나 권력의 권위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에만 의존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과학적 태도의 핵심이다.

 

 

김상욱 교수. 2015년 <과학 수다가 만나러 갑니다> 홍동밝맑도서관 강연 중.

인간의 문제에 정통한 대통령이라도 과학에는 미숙할 수 있다. 과학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의 문제에 있어 대통령은 무엇보다 물질적 증거를 챙겨야 한다. 증거에 의존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했지만, 정확한 증거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시작이다. 과학은 법칙에 근거해 정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최선의 추론을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확신하는 과학자보다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는 과학자를 신뢰해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과학계에 정말 많은 이슈들이 있었다. 『과학 수다』 1·2권이 나오고 4년 만에 『과학 수다』 3·4권이 세상에 나온 이유다. 우선 알파고로 촉발된 인공 지능 쇼크가 있었고, 중력파가 관측되었으며, CRISPR가 야기한 생명 과학 혁명이 진행 중이다. 젠더 문제와 페미니즘은 과학만이 아니라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으며, 수없이 많은 지구형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다. 또 극저온 전자 현미경, 위상 물리학에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이 밖에도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는 통계 물리학, 신경 정치학, 사회성 생명체, 진화 경제학 같은 흥미로운 주제들이 이번 시즌에서 고루 다루어진다.


현재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 과학자들의 입을 통해 최신 뉴스를 날 것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딱딱한 강의가 아니라 편안한 수다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과학 내용이다. 끝으로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 김상욱 경희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이 글은 김상욱 교수가 쓴 『대통령을 위한 뇌과학』의 에필로그 일부입니다. 전문은 『대통령을 위한 뇌과학』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관련 도서 

 

『과학 수다』 1, 2 [도서정보]

『과학 수다』 3, 4 [도서정보]